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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종교

원주에서 본 해월과 장일순 선생의 인연 (오마이뉴스060917)

by 마리산인1324 2009. 1. 9.

 

<오마이뉴스> 2006-09-17 09:44

 

 

원주에서 본 해월과 장일순 선생의 인연

 

해월선생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장일순 선생

 

- 이기원 -

 

 

▲ 해월 최시형 추모비
ⓒ 이기원
평생을 보따리 하나 들고 가난한 이웃과 벗이 되어 살아간 해월 최시형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던 분이 있다. 원주를 70년대 민주화운동의 메카로 이끈 장일순 선생이다. 일찍이 천주교 세례도 받고 원동성당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천운동을 전개한 장일순 선생은 해월 선생을 존경하는 마음이 각별했다.

"이 땅에서 우리 겨레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또 온 세계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알려주신 분이 해월이지요. 우리 겨레로서는 가장 자주적으로 사는 길이 무엇이며, 또 그 자주적인 것은 일체와 평등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설명해주셨지요. 눌리고 억압받던 이 한반도 100년의 역사 속에서 그 이상 거룩한 모범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해월에 대한 향심이 많지요. 물론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나 다 거룩한 모범이지만, 해월 선생은 바로 우리 지척에서 삶의 가장 거룩한 모범을 보여주시고 가셨죠."(<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음을> 중에서)

이렇듯 각별한 마음으로 존경했던 해월 최시형 선생이 37년의 동학 생활을 접고 체포된 곳이 원주였다. 37년이란 긴 시간을 보따리 하나 들고 가난한 이웃을 찾아다니며 이웃을 하늘처럼 섬기다 마지막으로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에서 체포된 것이다.

▲ 최시형 추모비 건립 당시의 장일순 선생
ⓒ 모심과 살림 연구소
원주에서 태어나 원주를 터전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장일순 선생을 중심으로 원주 고미술 동우회에서 해월 선생이 체포된 곳에 자그마한 비석을 세우고 그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아담한 추모비도 세웠다. 추모비 비문은 장일순 선생이 직접 쓴 것이다.

최시형의 '십무천(十毋天)'과 장일순의 '모심과 섬김' 사상

▲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에서 펴낸 '너를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책 표지
ⓒ 녹색평론사
"사람이 곧 한울이니 한울님을 속이지 말라. 한울님을 거만하게 대하지 말고, 상하게 하지 말고, 어지럽게 하지 말고, 일찍 죽게 하지 말고, 더럽히지 말고, 굶주리게 하지 말고, 허물어지게 하지 말고, 싫어하고 불안하게 하지 말고, 춥고 굶주리게 하지 말라."(<해월의 십무천,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중에서)

사람이 하늘이니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고 가르쳤던 해월은 평생을 보따리 하나를 들고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살았다. 해월 선생의 이러한 삶에 깊은 영향을 받아 장일순 선생은 '모심과 섬김'이란 사상을 탄생시켰다.

"모시고 섬기라고 한다. 돈을 모시지 말고 생명을 모시고, 쇠물레를 섬기지 말고 흙을 섬기며, 눈에 보이는 겉껍데기를 모시지 말고 그 속에 들어있는 알짜로 값진 것을 모시고 섬길 때만이 마침내 새로운 누리가 열릴 수 있다고 한다."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중에서)

장일순 선생은 '모심과 섬김'을 평생의 삶을 통해 실천했다. 길을 걷다가 길가 좌판장수, 기계 부속품 가게 주인, 리어카 채소장수, 식당 주인, 농부 등 만나는 사람마다 끊임없이 사는 얘기, 아이들 소식, 농사 얘기, 살림살이며 시절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 장일순 선생의 삶의 화두가 되었던 좁쌀이 여물고 있다.
ⓒ 이기원
자신을 낮추고 모든 이들을 모시고 섬기며 살고자 했던 장일순 선생의 여러 호 중에서 '조 한 알(一粟子)'이 있다. 이 호를 사용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장일순 선생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어.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지그시 눌러주는 화두 같은 거야. 세상에 제일 하잘 것 없는 게 좁쌀 한 알 아닌가. '내가 조 한 알이다'. 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르는 거지."(<좁쌀 한 알> 중에서)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섬기며 살고자 했던 장일순 선생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스승으로 남아있다.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애면글면 사는 이들이 넘치는 지금, 좁쌀 한 알처럼 살고자 했던 장일순 선생의 고결한 삶이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