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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촛불1년]손호철교수 기조강연(경향신문090430)

by 마리산인1324 2009. 5. 1.

 

<경향신문> 2009-04-30 14:28:4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301428411&code=940100&s_code=as028

 

 

[촛불 1년, 한국은 어디로]촛불집회와 한국사회:회고와 전망

 

 

<기조강연>
촛불 집회와 한국 사회:회고와 전망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녕하십니까?

서강대학교의 손호철입니다. 의미 있는 오늘 토론회에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기조강연을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도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깨가 무겁습니다. 역사적인 촛불집회도 이제 1주년이 되어 갑니다. 특히 지난해 촛불이 사그라진 8.15를 기점으로 이명박정부의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전면화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촛불 1주년을 맞는 기분은 찹찹하기만 합니다. 또 그러하기에 촛불이 더 애절하게 그리워집니다.

이명박대통령은 지난 해 8월 15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서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기적의 역사였으며 대한민국의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이대통령과 전혀 다른 의미에서 “맞는 이야기”라고 무릎을 쳤습니다. 한국의 유구한 민주화투쟁, 그것은 기적의 역사였고 또 대한민국의 신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이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서 끝없는 촛불의 물결을 보면서 자성을 하게 만들었다는 촛불집회,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한국, 아니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에 길이 남을 신화입니다.

촛불은 지난해 5월 2일 처음 밝진 이래 최소한 ‘국민승리의 날’로 지정한 7월 5일까지 무려 68일간 폭우와 장마 속에서도, 그리고 정부의 강압과 보수언론들의 시비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타올랐습니다. 어느 민주화운동이 이처럼 끈질기게 진행된 적이 있습니까?

사실 개인적으로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난해 봄에 중국에 안식년을 나가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혁명의 뿌리와 현재를 조망해보기 위해 마오져퉁의 역사적인 1만 킬로 장정을 따라 긴 오지 여행을 하고 있어서 촛불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하고도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장정을 끝내자마자 한국으로 달려와 촛불집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6월 초 촛불집회 참여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 진보매체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중국에 돌아가 멀리서 촛불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즉 촛불의 물결 속에서 촛불의 참가자로, 그리고 멀리 떨어져 관찰자로서, 촛불을 바라보는 독특한 경험을 했습니다.

촛불을 기념하고 또 촛불을 되살리려는 중요한 오늘 토론회에 화두를 던진다는 의미에서, 우선, 길지만 1년 전에 썼던 저의 촛불집회 참여기를 인용해보고자 합니다.

“배후는 너다”. 6월 3일 장대비속에 열린 촛불집회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어린 여학생의 등에 붙은 구호였다. 꺼질 줄 모르고 번져가는 촛불집회에 대해 “촛불은 누구의 돈으로 샀는지 조사해 보고하라”는 유치한 수준의 대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명박대통령에 대한 통렬한 야유였다.

이날 있었던 정부의 기만적 미봉책 발표로 촛불시위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와 달리 이날 시위에는 2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번 촛불이 쉽게 꺼질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즐거운 신호였다. 그러나 진보적 정치학자로서 이번 시위에서 정말로 즐거웠던 것은 두 가지이다. 우선 ‘즐거운 혁명’이다. 20세기 초의 페미니스트 운동가였던 엠마 골드만이 지적했듯이 “만일 내가 춤을 출 수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운동은 그동안 너무 근엄주의에 빠져 있었다. 과거의 엄숙주의를 벗어난 발랄하고 즐거운 혁명, 그것은 충격이었다. 두 번째, 정치권과 시민사회운동의 ‘운동권력’이 사라진 것이다. 나 역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으로 그동안 많은 시위에 참가해 단상에 올라가고, 발언도 했었다. 그러나 시위를 주도하는 운동권력과 단순히 시위에 참여하는 일반참여자간의 분리는 우리 운동의 심각한 문제였다. 이번 시위의 경우 정치인들과 운동권력들이 단상에서 사라지고 시민들의 생생한 발언들이 이어졌다는 것은 중요한 역사적 발전이다.

동시에 이번 시위를 전혀 새로운 것이고 세상을 바꾸고 있는 굉장한 것으로 그리는 일부의 경향에 대해서는 우려가 생겨났다. 우선 실시간 중계하는 인터넷 텔레비전의 등장 등 새로운 운동매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물론 이는 중요한 발전이다. 그러나 1970년대의 복사기를 비롯해 2002년 인터넷, 2003년 시위집결에 사용된 핸드폰 문자 등 새로운 매체는 계속 진화해 왔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사실 밤늦게 까지 시위대를 따라다니며 고민을 한 것은 이번 시위가 촛불집회의 원조인 2002년 효순, 미선 촛불집회, 그리고 2004년 탄핵규탄 촛불집회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이다.

