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규의 세상읽기> 2009/05/25 14:30
http://blog.ohmynews.com/walker/
노무현, 그 극한의 선택…
- 백병규 -
노무현, 그의 죽음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14줄 단문의 짧은 유서이지만, 거기에는 그가 겪었을 고뇌와 고통, 그리고 남은 자들에 대한 그의 응축된 심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찌 해서 그가 그런 극한의 선택을 했는지가 오롯이 전해진다.
그래서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 또 퇴임한 대통령으로서 그의 공과에 대해서 더 덧붙일 말은 없다. 그것은 앞으로도 시간을 두고, 역사 속에서 끝없이 반추될 것이기에 더 그렇다.
다만 이 순간에는 죽음에 이른 그의 극한의 선택에만 주목하고자 한다. 그의 말처럼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지 않다. ‘극한의 선택’은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마지막 선택이자, 간절한 호소인 경우가 많다. 노무현 역시 예외는 아닌 듯싶다. 그가 추구해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그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그는 자신의 투신으로 그 불씨나마 살리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런 짐작 자체가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극한의 선택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든, 그의 투신에서 노무현다운 ‘진정성’ 그 하나 만은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는 투신으로 그 자신이 추구해왔던 것이 그의 ‘생명’ 같은 것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 어떤 정치인이, 그 어떤 지식인이, 그 어떤 언론이 이런 ‘극한의 선택’까지를 밀어붙이면서 진정으로 자신이 추구해오던 것을 지키려 한 적이 있었을까? 아니, 무너진 모든 것 앞에서 그런 투신으로 모든 것을 안고 가려 했던 적이 있었던가? 노무현의 사람들 가운데 그 누가 또한 그런 적이 있었던가.
많은 이들이 충격 속에서 망연자실해하고, 그에게 적대적 이었던 이들 조차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이런 ‘진정성’ 때문일지 모른다.
너무 감상적 접근일까. 노무현은 감성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의 언사가 무척이나 거칠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기질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가 최종적으로 극한적인 선택을 한 것도.
그런 점에서도 기만과 위선은 그의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여론재판으로 그를 정치적․도덕적으로 거의 죽여 놓은 검찰이 표하는 애도가, 그의 대통령 재임 때는 물론 그 후에도 사사건건 노무현 죽이기로 일관했던 일부 언론들이 이제 와 그의 정치적 역정을 기리며 국민적 화해와 화합을 거론하는 것이 뜬금없어 보이는 이유다.
노무현을 죽여 지난 10년을 아예 지워버리고자 작심한 듯한 정치적 기획이 너무 뻔히 보이는 데도 이제와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시민들의 분향마저 경찰 차벽으로 틀어막으면서 국민장을 치른다고 하는 이 정권의 이중적 행태로는 노무현의 ‘극한의 선택’이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충격을 수습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그는 참으로 굴곡 많은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성공 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그의 마지막 길 역시 많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또 하나의 좌절로 기록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투신으로 지키고자 했던 그의 진정성은, 그 책무감은 그 모든 실패와 좌절, 과오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정치인으로, 대통령으로 그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14줄 단문의 짧은 유서이지만, 거기에는 그가 겪었을 고뇌와 고통, 그리고 남은 자들에 대한 그의 응축된 심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찌 해서 그가 그런 극한의 선택을 했는지가 오롯이 전해진다.
그래서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 또 퇴임한 대통령으로서 그의 공과에 대해서 더 덧붙일 말은 없다. 그것은 앞으로도 시간을 두고, 역사 속에서 끝없이 반추될 것이기에 더 그렇다.
다만 이 순간에는 죽음에 이른 그의 극한의 선택에만 주목하고자 한다. 그의 말처럼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지 않다. ‘극한의 선택’은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마지막 선택이자, 간절한 호소인 경우가 많다. 노무현 역시 예외는 아닌 듯싶다. 그가 추구해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그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그는 자신의 투신으로 그 불씨나마 살리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런 짐작 자체가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극한의 선택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든, 그의 투신에서 노무현다운 ‘진정성’ 그 하나 만은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는 투신으로 그 자신이 추구해왔던 것이 그의 ‘생명’ 같은 것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 어떤 정치인이, 그 어떤 지식인이, 그 어떤 언론이 이런 ‘극한의 선택’까지를 밀어붙이면서 진정으로 자신이 추구해오던 것을 지키려 한 적이 있었을까? 아니, 무너진 모든 것 앞에서 그런 투신으로 모든 것을 안고 가려 했던 적이 있었던가? 노무현의 사람들 가운데 그 누가 또한 그런 적이 있었던가.
많은 이들이 충격 속에서 망연자실해하고, 그에게 적대적 이었던 이들 조차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이런 ‘진정성’ 때문일지 모른다.
너무 감상적 접근일까. 노무현은 감성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의 언사가 무척이나 거칠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기질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가 최종적으로 극한적인 선택을 한 것도.
그런 점에서도 기만과 위선은 그의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여론재판으로 그를 정치적․도덕적으로 거의 죽여 놓은 검찰이 표하는 애도가, 그의 대통령 재임 때는 물론 그 후에도 사사건건 노무현 죽이기로 일관했던 일부 언론들이 이제 와 그의 정치적 역정을 기리며 국민적 화해와 화합을 거론하는 것이 뜬금없어 보이는 이유다.
노무현을 죽여 지난 10년을 아예 지워버리고자 작심한 듯한 정치적 기획이 너무 뻔히 보이는 데도 이제와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시민들의 분향마저 경찰 차벽으로 틀어막으면서 국민장을 치른다고 하는 이 정권의 이중적 행태로는 노무현의 ‘극한의 선택’이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충격을 수습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그는 참으로 굴곡 많은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성공 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그의 마지막 길 역시 많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또 하나의 좌절로 기록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투신으로 지키고자 했던 그의 진정성은, 그 책무감은 그 모든 실패와 좌절, 과오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정치인으로, 대통령으로 그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오래된 짐’을 벗고 이제는 부디 평안히 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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