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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3. 중앙대학교 콜로키움 발제문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종말 ?

- 데이비드 하비의 논의를 중심으로

 

최병두 (대구대 지리교육과 교수)

 

 

1. 머리말

 

데이비드 하비는 그의 책 대부분이 한글로 번역되고 있고, 그 자신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을 정도로 한국 학자들, 특히 비판적 연구자들에게 친숙하다. 그는 심지어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와 관련된 국제 도시계획 공모전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당시 국토연구원에서 강연을 한 바 있다. 강연한 주제는 ‘신자유주의와 도시’였던 것 같은데, 배포한 논문의 제목은 ‘창조적 파괴로서의 신자유주의’였다. 당시 발표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의문, 즉 사람들은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 또는 “왜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였다. 하비는 이에 대한 답으로,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전제로] 계급 권력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본축적을 위한 세계적 경제성장은 약화되었고 사회공간적 불평등이 심화되었으며, 따라서 그 대안으로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속성과 반민주적 성향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하비의 발표 내용은 그의 논문(Harvey, 2007a)의 초안과 더불어 당시 막 출판되었던 저서,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에서 주요한 부분을 발췌하거나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일 하비의 발표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있었는데, 주요 질문/답변으로, 첫째 ‘계급’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 /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혁명이란 없으며, 상당히 오랜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신도시계획의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 이에 대해 잘 모르며, 단지 ‘참여관찰’을 하기 위해 참여했다; 셋째, 최근의 연구관심사는 무엇인가 ? /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조건으로 뉴욕시립대로 옮겼으며, 주변에서는 기존 연구에 바탕을 둔 인류학적 연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같이 최근 한국의 연구자들은 하비의 견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국책사업의 심사위원으로 초청하거나 국책 연구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질의/응답을 할 정도로 발전했다. 하비는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개발 전략에 대한 ‘참여관찰’이라고 하지만, 역으로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하비를 초청하여 그 내용과 영향력을 역(逆)관찰할 정도로 유연하고 대범해(?) 졌다.

 

데이비드 하비는 지리학자이지만, 그의 연구 주제는 좁은 의미의 지리학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전세계적 이슈, 즉 최근 전개되어 온 미국의 신제국주의와 더불어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 신자유주의(그리고 최근 미국에서 시발된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관심을 포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의 영향은 단지 지리학자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들 나아가 현재의 정치경제적 상황의 역동성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학자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그러나 연구의 출발점에서 그의 두 발은 항상 맑스의 이론과 지리학에 굳건히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두 발판은 ‘역사-지리적 유물론’으로 지칭되면서 <자본의 한계>(Harvey, 1982)에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었고, 그 이후 그의 연구를 위한 새로운 관심과 사고를 촉진시키는 기본 바탕이 되었다. 그의 최근 저서, <신제국주의>(Harvey, 2003), <신자유주의>(Harvey, 2005), 그리고 <지구적 자본주의의 공간>(2006) 등은 그의 이론적 통찰력과 더불어 현실 세계의 변화에 대한 그의 성찰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데이비드 하비에 관한 이러한 소개를 전제로, 최근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옹호되고 있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이의 역동적 전개과정으로서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화에 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많은 국내외 연구자들과 이들의 연구결과물들이 있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역동성에 대한 깊이 있고 체계적인 연구는 사실 매우 부족한 편이다. 이러한 실정으로 인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하비의 논의는 그 이데올로기적 기원과 현실세계에서의 발전과정, 그리고 현재 위기 상황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의 전망을 모색함에 있어 우리들에게 주요한 발판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글에서는 하비의 논의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기원과 현실 세계에서의 기본 특성을 먼저 살펴보고,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적 발전과정과 우리나라와 중국 등을 포함한 전세계로의 확산 과정을 고찰한 후, 현재 신자유주의적 봉착해 있는 위기 상황에 대한 하비의 입장과 대안적 미래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와 정치경제적 특성

 

1)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이데올로기이며 또한 그 현실적 특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하비에 의하면, “신자유주의는 사적 소유권, 개인의 자유, 자유시장, 자유무역의 특징을 갖는 제도적 틀 안에서 기업의 자유를 극대화함으로써 인간 복리가 가장 잘 개선될 수 있다고 하는 정치경제적 실행에 관한 이론”이다(Harvey, 2007a, 22; Harvey, 2005, 2[15]). 그리고 신자유주의 “국가의 역할은 이러한 실행에 적합한 제도적 틀을 창출하고 보호하는 것”이라고 규정된다(ibid).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론은 1940년대 하이에크(Hayek)의 정치철학에서 시발되었고, 1960년대 프리드만(Friedman)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대학과 학계의 경제정책론에 반영되었고, 1970년대 경제침체 상황에서 영국의 대처와 미국 레이건의 정책을 통해 실제 실행되었으며, 1990년대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국제적 합의로 제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적 성향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실제 이의 결과를 통해 보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적 생산 또는 자본축적 과정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보다는 자본계급의 권력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로 이해된다. 즉 하비는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 관한 뒤메닐과 레비(Dumenil and Levy, 2000)의 설명에 공감하여,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국제자본주의의 재조직을 위한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유토피아적 기획 또는 자본축적 조건의 재구축과 계급권력의 복원을 염두에 둔 정치적 기획”(Harvey, 2007a, 28-29; Harvey, 2005, [36])으로 정의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사드-필류와 존스턴(Saad-Filho and Johnston, 2005, [10])의 주장과 유사하다. 이들에 의하면, 신자유주의란 “전 세계 엘리트 집단에게 부와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특히 각국의 금융적 이해관계에 이익이 되며 국제적으로는 미국 자본에 이익이 되는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하비의 우선적 관심은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그렇게 광범위하게 번성하게 되었는가에 있다. 그에 의하면, 이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설명은 두가지 세부 내용을 가진다. 첫째는 이른바 ‘세계화’라고 불리는 새로운 경제적 공간적 편성, 즉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어떠한 수단과 경로를 통해 기존의 체계에서 도출되었는가는 점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물적 토대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가에 관한 의문이지만, 이에 대한 실제 연구는 미흡하다고할 수 있다. 둘째는 신자유주의라는 소수파 주장이 어떻게 다수 주장이 되어, 담론 양식에서 헤게모니적이게 되었는가와 관련된다. 첫 번째 사항은 다음 소절에서 간단히 살펴보고, 우선 두 번째 사항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전제로 하고 있는 ‘자유’는 보편적 가치를 함의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실제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는 자유시장, 자유무역, 그리고 자유로운 소유(즉 사적 소유권) 등에 우선되며, 나아가 “개인의 자유는 시장과 무역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고 가정”된다. 이러한 점에서 하비(Harvey, 2007b, 3)는 부시의 연설문을 세심하게 확인하면서, 자유의 개념이 “자유(freedom)와 자율(liberty)은 미국적 가치라는 사고에서부터, 이들은 보편적 가치이며 지구를 위한 전지전능자의 지적 설계라는 사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국가는 보편적 가치로서 자유를 강조하지만, 실제 이러한 가정 하에서 “자본의 편에서 이윤 있는 자본 축적의 조건들을 고무시키는 것을 기본 임무”로 수행한다. 하비에 의하면, 이러한 신자유주의 국가의 사례는 이라크 전쟁 후 미국이 이식한 이라크 정부, 그리고 1973년 작은 9월 11일의 쿠테타 이후 칠레에 수립된 정부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이와 같이 주변부에서 수행되었던 실험이 중심부의 정책 입안을 위한 모형이 되었다고 주장된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화가 일부 주변부 국가에서 우선적으로 실험되었다고 할지라도, 신자유주의화가 추동된 우선적 배경은 1970년대 서구 경제의 침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2차 대전 직후 서구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재앙을 막기 위하여 자본과 노동 간 계급적 타협의 산물로 케인즈적 재구조화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따라 국가는 적극적으로 산업정책에 개입하고 복지체계를 구축함으로서, 하비가 주장하는 ‘착근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를 달성하게 된다. 이는 시장 과정과 기업 활동에 대한 제한적이면서도 유도적인 전략을 강구하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착근된 자유주의에 따라 1950-60년대 선진국들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경, 포드주의적 경제의 침체와 더불어 이러한 착근된 자유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했고, 경제침체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요청되었다. 이에 대한 진보적 입장은 사민주의와 조합주의적 해법이었으나, 이는 자본축적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대신 기업 권력의 자유화를 포함하여 포괄적인 시장 자유를 지지하는 신자유주의가 힘을 얻기 시작했고, 상호논쟁의 결과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결국 대처가 주장한 바와 같은 유일한 대안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경제 침체과정에서 상위 계급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위협을 느끼게 됨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신자유주의를 강화시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착근된 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제성장 시기에는 비록 상위계급의 권력이 약화되고 노동자들의 몫이 커졌다고 할지라도, 성장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이들의 이해관계 실현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신자유주의화는 한편으로 심각한 경제침체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재조직화를 위한 이론적 설계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로 제시되지만 다른 한편 “자본축적의 조건들을 재건하고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해석”될 수 있으며, 실제 후자가 보다 지배적이게 되었다(Harvey, 2005, [36]). 이러한 이중성은 “사유재산권, 개인 및 기업의 자유를 방어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강력하고 강제적인 국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함의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이론이 일관성을 전혀 가지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하비의 주장은 신자유주의가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속성과 이에 내재된 이론적 비일관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일단 우리는 두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하비는 신자유주의는 ‘계급 권력의 회복을 위한 수단’을 강조하지만, 여기서 ‘계급’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점이다. 하비에 의하면, ‘계급’은 안정된 사회적 편제가 아니며, 실제 신자유주의화는 계급의 재개념화를 동반했다고 주장된다. 만약 그렇다면, ‘계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특히 뒤에서 논의할 ‘탈취에 의한 축적’의 개념과 관련하여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재편된 계급은 기존의 자본-노동관계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정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 ‘좋은 자유’와 ‘나쁜 자유’가 있다는 폴라니(Poliny)의 입장에 따라, 하비는 ‘좋은’ 자유를 위한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주의는 권위주의 또는 파시즘에 의해 좌절될 운명에 처해 있으며, 이로 인해 “좋은 자유는 사라지고, 나쁜 자유가 빈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좋은 자유와 나쁜 자유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2)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적 특성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로 자유시장의 원칙, 이를 위한 국가의 규제 완화 또는 탈규제, 그리고 사회적 서비스를 위한 공적 지출의 축소 등이 제시된다. 신자유주의는 우선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의 축소와 이에 따른 자유시장으로의 복귀를 전제로 한다. 이를 통해 국제적 자유 무역과 자유 투자가 촉진되며, 자본과 기술, 그리고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된다. 가격에 대한 통제는 사라지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요구도 없어져야 한다. 이와 같이 탈규제된 시장은 경제성장과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주장은 개인의 진정한 자유나 권리와는 무관하거나 오히려 억합하면서, 자유기업 또는 민간자본이 국가에 의해 부여된 모든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화의 현실적 특성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증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본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한 계급프로젝트로 해석된다.

