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 2008/12/0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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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주화와 풀뿌리 정치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지역 민주화의 위기
1)대의제 민주주의의 문제점으로 항시 지적되어 온 ‘관객민주주의’ 현상은 최근 들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관객민주주의란 시민들은 정치의 관객(spectator)으로 머물러 있고, 시민들의 삶과 관련된 결정은 관료와 직업정치인들이 내리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최근의 저조한 투표 참여율은 그나마 선거 시기에서조차도 유권자들이 관객의 상태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또 하나의 적극적 의사표현의 방법일 수 있지만, 최근의 저조한 투표율을 이렇게 해석하기에는 뭔가 근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관객의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투표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유권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극히 제한된 선택지일 뿐이다. 그리고 선거일 다음날부터 유권자들은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런 현실을 루소(J.J.Rousseau)는 ‘영국 국민들은 선거때에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는 순간 노예로 전락한다’라고 표현하였으며, 강대인은 “대의 민주정치에서의 시민참여는 정치 엘리트의 주도하에 방향이 설정되면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의 역할이 엄격히 구분된다. 일반 시민은 선거일에만 자유로운 뿐이다”2)라고 비판하고 있다.
시민들이 구경꾼으로 있는 상태에서, 정책결정을 하는 것은 일종의 기득권 연합이다.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고, 그리고 일부 보수언론은 이들의 논리가 유포되는 매체이다. 이 기득권 연합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가치지향, 정책방향, 이해관계 등을 매개로 형성되어 있다. 국가 차원에도 기득권연합이 형성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이는 지역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역 차원의 기득권연합에는 상대적으로 토건국가의 뿌리가 깊게 잔존하게 있다. 그래서 지역 차원의 기득권연합은 지역주민들의 장기적인 삶의 질 개선보다는 단기적인 땅값상승과 건설이익, 투기이익을 선호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세력들은 평등, 인권, 평화, 생태 등의 단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때로는 적대적이다. 그러나 이런 세력들은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각종 선거 때에 표를 동원할 수 있는 조직과 사람들이 있고, 지역 내의 각종 단체들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다.
지역 차원의 기득권연합은 중앙정당이나 지방자치단체장과 유착되어 있고, 국가차원의 기득권연합과 연계되어 있다. 대운하 뿐만 아니라 여러 개발사업들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 지역의 기득권연합과 국가차원의 기득권연합이 상호연계되어 긴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두고 '개발동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사회의 중요한 정책결정은 이런 국가 차원의 기득권연합과 지역차원의 기득권 연합이 주도하고 있다. 시민들은 선거 때에 투표나 해 주면 되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다.
시민들이 정치의 관객으로 전락하면 시민들의 입장, 삶을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입장은 정치의 영역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된다. 시민들의 소박한 상식은 정치의 영역에서 통하지 않는다. 기득권세력의 관심사가 정치의 영역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그들의 입장이 관철된다. 이런 정치가 초래하고 있는 것은 바로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의 심화, 부동산값의 상승, 경쟁격화로 인한 청소년들의 소진, 환경파괴와 생태적 위기 등이다. 특히 지역에서는 개발과 관련된 기득권 집단, 이익집단들이 정책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그 개발이 사람들의 삶과 자연에 미칠 장기적 영향은 정책결정에서 후순위로 밀려난다. 일부 지역주민들의 저항은 계속되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경우들은 찾기 어렵다.