아마도 중고생, 특히 여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것 이외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미 2002년과 2004년에 나타난 것이 강화된 것일 뿐이다. 2002년 촛불집회역시 효순, 미선이라는 두 여중생이 미군탱크에 죽은 것과 관련해 한 네티즌이 온라인상으로 제안하고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폭발적인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2004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결과 2002년 대선은 인터넷 때문에 노무현대통령이 승리한 인터넷 대선, 새로운 감수성의 2030세대의 대선이라고 평가됐다. 많은 평론가역시 이에 기초해 운동의 미래에 대해 장밋빛 그림을 제시했다. 그러나 2008년 대선은 이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바 있다. 그리고 그 결과 문제의 현 대통령이 사상 최대의 표차이로 승리했다. 결국 2002년과 2004년의 촛불집회가 확실한 정치적 주체화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번 시위에도 불구하고 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지지율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들이 직접 정치를 만들어가는 촛불집회를 정당이나 선거라는 제도정치에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걱정은 소고기이후이다. 이후 앞으로 줄줄이 생겨날 이명박정부의 한심한 정책마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야 하며, 또 모일 것이냐는 것이다. 밤 12시,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는 시위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를 엄습한 것은 2002년부터 2008년 대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과 비슷한 현상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걱정이었다. 물론 소고기문제를 매듭짓고 이명박의 신자유주의적 공안국가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촛불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시민들, 그들이 5년 뒤에는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들이 지속적인 힘으로 작동하도록 정치적 주체로 확실히 자리 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진정한 화두이다.

일각에서는, 진보진영에서조차, 제도정치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촛불은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안티클라이맥스”이며 “촛불보다 투표를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비판적 견해가 제기된 바 있습니다. 저는 이 같은 시각의 문제의식은 이해하지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당정치와 같은 제도정치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정치의 문제를 제도정치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위의 글에서 지적했듯이 촛불은 그동안의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축제 같은 ‘즐거운 혁명’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나아가 시위현장 등에서 행사되어 온 운동권력 조차 사라지고 시민 스스로 인터넷에서 운동을 조직화하고 또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시위를 주도해갔다는 점에서, 세계민주주의 운동사에 길이 남을만합니다. 그리고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대중의 자발성과 능동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미 위의 글에서 지적했듯이 일면적인 (인터넷에 대한) 매체주의적 낙관론이나 (집단지성, 다중론과 같은) 대중에 대한 일면적인 낙관론 등 다양한 찬양일변도의 낙관주의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같은 이유로 당시의 전체적인 낙관적인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위의 글에서 비판적 시각을 피력했고 그 때문에 게재여부가 문제되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저의 우려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걱정은 쇠고기 이후이다. 이후 앞으로 생겨날 이명박정부의 한심한 정책마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야 하며 또 모일 것이냐는 점이다”라는 저의 우려가 불행히도 그대로 현실화되고 말았습니다.

대중들이 보여준 엄청난 힘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는 별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공격은 날로 거세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촛불집회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로부터 미네르바의 구속, 용산 참사와 관련 철거민들에 대한 사법처리, 소위 다양한 MB악법 제정 움직임에 이어 언론인들의 잇따른 체포, 구속 사태로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MB특보의 낙하산 인사에 반대해온 YTN 노조위원장을 구속했고 다 끝난 지난 해 촛불집회와 관련해 문화방송 피디를 체포해 광우병 특집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월스트리트 발 경제위기로 세계가 그간의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반성하고 탈신자유주의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정부는 청개구리처럼 더욱 신자유주의로 매진하고 있고 부동산세 감세 등 특권층을 위한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환경재앙이 될 대운하 삽질을 사실상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침묵하고 있고 촛불들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마음 속의 촛불’은 아직 켜 놓고 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광장에는 분명히 촛불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용산참사의 집회에 가면 그 아름답던 대중은 사라지고 40대 이상의 옛 운동권만이 외로운 절규를 외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를 향한 돌격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다소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민주당과 같은 개혁세력,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진보세력의 지지율의 합계보다 훨씬 앞서있으며 개혁세력의 지지율은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대중의 침묵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사회에도 독일, 이탈리아와 같이 대중의 지지에 기반한 ‘진성 파시즘’이 오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즈음 밤마다 촛불의 추억과 광기의 순간을 되살리며 희열에 온몸을 떱니다. 그러다가 대중의 침묵에 절망합니다. 더욱 저를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저의 지적 무력감입니다. 촛불집회 이후 수많은 의문들이 저의 머리를 스쳐가고 있습니다.

