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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세계

베네수엘라 국제 정치경제학자 대회 가보니 (한겨레신문081022)

by 마리산인1324 2009. 4. 15.

 

<한겨레신문> 2008-10-22 오후 07:10:15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17472.html

 

국제 금융위기에 제3세계 연대론 후끈
베네수엘라 국제 정치경제학자 대회 가보니
한겨레
» 지난 6~11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국제 정치경제학자 대회에서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이 최근 금융위기의 성격과 제3세계의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조희연 교수 제공

최근 베네수엘라 계획개발부가 주최한 국제 정치경제학자 대회(6~11일)에 정성진 경상대 교수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초청을 받아 수도 카라카스를 다녀왔다.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대부분 미국과 유럽 위주로 전파되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 경제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제3세계가 ‘주체적 대응’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두 교수가 행사 참관기를 보내왔다.

 

차베스·아민·레보위츠 등
남미은행·공통 화폐 주장

 

세계 경제를 뒤흔든 증시 폭락 소식이 행사장으로 속속 전해지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지금의 금융위기에 대해 제3세계 약소국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두고 절박한 토론을 이어갔다. 마르크스주의부터 좌파 케인스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의 대응 방안들이 논의됐지만, 전체 흐름을 주도한 것은 첫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통해 제시한 ‘제3세계주의’였다. 차베스 대통령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위기 개념을 인용해 지금의 경제위기를 “낡은 신자유주의가 죽어감에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경제 시스템은 출현하지 않고 있는 상황”으로 규정하고, 당면 과제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철폐 △달러 지배체제의 폐기 △제3세계의 연대를 통한 ‘남쪽 은행(Banco del Sur)’ 설립 등을 제시했다. 에쿠아도르의 페레스 경제정책장관과 벨기에 정치학자 에릭 투생도 차베스 대통령과 같은 맥락에서 ‘외채 심사와 선별 무효화’를 제안했다.

 

이집트 출신 사회학자 사미르 아민은 최근 경제위기가 “자본주의의 종말보다는 네오파시즘을 대두시키거나, 북쪽(서방)이 위기 비용을 남쪽(제3세계)에 전가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뒤 “호혜·평화의 원칙 아래 제3세계 국가의 연대를 선언했던 ‘반둥 회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캐나다 경제학자 마이클 레보비츠 역시 “극심한 경제위기에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저절로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3세계 국가와 민중들의 적극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회의 폐막을 앞두고 채택된 공동성명에는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로 부각되고 있는 남미 국가의 사정을 반영해 아이엠에프 중심의 금융질서에 대항하는 ‘남미 은행’을 독자 설립하고, 지역적 완충 장치로 남미 공통 화폐를 발행하는 한편, 탈미국화한 경제통합을 가속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투기적 금융 질서를 넘어설 새 금융 질서를 모색해야 한다는 근본 입장도 재확인됐다. 다만 성명서의 기조가 대항적 금융질서 구축을 위한 ‘위로부터의 공조’에 치우친 나머지 “경제위기 국면에서 개량주의와 케인스주의, 국가자본주의의 부활을 경계해야 한다”(정성진)거나 “국제 경제위기를 ‘국민경제적 위기’가 아닌 ‘민중적인 정치 위기’로 전환시키기 위해 전지구적 공동 행동이 필요하다”(조희연)는 우리 제안이 반영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민영화라는 세계적 흐름에 맞서 핵심 자원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는 등 현대판 사회주의 실험을 진행 중인 베네수엘라에서의 일주일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줬다.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고 규제 철폐를 통해 투기적 금융자본의 국제적 운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성장의 견인차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우리는 위기의 의미를 어떻게 재규정하고 이 위기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인가.

 

정성진·조희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