빈곤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시민들은 정부와 사회가 풀어야 할 근본적인 과제중 하나가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구조상 정책의 우선순위는 ‘개발’에 있지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복지 실현’에 있지 않다. 그것은 현재의 의사결정자들이 결국 자신들의 기존 방향(‘개발’과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빈곤층에게 시혜를 베풀겠다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ㆍ정치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교육의 시장화, 경쟁지상주의의 지배는 청소년들의 삶의 자양분을 빨아들이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의 공동체성을 파괴하고 있다. 학교교육도 말로만 평준화이지 이미 무한 경쟁체제로 들어선 지 오래이다. 이런 교육은 사회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도 청소년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제어장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기득권 연합은 그런 교육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삶의 문제들은 민주주의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지 않고,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민주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삶의 문제들도 해결되기가 어렵다. 기득권 집단들이 정책결정을 주도하는 이상 삶의 문제가 풀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구현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력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풀뿌리운동과 지역정치운동
‘정치’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그 본래의 의미보다는 선경험적 인식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하다. 중앙의 정치는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는 정치에 대한 이미지이다. 하지만, 여기에 ‘지역’이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우리는 많은 의미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앙의 정치와 같은 ‘가까이 할 가치조차 없는 것’ 또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건강한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매우 유력한 수단이자 목표로 상정되곤 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정치라는 용어로부터 무덤덤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데, 지역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하다. 지역 대중인 주민들의 생활과 문제제기가 모두 지역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 속에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정치에 대한 관심은 1991년 지방자치제가 처음 실시될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지역사회운동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역정치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첫째는 지방의회 등을 통해 공식화・제도화 되어 있는 정치영역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둘째는 지역 시민들의 영향력 강화, 주민자치, 참여 등의 대중적 정치세력화라는 차원에서 인식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지역정치라는 개념에는 이 두 가지 개념이 모두 녹아있기도 하다. 따라서 지역정치라는 용어의 정확한 개념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보다는 누가 어떤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서는 풀뿌리적 가치를 갖는 지역정치, 즉 풀뿌리 정치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언급하고자 한다.
풀뿌리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정치라는 개념을 대입시켜도 위의 두 가지 개념이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후자의 내용이 더욱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기본적으로 풀뿌리운동이라는 것이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다수 대중’ 즉 민초들이 주체가 되어서 사회를 변화・발전시키고자 하는 사회운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풀뿌리 정치라는 차원에서 지역정치에 접근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그 영향력을 발휘시키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전략적 관점으로 채택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 대의민주제의 단점을 보완하여 시민들의 자치적인 활동 영역과 그 영향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운동에 있어 풀뿌리적 가치와 활동방식이 중요한 만큼, 지역정치운동도 이러한 기본적 입장과 문제인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풀뿌리운동과 풀뿌리 정치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그 원칙이나 활동방식, 지역사회 변화의 비전 등에 있어 상호 긴밀한 연관성 갖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정치운동, 특별히 풀뿌리 정치운동이라 표현하는 것은 대의제 민주제라는 틀 속에서 보다 나은 우리의 대표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기보다는(실제 참여라기보다는 수동적 존재로의 전락이라 볼 수 있다), 시민들 스스로의 적극적 참여와 이를 통한 지역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도를 보다 강화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중요시 한다.
3. 대의제 민주주의와 풀뿌리 정치운동
대의제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영역을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진 이들의 전문적 영역으로 구분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풀뿌리 정치운동은 그 주체를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즉, 풀뿌리 정치운동의 주체는 전문적 정치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역의 시민운동단체나 잘 훈련된 운동가도 역시 아니다. 풀뿌리 정치운동의 주체는 일반 시민들이다. 이는 굳이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릇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 정치의 진정한 주체는 그 사회의 주인인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운동의 일반적 개념 역시 그 사회의 주체인 시민들의 조직화와 이를 통한 시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통해 스스로 주인됨을 선언하는 실천을 통할 때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운동 일반의 개념은 지역정치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대의정치와의 관계는 그러한 전략적 관점을 공고히 한 상태에서 고려해야 한다.
