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의 겨울은 언제나 멀리 보이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내려왔다가는 다시 그곳으로 올라가 사라져갔다. 높은 산 정상에 백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지상의 생명들은 지하로 몸을 숨기거나 스스로 옷을 벗고 자연의 순리에 항복하며 겨울나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도망칠 수 없어 지상에 남은 것들은 겨울의 포로가 되어 겨우내 찬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려야 했다.
포로가 된 용렬한 인간의 겨우살이는 참으로 힘겹고도 잔인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갈퀴로 긁고, 낫으로 자르고, 도끼로 찍고, 톱으로 베고, 심지어는 동면하는 그루터기와 잔디까지 뿌리째 괭이로 파다가 군불을 지피며 겨울을 나야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장정과 아낙들은 새벽밥을 지어먹고 먼 산으로 땔감 원정을 떠났다. 인간의 공격성에 저항할 길 없었던 산하는 헐벗기 시작했고, 남은 것이라곤 스러져간 황폐한 공간과 모진 바람에 실려 떠도는 허허로운 세월뿐이었다.
‘연탄’이라는 대속자(代贖者)가 나타나면서 제 모습을 찾는 듯싶었으나, 인간은 다시 대지의 속살을 헐어내고 문명의 이기들을 세워나갔다. 산천은 더욱 피폐한 몰골로 겨울을 맞았다. 함박눈이라도 내려 헌데를 감싸주면 대지엔 잠시 평화가 깃들고 인간의 마음도 조금 누그러졌지만 그 황량함은 끝내 가시지 않았다. 겨울은 이렇듯 늘 삭막하고 잔인하고 허허로운 정경으로 왔다가는 사라져갔다.
그러나 겨울은 나로 하여금 무소유의 철학과 비움의 미학을 깨우쳐주었다. 젊은 시절 잠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 노숙을 한 적이 있었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잠자리를 찾다가 뼈대만 서 있는 신축 중인 공사장 건물로 찾아들었다. 빈 시멘트 포대와 신문지 몇 장을 깔고 덮고 자리에 눕자 냉기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사방에서 얼음알갱이 같은 별빛이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면서 문득, ‘가난’이 직업이라던 천상병 시인의 '차 한 잔 값과 갑 속의 두둑한 담배와 해장하고도 버스 값이 남아' 행복하다던 시구와, 소금 안주에 소주로 끼니를 때운다던 장욱진 화백의, 성냥개비로 지은 듯한 앙상한 집에 역시 성냥개비로 만든 인형 같은 가족이 오롯이 들어앉은 그림이 뇌리를 스쳤다. 이마는 차고 코끝은 시렸지만 머리는 수정처럼 투명해져 왔다. 그리곤 ‘인생이란 참으로 허허로운 것’이며 ‘삶이란 투명하고 간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내게 겨울은 늘 이마가 차서 좋은 계절이요, 코끝이 시려서 상쾌한 계절이었다. 추운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면 어릴 적 등교 길에 얼음을 깨고 개울물에 세수하던 그 짜릿하고 상쾌한 기분이 되살아났다. 이마와 코끝에 싸늘한 찬바람이 스치면 뇌세포가 일제히 일어나 준동하며 삶의 의욕과 사유의 칼날이 시퍼렇게 곤두서곤 했다. 겨울은 모자라는 햇빛 대신 설한(雪寒)을 보내어 인간의 영혼을 투명하게 밝히고 지켜주었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나목(裸木)은 인간에게 부질없는 것들을 벗어버린 다음의 홀가분한 삶의 고즈넉한 행복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주었으며, 텅 빈 정경은 채우는 삶의 애달픔과 비우는 삶의 넉넉함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겨울은 군더더기를 싫어하고 어정쩡한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겨울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선연하게 갈라놓음으로써 생명 존재로 하여금 삶의 진리를 깨우치게 했다. 빙하기의 혹한이 인간에게 춥고 배고픔을 견디고 이겨내는 지혜를 깨우쳐 주었듯이, IMF 이후 찾아든 경제 한파는 서민들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소비가 왜 ‘악덕’인지를 절절히 깨우쳐주었다. 경제이론이 대중소비단계에 접어든 후기자본주의사회에서는 ‘소비가 미덕’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카드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해야 경제가 산다’는 이설에 속아 신용불량자 딱지가 붙은 서민들은 더 이상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처참한 겨우살이를 통해 비로소 서민들은, 벌어서 쓰는 삶이 아니라, 쓴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삶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삶인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도 깨우치게 되었다. 이는 혹독한 겨울만이 일깨울 수 있는 지혜이자 선물 같은 것이었다.