 

하비는 이러한 점에서, “신자유주의화의 본질적이고 주된 업적은 부와 소득의 창출보다는 재분배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적 속성을 체계적 이론으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하비가 제시된 개념이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이다. 이 개념은 하비(Harvey, 2003)가 미국의 신제국주의 경향을 분석하기 위하여 제시한 몇 가지 주요 개념들 가운데 하나로, 마르크스의 ‘시원적 또는 본원적’ 축적의 개념에서 도출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등장기에 노동에 의한 확대재생산 외에 토지의 상품화와 사유화에서부터 인신매매나 고리대금업, (신)식민지적 제국적 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졌다고 제시한다. 하비에 의하면, 이러한 축적은 단지 자본주의 초기단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과정이 자본주의 체제 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축적의 역사지리 내에 끈질기게 중요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원적’이라는 용어 대신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자 한다.

 

하비에 의하면, 탈취에 의한 축적은 기본적으로 4가지 주요 요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첫째, 민영화와 상품화로, 신자유주의적 프로젝트의 징후적 양상으로서 공적 자산의 법인화, 상품화, 민영화는 “그 동안 이윤가능성의 계산에서 제외되었던 영역에서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장을 개발”하는 것을 일차적 목적으로 한다. 이는 모든 종류의 공적사업들(물, 통신, 교통), 사회복지 제공(사회주택, 교육, 의료보건, 연금), 공적 기관들(대학, 연구실, 감옥), 그리고 심지어 전쟁의 수행까지 포함하며, 유전물질이나 종자 등에 대한 지적 재산권과 지구의 공유적 환경자원(토지, 공기, 물), 그리고 각종 문화적 역사적 형태의 공유물이나 지적 창조물(음악산업 등) 등의 사유화와 상품화도 포함된다. 이러한 자원들은 기존에 공유물들을 대상으로 할 뿐만 아니라 “오랜 계급투쟁을 통해 획득된 공적 소유권을 사적 영역으로 되돌리려는 전환 시도”에도 해당되며, 이러한 경우 국가는 흔히 국민 일반의 정치적 의지에 반대하여 이러한 과정을 강제할 때 사용한다.

 

둘째, 금융화로, 특히 1980년대 이후 투기적, 약탈적 양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금융화는 주식 상장, 폰지형 사기, 인플레이션을 통한 구조적 자산 파기, 흡수합병과 취득을 통한 자산 박탈, 부채 부담 수준의 증대, 기업적 사기와 신용 및 주가 조작에 의한 자산 탈취(연기금의 투매와 주식 및 기업 붕괴에 의한 자산 처분 포함)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은 금융체계의 탈규제를 통해 투기, 강탈, 사기, 심지어 도둑질에 의한 재분배적 활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예로 주식 상장은 “다수의 희생 위에서 소수의 손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는 시장 조작”을 통해 이루어진다. 셋째는 위기의 관리와 조작으로, 탈취에 의한 축적의 일차적 수단으로서 ‘부채의 덫’ 이면에서 작동하는 부의 재분배과정이다. 개발도상국들 대부분이 경험했던 부채 위기는 세계무대에서 위기의 창출, 관리, 조작을 통해 빈국에서 부국으로 부를 이동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넷째, 국가의 재분배로, 이는 착근된 자유주의 시대에 이뤄졌던 상위계급에서 하위계급으로의 부의 흐름을 역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다양한 유형의 민영화뿐만 아니라, 소득과 임금보다는 투자의 회수에 유리하거나 역진적 요소들을 촉진하기 위한 조세법의 개정, 수익자 부담금의 부과, 기업에 대한 지원 및 감세 혜택 등도 포함한다.

 

하비는 이러한 요소들로 추진되고 있는 탈취에 의한 축적을 ‘신자유주의화의 본질적이고 주된 업적’으로 지적하며, 자본축적과정에서 전통적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노동에 의한 확대생산’과 더불어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양대 축으로 이해한다. 탈취에 의한 축적은 분명 현재 ‘초경제적’(extra-economic) 수단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이며,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새롭게 이론화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로 부각될 수 있다 (Glassman, 2006). 그러나 이 개념은 경험적으로 매우 다양한 양상들과 과정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론적으로도 어떤 내적 긴장 없이 독립적 범주가 될 수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한다.

