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08.06.10 639호(p22~23)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8/06/02/200806020500009/200806020500009_1.html
툭하면 발뺌과 훈계 국민 복장 터져! 위에서 아래 보는 MB와 집권세력에 분노 폭발 … 서로 성질낸 상황 앞으로가 더 걱정 |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 swhang@yonsei.ac.kr |
주말마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촛불집회가 며칠째 계속되는 가두시위로 발전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나 잡아봐라’ ‘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며 자진해서 연행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부와 일부 언론은 ‘배후세력’을 언급한다. 하지만 정작 누가 조정하는지도 “있다? 없다?” 수준이다. 쏟아져나온 시위대의 성격마저도 알쏭달쏭하다.
처음에는 집회 참가자의 60% 이상이 중·고등학생이었다. 한마디로 연예인 쫓아 나온 ‘오빠부대’ 분위기였다. 어린 꼬마들까지 나온 가족 나들이 형태의 촛불문화제는 점차 20, 30대가 주도하는 군중시위로 변모했다. 구호도 광우병 괴담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로 확실히 변해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소통의 잘못’ 담화에서 국민 질책과 무시
사건의 발단은 미국 방문 길의 대통령이 만든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질 좋고 값싼 쇠고기’를 수입하게 된 업적을 자랑스럽게 알렸다. 그런데 갑자기 장관들이 불려나가 국민과 ‘끝장 토론’을 벌였다. 알 수 없는 변명들이 쏟아졌다. 관련 전문가나 과학자들도 ‘위험 확률’ 운운하면서 동참했다. 질이 나쁘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한술 더 뜬 것은 청와대와 검찰, 경찰이다. “진짜 나쁜 쇠고기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국민에게 과거 독재권력을 지킨 것이 자기들이었다는 나쁜 기억을 상기시켰다. ‘봉숭아 학당’에서나 일어날 듯한 사건 전개였다. 갈등의 정점은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발표한 대국민 사과 담화문이었다.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을 잘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대통령도 ‘이게 무슨 일인가’ 했을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시위에 참가하거나 동조한 국민들도 같은 심정이다. 모두 동상이몽(同床異夢)이자 시시각각(視視各各)이다. 모두 자기들이 보고 싶은 대로, 아니 상투적으로 보아왔던 그대로만 보고 있다. 이 와중에 정작 속이 터지는 것은 국민이다. 대통령은 소통의 문제를 사죄할 게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그리고 국민이 보려고 했던 것과 자신이 어떤 점에서 달랐는지를 이야기했어야 했다. ‘소통의 잘못’을 질책한 대통령의 담화문에는 또다시 국민을 질책한, 아니 국민을 무시하고 만 대통령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대통령과 그의 베스트 친구들은 과거 10년간 좌파정권의 피해를 언급한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몰랐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가 지난 10년 사이 얼마나 민주화되고, 또 얼마나 국민의 의식이 바뀌었나 하는 점이다. 무엇이 절박해서 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을까를 이들은 생각했어야 했다.
똑같은 쇠고기를 장사꾼이라면 “값싸고 질 좋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얻어먹는 것이 아니라면 소비자는 당연히 “문제가 있지 않은가”라고 물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 손님에게 “네가 잘 몰라서 그렇다”고 면박을 주면 그 집 장사는 끝이다. 과거 생산자 중심의 시장에서 대기업이 했던 방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재래시장에서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대통령과 그들’ 그리고 국민은 이제 서로 남이 됐다. 하나의 현실이 동상이몽이 되고, 그들은 국민과 다른 행동과 사고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국민은 변했지만 정작 대통령과 그의 친구들은 변화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것도 좌파정권 10년 동안 그들이 어렵게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일까.
대통령이 사죄한 ‘소통의 잘못’은 핑계일 뿐이다. 일 저지르고 그럴듯한 핑계로 넘어가는 듯한 대통령과 ‘나는 몰라’ 하는 그들의 친구 패거리에게 알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한다. 국민은 과거 노무현 정권 때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기에 일 잘한다는 사람을 믿고 뽑아줬다. 그런데 그 사람은 국민의 복장을 뒤집는 일만 벌이는 듯하다. 아니, 일 잘하겠다는 것도 좋다. 하지만 자기 일 잘한다고 주위 사람을 훈계하고 닦달하는 사람은 밉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사람을 속 터지게 하니 속은 느낌마저 든다. 막연한 기대가 더 막연해진 것이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을 때 미국 쇠고기와 광우병 괴담이 불쏘시개 구실을 한 것이다. 우연한 일이 전혀 우연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모호하고 불안한 감정,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냥 한번 구경 나선 집회가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 도덕적 모임이 됐다. 안타깝게도 공권력을 지켜야 할 경찰이나 검찰은 이미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누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시위를 유도하는 배후인지 분명해진다. 정말 시위를 만들어내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반(反)집권세력은 역설적으로 집권세력 바로 그들이 된 것이다. 국민은 이제 점점 ‘누구를 잡아들이고 어떻게 색출할지’를 지켜보는 심정으로 바뀔 것이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당신의 이야기를 국민에게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세상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는 세상 말이다. 안타깝게도 대통령과 그의 부자 친구들은 이런 소심한 국민들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소통하겠다는 그분은 엉뚱한 곳에 대고 독백한다. ‘잘나고 또 돈 많다’는 그들이 국민을 무시하는 건 아닐까. ‘배고픈 것은 참아도 무시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한국인의 심성이 살아난다.
집권세력이 시위 조장하는 조직적 세력
모두들 안다. 시위를 한다고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으리란 것을. 그렇기에 더욱 좌절감을 느낀다. 마치 원하는 장난감을 달라고 떼쓰는 아이의 심정이 된다. 이런 철없는 국민에게 대통령도 ‘철없는 부모’의 역할만 하고 있다. 집권세력이라면 국민의 마음이 후련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대신 정리해줘야 한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알려야 한다고 믿을 때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일방통행이다. 위에서 아래를 보는 못된 버릇을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현재의 상황은 서로 나쁜 기분에 성질 한번 부리는 것과 같다. 정작 앞으로 어떻게 될지 더욱 걱정이다. 해결 방법으로 나오는 것은 고작 “불법 가두시위는 법질서 확립을 위해 엄단한다”는 아주 오래전 녹음된 소리들뿐이다. 소통을 못해 죄송하다는 사람들이 엄포를 소통이라고 착각한 듯하다. 현재 일어난 상황이 무엇이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상투적 반응이다. 모두 ‘보지 말고’ ‘듣지 말며’ ‘말하지 말아야’ 하는 원숭이가 된 듯하다. 대통령의 베스트 친구들이 빨리 국민의 친구가 되거나, 대통령이 국민과 베스트 친구 관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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