대학사회에도 냉혹한 겨울이 찾아들었다. 무턱대고 대학설립을 허가했던 정부가 이제는 대학문을 닫겠다고 어름짱이다. 돈벌이가 된다 싶어 대학을 세운 사람들이 세찬 한파에 내몰리게 되었다. 경쟁에서 밀려난 많은 대학들은 문을 닫을 것이고, 더 많은 교직원들은 길바닥으로 쫓겨날 것이다. 대학이사장이 아파트에서 몸을 날려 자진을 했다고 한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천만원대 연봉을 받는 재계약교수들이 부지기수라고들 한다. 어떤 대학은 교수들에게 신입생을 모집해 오라고 호객행위를 시키고 손님을 끌어오지 못하면 자리를 내어놓아야 한다고 윽박지른다고들 했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교수들은 학생들의 성적을 인질로 삼아 파업을 했고, 이를 차마 보지 못한 정규직 교수들이 비정규직 지원을 위해 ‘십시일반 나눔운동’을 제안하고 나섰다. 대학에 찾아든 겨울은 자연의 겨울이 아니라, 인심이 지어낸 겨울이기에 더욱 잔혹하다.
자연의 겨울은 지엄하면서도 너그럽다. 다가올 때는 반드시 예고를 하고 충분히 말미를 준 다음 서서히 다가온다. 자연의 겨울은 다그치다가도 때가 되면 반드시 물러나 기다렸다 다시 다가온다. 삼한사온이 그러하고 사계가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의 겨울은 언제나 느닷없이 들이닥치며, 모든 것이 초토화될 때까지 물러나는 법이 없다. 자연의 겨울은 잔해를 남기지 않지만, 인간의 겨울은 수많은 잔해와 주검을 남긴다. 자연의 겨울은 자식을 키우는 어버이를 닮았지만, 인심이 지어낸 겨울은 사리사욕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조직폭력배를 꼭 빼어 닮았다. 그러하기에 인간의 겨울은 늘 재앙을 낳으며, 물러날 때에도 모든 것이 다 어그러져버린 뒤에야 뼈아픈 후회를 하면서 물러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교육현장의 긴 겨울이 더욱 섬뜩하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자연의 겨울이 아니라 인심이 지어낸 겨울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이래의 입시지옥, 천문학적 사교육비, 사교육에 밀려난 공교육, 황폐화한 대학교육은 만년설이 내려앉은 영원한 동토지대로 남아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설한풍이 대학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고 있지만 이 광풍은 언제 그칠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봄가을이 우리에게 따스함과 넉넉함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치고, 여름이 더위를 ‘피하고 견디는 법’을 가르쳤다면, 겨울은 우리에게 ‘절망 속에서 희망을 싹 틔우는 지혜’를 가르쳐왔다. 절망의 수렁 뒤에는 죽음의 심해가 버티고 있다. 살아있는 목숨으로서는 절망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라고는 ‘죽음’ 아니면 ‘희망’ 단 두 갈래길 밖에는 없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싹 틔울 수밖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절망이 깊어가는 이 겨울밤, 우리는 각자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칩거일까. 동안거일까. 겨울밤 멀리서 짱짱 울려 퍼지는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가 죽비소리로 들리고 있는 것일까. 겨울 세밑은 끝이 없어 보이지만 내일 해가 뜨듯 반드시 봄은 온다. 그러나 사람살이의 봄은 결코 그냥 오는 법이 없다. 진달래와 아지랑이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봄날에도 부황 든 얼굴에 버짐이 피어나던 춘궁기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겨울을 견디는 법’을 넘어서 ‘봄을 맞는 법’을 깨치는 이번 겨울을 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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