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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윤구병)

by 마리산인1324 2006. 12. 21.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32>
농부 철학자 윤구병

길섶에 있는 저 질경이를 보라 저 스스로 움돋고 꽃피는 것을…
6·25와중 4년간 학교 안다니며 자연속에서 '생명의 시간' 깨달아
어쩌다 된 교수도 밥벌이 도구일 뿐 앵무새 노릇 그만두고 이젠 농사꾼으로



풀을 잘 매서 ‘풀매도사’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게으른 눈 믿지 말고 부지런한 손 믿으라고. 눈으로 보면 언제 다 맬까 싶지만 손을 움직이면 금방 된다. 사는 재미가 난다.


대학강사 시절


1950년 6월 25일에 벌어진 전쟁으로 헌걸찬 아들 여섯을 잃은 아버지는 밑으로 남은 자식 셋을 데리고 서울에서 시골로 다시 삶터를 옮겼다.
아버지에게 무릇 이념은 그것이 사회주의로 포장이 되었건 자본주의의 껍질을 쓰고 있건 아주 몹쓸 것이었다. 제도교육이 멀쩡한 자식들 머리를 뒤흔들어 같은 핏줄을 원수로 여기게 만들어 서로 죽고 죽이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했으니, 겨우 목숨을 건진 아이들만은 아예 시골 무지랭이로 길러 피바람 부는 세상 질서에서 벗어나게 지키자는 뜻이었겠다.

국민학교 2학년 때 6.25를 맞은 나는 1ㆍ4후퇴 때 고향 근처로 옮아간 뒤로 4년 동안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뒤늦게 든 생각이지만 나로서는 큰 다행이었다. 가족의 비운이 도리어 나에게는 소중한 공부의 기회를 마련해준 셈이었다.

나는 물질세계에는 따로 시간이 없다고 본다.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행성의 움직임 따위를 빌어 물질의 운동을 재면서 그것을 ‘시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때의 ‘시간’은 사람들 사이에서 약속한 가짜 시간이다.

이것은 진짜 시간, 생명계에 고유한 살아있는 시간과는 다른,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이다. 물질세계에 기대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 특히 현대 도시문명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시간은 이 ‘인간의 시간’ ‘약속된 시간’뿐이다. ‘하루=24시간’은 바로 이 ‘인간의 시간’이 어떤 것인지를 뭉뚱그려 나타낸다. 제도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이 ‘인간의 시간’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아홉시부터 수업이 시작되어 다섯시에 끝나는 식이다. 생체 리듬이나 계절 변화에 따르는 심리, 생리의 변화 따위는 아랑곳할 바가 아니다.

어떤 학생에게는 수학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늘어져 한 시간이 아니라 열 시간 스무 시간으로 느껴지고, 어떤 학생에게는 음악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다는 사실은 제도교육 담당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물질화한 ‘인간의 시간’은 알맹이가 없이 늘 텅 비어 있다. 그 빈 그릇에 누가 무엇을 담는가는 인간의 자의나 우연에 따른다.

그러나 생명체의 몸 안에 간직된 시간은 비어 있는 시간, 똑 같이 쪼개져 있어 그 안에 아무 것이나 채워넣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갯지렁이의 시간, 불가사리의 시간이 다르고, 질경이의 시간, 곰밤부리의 시간, 고슴도치의 시간, 다람쥐의 시간이 저마다 다르다.

이 저마다 다른 살아 있는 시간을 알지 못하면 사람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나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자연의 아이로 자라는 동안 이 ‘생명의 시간’ ‘자연의 시간’이 무엇인지를 배워 익혔다.

봄이 오면 삘기를 뽑아 먹거나 찔레순을 꺾어 먹거나 띠뿌리를 캐 먹으면서, 또 흉년을 이겨내려고 어머니 따라 논둑길에서 여린 쑥을 캐면서, 여름에는 소 여물로 쓸 풀을 베거나 팔뚝과 종아리를 얇게 저미는 칼날 같은 볏잎을 헤치고 김을 매면서, 가을철에는 고구마를 캐거나 감홍시를 따 먹으면서, 겨울에 접어들면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쓸 삭정이를 치거나 내가 직접 내 손으로 엮은 망태에 갈퀴로 긁은 솔잎을 담으면서, 또 눈 온 뒤에 산에 올라 토끼몰이를 하면서 나는 ‘살아 있는 시간’을 내 몸과 마음 속에 깊이 빨아들이고, 내 삶의 시간을 살아 있는 다른 생명체의 시간과 함께 섞었다.

나는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자연 속의 삶에서, 생명의 세계에서는 자유와 필연이 하나이고, 생명의 본질은 자율성에 있다는 것도 배웠다. 길섶에서 짓밟히는 질경이를 보라. 저 여린 생명체가 움 돋고, 꽃피고, 열매 맺는 데에는 외부의 간섭이나 통제가 필요 없다. 저절로 그러는 것이다.

누가 밖에서 돕거나 부추기거나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저 알아서 저 스스로 제 삶의 시간을 통제한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는 길을 찾아낸다.

