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사회

이명박 정부의 두 얼굴 오만과 불안 (시사인080430)

by 마리산인1324 2008. 5. 3.

 

<시사인> [33호] 2008년 04월 30일 (수) 15:01:41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45

 

 

 

이명박 정부의 두 얼굴 오만과 불안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 파행으로 정국이 시끄럽다. 여당과도 엇박자다. 노무현 정부 때도 익히 보아온 풍경이다. 당·청 갈등. 반복되는 걸까? 4년 전 지금과 비교해봤다. 노무현-이명박은 같은 듯하지만 달랐다. 이 정권의 불안정성은 더욱 높았다.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뉴시스

“요즘 뉴스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보수 진영 책사로 꼽히는 윤여준 전 의원의 말이다. 지난 4월24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윤 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도왔고, 당선 직후 인수위원장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가 이 대통령을 만난 건 대선 하루 전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현재 한국지방경영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정치권과는 거리를 뒀다.

윤 전 의원은 인사·정책의 난맥상과 당·청 갈등을 빚는 이명박 정부의 최근 행보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남들에게는 자식·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 해놓고 정작 자기는 바꾸지 않은 삼성 이건희 회장과 뭐가 다르냐”라고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인수위 시절부터 장·차관 임명, 재외공관장 인사, 비서실 재산 공개로 이어지는 인사 실패 사례를 최악으로 꼽았다.

“고도의 정치 행위인 인사를 실패함으로써 국민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이제 ‘고소영’ ‘강부자’는 4천만이 다 아는 말이 됐다. 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사 원칙을 소개했다. “YS는 재력가를 고위직에 임용하는 데 엄격했다. 부정 축재가 아닌데도 상속이든, 자수성가든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세 가지 이유를 대더라. ‘고위 공직자는 어려운 사람을 살펴야 하는데 없는 사람 심정을 알겠나, 재력에 명예까지 가지게 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도 국민이 돈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YS다운 정치 감각이다. 인사는 국민의 상식을 벗어나면 안 된다.”

그런데 또 터졌다. 이날 공개된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수석 비서진 10명의 평균 재산액은 35억5652만원. 354억7401만원을 신고한 이 대통령의 재산을 제외한 액수다.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16명의 평균 재산(31억3800만원)보다 많은 액수다. ‘강부자 내각’에 이어 ‘강부자 청와대’라는 소리를 듣게 생겼다.

도덕성뿐만 아니라 인사의 객관성도 문제다. 당내에서는 “실력이 아니라 선거 공신으로 채워지고 있다”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이 표적이다. 청와대 정무 라인의 전면 쇄신을 요구하고 나선 소장파의 칼 끝은 이상득계를 향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민주당 의원은 “본래 정권 초기에는 측근이나 공신의 인사 개입을 차단하는 것이 관례다.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세상 눈치를 안 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첫 비서실장으로 영남 보수 인사인 김중권을 기용한 건 DJ의 용인술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때도 노 대통령은 캠프 출신인 이광재·안희정·염동연·이강철을 배제하고 문희상·정찬용·문재인·유인태를 정무 라인에 배치했다. 나중에야 어떻든, 임기 초에는 국민 눈치 보느라 측근을 차단했다는 얘기다.
 
브레이크 없는 인사·정책 독주

인사 문제는 정책 혼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0교시·우열반으로 대표되는 학교 자율화 조치,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 추경예산 편성을 통한 경기부양책, 세제 개편, 뉴타운, 대운하 등 국민의 삶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정책이 쏟아지는데 당·정·청 사이 불협화음으로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세게 제동을 걸었다. 추경 편성 등 인위적 경기부양책을 시도하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당을 망하게 하려면 그렇게 하라”고 거칠게 쏘아붙였다. 4월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시장에 대한 인위적 개입 △수도권 집중·지방 홀대 △서민·중소기업 등 취약 계층에 대
   
ⓒ연합뉴스
지난 4월22일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은 한나라당 당선자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국내에는 경쟁자가 없다”라고 말했다.
한 정책 부족이라는 이유를 들어 청와대와 정부를 싸잡아 질타했다. 이 의장은 기자와 만나 “자칫하면 관료들에게 휘둘린다. 당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선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과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그는 최근 두 공약이 수정, 보류된 것에 대해 “아직까지 (대운하와 747 공약을) 잡고 있었으면 지금쯤 떡칠을 하고 있었을 거다”라며 감정을 드러냈다. 여권의 한 정책통 인사는 “이명박 정부가 하는 걸 보면 아마추어도 아니고 왕초보 수준이다”라고 혀를 찼다.

노무현보다 더 불안한 이명박


‘당·정·청 엇박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지겹게 겪은 일이다. 반복되는 걸까? 문제는 더 심각할 수 있다. 4년 전, 그러니까 열린우리당이 탄핵 역풍으로 152석 과반을 얻은 17대 총선 직후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봤다. 두 대통령은 과반의 힘을 토대로 초기부터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점에서 유사한 출발을 보였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 언론 등에 걸친 ‘4대 개혁입법’을 들고 나왔다. 지지 여론이 뒷받침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1년을 끌려다녔고 개혁법안은 ‘누더기 법안’으로 전락했다. 지지층의 외면이 시작됐다.

