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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인터뷰] 마르크스 <자본> 번역자 강신준 교수(오마이뉴스081124)

by 마리산인1324 2008. 12. 12.

 

<오마이뉴스> 2008.11.24 09:3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17157

 

 

"미국발 금융위기, 마르크스로 돌아갈 때
 이명박 '나홀로 신자유주의' 파국맞을 것"
[인터뷰] 마르크스 <자본> 독일어 원본 번역자 강신준 교수
  이승훈 (youngleft)
 
[증언#1] "나는 틀을 운반하고 도르래를 돌리고 있습니다. 출근 시각은 아침 6시이고 4시에 출근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나는 어제 밤을 새우고 오늘 아침 6시까지 일했습니다. 도자기공은 남녀 모두 육체적·정신적으로 퇴화한 대표적인 계층입니다. 그들은 특히 폐렴·기관지염·천식 등의 폐질환에 잘 걸립니다. 천식 가운데 한 가지 형태는 그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것으로 대개 '도자기 천식' 또는 '도자기공 폐병'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자기공의 3분의 2 이상이 임파선이나 뼈 또는 그밖의 신체 부분을 침범하는 연주창에 걸려 있습니다."
[증언#2]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엔 오전·오후 15분씩 쉬는 시간도 없었죠. 작업하다 한눈 파는 것을 막으려고 작업실의 창문도 다 없애버렸어요. 출근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욕을 먹었습니다. 한번은 25년간 칠 작업을 한 노동자가 모세혈관기관지염으로 쓰러졌는데 회사에서는 병원까지 쫓아가 사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생산직 노동자들의 40%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고, 59%는 유기용제 노출로 인한 직업병이 의심됩니다. 또 36%는 기관지 천식, 40%는 만성기관지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 우리 회사 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증언#1'은 1863년 영국의 도자기 산업 노동 현장의 실태조사 결과다. 물론 카를 마르크스 <자본>에 서술된 것이다. '증언#2'는 2008년 기타를 만드는 한국의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만약 마르크스가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 <자본>의 개정판을 쓴다면 어떨까. 아마 영국 도자기공들 대신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사례를 <자본>에 넣지 않았을까. 그만큼 1863년 영국 도자기공들과 2008년 기타를 만드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은 150여 년의 시간차가 무색할 만큼 닮은꼴이다.

 

<자본>을 잉태한 것은 다수의 노동자들이 죽기 일보 직전까지 노동을 하면서도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났지만,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은 한국 사회에서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독일어 원본을 번역한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 이승훈
강신준

"자본주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150여년 전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부리는 방식이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아요. 당시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거의 유사하다는 것이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는 것이죠. 1929년 이전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복제한 신자유주의가 붕괴하는 상황인데,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54)는 마르크스의 <자본>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독일에서 <자본>의 판매가 급증하고 일본에서 공산당에 가입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현실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150년 전 영국과 너무 닮은 2008년 한국

 

강 교수는 지난 6월 마르크스의 <자본> 독일어 원본을 번역한 책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냈다. 1987년 익명의 대학생들이 초벌 번역한 자본론 1권의 감수를 맡아 책을 낸 지 20여년 만이었다. 영어판을 번역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자본론(비봉출판사)>보다 2년 앞선 것이었다.

 

당시는 민주화의 기운이 넘쳐흐르던 때였지만 실명 출판은 꿈도 못 꿨고 출판사 '이론과실천' 김태경 사장은 체포돼 검찰에 끌려갔다. 출판사가 문을 닫으면서  책도 절판되고 말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가끔 '불온서적' 리스트가 작성되는 황당한 일이 없진 않지만 더 이상 <자본>을 번역하거나 공부한다고 감옥을 각오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강 교수는 <자본>을 번역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1991년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강 교수는 "한국 사회는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마르크스의 과학적 유산이 풍부하게 논의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이러한 '과학의 부족' 때문에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이 취약하고 진단했다.

 

  
ⓒ 도서출판길
자본론

"노동운동에 많은 분파가 있는데 과학에 기반한 강령이 없습니다. '차이의 원리'만 작동하고 '연대의 원리'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죠. 분파간 대립도 강령에 제시된 운동 목표·수단을 수정하는 싸움이 아니라 권력을 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게 다 과학에 기반한 강령이 없기 때문이죠. 지금의 분파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조직일 뿐이라는 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진보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당하면서 노선으로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종북주의 논쟁도 강령 차원은 아니었죠. 두 정당이 강령적 목표나 전술적 수단에 있어서 다른 정당이라고 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내부 권력을 어떻게 나눠먹을 것인가를 놓고 갈라섰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분파는 운동세력이라고 할 수 없죠."