이렇게 자연의 아들로 자라는 나를 제도교육의 틀 안으로 밀어넣은 사람은 고종사촌형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형은 “애를 국민학교라도 다니게 해야 제 앞가림을 하지 않겠느냐”고 아버지를 꼬여서, 학비는 고종사촌형이 책임지기로 하고, 집에서는 “학교가 마치는대로 곧 한눈 팔지 말고 집에 돌아와 농사일을 거든다”는 다짐을 받고, 주춤주춤 학교길로 따라나섰는데, 한 학년을 건너뛰어 3학년에 편입했다.

요즈음 아이들로 치면 3∼4년 뒤늦게 다시 학교에 다닌 셈이지만 그 때는 한 학년에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아이들도 여럿이어서 쑥스럽다는 생각은 없었다. 학과공부에서 내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국민학교 1학년 다닐 때도 학과공부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었다.

17점 맞은 과목도 있고, 가장 좋았던 성적이 100점 만점에서 35점 맞은 것이었다. 오랫동안 시계 보는 법도 몰랐는데, 왜 작은 바늘이 1에서 2로 옮기면 한 시간이라고 하는데 큰 바늘이 1에서 2로 옮아가면 5분이라고 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것이 진짜시간이 아니라 사람끼리 한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 뒤에야 알았다.

어쨌거나 3학년에 편입한 뒤로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퇴출’당할 때까지 1등을 놓치지 않았는데, 그것은 내가 학과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고, 살아남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남보다 더 빨리 알아차린 데에 까닭이 있었다.

선생님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빨리 외워서 잽싸게 대답하거나 시험지에 옮겨 쓰는 아이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여기고 추켜세우는 버릇이 있었다.

사람이 앵무새나 원숭이보다 머리가 더 좋은 게 빤한데 앵무새가 되거나 원숭이 흉내를 내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선생님이 힘 주어 말할 때 빤히 쳐다보면서 귀담아들은 내용을 손 번쩍 들고 그대로 되풀이하거나 시험지에 고스란히 베껴 쓰는 요령을 나는 재빨리 배웠고, 시험보기 전날 돌돌 외웠다가 시험보고 난 그날로 까맣게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는 짓을 거듭했다. 다행히 시험이 끝난 뒤에도 나에게 시험에 나온 문제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지 묻는 선생님은 한 분도 없었다.

정작 내 삶의 소중한 시간들은 학과공부가 끝나거나 아예 없는 주말이나 방학 때에 시작되었다. 선생님들이 교실에 가두어놓는 시간에서 벗어 나면 나는 산과 들을 쏘다니면서 청미레나 정금 열매를 따 먹고, 메기 가물치와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온갖 불량서적들을 닥치는대로 ‘섭렵’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학년말 시험을 앞두고 한겨울 눈 쌓인 벌판으로 정처없이 떠난 뒤로 시작된 가출은 해마다 이어져서 나중에 출가로 이어질 터였다.

(‘가출’이나 ‘출가’나 그게 그거지 뭐.) 그래도 내 앵무새 노릇, 원숭이 흉내 버릇은 뛰어나서,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 제도교육에 맞지 않는 아이로 낙인이 찍혀서 퇴출 당한 뒤로 ‘늙으신 아버지의 마지막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넉 달 동안 대학입학시험 학습지를 우격다짐으로 머리 속에 쑤셔 넣어 한 학년 건너뛰어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갔다.

철학공부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어쩌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 틈에 철학교수가 내 밥벌이 도구가 되어 있었다.

1981년부터 1995년까지 15년에 걸친 앵무새 철학교수 흉내를 끝으로 철부지 농사꾼 흉내로 지난 10년을 살아왔다. 10년 동안 나는 하루도 같은 일을 되풀이한 기억이 없다.

다시 말해서 날마다 새롭게 익혀야 하고, 어제 배우고 익혔던 것이 오늘은 쓸모가 없어지는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 “새로와지고 또 새로워져라”는 공자의 말씀 뒤에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그러지 않으면 온전하게 살 수 없느니라’가 감추어진 말꼬리겠지 뭐.)

요즈음 내 공부 주제? 사랑이다. 무슨 거룩한 종교적인 그런 사랑이 아니라 짝지어 씨를 퍼트려서 생명의 시간을 미래로 이어가는, ‘살아남는 길’을 닦는 뜻에서 사랑이다.

에덴 동산에 서 있는 생명의 나무에 매달려 있던 열매가 바로 사랑의 열매다. 그 나무가 영원히 개체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왜 열매가 필요했겠는가. 아담과 이브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사랑에 눈 뜨고, 그 결과로 배꼽 달린 아이들을 낳지 않았던가.

사랑 속에 ‘자연의 시간’ ‘생명의 시간’의 문을 여는 열쇠가 숨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그 열쇠를 찾으면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다.

 


▲ 윤구병씨는 대학교수직을 마다하고 농부가 된 철학자이다. 194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어린이책 기획자로도 활동하면서 한국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어린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일러주는 전집형 어린이 백과사전을 만드는가 하면 번역서가 판치던 유아그림책과 0~3세 그림책에 한국 아이들의 모습과 현실을 담는 창작그림책 시대를 열었다. 스스로도 수많은 그림책의 글을 썼다.

1995년 대학교수직을 스스로 그만 두고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했다. 변산공동체에는 20가구 50여명이 모여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젓갈 효소 술 같은 것을 만들어서 자급자족하는 가운데 자녀들에게 공생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하고 있다.

/김주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