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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종교

성철스님이 저술한 수행인의 좌우명

by 마리산인1324 2006. 12. 30.
 

http://kr.buddhism.org/zen/sung.html


성철스님이 저술한 수행인의 좌우명


 

                차   례     


          1. 식심견성(識心見性)

          2. 내외명철(內外明徹)

          3. 오직 돈법만을 전하다(唯傳頓法)

          4. 무념으로써 종을 삼다(無念爲宗)

          5. 정과 혜는 한 몸(定慧體一)

          6. 남이 없는 서방극락(無生西方)

          7. 물들지 않고 닦음(佛汚染修)

          8. 부처님 깨달음의 씨앗(佛菩提因)



1. 식심견성(識心見性)


일체 만법이 모두 자기의 마음 가운데 있거늘 어찌 자기의 마음 가운데로부터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서 말하기를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으니,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면 다 부처님 道를 성취하는 것이니 곧 넓게 깨쳐서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 있어서 본래 스스로 구비하여 있거늘,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하였거든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성품을 볼지니라. 각각 스스로 마음을 관찰하여 자기의 본래 성품을 단박 깨닫게 하되, 만약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선지식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 성품을 볼지니라.

보리 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 스스로 가졌거늘 다만 마음이 미혹 하므로 말미암아 스스로 깨칠 수 없으니 반드시 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성품을 볼지니라.

사람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되 망념이 있는 까닭으로 진여를 덮고 있으니 망념이 소멸하면 본래의 성품이 깨끗하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니라.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불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면 곧 큰 뜻을 깨치느니라.

앞 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 생각을 깨치면 곧 부처니라.

자성을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성을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자기의 성품을 미혹하면 곧 중생이요, 자기의 성품을 깨치면 곧 부처니라.



2. 내외명철(內外明徹)


어떤 것을 청정법신불이라 하는가? 세상 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여 만법이 다 자기의 성품 가운데 있으니, 모든 법이 다 자기의 성품에 있어서 자기의 성품이 항상 청정하니라. 해와 달이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여서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 日月星辰을 밝게 보지 못하다가, 문득 지혜의 바람이 불어 흩어서 구름과 안개를 말끔히 거두어버리면 삼라만상이 일시에 모두 나타 나느니라.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청정함도 마치 깨끗한 하늘과 같아서 惠는 해와 같고 智는 달과 같아 지혜가 항상 밝거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 구름이 덮어서 자기의 성품이 밝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선지식이 참다운 법을 열어 주심을 만나 迷妄을 불어 버리면 안팎이 밝아 사무쳐서<內外明徹>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모두 나타나 일체 법에 자재하나니, 청정법신 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청정법신이라 하는가? 세상 사람의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만법이 본래 자기의 성품으로부터 나느니라. 모든 법이 자기의 성품 가운데 있어서 하늘이 항상 맑음과 같으며 해와 달이 항상 밝은 것과 같으나, 뜬 구름이 덮어서 위는 맑고 아래는 항상 어둡다가 문득 바람이 불어 모든 구름이 흩어지면 위 아래가 함께 밝아서 모든 모양이 다 나타나느니라.

사람의 성품이 항상 떠돌아다님도 저 구름낀 하늘같아서 또한 이와 같느니라. 智는 해와 같고 慧는 달과 같아 智慧가 항상 밝거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 구름이 덮어서 자성이 밝고 맑지 못하다가, 만약 선지식을 만나 참된 법을 듣고 미망을 스스로 없앤다면 안팎이 밝아 사무쳐서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모두 나타나나니, 성품을 본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므로 이를 청정법신불이라고 이름 하느니라.


자기 성품의 心地를 지혜로써 관조하여 안팎으로 밝아 사무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나니,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이미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요,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이니라.

지혜로 관조하여 안팎이 밝아 사무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나니, 만약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만약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며 무념이니라. 곧 견성을 하여서 반야삼매에 들어가느니라.

