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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태환경

David Harvey- 공간의 정치경제학

by 마리산인1324 2009. 5. 18.

 

<중앙대학교 대학원>

http://www.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4111

 

 

                                  데이비드 하비 : 공간의 정치경제학

 

 

임동근 / 파리7대학 지리학과 박사과정
2008년 03월 06일 (목) 19:33:07 이주희 편집위원 loveshake1111@hanmail.net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맑스의 자본 비판을 도시로 확장시킨 맑스주의자이다. 그러나 하비는 소련과 중국 등 현실의 국가들을 참조하며 사상을 공부했던 맑스주의자가 아니라, 지리학적 사유 속에서 맑스의 분석을 재평가한 학자이다. 1969년 <지리학 설명(Explan-ation in Geography)>과 1973년 <사회정의와 도시(Social Justice and the City)>는 각각 맑스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회비판 이론으로서 지리학을 시도한 책이다. 그럼에도 <사회정의와 도시>는 향후 맑스주의 공간이론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적 도시화 비판

 

미국 볼티모어 존스홉킨스 대학으로 근거지를 옮긴 후 1971년부터 하비는 맑스의 <자본> 읽기 세미나를 시작한다. 이후 10년간의 연구 끝에 1982년 <자본의 한계(Limits to Capital)>를 출간한다. 하비 본인의 말로 자신의 저작 중 가장 힘들게 썼으며, 자신의 학문적 정초를 세운 이 책은 ‘역설적으로’ 하비의 책 중 가장 적게 읽히고, 출간 당시 세간의 반응도 적었던 책이다. 그러나 이후 <자본의 한계>는 지리학뿐만 아니라 맑스주의 이론 자체도 변화시키는, 말 그대로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연 책으로 자리 잡는다.


하비의 문제의식은 자본주의 도시화를 이론적이고 역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었고, 점차 자본이 도시화를 진행하는 방식과 그 효과를 파악하는 것으로 변해간다.

 

 

이 지점에서 하비는 맑스의 자본비판과 만난다. 그는 맑스주의가 ‘고정자본’에 대한 해석이 아주 드물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 고정자본의 총체로서 ‘도시’를 바라보았을 때, 즉 자본의 움직임이 남기는 ‘공간’들을 맑스의 방법으로 해석할 때 현재의 도시(화)를 설명하고,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본의 한계>에 이어 1985년 <자본의 도시화(Urbanization of Capital)>와 <의식과 도시경험(Consciousness and the Urban Experience)>, 1989년 <도시의 정치경제학(Urban Experience)> 등 후속작업들이 진행되면서 하비의 해석은 힘을 더해간다.
자본의 운동과 그 모순들을 공간의 장에 펼치는 그의 이론적 핵심은 아무리 유동적인 자본도 그 일부가 결국 공간에 고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며 그는 자본의 1차, 2차, 3차 순환을 얘기한다. 자본의 1차 순환은 맑스의 자본비판에서 보는 ‘생산과정’을 의미한다. 자본이 투하되고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이 메커니즘은 누군가 ‘상품 → 자본’으로의 전환을 발생시켜야 하지만, 이 순환 내에는 이런 순환을 지속적으로 보장시켜주는 것이 없다. 그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의 2차 순환으로 이어진다. 2차 순환은 ‘고정자본’과 ‘소비기금’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고정자본은 공장의 생산라인과 같은 생산내 영역뿐만 아니라, 상품이 소비되기 위한 인구의 집적을 가능하게 해주는, 즉 ‘도시적인 것’을 포함하는 ‘건설된 환경’을 의미한다. 이 순환에서 사적 자본은 고정자본에 투하된 가치가 실현될지 안 될지를 알 수 없기에, 안정된 자본 순환은 항상 위기에 봉착하며, 도로건설 등으로  국가가 개입하게 되나 이 또한 위기를 맞는다. 아무리 국가가 계획적으로 개입한다 하더라도 자본의 유동성에 의해 파생되는 가치잠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자본의 3차 순환은 과학기술, 교육, 금융제도 등으로 발전하나 이 역시 미국 비우량주택담보대출 문제에서 보듯이 위기를 분산시킬 뿐이고, 그 때문에 오히려 위기가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1989년 출간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Condition of