 

강 교수는 "마르크스는 1848년 혁명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 '혁명은 과학적 논리로 무장해야만 가능하다'는 자각에서 <자본>을 썼다"며 "진보정당이든 노동운동이든 가장 시급한 과제가 과학적 강령에 기반한 정파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자성을 촉구했다.

 

감옥 안 가도 되는 세상, 그러나 빈약한 마르크스

 

강 교수는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서도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따르면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재앙"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산업자본-금융자본 세 이해당사자로 구성돼 있는데 이 구조를 자연상태로 내버려두면 금융자본이 가장 힘이 세지게 됩니다. 그런데 금융자본은 자본주의 기생단계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 힘이 가장 세지는 불균형 상태를 내버려두면 자본주의는 지속되지 못합니다. 그것이 경험적으로 나타난 것이 1929년 공황이고 지금의 미국발 공황입니다. 결국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새 생산체제로 넘어가거나, 인위적으로라도 균형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규제해야 하는 것이죠. 케인즈도 했던 것인데 그 핵심이 금융규제와 노사관계 규제입니다. 2008년 세계적으로 이 두가지 규제를 놓고 신브레턴우즈체제를 만들기 위한 논쟁이 시작된 것이죠."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각종 금융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두가 아니다'는 길을 가겠다는 이명박 정부. 마르크스라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마르크스가 밝힌 경제법칙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의지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강부자 정책'을 지속하고 싶어도 현재의 물적 조건이 그것을 좌초시킬 것이라는 이야기죠. 자유주의는 구조적으로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 정부만 반대로 가기 힘듭니다. FTA만 해도 우리만 의지가 있다고 해서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강 교수는 "이번 신자유주의 붕괴 후 경제 권력이 분산된 다극화된 새로운 경제체제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며 "국내 경제 구조도 민주화된 체제에 맞춰야 살아남을 수 있고 발전할 텐데 이명박 정부가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신준 교수와의 인터뷰는 20일 오전 그의 연구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자본주의의 역사와 <자본>에 대한 강 교수의 설명, 그리고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까지를 망라한 인터뷰 내용을 핵심만 골라서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역사적 맥락을 생략할 경우 이해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길지만 그만큼 가치있는 120분짜리 그의 정치경제학 강의를 한 번 들어보자. 젊은 세대들에 대한 따뜻한 당부도 그대로 옮겼다.

 

앗, <자본> 수업에선 재테크 안 가르쳐주네

 

  
ⓒ 이승훈
강신준
- 정치경제학 수업에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나? 반응은 어떤가?

"한번은 학생 한 명이 '재테크 가르쳐주는 과목인 줄 알고 들어왔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 듣고 한참을 웃었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어려운 책이다. 흥미가 없으면 공부하기 힘들기 때문에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이러이러한 수업'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맞지 않으면 다른 과목 들으라는 의미에서다. 수업에 70~80명 들어오는 데, 30~40명 정도는 열심히 듣는 편이다. 딱딱한 이론 말고 현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되도록 많이 하려고 한다."

 

- 독일에서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자본>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크크스에게서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본론의 내용을 압축하면 핵심은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 생산의 과잉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게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생산의 과잉이 생기는 것은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교환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게 주기적으로 누적돼서 터지는 과정의 반복이 경기 순환이다.

 

이 경기순환을 마르크스가 정확히 예측해 놓았다. 이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지속될 수 없다고 했다. 요즘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150년 전 마르크스의 이야기에 다시 귀를 기울여 볼 만하지 않은가."

 

- 좀 더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를 크게 보면 역사적으로 3개 국면으로 쪼개진다. 초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1929년까지 계속됐다. 시장을 방임 상태로 둔 자유주의 최정점이 독점이었고, 독점이 만들어 낸 것이 공황이었다. 이 공황은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까지 끌어들여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이 드러났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때는 노동자들이 너무 가혹한 착취를 당했다. 그래서 자유주의를 규제하겠다고 나온 것이 뉴딜 정책이고 케인즈주의다. 이것이 1970년대까지 계속된다. 케인즈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타협적인 체제가 오래갈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1970년대 초 미국 경제의 침체와 케인즈주의를 받쳐오던 국제금융체제가 무너지면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로 전환하게 된다.

