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08-12-10 오전 8:19:21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1209180309§ion=03
"촛불, 그리고 우리 모두의 권리를 다시 선언합니다"
[기고] '2008인권선언'의 불이 지펴지기까지
오는 10일, 국제연합(UN)이 선포한 세계인권선언이 6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각계 사회단체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그 중 인권단체연석회의,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연석회의,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빈곤사회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 14개 단체는 세계인권선언을 국내 현실에 수정한 '2008 인권선언'을 작성했다. 이들은 오는 10일 2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2008인권선언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4시부터는 릴레이 인권선언 부스를 운영하며 시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같은 장소에서 저녁 7시부터는 2008년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현 주소를 보여줬던 '촛불 집회'를 기념하는 촛불문화제도 열 예정이다. 이날 행사를 맡은 이들 중 하나인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가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를 되짚고 2008인권선언의 의의를 설명하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편집자> |
동양에서 60은 '육십갑자'로 한 번의 순환을 마감한 것이지요. 그래서 환갑을 맞은 사람들이 건강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기 기원하기도 합니다. 세계인권선언도 이제 60살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세계인권선언은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얘기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인권선언이 담지 못한 많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건 인권선언이 태어난 해의 한계이기도 하며 당시를 주름잡던 이념적 지향의 한계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계의 많은 선언들은 그냥 '논(論)'자들이 모여 토론으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선언이 만들어지기 전 수많은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것은 60년 전 세계인권선언, 그리고 지금 인권단체들이 준비하고 있는 2008년 인권선언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2008년 인권선언이 나온 것은 단지 올해가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진 지 60년이 되었기에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5월부터 시작된 촛불의 투쟁과 비정규직 투쟁, 에이즈 감염인들의 의약품 접근권 투쟁, 장애인들의 장애활동보조예산확충과 장애인연금법제정투쟁, 청소년들의 노동권보장투쟁 등을 거치면서 '우리의 권리를 우리가 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실제 2008인권선언운동은 단지 선언문만 만든 게 아니라 각 영역들의 주체들이 투쟁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구체화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5월을 시작으로 '환자권리선언, 이주노동자권리선언, LGBT 인권선언, 에이즈감염인 인권선언, 국가보안법폐지선언, 장애인인권선언, 비정규직 권리선언, 표현의 자유선언, 청소년 인권선언, 이주민 인권선언'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릴레이 인권선언을 하였습니다.
▲ "2008인권선언은 5월부터 시작된 촛불의 투쟁과 비정규직 투쟁, 에이즈 감염인들의 의약품 접근권 투쟁, 장애인들의 장애활동보조예산확충과 장애인연금법제정투쟁, 청소년들의 노동권보장투쟁 등을 거치면서 '우리의 권리를 우리가 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프레시안 |
2008 선언 전문에도 나와 있듯이 촛불은 한국에서 '인권'을 주요한 화두로 만든 계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자신의 권리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빼앗긴 권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계기로 자기와 다른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과의 연대를 생각하며 손을 내일었습니다. 그래서 연대와 저항은 2008 인권선언의 주요 가치입니다.
연대권은 우리가 발전시켜야할 권리입니다. '연대'는 단지 힘을 합치면 압제를 물리칠 수 있다는 단순논리가 아니라,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면에서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존재로서 인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중요한 권리입니다. 프랑스 인권선언의 '자유·평등·우애' 중, '우애'가 바로 지금의 연대권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신자유주의 아래 인권이 개개인의 권리-이익으로서 권리-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왜곡되는 현실에서 연대권은 인권을 완성하는 권리입니다.
저항권은 우리나라 헌법전문에서도 유추할 수 있는 주요 권리입니다. 물론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2008 인권선언에서는 저항권을 분명히 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많은 인권선언이 저항권과 봉기권을 분명히 했습니다. 1793년 프랑스 산악파의 선언문 39조에서는 "정부가 인민의 권리들을 침해할 때, 봉기는 인민과 인민의 각 부분에게 가장 신성한 권리이자 가장 불가결한 의무"라고도 명시했습니다. 물론 부르주아지들이 권력을 잡은 후에는 저항권을 선언에서 제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긴 역사에서 저항권은 인권확장의 주요 동력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인권이 시혜와 다른 점입니다.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도, 대표될 수도 없는 권리가 바로 인권이기 에 저항과 짝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소수자의 힘으로 만든 2008 인권선언
세계인권선언의 한계로 많이 지적되는 것이 추상성입니다. 추상적이라는 것은 권리를 무한정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보면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할 권리내용을 두리뭉실 흐리게 됩니다. 국가가 인권보장의무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권리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의 경우 국가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인권'이라고 여기지 않아 권리박탈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모든 조항에서 소수자의 시각으로 권리를 구체화했습니다.
▲ "국가가 인권보장의무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권리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의 경우 국가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인권'이라고 여기지 않아 권리박탈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프레시안 |
활동보조인과 보조장구에 대한 권리를 11조 5항 '식량권'(장애인 등은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활동보조인 서비스 등의 편의를 제공받을 권리)과 18조 4항 '집회결사의 자유'(집회시위와 결사에 참여하였을 경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아야 하며, 어떠한 이유에서도 활동보조인과 분리되거나, 보조기구 및 보조견을 빼앗기거나 이용을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 에 분명히 하였습니다.
특히 성소수자의 권리가 완전히 박탈되어있는 현실에서 성적 권리를 독자화하여 공사이분법의 논리와 이성애중심의 가부장적 억압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9조에서 "사람은 자신의 성적 지향 및 취향, 성별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자신의 성적 지향 및 취향, 성별 정체성과 관련한 정보를 드러낼지 드러내지 않을지 선택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했습니다.
반차별권을 구체적인 권리로 14조에 담은 것은 평등이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현실의 힘으로 나타나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반차별이 평등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 반차별이겠지요. 그런 평등의 가치는 1조 "모든 사람은 존엄하며 평화롭게 살 권리가 평등하게 있다"라고 담았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질서를 추구할 권리를 담아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선언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2008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우리의 염원을 담아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보다 '시장의 자유'가 우선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를 지향해야하는지를 조금이라도 보여줄수 있는 선언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언전문에도 나와 있고 29조에도 나와 있듯이 신자유주의질서가 아닌 새로운 사회질서를 추구할 권리는 매우 소중한 권리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질서를 넘어 사람이 더욱 사람답게 살수 있는 세상, 사회질서를 꿈꾸고 그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2008 인권선언은 2009년의 투쟁을 향한 자양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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