 

<표 1> ‘탈취에 의한 축적’의 주요 요소들

구분

물질적 자원과 권리

화폐적 가치와 권리

일차적 수단

민영화, 상품화, 사유화

금융화

이차적 수단

국가의 재분배

위기의 관리와 조작

 

우선 첫째 문제와 관련하여 하비가 제시한 4가지 요소들이 경험적으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예로 첫 번째 요소로 제시된 민영화는 사실 국가의 재분배에서 핵심을 이루며, 두 번째 요소로 제시된 금융화에 관한 이해는 사실 국제적 ‘부채의 덫’에 관한 설명을 포함한다.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하기 위하여 <표 1>과 같이 탈취에 의한 축적의 두가지 기본 축을 물질적 자원과 권리 및 화폐적 가치와 권리에 대한 재분배로 구분하고, 이들을 각각 다시 일차적 수단과 이차적 수단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하비가 탈취에 의한 축적의 경험적 사례로 제시한 다양한 양상들을 다 포괄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하비는 ‘탈취에 의한 축적’의 개념을 <신제국주의>에서 역사지리유물론을 구성하는 한 축으로 설정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에서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에서 핵심을 이루는 노동에 의한 가치 창출과 이에 의한 확대생산의 개념과 쌍을 이룰 수 있는 이론적 범주로 설정한다. 이에 따라, 예로 하비는 사회운동의 특성과 미래의 전망을 새롭게 재조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공회(2005)가 비판하는 바와 같이, “자본축적논리와 영토논리는 변증법적 대립 쌍을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탈취]에 의한 축적은 하나의 독립된 이론적 범주로 성립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이론적 엄밀성의 결여로 말미암아 하비의 이론은 개량주의적 전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되기도 했다.

 

3. 신자유주의의 발전과정

 

1) 미국과 영국의 경우

 

이데올로기로서의 신자유주의와 이를 전제로 한 계급 프로젝트로서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일부 주변부 국가들에서 실험되었다고 할지라도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중심부 국가들에서 우선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강압적 또는 자의적으로 주변부 국가들로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수용 과정은 중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들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심지어 중심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내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예로 미국의 경우는 자본축적과 계급권력의 이중적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등장하게 된다. 아직 경제침체가 본격화되지 않았던 1971년에 이미 미국상업회의소는 자유기업체계에 대한 비판과 반대가 너무 지나치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이 회사, 법, 문화 등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하여 주요 제도들(대학, 학교, 대중매체, 출판, 법정 등)을 공격해야 한다고 제안하였고, 실제 이를 위한 로비와 캠페인 자금 모금이 추진되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소 설립과 지원과 아울러 기존에 반기업적 반국가적 정서의 중심지였던 대학들에도 지원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 뉴욕시의 재정위기에 대한 대응은 미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는 직접적 계기로 이해된다. 즉 1970년대 경기후퇴에 따라 뉴욕시가 재정위기에 처함에 따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협상과정에서 상위계급들 특히 뉴욕의 투자은행가들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요구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노동계급의 업적들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하비에 의하면, 이러한 뉴욕 재정위기의 신자유주의적 관리 전략은 1970년대 후반 레이건 정부 하에서 도시적 수준에서 국가적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신자유주의 전략들 가운데 하나인 긴축재정은 사실 위로부터의 반동적 혁명을 지연시켰을 뿐이고, 오히려 노동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탈규제 정책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즉 레이건에 의한 항공관제사 파업 진압을 시작으로 노동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이루어졌고, 실업의 증대와 탈산업화 및 기업의 이전 등은 노동 세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수단으로 동원되었다. 이와 더불어, 유연적 전문화, 유연적 (노동)시간 등의 유연성은 노동을 설득시키는 수사가 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그 이후 미국에서 관행적인 정책으로 자리를 굳혔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 IMF에 의해 국제적으로 파급되게 되었다.

 

영국의 경우는 미국과는 달리 기독교 우파나 강력한 우파적 지식인 집단도 없었으며, 기업들은 노골적인 정치적 행동을 삼가했으며, 일부 자치정부는 노조운동과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노동당은 복지국가를 분해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서 전적으로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영국은 오래된 제국적 잔재로서 런던-기반 금융자본를 가지고 있었고, 이 점이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에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물론 영국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이러한 금융자본의 이해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1970년대 자본축적의 위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즉 대처정부 하에서 노동운동의 실패와 유순한 노동으로의 전환은 미국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통제와 관련된 공통점을 가진다. 그 외,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지자체들(세필드, 런던 광역회의, 리버풀 등)에 대한 재정 지원 삭감, 공공경제의 민영화(특히 공공주택을 세입자들에게 분양함으로써 성공적인 지지를 유도했음), 사회적 서비스의 신자유주의화(그러나 교육, 보건의료, 사회서비스, 대학, 국가관료, 사법부 등의 신자유주의화는 국민들의 지지를 크게 받지 못했음)가 촉진되었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의 수용과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미국과 영국에서 우선적으로 추동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일반화시키는 한편 자신들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실현시키기 위해 한편으로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일부 지방정부나 심지어 일부 자본분파들에게까지] 엄격한 감시와 규칙들을 부과했고, 다른 한편으로 중간계급의 이해관계를 가시적, 단기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정책들(대표적으로 공공주택의 민영화)들을 통해 이들을 포섭하였다. 레이건과 대처의 이러한 성공은 여러 방법들에서 평가될 수 있겠지만, 하비는 특히 ‘소수파였던 것을 주류로 만드는 방법’에 있어서 성공과 더불어 이들의 후임자인 클린턴과 블레어가 도망칠 수 없도록 얽어매어 두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신자유주의화의 성공에 대한 하비의 설명은 이들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략들(예로, 노동에 대한 통제)을 지적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전환 조건들에 있어서 양 국가간의 차이를 적절히 지적함으로써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상당히 개연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결코 보편적 발전과정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경로의존적이며, 지역[국가]별로 차별적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문제는 첫째 만약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등장과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일관된 역사적 발전과정이라기보다 국가적으로 상이한 경로를 가지는 개연적 전환과정이라면, 왜 선진국의 대부분 국가들에서 이러한 과정이 등장(또는 수용)하게 되었는가, 달리 말해 왜 다른 유형의 국가들은 등장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국가별로 상이한 지역적 조건과 역사적 경로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일관된 과정이라는 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1970년대 심각한 경제침체 상황에서 영국과 미국에서 공통적으로 국가 또는/및 자본에 의해 노동통제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면, 이의 성공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분명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하비의 설명에 의하면, 사실 1970년대 이전까지 상당기간 동안 안정된 자본축적과정을 통해 사회적 부의 급증이 이루어져 왔을 뿐만 아니라 이의 재분배 과정에서 노동 권력이 자본권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강화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경제 침체기라고 할지라도) 자본권력이 노동의 힘을 억누르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실현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하비에 의하면 이의 답변을 위한 요체가 바로 신자유주의가 강조하는 ‘자유’라는 이데올로기라고 하지만, 실제 ‘자유’라는 이데올로기는 선진국들보다는 주변부 국가들을 억압하거나 침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신자유주의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신자유주의와 이의 실제 실현을 위한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최소한 가시적으로) 일관된 역사적 발전과정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정합된 이론적 체계를 갖추지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하비에 의하면, 특히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불안정하고 모순적인 정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가 사적소유권, 법에 의한 통치,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위한 제도를 선호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의 증가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혀 주고, 또한 시장의 자유를 통해 개인적 자유를 보증해 줄 수 있는 제도적 편제로서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으로 사유재산권의 부재는 경제발전과 인간 복지의 개선에 대해 제도적 장애이며, 따라서 민영화 또는 사유화가 촉진되어야 한다. 또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세계경제 발전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이를 저해하는 국민국가의 보호주의는 철폐되어야 한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다수 규칙에 의한 통치는 개인적 권리와 헌법적 자유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 의하면, 민주적 의회의 의사결정보다 집행적 질서와 사법적 판결이 선호된다.