 

이 신자유주의는 초기 자본주의를 거의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도 결국 내부 모순으로 종말을 고하게 됐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간 신자유주의 수정과 새로운 체제 마련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 하지만 사회주의는 현실에서 실패하면서 퇴물 취급을 받았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논하면서 주의할 것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1889년에 등장하는 제2인터내셔널에서 꽃을 피우게 되는데 이는 레닌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제2인터내셔널이 성공한 이유는 전 세계 노동대중으로부터 민주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이 다음해 행동계획으로 정한 것이 5월 1일 총파업이었고, 그 핵심 요구안이 8시간 노동과 보통선거권이었다. 당시 유럽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가지지 못했는데 민주주의가 노동운동을 통해 달성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대혁명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 독재로 갔고 이것을 다시 노동대중의 민주주의로 만드는 것, 부르주의 혁명을 완성하는 것이 사회주의라고 했다. 사회를 완전히 민주화시키는 것이 사회주의 운동이고 이 운동의 과학적 내용을 담은 것이 마르크스주의, 이를 서술해놓은 책이 <자본>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민주주의다.

 

레닌주의도 처음 출발은 민주주의였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배신했다. 물론 역사적 조건이 있었다. 2월혁명 이후 구성된 임시정부의 임무는 몰락한 짜르 체제를 대체할 공화정체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제헌의회를 구성해야 했는데 11월 선거에서 볼셰비키가 22%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의회를 해산하고 독재로 갔다. 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등장했고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핵심인 것처럼 레닌이 끌어다 썼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던 세력은 모두 1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했다. 제2인터내셔널 전통이 단절되고 소비에트만이 마르크스주의 적법한 계승자로 남게 된 것이다.

 

결국 볼셰비키가 만든 소비에트 정권은 1991년 투표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주의에 의해서 없어진 것이다.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는 망하고 만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제2인터내셔널에서 단절됐기 때문에 레닌주의가 무너졌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이 떨어진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다면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 진보진영도 레닌이 아니라 마르크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소비에트 정권은 사망했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유효하다"

 

  
ⓒ 도서출판길
자본론

- 마르크스의 시각에서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해 본다면?

"자본주의에는 돈을 주고받는 이해당사자가 세 부류가 있다. 임금노동자·산업자본·금융자본이다. 산업자본은 자기 돈만으로는 사업을 못하기 때문에 금융자본에게 돈을 빌린다. 노동자가 잉여가치를 생산해서 산업자본에게 이윤으로 주면 이중 일부를 금융자본이 이자로 가져가 기생하는 구조다.

 

근데 이 구조를 자유주의적으로 내버려두면 어떻게 될까. 돈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 입장을 놓고 보면 당연히 돈을 빌려주는 사람의 힘이 세게 된다. 이런 불균형 상태를 그대로 놔두면 금융자본의 힘이 가장 세진다. 그런데 자본주의 기생단계에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는 기생계급 금융자본의 힘이 가장 센 이런 구조는 항구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경험적으로 나타난 것이 1929년 공황이고 지금의 공황이다.

 

마르크스의 시각 안에는 자연적으로 내버려두면 필연적으로 공황이 와서 자본주의가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생산단계로 넘어가는 것이고, 그게 안된다면 단기적으로 힘의 불균형을 인위적으로라도 규제해야 한다. 이 규제의 핵심 두 가지가 금융규제와 노사관계 규제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 브레턴우즈체제를 위한 두 가지 규제에 대한 논의를 이미 유럽에서 제기했다. 유럽의 자본주의는 이 두 규제 안에서 커왔던 자본주의고, 미국과 영국이 이 체제를 받아들이려면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치열한 싸움이 붙을 것이다."

 

- 그러면 향후 세계 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는가.

