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시선> 2009/05/2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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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창 선 -
이제야 애도의 글을 올립니다. 애도의 마음이 남달리 적어서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말로 사랑했던 분들이 먼저 슬픔의 마음을 적고, 그 다음에 저같이 거리를 두어왔던 사람들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저는 세상이, 그리고 사람들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노 전 대통령을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의 입에서는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말들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도, 언론들도 그러합니다.
노 전 대통령의 실추된 도덕성을 비판하다가 하루 아침에 태도를 바꾸어 너도나도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비판’이 대세였던 것이 불과 며칠 사이에 ‘노무현 찬양’이 대세인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사진=오마이뉴스
저 또한 그 ‘간사한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지 모릅니다. 저 역시 평소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고 쓴소리를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노 전 대통령의 임기 중반 무렵부터는 지지를 접고 비판을 하는데 저의 관심이 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지지했던 분들로부터는 야속하다는 원망과 비판을 사기도 했습니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그래서 애도의 글 하나 제 블로그에 올리는데도 망설이고 또 망설였습니다. 이제 가시고 나니까 말을 바꾸는 그런 모습으로 저 역시 비쳐지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애도의 글을 올리기에 앞서 며칠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노무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 그에 대한 비판은 어디까지 정당했던 것인가, 혹 너무 모질지는 않았던가.....
며칠동안 TV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노 전 대통령의 과거 모습들, 전두환을 향해 사자처럼 포효하던, 지역주의에 도전하며 몸을 던지던, 특권과 반칙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는 왜 저런 사람에게 그토록 날선 비판의 소리를 하게 되었을까,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던진 앞의 질문들에 대해 아직까지 답을 찾지도, 결론을 내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너무도 쉽게 여겼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사실은 대단히 어려운 일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에 관해 많은 글을 쓰고 많은 말을 해왔던 저는, 그의 죽음 앞에서 커다란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그를 향해 꺼냈던 쓴소리들이 잘못되었다며 거두어들일 이유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생전에는 그렇게 하다가 이제 가시고 나니까 말을 바꾸는 모습이야말로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시간을 갖고 역사에 맡겨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진정성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십배 더 고통스러워하며 책임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자기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더 생각했습니다. 결국 죽음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확인시켰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자살이라는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정도의 진정성이라면 다른 문제들을 넘어설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은 우리 곁을 아주 떠나게 됩니다. 생전에 우리들이 던졌던 쓴소리들이 지나쳤거나 혹 부당했다면 용서하십시오. 노 전 대통령이 정말로 싫고 미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가신 이후에야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었지만, 결국은 노 전 대통령은 애증의 대상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애당초 그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면 그렇게 화가 날 이유가 있었을까. 노 전 대통령이 가시고난 뒤 내내 무거운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그에 대한 마음이 무엇이었던가를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아니 당신을 지지했다가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했던 모진 소리들을 이제는 다 잊으십시오. 당신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고 반대했던 사람들의 비판보다, 당신을 지지했다가 등돌린 사람들의 말이 더 가슴아팠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아픔을 지고가지 마십시오. 당신을 향한 그 주문과 요구들이 이제는 살아있는 우리들이 풀어가야 할 몫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짊어졌던 무거운 짐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넘기고 편히 가십시오. 그동안 너무 힘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깊이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을 용서하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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