하비(Harvey, 2005, [90-95])에 의하면,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장) 및 정치(국가) 이론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는 기존에 작동하는 독점 권력을 적절히 해석하지 못한다. 즉 개인적으로 자유 경쟁은 중요하지만, 경쟁에 의한 독․과점이 초래되거나 또는 자연적 독점(교통로와 같은 사회적 인프라의 경우처럼)이 발생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독과점의 초래 또는 발생 과정에서 장애요인이 없다면, 이러한 독과점을 인정하지만, 실제 이는 개인적 자유에는 분명 위배되는 모순을 안고 있다. 둘째, 신자유주의 이론은 시장에서의 자유가 흔히 시장의 실패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 이론은 오늘날 시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비용의 외부화(예, 공해문제). 경쟁적 실패(예, 하청 증대)와 거래비용 증가, 그리고 (불법 또는 비합법적) 투기의 만연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제시할 수 있다. 셋째, 신자유주의 이론은 자유시장의 작동을 위해 전제되는 정보 접근 능력이 개인이나 집단들 간에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 지적 재산권의 배타적 소유와 활용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강조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저해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치 이론에 내포된 이러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또는 이로 인해), 실제 신자유주의 국가는 이론적 원형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으며, 심지어 현실 속에서 이론이 역전되기도 한다. 예로, 기업이 더 많은 이윤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는 좋은 투자분위기의 창출과 금융체계의 통합성을 위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국가는 시간적으로 변화하며, 공간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예로 공산주의 붕괴 후 동유럽 국가들에 도입된 시장경제에서의 신자유주의, 기존의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했던 국가들에서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동아시아의 발전주의 국가들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상당히 상이한 역할과 신자유주의화 방안들을 채택하고 있다. 특히 발전주의 국가들은 ‘좋은 경영분위기’를 위한 인프라의 창출을 위해 개입주의적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화는 한편으로 새로운 국가 개입 구조를 발전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상위계급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 이러한 이중성에 입각하여 세계무역 규칙의 제정과 금융위기의 해결을 위한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촉진된다. 또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로부터 잉여(공물)의 축출 과정이 신자유주의화를 촉진하여, 부채탕감-위기 해소를 전제로 신자유주의적 제도 개혁이 강제적으로 도입되기도 한다.

 

하비에 의하면, 이러한 신자유주의 국가들에서 가장 큰 문제성은 노동시장에 대한 통제이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자본축적에 제약을 가하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결속에 대해 적대적 통제를 강화하고, 이러한 통제를 배경으로 복지를 위한 모든 책임성을 개인에게 전가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통치의 속성에 있어서 중요한 구조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 국가는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대신 모든 의사결정을 자본축적의 역동성과 계급권력의 네트워크 간 통합에 귀속시키고자 한다. 이에 따라 고안된 것이 예로 공사파트너십을 전제로 한 거버넌스체제의 구축으로, 이는 명목상 다양한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합의를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을 명분으로 하지만 실제 국가의 권력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강구된 것이다. 이러한 점은 국가 고용과 기업 고용 간 순환 임명(revolving door)에서 확인될 수 있다. 또한 민주적 법질서를 명분으로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이에 대한 의존은 명목상 호혜적일지라도 판결을 위한 절차는 매우 비싸기 때문에 실제 필요한 서민들은 배제되는 매우 편향적 방안이다.

 

신자유주의는 이와 같이 공적 목적(만인의 복지, 자유)과 실제 결과(계급 권력의 회복) 간 격차와 모순을 드러내게 된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이러한 신자유주의 국가 정책의 불안정에 대한 반응으로 신보수주의 국가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는 계급 권력의 회복을 선호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공유한다. 그러나 부시 정부 하에서 볼 수 있었던 바와 같이, 이들 간 차이는 개인적 이해관계의 혼돈에 대한 대책으로 질서를 강조하는 한편, 내,외적 위험에 직면하여 자만스러운 도덕성에 대한 관심을 부각시켰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 하에서 지나친 개인주의가 사회적 무정부성(즉 9.11테러와 같은)을 초래했으며 따라서 강제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정당성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국내외적으로 군사화(militarization)와 군산복합체가 발달하는 한편, 일단의 도덕적 가치를 둘러싸고 동의의 분위기 구축을 통해 권력의 합법성과 더불어 사회적 통제를 위한 국민주의(nationalism)가 함양되었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가 안고 있는 이론적 및 현실적 문제성과 모순에 대한 지적은 이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대책의 강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즉 신자유주의 국가에 대한 하비의 설명은 신자유주의 국가가 ‘좋은 경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창출자이며 또한 세계시장에서 자본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중재자로서 역할을 담당하지만, 결국 시장 강화를 위한 권위주의는 개인적 자유의 이상과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신자유주의 국가는 금융시스템의 실패 또는 이의 운영자들의 무책임과 개인주의를 방치한 상태에서 한편으로 경쟁이라는 덕목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 다국적기업과 같은 독과점을 승인하고, 결국 시장 자유와 상품화로 인한 사회적 불화를 심화시키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경제체제와 정치체제 간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라는 점이다. 즉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추동하는 국가는 다양한 전략이나 방안들을 강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체제 자체도 상이할 수 있다(예로, 중심부 선진국가들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국가나 발전주의 국가, 심지어 중국에 잔존한 사회주의 국가).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 체제나 형태의 전환은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변화시키거나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예로, 부시의 뒤를 이은 오바마정부가 신보수주의 국가 형태를 벗어난다고 할지라도, 과연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불식시킬 수 있는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 된다.

 

4.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산

 

1) 신자유주의화의 지리적 불균등 발전

 

신자유주의화의 세계지도를 그리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특정 분야나 영역들에서 단지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개별 국가들의 기존 정치경제체제의 발전 경로를 전제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가변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즉 하비에 의하면, “신자유주의화의 일반적 진행은 지리적 불균등발전의 메커니즘을 <통해> 점차 촉진되었다. 성공적인 국가나 지역들은 다른 모든 국가나 지역들에게 자신의 선도를 따르도록 압박을 가했다. --- 그러나 경쟁적 우위는 단명적임이 너무나 자주 입증되었고, 세계 자본주의에 극단적인 변덕스러움을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화의 강력한 충동은 소수의 주요 진앙지들로부터 방출되고 심지어 조직화되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Harvey, 2005, [114]). 이와 같이, 분명 미국과 영국이 신자유주의화 길을 유도했다고 할지라도, 이 길을 하게 된 모든 국가들이 동일한 수준이나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다.

 

이로 인해 다양한 국가들의 신자유주의화는 우선 다양한 양상과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예로, 영국의 경우, 주거부문과 교통 및 상하수도 등은 일찍 민영화된 반면, 보건의료와 공교육은 민영화에 관한 논의에서 제외되었다. 미국의 경우 레이건은 거의 모든 부문들에서 국가의 철수와 시장메커니즘의 부활을 강조한 반면, 냉전체제에 강하게 사로잡혀 방위산업에 대한 국가 투자를 강조했다(이러한 점에서 하비는 ‘군사적 케인주의’라고 칭했다). 한때 세계경제를 선도했던 서독과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경제는 1980년대까지는 신자유주의적 개혁 없이도 경제성장을 지속시켰다. 이 국가들은 생산체제 및 기술 혁신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한편, 경제성장을 통해 자본가들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도 상승했고, 이로 인해 계급권력의 회복을 전제로 한 이데올로기나 정책들을 강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1990년대 이후 개별적인 경제침체(독일의 통일 및 일본의 경제침체)를 겪거나 또는 1997-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본격적으로 추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1980-90년대 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화가 촉진되고, 계급권력의 전환(또는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주요한 수단들로서, 국제 금융시장의 발달과 해외직접투자의 급증, 교통통신수단의 발달에 따른 시공간적 압축과 자본의 지리적 이동성 증대,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이 신자유주의의 길을 걷도록 요구하는 미국 및 국제기구들(대표적으로 IMF)의 압박, 그리고 새로운 통화주의적 및 신자유주의적 경제이론의 세계적 확산과 이데올로기적 영향(대표적 예로, 워싱턴 컨센서스)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수단들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일부 국가에서는 강력한 외적 압력이 작용했지만, 중국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처럼 내적 요구가 더 강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미국의 강압만으로 신자유주의가 채택되었다고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외적 또는 내적 강제에 의해서 수용된다고 할 수 없으며, 어떤 민주적 수단을 동반하는 ‘공감’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공감은 문화적 사회화와 오랜 실천을 통해 구축되며, 어떤 보편적 가치를 전제로 한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이러한 보편적 가치로 제시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든 이러한 가치의 실현에 호소하면서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키게 되었다.