반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여론의 반발이 심하다. 서민층은 물론 기득권층에서조차 이견이 속출한다. 장관과 수석의 생각이 다르고 당과 청와대의 마찰음이 그렇다. 1년은커녕 며칠 만에 번복되고 철회되기 일쑤다. 그 결과 취임 초기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유례없는 일을 겪고 있다. 대여 관계는 물론 대국민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또한 집권 기반이 다르다. 노 대통령의 경우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탄핵 과정에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몰락하고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여의도 세력이 대폭 물갈이되면서 강력한 경쟁자도 사라졌다. 노 대통령이 당·정 분리라는 정치 실험을 감행할 수 있었던 여유와 자신감은 그런 조건이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반면 이 대통령은 정반대다. 당 장악력을 높이기 어려운 구조다. 박근혜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으며,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의 낙선으로 공백이 발생했다. 이재오를 대체할 차기 당권 주자도 마땅치 않다. 부지런히 뛰고 얼른 성과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로서는 답답할 수 있겠다.

지역 기반도 취약하다. 노 대통령은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와 충청·수도권이 뒷받침했지만 이 대통령은 전통 지지 기반인 영남을 박근혜 전 대표와 반분했고, 충청은 이회창 총재와 나눠가졌으며,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두긴 했지만 지지층의 충성도가 약하다. 노무현에 대한 수도권 지지층은 이념적 성향이 강했던 반면 이명박의 경우 비판적 지지 혹은 이해관계에 의한 투표 성격이 짙어 지지층의 이동이 심하다. 이같은 지지층의 성격은 앞으로 이 대통령이 정책을 펴나가는 데 정치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 대통령이 처한 불안정한 기반은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순전히 이명박 자신에게 달렸다. 윤여준 전 의원은 “국민이 아마 1년은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1년도 버티기 어렵다. 7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을 정비하고, 내각과 청와대를 보강하면서 소통 체계를 갖춰야 한다”라고 말한다. 문제는 다시 리더십이다. 

‘선동 아닌 설득’이 탈출구


최근 이 대통령이 미국·일본 두 나라 정상과 회담을 마치고 돌아와 한 말 중에 두 가지가 눈길을 끌었다.

   
ⓒ뉴시스
지난해 8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에 참석한 이명박·박근혜 예비 후보.
우선 4월22일 한나라당 당선자들과의 만찬에서 “내 경쟁자는 누구도 아니고 어느 당에도 경쟁자는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한 대목이다. ‘경쟁자가 없다’는 말은 벌써 두 번째다. 강한 부정은 긍정일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말로 전달됐다. 윤여준 전 의원은 “정치인은 상대방과 함께 가는 배려의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 대통령은 상대를 배제함으로 승리하는 기업의 논리가 강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4선 소장파’인 남경필 의원은 “박근혜와 손학규를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수의 정치는 오만의 정치다. 선진당이나 친박연대와 손잡고 밀어붙이면 역풍이 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나를 따르라’ 식의 선동에서 설득의 리더십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순발력 뛰어난 대통령이 벌써 간파한 걸까? 이 대통령은 4월23일 재외공관장들과의 만찬에서 “국민은 ‘너부터 변화하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10분에 걸친 인사말에서 ‘변화’라는 단어를 무려 12번이나 반복해 화제가 됐다. 그런데 초점이 좀 어긋난 것 같다. 이에 앞서 “나는 항상 두려운 것이 있다. 청와대에 갇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세상은 다 그런가 보다’라고 변할까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분석을 보자. 정 박사는 자신의 저서 <사람 vs 사람>에서 이명박의 심리를 ‘백미러 없는 불도저의 자신감’이라고 평한 바 있다.

“과도한 자기 확신의 연장선상에서 설명될 수 있다. 변화는 유연성, 가치, 당위로 얘기될 수 있지만 이명박 처지에서 변화는 현실 적응력이다. 적응에 대한 자기 확신이 뿌리 깊다. 본능이라 할 만큼 강렬하다. 재외공관장과의 만찬에서 한 말은 빠르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 듯 보인다. 자기 성찰의 힘이 떨어지는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반작용이다. 이들에게 문제의 원인은 항상 외부에 있다.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교정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는다. 마치 성공한 스타플레이어가 성공적인 코치가 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선수들이 잘 뛰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차라리 내가 들어가서 뛰겠다고 나서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국민은 이명박 정부의 지난 4개월(인수위 시절 포함)을 지켜보면서 불안했다. 불안은 갈등하고 회의하고 반성하는 사람이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불안을 모르고 사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보며 더욱 혼란스러운 국민.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가 이런 식으로 자리 잡아가도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