"신 브레턴우즈 체제 논의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G20국가가 참여하게 된다. 이것만 봐도 마르크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경제권력이 필연적으로 분권화 된다고 이야기했다. 전후 1944년 브레턴우즈체제가 만들어졌을 때는 미국이 최정점에 있는, 말하자면 G1체제였다. 그 다음 플라자 합의 때 미국에 독일, 일본이 들어간 G3체제가 됐고 나주에 이것이 G7이 됐다. 이후 새로 자본주의화한 러시아를 무시할 수 없어서 G8체제를 꾸리다가 이것으로도 세계 경제가 통제가 안 되니까 G20까지 늘어나게 된 것이다. 점점 세계 경제 권력이 분산이 되고 민주화된 것이다.

 

오바마도 과거에 미국이 가지고 있었던 그런 독점적 지위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다극화되고 경제 권력이 분산된 경제체제가 이번 신자유주의 붕괴 이후 맞게 될 새로운 경체체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 맞춰서 본다면 국내 경제 구조도 보다 민주화된 체제에 맞춰서 개편돼야 살아남고 발전을 할 수 있다.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가져오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를 정책을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밝힌 경제법칙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의지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아무리 '강부자 정책'을 시행하고 싶어도 현재의 물적 조건이 그것을 좌초시킬 것이란 이야기다.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를 수정하는 흐름으로 나가는데 우리 정부만 반대로 가기 힘들다. 역사적으로 물적 조건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인간 의지를 시험하고 가르치고 수정시킨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구조적으로 혼자서는 할 수 없다. FTA만 해도 우리만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다. 끝까지 이명박 정부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파국이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그렇다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공황은 생산이 과잉이고 소비가 과소인 상태다. 구조조정을 통해 과잉 상태를 해소해야 하는데 공급 부분은 정부가 이자율 등을 통해 기업을 도산시킬 수 있다. 다음은 소비에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계층이 임노동자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2200만 중 임노동자가 1600만이고 자영업자 200만을 더하면 1800만, 이들이 가장 큰 소비계층이다. 이들의 실질 소득을 늘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 인프라를 늘리고 교육과 의료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정책을 펼치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소수에게는 이런 정책들이 불편한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영향력 있는 <자본>, 읽은 사람 몇이나 될까"

 

  
ⓒ 이승훈
강신준

- 국내는 마르크스 경제학 지위가 열악하다.

"학계만 봐도 한국경제학회에 3000명 정도 가입돼 있는데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들이 15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학에 자리잡은 사람은 40명 정도다. 40대 밑으로는 마르크스 경제학 계통이 없다. 진보진영 학맥이 끊길 위기다. 후학들이 계속 나와야 사회여론이라는 것도 균형이 맞는 것인데…."

 

- 서울대에서도 김수행 교수 후임을 채용하지 않았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학생들 관심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과학 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학교 수업은 학점 따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생각한다. 교수들도 하나 같이 '기업이 원하는 품성·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얘기한다고 한다. 학생들이 1학년부터 소위 '스펙'을 갖추는 데 혈안이 돼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개인화된 대학의 단면이다. 그러니 취직에 도움 안 되는 정치경제학이 인기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다."

 

- 유럽은 어떻게 다른가.

"1981년 독일 유학을 준비하면서 보니까, 독일 대학 경제학과 커리큘럼 중 6분의 1이 마르크스 경제학이다. 이것을 마쳐야 졸업을 할 수 있다. 독일 경제학 전공 대학생들은 모두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한 셈이다. 그리고 이들이 지금 사회 중견에 자리잡고 있다. 또 마르크스가 지향했던 민주주의 사회를 정강정책으로 채택한는 사민당이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인 공공노조와 금속노조가 있다. 각각 250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다.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독일 사회는 좌우의 이야기를 다 듣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본다. 이번 경제 위기로 우파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좌파에 좀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론도 많이 팔리고 관심이 늘 수밖에 없다. 또 진보적 재단들과 정당 산하 연구소 등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을 채용해 연구도 하고 교육도 한다. 진보적인 학문을 해도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으니 공부하는 사람들도 계속 나오고 학문적 업적도 계속 쌓여갈 수 있다."