 

특히 신자유주의화의 지구적 확산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은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국제기구들의 개입이다. 이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상호관련된 두가지 금융위기, 즉 1995년 멕시코를 강타했던 테킬라 위기와 1997년 동아시아 국가들의 위기를 들 수 있다. 멕시코의 경우 이미 1980년대 미국으로부터 심화된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촉진하도록 압박을 받았으며, 특히 1995년 이른바 ‘테킬라 위기’ 과정에서 투기 압력을 받았던 페소화가 평가절하되면서, 단기채권에 대한 보상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대멕시코 수출산업의 침체, 불법이민의 증가, 그리고 신자유주의화와 NAFTA의 정당성 상실 등을 우려하여 475억달러에 달하는 종합구제정책을 제공했다. 이와 유사하게 1997년 국제금융자본의 투기적 공격에 의해 시발된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엄청난 단기부채를 안고 있었던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었고, 한국 정부는 IMF 및 미국으로부터 5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금융서비스를 외국 소유에 개방하고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허용하도록 강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양 국가에서 초국적 자본은 국내 자산을 흡수합병하면서 엄청난 자산이득을 챙겼다.

 

이러한 개별 국가들의 사례들에서 보면, 지구적으로 불균등한 신자유주의화의 전개과정은 헤게모니적 외부 권력(미국이나 IMF)에 의한 이식뿐만 아니라 산업의 다변화, 기술 혁신, 그리고 국가 간 및 지역 간 경쟁, 광역도시의 거버넌스 모형들의 산물로서 추동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국가에 따라 다양한 목적들의 달성, 즉 신자유주의적 사고들의 힘의 결집(영국, 칠레), 금융위기에 대응할 필요(멕시코, 한국),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강화(프랑스와 중국) 등을 목적으로 했지만, 공통적으로 계급 권력의 회복을 추동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양한 국가별 사례들을 보다 깊이 있기 이해하기 위하여, 각 국가들의 맥락적 조건들과 제도적 편제들에 대한 연구 필요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각 국가별로 계급력의 내적 균형의 변화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화의 내적 역동성과 외적 세력의 복합적 상호작용도 흥미로운 연구주제가 될 수 있으며, 그 외 (한국의 상황처럼) 냉전체제의 해체 이후 변화한 개연적인 지정학적 고찰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화의 지리적 불균등 발전에 관한 하비의 설명은 신자유주의화가 국가별로 매우 다양한 계기에서 추동되고 또한 다양한 양상들로 드러나고 있지만, 이러한 지리적으로 불균등한 신자유주의화의 복잡한 역사 속에서 분명한 사실은 신자유주의는 자유와 자율, 선택과 권리를 강조하는 한편, 그 이면에는 사회적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계급권력의 회복 또는 새로운 창출이 이뤄졌다는 점을 이해하도록 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추동되는 현실은 신자유주의 이론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심지어 위기에 국가들에 대한 IMF의 요구가 신자유주의자들 스스로가 비판할 정도로 일관성을 상실한 것이었다. 심지어 알선 사건들에서 IMF의 요구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이어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처방을 했다는 점은 예로 동아시아 위기에 대한 음모설까지 등장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화의 지리적 불균등 발전에 관한 이론적 설명은 단순히 이러한 개연적 상황들에 대한 지적보다는 “신자유주의화의 일반적 진행”을 촉진하는 “지리적 불균등발전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비는 스스로 이러한 주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들이나 지역들 간의 관련적 관계 속에서 신자유주의화의 불균등 발전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예로 그는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화를 촉진시킨 주요한 계기였음을 강조하지만, 왜 이러한 금융위기가 발생했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보다 근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융자본의 지리적 이동성과 불균등한 공격이 이루어지는 배경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달리 말해, 하비(Harvey, 2005, [26]) 자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세계무대에서 신자유주의의 지리적 불균등 발전은 다원적 결정요인들[에 의한] --- 매우 복잡한 과정”이지만,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지구적 규모로 불균등하게 전개되도록 한 힘이나 메커니즘에 대한 추가적 연구가 요청된다.

 

2) 중국식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전개과정과 관련된 주요한 주제( 또는 의문점)들 가운데 하나는 중국의 경제발전 과정이다. 세계 경제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경제발전은 신자유주의화 과정과 관련된 연구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전세계적인 주목을 끄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 직후 1978년 등샤오핑의 경제개혁 프로그램이 추동되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은밀한 ‘자본주의 추종자’인가, 또는 주변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성장 또는 자본주의적 발전을 목격하면서 경제안보와 국가 지위 향상을 위한 필사적 노력인가 라는 의문을 자아내었다. 하비에 의하면, 이러한 중국의 개혁,개방은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해법과 우연히 일치한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 중국에 독특한 신자유주의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중국의 개혁은 권위주의적 중앙집권 통제와 결합된 특정한 유형의 시장경제로 시장되었고, 시장과 경쟁을 통해 혁신과 성장을 점화하고자 했으며 또한 기술이전과 외화확보 목적으로 해외무역과 외국투자 개방을 촉진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중국의 개혁은 처음부터 신자유주의적 유의성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없었다면 중국의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러한 중국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외적 개방과 더불어 내적 개혁운동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내적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중국식 시장경제의 도입 특히 국유기업 및 향진기업들의 민영화 및 해외직접투자의 유치과정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강제된 즉각적 민영화의 ‘충격요법’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경제적 문제점들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국식 사회주의 또는 중국식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 물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중국의 당이 핵심적인 자본주의 계급의 창출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며, 실제 취해진 신자유주이화 경로도 중국 내에 어떠한 공고한 자본주의적 계급 블록의 형성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을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채택된 방식이 바로 해외직접투자의 유입으로, 이는 “자본가계급 소유가 역외에 머물도록 했으며, --- 국가통제를 다소 용이하게 했다”(ibid, {153]). 우선 각 지역에 산재한 국유기업과 향진기업들이 기업주의, 유연적 노동 관행, 그리고 개방시장 경쟁의 중심이 되었고, 해외자본을 통합하면서, 경제 전체는 신자유주의적 구조로 전환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해외직접투자는 특히 경제개방지역들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고, 초대형 개발사업들을 통해 급속한 도시화를 추동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과 더불어 중국은 외국 무역을 급속히 증대시켰다. 즉 중국은 매우 낮은 수준의 내수시장보다는 수출주도적 발전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특히 홍콩과의 관계를 적극 활용했다. 이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은 이윤율이 높은 중국시장을 공략했고, 중국은 이를 풍부한 임노동과 결합시켜 생산성을 증대시켰으며, 이에 따라 원료와 에너지의 의존도도 급속히 증대했다. 경제가 점차 성장하면서, 중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은 저렴한 노동력과 더불어 외국 자본에 점점 더 매력적이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성장의 결과 중국은 이제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지역 헤게몬으로서 동아시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중심점이 되었고, 나아가 성공적인 자본축적의 산물인 잉여를 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미국의 부채에 자금 조달 등)을 가지게 되었다.

 

하비는 이러한 중국의 경제발전 과정이 어떤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적 성향에서 이탈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즉 중국에서는 거대한 유휴노동이 존재하며, 건조환경에 대한 고정자본의 과잉축적에 따른 잠재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고, 이러한 문제들은 중국 정부가 케인즈주의적 국가로서 행동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중국 국가는 지속적으로 자본과 환율을 통제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점점더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상응하여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불평등의 심화는 계급권력의 재구성을 의미하는 (그러나 불확실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즉 부의 축적으로 새로운 부자들과 토착자본이 형성되고 있으며, 특히 부동산 개발을 통한 부의 집중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편, 도시 (여성)이주자들의 노동력에 대한 과잉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고, 광범위한 부불노동에 대한 노동 저항이 표출되고 있다.