六塵 속에서 여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아서 오고 감에 자유로움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육진 속에서 물들지도 않고 섞이지도 않아서, 가고 옴에 자유로우며 통하여 씀에 자유로우며 통하여 씀에 걸림이 없음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



3. 오직 돈법(頓法) 만을 전하다(唯傳頓法)


五祖가 "금강경"을 강설하신대, 혜능이 한번 듣고 말끝에 문득 깨치니라. 그 밤에 법을 받으니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문득 頓法과 가사를 전하되, "네가 六代祖가 되었도다"고 하였다. 말 끝에 일체 만법이 자기의 성품을 떠나지 않음을 문득 깨닫고 내가 말씀드렸다. "어찌 자성이 본래로 청정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로 생멸 없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구족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동요함이 없고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으리요!"


오조가 본래의 성품을 깨침을 알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느니라. 만약 말 끝에  스스로 본래 마음을 알고 스스로 본래 성품을 보면 곧 "인천의 스승, 부처니라"


三更에 법을 받을새, 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니 문득 心印의 돈법과 및 衣鉢을 전하고,"네가 육조대사가 되었도다"고 하니라.


오직 돈교법  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을 부수는 도다. 대사가 이 돈오 교법을 전하니 배우는 사람들은 같은 한 몸이기를 바라노라. 이는 다만 돈교라, 또한 大乘이라 이름하나니, 미혹할 때는 수 많은 세월을 지나고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이 게송은 돈오 법문이요 또한 큰 법의 배니, 미혹하여 들으면 수 많은 세월을 지나고 깨친 즉 잠깐 사이로다.

나는 五祖忍 화상의 회하에서 한번 듣고 말 끝에 크게 깨쳐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으니, 그러므로 이 돈법을 뒷날에 유행하여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돈오케하여 각자가 스스로 마음을 관찰하여 자기의 본성을 단박에 깨치도록 하는 것이니라.

내가 오조스님 밑에서 한번 듣고 말 끝에 문득 깨쳐서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으니, 이러므로 이 교법으로써 유행하여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돈오하여 각각 스스로 마음을 관찰하여 스스로 본래의 성품을 보게 하느니라.

法에는 "頓"과  "漸"이 없으나 사람은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점 계합하고 깨친 이는 頓修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바로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니, 깨치면 원래로 차별이 없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점점 계합하고 깨친이는 단박에 닦으니, 스스로 본래 마음을 알고 스스로 본래 성품을 보면 곧 차별이 없느니라.

"청하오니 대사의 세우지 않는다<不立> 하심은 어떤 것입니까?"

대사 말씀하셨다.

"자성은 잘못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어서 생각 생각이 반야 지혜로 관조하여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났으니 무엇을 가히 세우리요. 자성은 단박에 닦는 것이니 세우면 漸次가 있으므로 세우지 않느니라"

"어떤 것이 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자성은 잘못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으며 어지러움도 없어서 생각마다 밝게 비춰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나서 자유자재하여 종횡무진하니 무엇을 세운단 말인가? 자기의 성품을 스스로 깨쳐서,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점차가 없느니라."

마땅히 반야로 관조하면 찰라 사이에 망념이 다 소멸하여 이것이 곧 나의 진정한 선지식이라, 한번 깨침에 곧 부처님을 아느니라. 자기 성품의 心地에 지혜로 관조하여 안팎이 밝아 사무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요 곧 해탈이니라.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니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無念이니라.

반야 지혜가 일어나 비추면 한 찰라 사이에 망념이 다 소멸하나니, 만약 자기의 성품을 알면 한번 깨침에 곧 부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지혜로 비춰 안팎이 밝아 사무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나니,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만약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니, 이것이 무념이니라.

법달이 말 끝에 크게 깨치고 말하기를 "이후로는 생각생각 부처님 행을 수행하겠습니다"하니,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행이 곧 부처님이니라" 하였다. 자성이 三身을 갖추어 發明하여 四智가 되나니, 보고 듣는 인연을 여의지 않고 초연히 부처님 지위에 오르느니라.



4. 무념으로써 종을 삼다(無念爲宗)


나의 법문은 옛부터 모두 無念을 세워 宗을 삼나니, 모양 없음으로 몸을 삼고 머뭄 없음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세상의 사람이 견해를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 만약 생각 있음이 없으면 무념도 또한 서지 못하느니라.

없다 함은 무슨 일이 없다 함이며, 생각함이란 무슨 물건을 생각함인가? 없다 함은 상대되는 두 모양의 모든 塵勞를 버림이요. 진여는 생각의 몸이며 생각은 진여의 작용이니라. 자성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일만 경계에 물들지 아니하고 항상 자재하나니, "유마경"에 말하되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하니라.