대중의 분노와 촛불을 가져온 동인은 무엇인가? 그러나 왜 그 이후 대중은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이명박정부의 마이동풍에 자포자기한 것인가? 공안탄압에 겁을 먹은 것인가? 아니면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광우병 소동으로 한번 속고나자 정신을 차린 것”인가? 용산참사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 못난 그들의 문제”라서 침묵한다고 치더라도, MBC의 문제, 미네르바의 문제, 휴대폰 감청문제 등에는 왜 침묵하는 것인가? 이것들이 소고기보다 덜 중요하고 덜 생활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인가? 대중을 분노하게 하고 대중을 움직이는 대중의 정치적 성감대는 어디에 있는가? 다시 말해, 언제 대중은 움직이고 언제 침묵하는가? 대중을 움직이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우리는 해가 져야 날기 시작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사후적인 해석만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이 같은 의문들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줄 수 있을 때, 학자로서 무언가 대중을 움직이는데, 그리고 운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사회과학을 직업으로 하며 살아왔으면서도 이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같은 저의 지적 무능이 저를 절망하고 또 절망하게 만듭니다.

오늘 이 토론회가 촛불집회를 둘러싼 이 같은 의문들에 답을 제공해줌으로써 저의 절망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기를 바랍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촛불집회가 엄청난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별 성과 없이 끝난 것은 비폭력노선에 집착했기 때문인가 하는 전술적 문제로부터 위에서 제가 제기한 대중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궁금증을 푸는데 오늘 토론회가 큰 기여를 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 가지겠습니다만, 촛불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저의 근본적인 의문중 하나는 촛불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주체문제입니다. 이와 관련, 저의 과의 통계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후배교수가 저의 과 학생들을 고용해 촛불집회 현장에서 두 차례 걸쳐 다섯 번째 사람을 한 명씩 설문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아주 체계적인 현지조사를 해 그 사회학적 초상을 알아냈는데 그 결과가 매우 재미있습니다.

참가자중 25%정도가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민주당후보를 찍은 사람들이고 30%가 권영길 민주노동당후보를 찍은 사람들이며 이명박을 찍은 사람은 5%정도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15%는 투표권이 없었던 사람들이고 15%는 기권을 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즉 투표권이 없었던 연령층은 제외하면 우리가 촛불집회에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정동영, 권영길 지지자들 이외에 이명박 지지자 5%, 기권자 15% 등 20%가 07년 대선 때와 달리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어 거리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했듯이 요즈음 이명박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가 떨어졌지만 민주당과 같은 개혁세력, 그리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는 더 떨어지거나 정체되고 있고 30%는 무당파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과 관련해, 촛불의 그 20%와 최근 무당파성을 보이는 30%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규명할 필요가 있는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지난 해 촛불집회는 이미 신화이지만 무조건 미화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대중은 광장으로 뛰어나와 엄청난 힘을 보여줬지만 제가 우려했듯이 새로운 주체로 탈바꿈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대중은 복합적이고 모순적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확실한 것은, 대중이 갖고 있는 이 같은 모순성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사상이나 진보적 운동이 대중과 결합하지 않고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김수영 시인은 ‘풀’이라는 시를 통해 대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절창을 노래한 바 있습니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는”이라고. 그렇습니다. 대중이 촛불이후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누었는지”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리라”고 봅니다. 그 때만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꽃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사실 반MB교육을 내건 진보적인 김상곤한신대교수가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승리한 것을 보면 대중들이 이미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재 한나라당, 그리고 친박연대, 자유선진당으로 이어지는 냉전적 보수세력이 국회의 절대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반MB연대와 같은 상층부연대만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힘들고 대중이 일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오늘의 토론회가 대중을 다시 일어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좋아 했던 말 중의 하나가 ‘지적 비관과 의지의 낙관’입니다. 이 말을 인용하는 강조점은 ‘지적 비관’에 있습니다. 실천을 위한 의지의 낙관은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지적 낙관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의 문제점을 보지 못하는 ‘지적 낙관주의’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뜨거운 가슴’에 대비되는 ‘냉철한 머리’로, ‘의지의 낙관’에 대비되는 ‘지적 비관’으로, 냉철한 분석을 통해 촛불집회의 교훈과 미래에 대한 좋은 길잡이들을 만들어 주기시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