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9-02-02 오후 07:22:34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336421.html
‘차베스식 사회주의 혁명’…석유 없이도 꽃피울까 | |
집권 10년 차베스 ‘평가’ |
우고 차베스(55)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일로 취임 10년을 맞았다. 아시아 외환위기 뒤 신자유주의가 극성이던 1999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차베스는 진보정치 진영의 전망이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정치적 지평을 넓혀왔다. 차베스는 1일 폐막된 세계사회포럼에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등 남미 좌파 지도자들과 집권 10년을 축하했다.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그의 집권 10년을 따져봤다.
빈곤율·실업률 하락 등 양극화 해소 기여
사회복지 정책 석유수입 절대적 의존 ‘한계’
30% 넘는 인플레·지나친 권력집중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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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퓰리스트인가 혁명가인가?
차베스는 흔히 ‘포퓰리스트’로 비난받는다. ‘포퓰리즘’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지만, ‘정치철학 없이 인기에만 영합하는 시혜적 분배정책으로 국가경제 붕괴를 초래한다’는 관점의 평가다.
하지만 차베스는 그동안 뚜렷한 정치철학을 구현해왔다. 2005년 정책방향을 ‘21세기 사회주의’라고 처음으로 밝힌 그는 지난달 29일 “자본주의는 이미 사망했으며,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 문양에서 오른쪽으로 달리던 말의 방향까지 왼쪽으로 돌려놓았다.
그의 정책은 철저히 소외됐던 빈곤층에 집중됐다. 지난 10년 동안 절대빈곤율은 20.3%에서 9.5%로 떨어졌다. 실업률은 절반 수준인 7%로, 유아사망률은 21.4%에서 13.7%로 낮아졌다. 빈곤층이 “우리를 이토록 신경써준 정치인은 없었다”며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까닭이다. 루이스 푸엔마요르 토로 베네수엘라 센트랄대 교수는 1일 <아에프페>(AFP) 통신에 “실수와 비효율도 있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긍정적 변화가 있다”고 평가했다. 차베스는 시몬 볼리바르 탄생 200돌을 맞은 1982년 군대 안에 ‘MBR-200’이라는 정치조직을 만들고 진보정치의 꿈을 키웠다. 1992년 쿠데타도 1989년 신자유주의의 피해에 맞서 벌어진 카라카스 봉기에서 자극받았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중남미 최고인 30%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살인사건으로 1만5천여명이 숨졌고, 국가 투명도는 세계 158위에 그쳤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악마”라고 부르는 등 저돌적 행동은 많은 비용을 치렀다.
■ 영구집권 꿈꾸는 독재자인가?
차베스가 10년간 권좌를 지킨 힘은 민중의 절대적 지지다. 2002년 쿠데타로 쫓겨난 그를 다시 자리에 앉힌 것은 수십만명의 시위였다. 그는 취임 6년째이던 2004년 국민소환 투표에서도 대통령직을 승인받았다.
차베스가 14차례의 투표에서 거의 승리한 배경에는 민주적 조직이 떠받치고 있다. 약 200만명이 참여하는 정치조직 볼리바리안 서클, 2만여개의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활동하고 있다. 15만여개의 협동조합에서 150만명이 사회경제활동을 펴고 있다.
미국에 맞서는 데는 전세계적 호황도 뒷받침됐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성장과 고유가는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벗어날 수 있는 정책 결정의 공간을 넓혀줬다. 지난 80년대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외채위기와 장기 경기침체, 저개발의 족쇄를 풀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권력 집중은 권위주의 정치라는 비판을 낳았다. 크리스티나 모우레 베네수엘라 ‘정의와 민주주의 재단’ 연구소장은 “차베스는 국민들이 통치하고 자신은 국민권력의 대표일 뿐이라고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다스린다”고 비판했다. 또 오는 15일 국민투표에 부치는 개헌안은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없앴다. 차베스는 최근 “신과 국민들이 원할 때까지 여기(대통령직)에 있겠다”고 말했다. 선거에서 당선되어야 하지만, 장기 집권의 길로 향하고 있다. 이상현 부산외국어대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 연구원은 “적법한 제도적 절차를 거쳤다고 반드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 지나친 석유의존 벗어날 수 있나?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각종 사회복지 정책은 석유수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미국 <마이애미 헤럴드>는 석유가 지난해 전체 수출의 93%를 차지해, 집권 전 68%보다 절대적으로 의존성이 커졌다고 1일 보도했다. 석유생산 시설 등의 국유화 조처는 다국적 기업에 이익을 수탈당했던 중남미에서 정치·사회적 안정을 이루는 통치수단인 사회복지 정책에 필요한 수입원을 확보하는 성격이 크다. 그만큼, 배럴당 40달러대로 떨어진 국제유가는 차베스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이미 베네수엘라의 복지수준 개선은 한때 배럴당 150달러를 육박했던 고유가의 덕을 톡톡히 봤을 뿐이라는 평가절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과거 친미우파 정권에서 서민층은 석유수입의 혜택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것을 고려하면, 이런 평가는 불공정하다. 과거 석유는 베네수엘라에서 비석유 부문의 발전을 저해하는 ‘악마의 배설물’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유가 하락=차베스 실패’로 단정하지만 다른 경제구조의 의미 있는 변화를 무시한 것”이라며 “이런 산업구조 변화가 얼마나 작동하느냐가 정당정치 구현 여부와 함께 차베스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가디언>의 2일 보도처럼, 15일 개헌안의 통과 여부 못잖게 “석유가격 추락이 차베스의 앞날에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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