이는 대의제 민주제 하에서 지역사회의 실질적 민주화를 실현하는 길이 보다 많은 후보자를 출마시켜 ‘의회를 장악하자’ 거나 자치단체장에 출마하여 당선시키고자 하는 표면적인 것으로만은 달성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방법 역시 지역사회를 보다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만으로는 단순히 표면적인 변화를 가져올 뿐이다. 일단, 이 방법만을 주장하는 경우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비판하면, 일종의 엘리트 중심의 운동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몇몇 괜찮은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줌으로써 그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변화만을 추구할 경우에는 시민들이 관객으로의 방치되는 문제는 여전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착이라는 점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사람들은 자칫 이러한 방법이 문제를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경험한 사회적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러한 운동의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일방적으로 평할 수는 없다. 사회운동의 전술은 매우 다면적인 차원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단순한 인적 교체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이나 시민들의 삶의 질이 건장하게 변화되고 발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운동에서 풀뿌리운동이 강조되는 이유는 생활인들을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개인 또는 집단이 정치권력을 획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신뢰하지 못하는 기성 정당의 논리이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운동 특히 풀뿌리운동의 논리 또는 방식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제도 정치권에 대한 인적 투입 또는 인적교체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목적과 이유로 대의민주제 하에서 제도 정치의 영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려가 전제된, 즉 사회운동 특히 풀뿌리운동의 전략이 전제된 상태에서 제도정치권에 대한 접근이야 말로 풀뿌리 정치운동의 중요한 한 가지 전술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당연히 제도 정치와 풀뿌리 사회운동의 밀접한 연계와 역할분담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운동은 ‘정치’ 영역에 대한 관심을 보다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즉,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여 스스로 대안적 가치와 질서를 사회 내에 정착시키고자 하는 풀뿌리운동도 결국은 자신들이 터한 지역사회로부터 우리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과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의 영역에 다름 아니다.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과정과 그 조그만 실천활동 하나하나가 바로 올바른 의미의 정치 활동이며, 그 활동의 영역이 정치의 영역과 다르지 않음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할 때 정치가 시민들과 유리된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것이라는 점이 보다 명확히 전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할 때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관객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제도 정치의 문제를 바라볼 때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다소 적게 훼손되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우리는 민주주의의 진전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4. 풀뿌리 관점에 충실한 대의 정치 참여의 외국 사례
작금의 우리 지역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대의제 정치의 영역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대의제 정치의 민주적 질서 회복과 강화가 단지 몇몇 개혁적 인사의 제도정치 진출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 정치는 본래의 자기 역할과 전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의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실천적 개입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 정당의 논리와 관성과는 다른 방식의 대의제 정치 개입에 대한 입장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한 고려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지역에서부터 새로운 정치세력을 결집하고 이를 통해 한 편으로는 대의제 정치에 대한 개입과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시민들의 정치세력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시민들의 정치세력화란 이들을 정당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들의 집단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오랫동안 모색되어 온 시도 중의 하나는 지역정당(local party)의 가능성에 대한 검토이다. 지역정당은 단지 중앙정당과 같은 성격의 정당이 지역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역정당은 기성 정당과는 그 속성이나 가치, 그리고 활동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기성 정당의 ‘지역구’가 아닌 ‘지역정당’이 가지는 의의는 시민들의 대중 조직체로서의 의미를 강조한다. 즉, 대중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행사하는 정치적 조직체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 소수의 ‘결사대’를 통한 정권 장악을 최대의 목적으로 하는 기성정당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즉, 기성 정당과는 달리 시민 대중들의 집단적 정치세력화를 주요한 전략으로 삼으면서, 그러한 전략을 실현하는 한 방편으로 제도 정치권에 대한 진입을 꾀하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정당의 목적은 제도 정치권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진입시켜 이들로 하여금 지역의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보다는 제도 정치권과 풀뿌리운동의 조흥(助興)을 통해 지역 대중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지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풀뿌리(정치)운동이 지역정당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본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지역정당의 사례들로부터 참고할 만한 내용들을 추출할 수 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와 동경생활자네트워크 등의 생활자 네트워크가 그러한 사례로서 적절할 것이다. 이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네 가지 시사점을 추려보았다.
첫째 이들의 중요 관심사는 제도정치권에서 다수를 차지하여 그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있기보다는 자신들이 내보낸 정치인과 회원들과의 유기적 소통을 더욱 중요시 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의회 내에서 소수라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들의 위상과 역할을 통해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회원들이 정치적 참여와 영향력을 강화하도록 하느냐 하는 것에 활동의 방점을 찍고 있다. 물론, 자신들이 주장하는 이슈의 정치적 관철 역시 의회 내 다수로서의 힘에만 의존하려 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관철시키도록 하는 데에 보다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들의 경우 자신들이 내보낸 정치인에게 일정한 시기동안만 대리인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2기 8년이 제도정치권에서 일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이는 제도 정치권에서 일할 기회를 참여자들의 지도적 역량이 강화되는 계기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회를 보다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결국은 지역정치를 발전시키는 길이고 결국은 지역사회의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것이라 여긴다. 물론, 이는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전문적 정치인의 양성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이 지역사회의 지도력을 훈련받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보다 중요한 방점을 두고 있다. 실제로 ‘2기 8년제’는 결과적으로 지방정부와 의회의 현실을 몸으로 경험하고 돌아온 탁월한 주민활동가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세 번째로는 제도정치권에 진출하고자 하는 이는 개인적 결단에 앞서 대중적 결단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는 스스로 나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내보내고 싶은 사람을 출마시킨다”는 슬로건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는 지역정당이 특정한 몇몇에 의해 주도되는 것을 막고, 집단적 정치세력화의 장으로서 자리잡도록 하는 매우 유용한 장치이다.
