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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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하비 : 공간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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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근 / 파리7대학 지리학과 박사과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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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맑스의 자본 비판을 도시로 확장시킨 맑스주의자이다. 그러나 하비는 소련과 중국 등 현실의 국가들을 참조하며 사상을 공부했던 맑스주의자가 아니라, 지리학적 사유 속에서 맑스의 분석을 재평가한 학자이다. 1969년 <지리학 설명(Explan-ation in Geography)>과 1973년 <사회정의와 도시(Social Justice and the City)>는 각각 맑스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회비판 이론으로서 지리학을 시도한 책이다. 그럼에도 <사회정의와 도시>는 향후 맑스주의 공간이론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적 도시화 비판
미국 볼티모어 존스홉킨스 대학으로 근거지를 옮긴 후 1971년부터 하비는 맑스의 <자본> 읽기 세미나를 시작한다. 이후 10년간의 연구 끝에 1982년 <자본의 한계(Limits to Capital)>를 출간한다. 하비 본인의 말로 자신의 저작 중 가장 힘들게 썼으며, 자신의 학문적 정초를 세운 이 책은 ‘역설적으로’ 하비의 책 중 가장 적게 읽히고, 출간 당시 세간의 반응도 적었던 책이다. 그러나 이후 <자본의 한계>는 지리학뿐만 아니라 맑스주의 이론 자체도 변화시키는, 말 그대로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연 책으로 자리 잡는다.
이 지점에서 하비는 맑스의 자본비판과 만난다. 그는 맑스주의가 ‘고정자본’에 대한 해석이 아주 드물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 고정자본의 총체로서 ‘도시’를 바라보았을 때, 즉 자본의 움직임이 남기는 ‘공간’들을 맑스의 방법으로 해석할 때 현재의 도시(화)를 설명하고,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본의 한계>에 이어 1985년 <자본의 도시화(Urbanization of Capital)>와 <의식과 도시경험(Consciousness and the Urban Experience)>, 1989년 <도시의 정치경제학(Urban Experience)> 등 후속작업들이 진행되면서 하비의 해석은 힘을 더해간다.
Postmodernity)>은 하비를 유명인사로 만들었는데, 그는 농담처럼 자신의 나머지 책들 전부보다 더 많이 읽힌다고 말했다. ‘유연한 축적체제’라는 조절학파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 해석을 펼치는 이 책은 ‘시공간 압축’이라는 유명한 개념을 남기기도 했다. 책 제목이 주는 가치중립성과는 달리 그는 이 책에서 ‘포스트모더니티’는 체제를 변환하는 새로운 지형변화가 아님을 주장한다. 즉, 포스트모더니티가 작동하는 조건들이 있을 뿐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자본주의의 조절양식과 축적체제가 달라졌다고 주장하는 조절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유연적 축적체제가 일시적으로 여기저기서 지배적이긴 하지만 포디즘이 산업 여러 분야에서 유지되고 있다”, “물론 몇몇 부분은 요소변화를 통해 노동자수를 감소시켜 이윤을 낳고 있지만 자본이 이윤을 내는 방식,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고 주장한다. 하비는 이 책의 결론을 꼼꼼히 읽을 것을 부탁하는데, 모호한 ‘유연함’보다는 “금융이 어디서나 존재하고 배치될 수 있는 것”이 현시대의 큰 특징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공간 비평의 확장과 변주
1996년에는 <정의, 자연, 차이의 지리학(Justice, Nature and the Geography of Difference)>을 출간하여 그 동안 좌파학자들이 기피했던 ‘정의’의 문제, ‘법’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논지는 1971년의 푸코와 촘스키의 대담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정의’라는 말이 갖는 은폐의 기능들, 그 안의 권력관계들을 증오한다는 푸코의 말에 그럼에도 인간의 ‘정의’라는 것을 옹호해야 한다는 촘스키의 주장, 하비는 여기서 촘스키의 손을 든다. 더 나아가 ‘사회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좌파 이론가들을 비난한다. “스칸디나비아의 사회민주주의가 제한된 진보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실제로 진행되는 진보이다.” 실용주의적인 그의 접근은 “추상적인 맑스의 이론과 자신의 일상”이 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탐험보다 현재의 미국과 유럽 등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의 움직임, 특히 볼티모어의 움직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지젝’을 보며 지리학을 상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비는 1970년대 신자유주의가 세상에 나와 2000년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하이에크가 그 정초를 세운 것은 1940년대였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를 비판하는 대안적 사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당장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 지침들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반대되는 수많은 점들을 연결하고 확장시키는 것이다. 교조주의 맑스주의가 지배하던 시절에 시작한 그의 공간비평은 오늘날 더욱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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