 

하비는 중국에서 일어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고려하여, 중국에서도 독특하지만 (즉 선진국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한국의 경제성장과정과도 다른)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통해, 중국이 계급관계, 사적 소유, 그리고 여타 자본주의 경제의 제도적 편제들의 병행적 전환 없이 시장만으로 경제를 전환시킬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Harvey, 2005, [152]). 즉 이는 중국에서도 사적 소유권의 확대, 민영화와 사유화, 시장경제와 상품화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에서 추정되는 계급관계의 창출이 전개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하비(Harvey, 2005, [185])는 “중국은 ‘중국식’ 특성을 갖지만, 틀림없이 신자유주의화와 계급권력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결론”지운다.

 

그러나 하비 자신의 서술에서도 중국의 경제발전과정은 다른 국가들과는 구분된다는 점이 거듭거듭 강조된다. 예로 하비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경제성장이 광범위한 저임금노동력에 있으며,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화가 심화되면서 노동의 저항이 점차 심화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러나 하비의 주장에 의하면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노동에 의한 확대재생산보다는 ‘탈취에 의한 축적’에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중국에서 노동의 확대재생산과 더불어 민영화와 환경자원의 광범위한 탈취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는 하비 자신의 범주적 구분과는 조응하지 않는다. 또한 하비는 중국이 시장 개방과 도시화 과정에 도출된 엄청난 잉여노동을 흡수하기 위하여 대규모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식 케인즈주의’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중국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는 그가 제시한 4가지 요소들 가운데, 금융화와 위기의 관리 및 조작 과정을 통한 탈취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화를 한마디로 계급권력의 프로젝트라고 규정한 하비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중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일련의 변화과정이 과연 계급권력의 회복이나 창출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중국에서도 물론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 결과로 자본계급이 창출될 것이지만, 이는 기획된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에서 중국은 자본주의화 과정을 걷고 있지만, 이를 과연 ‘신자유주의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경제적 변화과정을 분석한 한 연구(Nonini, 2008)는 중국의 자유화 과정은 마오적 사회주의, 민족주의, 발전주의의 관행들과 최근의 시장사회주의의 논리를 결합한 혼종적 거버넌스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유화 과정에서 기초적 자본계급(cadre-capitalist class)이 등장하는 반면, 농부, 도시노동자, 유동적 도시이민자(도시빈민)들은 토지, 고용, 권리 등을 탈취 당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현대 중국이 강한 의미에서든 약한 의미에서든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해가지 않으며, 또한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할 수 없고, 대신 과두적 조합주의 국가와 당의 등장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의 정당성은 박탈된 계급들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근대화와 노력을 통해 통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이를 뒷받침한 국가체제가 신자유주의화 과정인가의 여부는 물론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좌우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중국의 경제정치적 변화과정이 서구의 선진국이나 동아시아 국가들의 신자유주의화 과정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세계적 신자유주의화 과정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가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5. 신자유주의의 시련과 종말

 

1) 시련을 겪고 있는 신자유주의

 

하비의 입장에 따르면,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문제성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2001년 이후 세계적 불경기를 극복할 힘을 가진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지만, 이들은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규칙이 지배한다고 가정되는 세계에서 케인스적 국가처럼 행동”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주의와 소비주의의 거대한 적자재정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은 대규모 인프라 및 고정자본의 투자를 위해 부채 재정을 꾸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성으로 인해 하비는 당시 연방준비은행장 볼커의 입장에 동의하여 “앞으로 5년 내에 심각한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는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자본가계급의 상층부에 누적된 특혜와 권력의 상당부분을 되돌려야 함을 의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Harvey, 2005, [187]). 이러한 주장이 제기된 후 채 5년이 되질 않아 2007년 후반 미국은 이른바 ‘모기지 사태’로 심각한 금융위기에 봉착하게 되었고, 이를 세계적으로 파급시키고 있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과연 “자본가계급의 상층부에 누적된 특혜와 권력의 상당부분을 되돌려” 줄 것인지의 여부는 아래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우선 여기서 지적될 수 있는 점은 신자유주의화의 결과와 이로 인한 신자유주의화가 봉착한 시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화는 세계경제의 성장 또는 자본축적의 고양이라는 점에서 보면 아주 보잘 것 없다. 세계 전체의 경제성장률은 1960년대 3.5%에서 1970년대 2.4%, 1980년대 1.4%, 1990년대 1.1% 그리고 2000년대 이후 1% 미만이었고, 이는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인 경제성장에는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를 통한 ‘신자유주의화’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이 어떻게 그렇게 성공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는가 ? 이에 대한 두가지 이유로 하비는 지리적 불균등발전의 변동으로 어떤 영토의 손실로 다른 영토는 (최소한 일시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없었다는 점, 그리고 실제 과정에서 신자유주의화는 상위계급들의 입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한다(Harvey, 2005, [191]).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심화된 국가 간 계층 간 불균등의 심화는 개별 국가들의 경쟁력 제고의 실패 또는 하위계급의 모험 및 혁신 정신 부족의 탓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화 과정의 결과로 초래된 문제들은 물론 불균등의 심화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을 포함한다. 우선 지적될 수 있는 점은 모든 것의 상품화이다. 시장 메커니즘의 작동은 기본적으로 사적 소유권에 기초한 상품화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화는 “성, 문화, 역사, 유산의 상품화, 구경거리나 요양 치유를 위한 자연의 상품화, 독창성,심미성, 특이성으로부터 독점지대의 추출(예로 작품이나 예술), 이들 모두는 실제 상품으로 결코 생산되지 아니한 물건들에 가격을 설정”하고 상품처럼 거래되고 있다. 이러한 가공적 상품화, 나아가 의제적 자본화 과정은 자본주의가 기능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에 엄청난 손실을 입히게 된다. 특히 신자유주의화는 노동의 가공적 상품화를 위해 ‘일회적으로 처분가능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세계무대의 원형으로 등장시켰지만, 결국 이러한 과정은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하여, 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저항과 상이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재구축하고자 하는 운동이 점차 증가될 것이다.

 

또한 신자유주의화는 환경이용에 있어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논리에 따라 궁극적으로 심각한 재앙적 결과(예로 기후온난화, 생물종의 소멸)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신자유주의 국가들 가운데 일부는 비록 이러한 환경적 재앙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이는 다른 부문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것에 불과하거나 또는 과학적 증거에 의문을 표하는 정도였다. 이러한 환경적 재앙은 선진국들뿐만 아니라 같은 급속한 공업화와 내구성 소비재(예로 자동차)의 보급 확대가 촉진되고 있는 중국과 같은 국가들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 또한 경제위기에 따른 긴축재정과 실업의 발생은 일부 개발도상국들에서 소농으로 전락한 사람들에 의한 토지 개간의 확대를 위한 삼림 벌목을 촉진시켰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화는 그 자체 내에 광범위한 저항문화를 촉발하고 있다. 특히 개인적 권리와 자유에 관한 이슈가 정치적 경제적 계급권력에 반대하여 제기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만인의 자유와 복지를 개선한다는 수사를 취하지만, 실제 이에 반하는 행동들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비에 의하면, 이러한 ‘저항문화’가 많은 영향력을 얻고 있는 이유는 탈취에 의한 축적에 대한 반대와 관련된다. 즉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특징지우는 ‘탈취에 의한 축적’은 “여기서는 민영화, 저기서는 환경 퇴락, 또 다른 곳에서는 부채에 의한 금융위기”등 파편적으로 특정적으로 유발하기 때문에, 보편적 원칙에 대한 호소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들 모두에 반대하기 어렵다. 특히 탈취는 권리의 상실을 동반하기 때문에, 저항 정치는 인권, 존엄성, 지속가능성, 환경권 등과 같은 보편적 수사의 동원을 요한다. 물론 권리의 보편주의에 대한 이러한 호소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와 더불어 신자유주의적 사고 자체를 고취시킨다는 점에서 ‘양날을 가진 검’에 비유된다(Harvey, 2005, [215]). 따라서 결국 ‘동등한 권리들 간에는 힘이 결정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신자유주의화의 결과에 대한 하비의 이러한 지적들은 대체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가 지적한 사항들은 신자유주의화 과정이 아니라 일반적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결과물로서 흔히 인정되고 있는 점들이다. 예로 하비가 인용한 바와 같이 가공적(또는 허구적) 상품화 과정은 이미 1956년 출간된 <거대한 전환>에서 폴라니가 19세기 자기조절적 시장의 확산과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에 관한 분석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태운동이나 환경권에 대한 주장, 그리고 인권이나 여타 권리에 대한 보편적 주장 역시 신자유주의화 과정에 관한 분석이나 탈취에 의한 축적의 개념과 관련지우지 않더라도 강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물론 이러한 점들이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심화된 문제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특히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어떻게 왜곡되거나 심지어 자본축적의 지속에 기여하게 되는가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필요하다.