네 번째로 언급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은 ‘대리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리인은 단지 그를 고용한 사람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한다는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대리인은 그를 고용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대리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고, 또한 수시로 그를 고용한 사람의 의사를 묻고 그 의사를 충실히 전달할 때에만이 ‘해고’되지 않고 대리인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즉, 엘리트에 의한 정치가 아닌 대중의 정치를 강조하는 의미이다.
물론, 일본의 생활자 네트워크들이 반드시 이상적인 지역정당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없다. 그 자체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내재어 있고, 또 많은 이들에게 비판거리를 제공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네 가지는 바람직한 지역정당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5. 풀뿌리 정치운동과 2010년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도 선거 시기는 여러 가지 점에서 중요한 시기적 특성이 있다. 그것은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고조되는 시기일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의 정치를 풀뿌리 정치운동과 밀접히 연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0년은 풀뿌리(정치)운동에 있어서 하나의 계기(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 시기에 대한 준비라고 해서 모든 풀뿌리 정치운동의 전술이 누구를 출마시키고 당선시키느냐에만 집중될 필요는 없다. 후보 출마에서부터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고양시키고 그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적절히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선거 시기에 출마를 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하는 반론이 주위에서 만만찮게 제기되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풀뿌리 정치운동과 선거라는 대의제 정치 영역의 핵심적 사건과의 관계를 너무 폭좁게 바라보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실상 천안의 복지 네트워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거 시기에 몇 명을 제도정치권에 진출시킨 것보다 다른 방법으로 훨씬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2010년에 대한 준비라는 것도 반드시 2010년이라는 절체절명의 기한을 규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상적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 일정한 계기와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시기이며, 그 시기를 보다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 점에서 특히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운동은 지금부터라도 일상적으로 정치운동을 준비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스스로의 역량과 조건에 적절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일률적으로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공통된 준비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의 모든 활동이 지역정치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전파할 필요가 있다. 사실, 풀뿌리운동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모든 활동들은 그것이 아무리 조그맣고 소박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역정치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주민자치센터의 자치기능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활동도 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활동도, 주민들의 소모임을 결성하고 이를 운영하는 활동도 모두 지역사회를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핵심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오해이다. ‘정치’를 자신들과는 무관한 전문 정치인의 영역으로 미뤄놓고, 그것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진정한 정치는 우리 땅에서 존립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우리의 일상이 정치이고, 정치는 우리의 일상활동 속에서 이루어지며, 정치의 목적은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공감대를 이루려는 노력은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지역에서의 네트워크 결성을 준비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역정치운동은 기존의 시민사회운동단체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기성 단체들의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정치적 이슈를 전면에 내걸기가 그리 쉽지도 않다. 그보다는 본격적인 지역정치의 지향을 갖는 참여자들을 조직하여 이들로 하여금 지역정당과 같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적절하다. 현실 조건에서는 공식적인 지역정당의 건설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네트워크가 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또한 장기적으로 지역정당의 모체로서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네트워크 체계의 구축은 각 단체의 활동을 통해 지도적 역량을 구축한 주민 활동가 또는 주민 지도자들이 단체의 영역을 벗어나 지역사회 전체를 계획하고 실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다. 또한 이러한 네트워크를 새로운 시민들을 조직하는 하나의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풀뿌리)지역정치운동에 대한 고민과 소통을 지역사회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단위는 선거 시기에 후보 출마가 적절한 전술적 선택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등의 사안을 보다 개방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적절한 조직적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앞의 두 가지와 연계되는 것이지만, 지역정치 교육의 기회를 만드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지역정치 교육이라는 것이 정치교육 강좌를 만들어 무작위 시민들에게 홍보해서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시민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문제들, 예를 들면 시민들의 숙원 또는 현안 등을 지역 재정의 문제와 연동시켜 설명하는 등을 통해 지역정치가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이 있고 또한 그것이 우리 일상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등으로 접근한다면 보다 좋은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원론적 제안이지만 선거든 시민들의 일상적이고 집단적인 정치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든 풀뿌리 기반을 확대・강화하는 일상활동이 보다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상활동을 통한 주민기반이 강화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전술적 선택도 결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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