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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서평]자크 데리다 <불량배들> (안상헌040223)

by 마리산인1324 2009. 4. 18.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5402

 

 

불량국가에 대한 해체적 독법...선언 이상의 내용 없어
논쟁서평 : 『불량배들』(자크 데리다 지음, 이경신 옮김, 휴머니스트 刊, 2003, 326쪽)
2004년 02월 23일 (월) 00:00:00 안상헌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 예스24

서구의 존재-신학적 동일성 철학의 '해체'에 전념했던 데리다가 정치적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더불어 '역사의 종말', '자본주의의 완전 승리', 자본주의적 단일시장체제로의 '세계화' 담론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 돌연 이에 반기를 드는 '마르크스의 유령'(1993)을 출간해 화제가 됐던 그가, '우정의 정치'(1994), '환대에 대하여'(1997)에 이어 작년에 '불량배들(Voyous)'이라는 현실정치를 해체하는 저술을 내놓았다.


주지하다시피 '불량국가' 담론은 미국이 일방적 외교노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북한 등을 '불량국가'로 규정한 이래, 노엄 촘스키와 윌리엄 블룸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초법적 국제 테러행위를 전거로 들어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유일한 불량국가'라고 비판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담론이다. 데리다의 '불량배들'은 이러한 담론에 대한 해체론적 개입이다.

 

주권이라는 이름의 정당화


이 책은 두 차례의 강연 녹취록이다. 앞글은 데리다가 레비나스의 세례를 받아 창안한 용어인 '다가올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데리다주의자들이 마련한 '열흘'이라는 합숙 프로그램에서 행한 강연이다. 전반부에서는 서구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민주주의'와 '주권' 개념에 대한 해체론적 분석이, 후반부에서는 '불량국가'에 대한 해체론적 분석이 가해진다. '이성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강연한 '다가올 계몽의 세계'라는 뒷글도 앞글과 유사한 주제를 다룬다. 이 글은 현존하는 정치적 '이성'의 해체에 역점을 두면서도 '이성'의 해체 이후에도 '합리성'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해체론적 '철학'이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근거로 삼는다.


앞글은 '불량국가는 존재하는가?'에 대한 해체론적 응답이다. 그는 '민주주의'와 '주권' 개념에 대한 해체론적 분석을 통해 '현존하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사실상 불량국가'이며 따라서 '우리는 "불량국가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그에 따르면, 현존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서구적 '자유' 이념에 기반을 둔 '자기결정권'에 따라 힘을 행사하는 것을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힘만 있으면 누구에게든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에게 '불량배'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고 처벌할 수 있으며,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폭력(테러리즘)'과 '전쟁'은 그러한 논리의 귀결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그렇다고 말하는 모든 국가가 불량국가'라면, '테러리스트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미국도 마찬가지로 불량국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UN회원국이 주권으로 정한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예외적 주권'을 가졌다면, 테러리스트들도 미국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예외적 주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나아가지 못해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강자의 이성은 사실상 '정의'가 아니라 '법'이며, '법의 힘'에 의해 통치되는 현존 민주주의 국가는 모두 '불량국가'에 불과하게 된다.


데리다는 '최강자의 이성'이 '법'이 되고 '정의'가 되는 '현존 민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다가올 민주주의(democratie a venir)'를 역설한다. '다가올 민주주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 이전부터 그가 줄곧 탐색해 온 '해체가 곧 정의'라는 해체론적 정의론 혹은 유령학적 정치학의 근간이다. 그러나 '다가올 민주주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이고, 죽음처럼, 메시아처럼, 선물처럼 느닷없이 다가오는 아포리아이기 때문에 현존 민주주의 이념과 현실에 비춰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고, 다만 지금 도래하는 중일지도 모르는 어떤 것이라고만 말한다. 그렇다면 '다가올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그는 현존 세계의 절박한 문제를 전보 형태로 열거하면서 이전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제창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 이상의 진전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는 없지만 합숙토론 참석자들의 토론을 보면, '친구(우정)와 적(적개심)'에 대한 해체와 '용서', '해체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해체적 민주주의, '이성의 독재로서의 민주주의의 해체'와 같은 데리다의 화두가 반추되고, 레비나스와 그의 핵심 개념인 '책임(응답)'까지도 해체해야 한다는 급진적 제안과, '다가올 민주주의는 "공황적 민주주의"까지 허용하는 것인지', '다가올 민주주의는 시대의 "어긋남"을 넘어서 "時中"의 기술을 요청하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하지만 데리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실 '다가올 민주주의'는 데리다만의 고유한 화두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실천적 지식인들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민주주의'와 '주권' 개념의 역설을 미심쩍게 여겨온 독자라면, 비록 데리다의 해체 과정 자체가 번잡스럽고 번역조차 생경하기 이를 데 없지만 숙독해 볼만한 책이며,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꼭 넘어서야 할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