 

- 하지만 지난 봄 <교수신문>에서 학회지나 계간지 편집위원들을 상대로 광복이 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을 물었더니 마르크스의 <자본>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과연 자본론을 읽은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었어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어렵다고 정평이 난 책이니까. 그런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우리 사회에서 '마르크스'라는 이름이 좌우를 나누는 데 중심이 됐던 상징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중요성 때문이었다면 연구저작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자본 해설서조차도 저와 김수행 선생 등이 쓴 3권밖에 없다. <자본>에 대한 과학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 국내의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도 이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동운동 내에도 다양한 분파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로 뭉칠 수 있어야, 즉 연대의 원리가 발휘돼야 힘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노동운동은 차이의 원리만 작동한다. 과학에 기반한 강령이 없기 때문이다. 운동의 목표·수단을 밝힌 강령을 놓고 합종연횡을 통해 연대해야 하는 것인데, 강령을 밝힌 정파가 거의 없다. 분파간 대립도 강령에 목표·수단을 추가하고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 분점을 위해서 생긴다. 과학에 기반한 강령이 없는 노동운동의 분파는 권력 쟁취 조직일 뿐이다."

 

- 진보 정당들도 분열했다.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오면서 강령을 두고 논쟁하지 않았다. 종북주의 논쟁도 강령 차원이 아니었다. 각 정파의 목표가 어떤 점이 다르고 수단은 무엇이 다른지 논쟁하지 않았다. 결국 목표와 수단을 놓고 분당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놓고 분당한 것이다. 지금 밖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강령적 목표, 전술적 수단에 있어서 다른 정당이라고 보지 않는다. 강령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뭉치는 정당은 분파일 뿐이고 운동세력이 아니라 권력을 추구하는 허상일 뿐이다. 진보정당이든 노동운동이든,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과학에 기반한 정파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 과학적 강령 논쟁이 없고 노선투쟁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적 인식이 모자라서다. 우리 같은 학자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일찍부터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연구성과를 내서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마르크스의 과학적 유산을 충분히 연구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 일본에서는 공산당원이 크게 늘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든 것은 똑같은데 우리에겐 이런 현상이 없다.

"진보세력이 아직까지는 믿음직한 세력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이 잘 수습해서 대안세력으로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면 좋아질 것이다. 공산당은 역사가 오래됐다. 거긴 사람 중심이 아니다. 강령에 따른 행동을 해왔고 구조조정 때도 가장 열악한 조선사업장 등에 먼저 결합해 헌신적으로 행동했다. 경제가 좋을 때는 대안세력이 아니라고 보였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대안세력으로 각광받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역사를 쌓아야 한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영국 정당이 근대민주주의로 넘어왔을 때 토리당·휘그당 두 귀족정당밖에 없었다. 노동당은 정당도 아니었는데, 이 눈꼽만한 것이 거대정당이 될 것이라고 그 시대에 누가 생각했겠는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이 땅의 '88세대' 젊은이들에게

 

  
ⓒ 이승훈
강신준

- 현실을 너무 낙관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노동운동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물적 법칙 때문에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을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노동운동을 없애면 자본가도 없어질 수밖에 없다. <자본>에는 노동자정당이 대중정당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기록돼 있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업적을 제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도 노동자 당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낙관을 가질 수 있다."

 

- 마지막으로 '88만원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1949년 미국에서 경제학자 폴 스위지가 창간한 사회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 창간호에 권두 논문을 아인슈타인이 썼다. 제목이 '왜 사회주의인가(Why Socialism)'였다. 아인슈타인이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적으로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개인주의 사회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안전망이 안 갖춰진 나라에서는 경제적 구조상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경제관계는 교환관계다. 따라서 반드시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서 경제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 경제학 교과서와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류의 재테크 서적이 전부다. 개인적 존재로서의 '경제인'만 강조하면서 혼자 잘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 때문에 옆 사람을 돌아봐야 한다. 그걸 말하는 책이 <자본>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경제행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밝힌 책이다. 아인슈타인도 이 점을 지적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고, 그것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도 물론 고민해야 하지만, 옆사람과 함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열정의 5분의 1정도만 나눠준다면 훨씬 좋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 교육이 조금이라도 됐다면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을 부결시켰겠느냐.

 

현실을 바꾸기 위한 방법이 자본론 안에 있는데 단 한 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상품 교환관계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교환관계는 사회적 합의에 따르는 것이까, 이것을 바꾸는 것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야 한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것을 위해서는 연대를 해서 힘이 세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지지하고 회사에 취직하면 노동조합에 가입을 해야한다. 그런 조건이 안 된다면 하다 못해 시민단체, 연대를 위해서 활동하는 단체들에 다만 얼마라도 기부라도 하자. 이것만이 지금보다 좀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마르크스는 절대로 혼자서 잘 살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