 

예로,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자본축적의 결과물로 비판 받아온 생태문제들이 이제는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신자유주의 국가가 이른바 녹색자본주의 또는 녹색성장이라는 용어를 앞세워 대규모 환경 개발을 촉진하거나 대체에너지의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자연이 자본축적과정에 포섭되는 과정, 즉 자연의 자본화 또는 ‘자연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Castree, 2008; 최병두, 2009 참조).

 

2) 자유의 전망과 대안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전망을 할 수 있는가 ? 하비에 의하면, 우선 “우리 시대에 여러 가지 상이한 자유의 개념들 중에서 어떤 것이 적절한지를 따져보는 심각한 논쟁”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유에 관한 마르크스의 기준뿐만 아니라 --- 아담 스미스가 제시한 기준에 의하면 신자유주의는 분명 어처구니없는 실패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Harvey, 2005, [222-223]). 특히 신자유주의화는 시장체제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빈곤, 기아, 질병을 가져다 줄 뿐이고, 이러한 절망적 상황은 개인적 무능과 무기력한 태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자유주의화가 부여한 시장 윤리와 관행을 거부하는 다양한 반대문화가 등장할 수 있다. 생태적 프로젝트를 추구하는 환경운동, 자본주의적 시장 논리에 편입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 운동,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지역화폐’를 사용하기 위한 운동, 뿐만 아니라 빈시장적 반신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종교운동 들이 등장한다. “신자유주의가 지배계급 권력의 회복을 위한 성공적 프로젝트라는 가면을 쓴 실패한 유토피아 수사라는 점이 인식되게 될수록, 호혜적인 정치적 요구를 외치며, 경제적 정의, 공정한 교역, 보다 큰 경제적 안보를 추구하는 대중 운동들의 등장을 위한 기반이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Harvey, 2005, [245]).

 

물론 하비에 의하면, 이러한 사회운동들이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화의 경제적, 정치적 내적 모순들은 금융위기를 통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억제도기 어렵다. 지금까지 모순들은 국지적으로 손상을 입히지만 세계적으로는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었다”(Harvey, 2005, [227]). 그러나 실제 금융위기가 도래할 강력한 조짐에 대해, 엘리트 계급 권력의 회복이나 창조를 위한 수사만으로 이를 막을 수 없다. 사실 미국에서는 금융위기가 도래할 확실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즉 하비에 의하면, 금융위기의 전형적 징조로서, 통제불능의 국내 재정적자, 경상수지 위기, 통화의 급속한 평가절하, 자산의 불안정한 평가, 인플레이션의 증가, 임금하락과 실업증대, 자본 유출 등이 지적될 수 있으며, (2005년 경) 하비의 평가에 의하면 미국은 이미 이러한 지표들에서 대부분 우려할 수준이었다 (그리고 실제 미국에서 이러한 상황은 그 이후 더욱 악화되어 실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미국은 아르헨티나 또는 다른 개발도상국들처럼 국가 부도사태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하비는 이에 관하여 두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째는 초인플레이션의 단기적 폭발로 미결제의 국제부채와 소비자부채를 탕감하는 방법이다. 엄청난 달러화를 찍어내어 평가절하된 달러로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들의 부채를 갚는 한편, 초인플레이션을 유발하여 미국 국내 저축, 연금, 그 외 많은 것들을 파괴적으로 감가시키는 것이다. 이 방식은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며, 미국 달러는 세계적 준비통화로서의 신뢰성과 지배적 금융권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1990년대 일본처럼 장기 경기침체(디플레이션)을 수용하는 것이다. 미국의 장기 디플레이션은 세계 경제(특히 중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고, 국내에서도 수용되기 어려울 것이다. 장기 디플레이션은 우선적으로 국가의 공적 프로그램(사회보장제와 보건의료), 연금수급권, 자산가치(특히 부동산과 저축)의 감소를 초래할 것이며, 이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운동은 기존의 반대운동에 참여하거나 또는 기존 조건들에 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하비에 의하면, 신자유주의화는 일련의 반대운동들을 만들어 놓았으며, 이 운동들은 기존의 노동자기반 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노동운동도 일부 국가들(특히 1980년대 한국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최근의 인도네시아나 중국 등)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미국 등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화, 특히 탈취에 의한 축적에 저항하는 투쟁은 기존의 노동운동과는 다른 노선을 형성하고 있다. 즉 하비에 의하면, “임노동의 착취와 사회적 임금을 규정하는 조건들이 핵심 이슈가 되는 ‘확대재생산’을 --- 둘러싼 운동”과 다른 한편으로 “탈취에 의한 축적에 저항하는 운동”간에는 구분된다. 후자의 경우는 고전적 형태의 시원적 축적(예로 토지로부터 소농인구의 배제)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금융자본의 현대적 형태가 만들어낸 ‘음모적’ 디플레이션에 대한 저항 등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의 중요성은 비록 무엇이 좋은 자유이고 무엇이 나쁜 자유인가의 선호의 문제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또한 미국에서 금융위기의 가능성과 그에 대한 현실적 대책들에 관한 하비의 추론은 실제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미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충격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탈취에 의한 축적’을 둘러싼 사회적 저항과 운동은 여전히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우선 하비는 ‘탈취에 의한 축적’에 의해 유발된 상이한 운동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특히 그에 의하면, “이 과제는 매우 변덕스럽고 불균등한 지리적 발전의 특징들을 차자내고 자본축적 과정의 역동성을 추적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실제 하비는 이러한 상이한 운동들을 연계시키기 위한 자본축적과정과 이의 불균등 발전을 공통된 배경으로 설정하기 보다는, 이러한 운동들의 특정성과 파편성을 연계시켜주는 것으로 간주되는 보편적 자유와 권리의 추구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물론 보편적 권리와 자유의 담론적 합의와 이를 추구하는 운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를 위한 문화적 저항(또는 문화전쟁)들은 정치의 핵심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 인정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비(Harvey, 2005, 246)가 지적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자들이 스스로 도덕적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개인주의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적 해체에 대한 두려움을 입증할 뿐만 아니라 실제 소외와 아노미, 배제와 주변화, 환경 퇴락 등에 대한 반대가 이미 신자유주의적 도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막 벗어난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금융체제가 과잉 팽창한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도 사회운동은 계급운동의 위상 또는 성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비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자본가들에 의한 계급권력의 복원 프로젝트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저항운동은 당연히 계급운동(좁은 의미의 노동운동이 아니라)의 성격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은 현재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발발된 금융위기에 대한 하비의 견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3) 현재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종말인가 ?