   

Postmodernity)>은 하비를 유명인사로 만들었는데, 그는 농담처럼 자신의 나머지 책들 전부보다 더 많이 읽힌다고 말했다. ‘유연한 축적체제’라는 조절학파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 해석을 펼치는 이 책은 ‘시공간 압축’이라는 유명한 개념을 남기기도 했다. 책 제목이 주는 가치중립성과는 달리 그는 이 책에서 ‘포스트모더니티’는 체제를 변환하는 새로운 지형변화가 아님을 주장한다. 즉, 포스트모더니티가 작동하는 조건들이 있을 뿐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자본주의의 조절양식과 축적체제가 달라졌다고 주장하는 조절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유연적 축적체제가 일시적으로 여기저기서 지배적이긴 하지만 포디즘이 산업 여러 분야에서 유지되고 있다”, “물론 몇몇 부분은 요소변화를 통해 노동자수를 감소시켜 이윤을 낳고 있지만 자본이 이윤을 내는 방식,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고 주장한다. 하비는 이 책의 결론을 꼼꼼히 읽을 것을 부탁하는데, 모호한 ‘유연함’보다는 “금융이 어디서나 존재하고 배치될 수 있는 것”이 현시대의 큰 특징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공간 비평의 확장과 변주

 

1996년에는 <정의, 자연, 차이의 지리학(Justice, Nature and the Geography of Difference)>을 출간하여 그 동안 좌파학자들이 기피했던 ‘정의’의 문제, ‘법’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논지는 1971년의 푸코와 촘스키의 대담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정의’라는 말이 갖는 은폐의 기능들, 그 안의 권력관계들을 증오한다는 푸코의 말에 그럼에도 인간의 ‘정의’라는 것을 옹호해야 한다는 촘스키의 주장, 하비는 여기서 촘스키의 손을 든다. 더 나아가 ‘사회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좌파 이론가들을 비난한다. “스칸디나비아의 사회민주주의가 제한된 진보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실제로 진행되는 진보이다.” 실용주의적인 그의 접근은 “추상적인 맑스의 이론과 자신의 일상”이 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탐험보다 현재의 미국과 유럽 등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의 움직임, 특히 볼티모어의 움직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2000년 그는 <희망의 공간(Spaces of Hope)>과 <파리, 모더니티의 수도(Paris, Capital of Modernity)>를 출간한다. 르페브르부터 시작되었던 프랑스 사상가들과의 지적교류는 비단 사상적 측면뿐만 아니라 파리라는 도시와 그 역사를 자신의 학문적 틀로 비평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파리를 거닐고 역사를 찾아가면서 자신의 책 <자본의 한계>에서 말하는 이론들이 과연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 탐험한다. <파리, 모더니티의 수도>는 1990년대부터 문학, 회화 등을 끌어들이며 사고의 주제를 변주했던 그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에게는 시나 소설이 역사적인 수많은 이야기들을 함축한 보고들이지 지적유희를 위한 ‘섭렵’의 대상이 아니었다.


자본에 대한 공간적 비평은 2003년 <신제국주의(New Imperialism)>와 2005년 <신자유주의 약사(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로 발전한다. 사실 <자본의 한계>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더욱 잘 설명되는 예견서 같은 책이었고, 이미 그 안에 신자유주의가 작동하는 방식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경쟁의 시대’라고 말을 하지만 자본주의의 주체들은 경쟁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제도들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화’라고 부르는 다양성의 극대화는 경쟁을 회피하기 위한 자본주의 주체들의 움직임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람시’와 ‘케인즈’를 같이 놓고 읽어야 하며,

   

‘지젝’을 보며 지리학을 상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비는 1970년대 신자유주의가 세상에 나와 2000년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하이에크가 그 정초를 세운 것은 1940년대였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를 비판하는 대안적 사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당장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 지침들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반대되는 수많은 점들을 연결하고 확장시키는 것이다. 교조주의 맑스주의가 지배하던 시절에 시작한 그의 공간비평은 오늘날 더욱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