없다 함은 상대되는 모양의 塵勞의 마음이 없음이요 생각함이라 함은 진여본성을 생각함이니, 진여는 생각의 몸이요 생각은 진여의 작용이니라. 진여의 자성이 생각을 일으켜 여섯 모양을 생각하여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만가지 경계에 물들지 않고 참된 성품이 항상 자재하여 밖으로는 항상 모든 色相을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에서 움직이지 않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이니, 기억과 집착이 없는지라 속이고 망령됨을 일으키지 말라. 곧 스스로 진여의 성품이니라. 지혜로써 관조하여 일체법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곧 성품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무념이란 일체법을 보되 일체법에 染着하지 않으며, 일체처에 두루하되 일체처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만약 일체처를 보되 마음이 물들어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이 무념이 이니라.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음을 무념이라 이름 하느니라. 모든 경계 위에서 마음이 능히 일만가지 경계에 항상 고요하여 생각 위에 모든 경계를 항상 여의고 경계 위에 마음이 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모든 경계 위에서 마음이 물들지 않음이 무념이라, 자기의 생각 위에 항상 모든 경계를 떠나 경계 위에 마음이 나지 않느니라. 무념법을 깨친 이는 만법에 모두 통달하며, 무념법을 깨친 이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며, 무념법을 깨친 이는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5. 정과 혜는 한몸(定慧體一)


나의 이 법문은 定과 慧로써 근본을 삼나니, 제일 먼저 혜와 정이 각각 다르다고 그릇 말하지 말라. 정과 혜가 한 몸이어서 둘이 아니니, 곧 정은 혜의 몸이요 혜는 정의 작용이니라. 곧 혜의 때에 정이 혜 속에 있고 정의 혜가 정 속에 있나니, 이 뜻은 곧 정과 혜가 함께 함이니라.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빛 같아서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음이라, 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이니 곧 두 몸이 있으나 두 갈래가 아니니, 이 정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최상승법을 수행하면 결정코 성불하여 감도 없고 머물음고 없고 옴도 없나니, 이는 정과 혜가 함께하여 일체법에 물들지 아니할새, 삼세 제불이 여기서 三毒을 변하게 하여 계,정,혜로 삼느니라. 정과 혜가 각각 다르다 하면 이런 견해를 가진 자는 법에 두 모양이 있느니라. 곧 마음을 혜라 하고 곧 부처가 이에 정이니, 정과 혜가 함께하여 마음 속이 청정하니라. 이 법문을 깨침은 너의 습성에 연유한 것이니, 因이 본래로 남이 없음이라. 雙修가 바르도다.



6. 남이 없는 서방극락(無生西方)


우미한 사람은 염불하여 거기에 가서 나려하고 깨친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서 불국토도 깨끗하다" 하시니라. 마음에 다만 깨끗치 않음이 없으면 서쪽 나라가 여기서 멀지 않고, 마음에 깨끗치 않은 생각이 일어나면 염불을 해도 왕생하여 이르기 어렵느니라. 안팎이 밝아 사무치면 서방과 다름이 없나니, 이 법을 닦지 않고, 어떻게 서방에 이르리요. 만약 무생인 頓法을 깨치면 서방을 봄이 찰라 사이에 있느니라.

 


7. 물들지 않고 닦음(不汚染修)


대사가 말씀하셨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한 물건이라고 말씀드린다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그러면 닦고 증득하겠는가?"

"닦고 증득함은 없지 않으나 汚染은 할 수 없습니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다만 이 오염되지 않음은 모든 부처님의 護念하시는 바라, 네가 벌써 이러하고 나 또한 이러하니라.



8. 부처님 깨달음의 씨앗(佛菩提因)


만약 수행하여 부처님을 찾는다고 할진댄 어느 곳에서 참됨을 찾으러 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 있으면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이로다. 화신 보신 및 정신이여! 세 몸이 원래로 한 몸이니, 만약 몸 가운데서 스스로 보는 걸 찾으면 부처님 깨달음을 이루는 씨앗이로다. 법신 보신 및 화신이여! 세 몸이 원래로 한 몸이라 만약 자성 가운데로 향하여 능히 스스로  보면 곧 성불하는 깨달음의 씨앗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