 

하비가 2005년 볼커의 주장에 동의하여 5년 내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제시한 예측은 실제 현실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진원지인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다. 이 위기에 관해 하비는 “이 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답으로 “신자유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좌우된다”고 제시한다(Harvey, 2009). 신자유주의에 관한 그의 정의는 앞서 주장한 바와 동일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금융위기의 발생과정에 대한 그의 설명은 보다 흥미롭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즉 그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 30여년간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노동력은 힘을 상실했고 이로 인해 저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로 인해 자본은 시장에서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두가지 측면을 가진다. 첫째, 노동자의 소득과 지출 간에 간극이 생겼고, 이는 신용카드산업의 성장과 가계 부채의 증대로 메워졌다. 둘째, 부자는 더욱 부유해졌으며, 이를 생산활동에 투자하기 보다는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자산에 투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소득은 증가하지 않음에도 자산가치가 급증했지만, 결국 자산가치의 붕괴가 불가피하게 초래되었다.

 

하비에 의하면 현재 자본가들은 엄청난 잉여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의 일부를 재자본화하여 확대를 위해 재투자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동안 이러한 잉여자본을 흡수할 수 있었던 주요한 장은 도시화로,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도시들은 자본주의적 잉여자본을 흡수하기 위하여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촉진”했다는 점이 지적된다(Harvey, 2009). 그러나 이러한 잉여자본의 흡수에도 불구하고, 잉여자본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3% 정도의 자본축적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실제 세계적 차원에서 이러한 경제성장은 불가능하거나 또 다른 재앙들(예로 환경위기, 노동력의 위기)를 초래한다. 금융화의 촉진은 이러한 잉여자본의 흡수를 위한 필수적 방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주기적 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즉 노동자들의 저임금에 따른 구매력 부족과 이로 인한 신용의 붕괴로 금융위기가 촉발되었으며, 이로 인한 자산 소실이 현재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미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7천억달러를 내놓기를 요구하면서, 마치 “자본가계급이 위기에 처하면, 당신들도 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자본가계급이 과거보다도 훨씬 더 강화될 때만 이 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국가 권력은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금융기관들을 보호하고자 할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새로운 모형이 구축될 것이다. 즉 “금융위기는 불합리한 것을 합리화시키는 방법이다 - 예로 1997-8년 아시아에서의 거대한 충돌은 자본주의 발전의 새로운 모형을 초래했다. 혼란은 재편, 즉 새로운 형태의 계급 권력을 유도한다”(Harvey, 2009). 사실 노동계급의 신용 붕괴는 시장 위기의 해법으로 금융화가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계급을 위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설계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국가가 필수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금융위기의 극복을 위한 오바마의 정책은 뉴딜 유형의 해법으로 회귀하여 막대한 공적 사업이나 이른바 녹색테크놀로지에의 투자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하비는 이것을 수행할 수 있는 오바마의 능력에 대해 회의적이다.

 

대신 하비는 “우리가 이번 위기를 다른 방법으로 빠져나올 것인가는 계급력(class force)의 균형에 좌우된다. 이는 전체 국민이 ‘충분한 것은 충분한 것’이고 이 시스템을 바꾸자 라고 말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하비가 제안하는 대안은 우선 “도시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즉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라는 개념으로 하비(Harvey, 2008)는 은행의 가치보다도 인간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자본주의적 잉여의 흡수 문제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하비의 견해로는 사회운동은 잉여생산물에 대한 더 적절한 통제를 위하여 노동운동과 도시사회운동이 연대해야 하며, 이를 통해 잉여의 생산, 이용 및 분배에 대한 훨씬 더 큰 사회적 정치적 통제를 쟁취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주체와 관련하여, 하비가 지적한 점은 첫째 노동운동은 항상 중요하지만, 국가-금융 연계 구조가 근본적 이슈인 상황에서 노동자가 투쟁의 선봉이라는 관례적 입장은 적절하지 않다. 둘째 하비는 국가권력의 장악이 정치적 전환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좌파적 사고)는 큰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NGO들과 시민사회조직이 세계를 바꿀 것이라는 믿음(아나키스트적 사고)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이다. 셋째, 대신 하비는 미국의 경우 금융자본의 소득에 의존해온 관리계급들이나 금융서비스의 중단과 심지어 모기지의 상실을 겪고 있는 중간층들 그리고 보편적 자유와 권리를 위한 문화생산자들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회운동의 주요 이슈로서 하비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면서, 자문, 참여, 예산절차에 대한 개입 등의 권리를 주장한다. 구체적 사례로, ‘지방정부로 하여금 반철거법을 통과시키도록 하는 것’을 제시하거나, 노동과 지역사회 운동이 연대하여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시키며, 기술개발도 이러한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추동해야 한다고 제시한다(예로, 태양열 생산체계의 개발을 위한 지역지원체계). 나아가 하비는 미국에서 구제금융으로 요구되는 7천억달러 가운데 5천억달러로 국가재건은행을 창설하여, 이 은행이 모기지 상실로 충격을 받은 이웃들을 구제할 수 있는 지역성을 가지고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현재 위기 상황에 대한 하비의 견해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매우 비관적인 것도 아니다. 한편으로 하비의 견해에서, 금융위기의 발생 배경과 이에 대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본과 국가의 전략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경험적 이론적으로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며,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운동의 주요 과제로서 ‘도시에 대한 권리’ 또는 ‘도시화의 재편’을 제안하는 것은 매우 유의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주체와 관련하여 지나치게 포괄적인 범위를 설정하는 것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고 있지만, 하비가 열거한 주체들은 비록 신자유주의화 과정의 직접적 피해자라고 할지라도 대체로 중간층에 속하기 때문이다.

 

6. 맺음말

 

신자유주의에 대한 하비의 견해는 지난 40년 가까이 진행되어 온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발전과정 그리고 최근 직면해 있는 위기 상황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매우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물론 그가 거듭거듭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시간적으로 가변적인 역동성을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지리적 불균등 발전의 특성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적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화과정에 대한 경험적 분석은 그 개연성과 특이성을 전제로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시공간적 조건들과 이에 따른 전개과정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그의 대안 제시는 기본적으로 미국적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음에 대해 유의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에 대한 대응하기 위한 과제가 설정될 필요가 있다.

 

또한 하비의 견해는 여전히 상당한 이론적 의문점들을 남기고 있고 있다. 특히 그의 논의에서 이론적으로 중요한 쟁점들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들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탈취에 의한 축적’의 개념적 정치성 또는 이론적 정합성의 문제다. 즉 이 개념에 포함된 다양한 양상들이 어떻게 세분될 수 있으며, 어떤 공통점을 가지는가를 개념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노동의 확대재생산’에 의한 축적과 이론적으로 정합될 수 있는가의 의문이 해소되어야 한다. 둘째, 신자유주의화의 지리적 불균등발전은 여전히 보다 정교하게 설명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즉 하비에 의하면서 신자유주의화의 지리적 불균등발전이 개별 국가들의 내생적(그리고 개연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설명하지만, 이는 그가 주장하는 관련적 (또는 변증법적) 공간관계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셋째, 사회(변혁)운동의 주체와 전략에 관한 하비의 주장은 여전히 공감되기 어려운 점들을 남기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만약 신자유주의화가 계급권력의 복원을 위한 프로젝트라면 이에 대한 반대운동 역시 계급(좁은 의미의 노동계급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 의미의 계급)운동이어야 할 것이지만, 탈취에 의한 축적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인해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저항운동의 성격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적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하비의 경험적 통찰력과 이론적 주장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적 변화 과정과 이를 규정하는 이데올로기적 및 정치경제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매유 유의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40여 년 동안 마르크스의 <자본>을 강의하고 있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의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자유주의의 현재 상황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성급한 견해와 이렇게 사고하도록 한 마르크스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렇다. 이제 위기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이제 어떻게 해서든 해결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문제이다. 지금은 승리의 순간이 아니며, 문제화의 순간이다. 무엇보다도 마르크스가 이러한 문제들을 설정한 방식에 있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금융 복합체나 도시화를 그렇게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다른 것들을 이해하는 데는 뛰어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이론적 자세와 정치적 가능성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Harve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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