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가운데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고 알려진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경찰들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 유성호 |
|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자살인가, 의문사인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둘러싼 의혹들이 일파만파 번지며 온 나라가 혼란에 휩쓸리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사건 초기부터 '노무현 서거 미스터리'를 집중 제기했는데,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한 경호원 이아무개씨가 '오락가락' 진술을 하고 경찰 초동수사의 허점이 밝혀지면서 기왕의 의혹들이 다시금 힘을 얻는 형국이 된 셈이다.
누리꾼들이 제기한 의혹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의혹 ①] 유서는 정말 노 전 대통령이 작성했을까?
노 전 대통령 측근들과 경찰의 말을 종합하면, 고인은 사망 당일 오전 5시 21분에 서재 겸 거실에 있는 컴퓨터로 유서 작성을 시작해서 5시 26분 1차 저장을 했다가 5시 44분에 최종 작성을 하고 5시 50분 사저를 나섰다.
23분 만에 14줄의 유서를 완성했다는 얘기인데,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작성했음을 입증하는 육필 또는 서명이 없는 유서를 남긴 점이 진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고인이 자살에 이르는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면 작성자가 명확하지 않은 유서를 남겨서 공연한 시비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덧붙여 단문 형태의 짧은 유서도 대중들이 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법과 차이가 많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누리꾼은 "문서작성 시간은 임의로 조작할 수 있고, 누군가 제3의 컴퓨터에서 작성한 문서를 고인의 컴퓨터에 붙여 넣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박아무개 비서관이었고, 유족과 측근들이 유서 조작을 의심할 만한 정황을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주장은 억측으로 끝날 공산이 높다.
[의혹 ②] '장기 기증' 약속한 사람이 왜 투신 택했을까?
|
▲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잠시 안치된 양산부산대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현관으로, 참여정부 참모진들은 비어 있는 분향소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 윤성효 |
| |
백승완 양산 부산대병원장의 23일 브리핑에 따르면, 시신에서는 두개골 골절과 기뇌증(두부 외상으로 두개골 안에 공기가 유입된 상태), 뇌좌상(외부 충격으로 뇌가 손상되면서 뇌 조직이 뭉그러진 상태) 등과 함께 늑골과 척추·우측 발목·골반 등에서 다발성 골절이 확인됐다. 고인의 상의는 낙하지점에서 11m 떨어진 곳에서, 등산화는 벗겨진 상태로 시신 주변에서 발견됐다.
일부 누리꾼들이 제기했던 '현장 혈흔의 부재'는 "상의에 혈흔이 많이 묻어 있었다"는 경남경찰청 수사과장의 설명으로 어느 정도 해명이 됐다. 그러나 보통 신발보다 신고 벗기가 불편한 등산화가 벗겨진 채 발견된 것에 대해서는 보다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고인은 대통령 후보시절이던 2002년 5월 부인과 함께 국립의료원에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한 일이 있는데, 고인이 자살 방법으로 자신의 신체가 많이 훼손될 '투신'을 택한 것도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의혹 ③] 경호원의 초기 대처는 적절했나?
전직 대통령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경호원은 경호팀장에게 우선 보고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호원들이 항시 귀에 리시버를 꽂은 채 상황을 쉴 새 없이 보고하는 이유도 이들이 순간의 오판으로 VIP 경호에 허점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는 방편이다.
전임 대통령과 산행을 함께한 경호원은 8년 경력의 베테랑. 그는 고인이 벼랑에서 떨어진 후 그의 얼굴을 흔들고 목 부위 경동맥의 맥박을 확인한 뒤 그를 우측어깨에 메고 66m 아래의 공터로 내달렸다고 한다. 그곳에서 대통령에게 인공호흡을 하던 차에 경호차량이 도착했고 고인을 김해시 세영병원으로 급히 후송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추락의 충격이 심한 대통령을 경호원이 업고 후송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상태를 악화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호원이 대통령의 유고를 확인한 뒤 전문 의료진의 도움을 청할 수 있게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경호차로 직접 후송하는 방법을 택한 것도 오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장 경호원 이아무개씨가 노 전 대통령이 죽음을 당하는 상황에서 자리를 지키지 않았고, 이 같은 정황을 경찰에 사실대로 밝히지 않음으로써 그는 큰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근접 경호원이 전직 대통령의 경호에 허점을 드러낸 이상 경호라인에 대한 문책도 예상된다.
[의혹 ④] 이명박 정부는 어느 정도까지 알았을까?
전직 대통령의 경호팀은 형식과 직제상 청와대 경호처에 속해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전직 대통령을 통제할 수 있는 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팀장의 지휘 아래 일체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청와대가 전직 대통령의 신변 안전을 모니터할 수 있는 정보라인이 없었다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더구나 검찰 기소가 임박한 전직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었기에 권부로서도 관심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린 <조선닷컴>의 27일 오전 속보. 급박한 상황이 시시각각 전개되는 가운데 '권양숙 동행설'을 보도한 매체는 <조선닷컴>이 유일했다. "권 여사가 동행하지 않았다"는 경호팀의 확인이 나오자 해당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사라졌다. |
|
| |
청와대 경호처는 노 전 대통령의 추락 소식을 처음 보고받은 시각이 23일 오전 7시 10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세영병원에 도착한 지 약 10분이 흐른 시점에서야 청와대가 전직 대통령의 유고를 알게 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같은 날 7시 20분에야 보고가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경호처의 공식 보고라인 외에 별도의 정보수집 활동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특히 서거 당일 오전 <조선닷컴>의 '오보'는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만하다. "노 전 대통령이 경호원만 데리고 산에 갔다가 추락사했다"는 경찰발 보도가 앞다퉈 인용되는 상황에서 <조선닷컴>은 정보기관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어 "노 전 대통령 산행 당시 권양숙 여사도 동행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권 여사 동행설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정보기관이 어떤 근거로 그러한 정보를 친여성향 신문에 흘렸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고인이 사저를 떠나기 직전 권 여사와 "나도 같이 갈까요?"(권 여사)-"그럽시다"(노 전 대통령)라는 대화를 나눈 사실이 드러난 것을 보면 정보기관이 터무니없는 허위 정보를 흘렸다고 보기 어렵다.
현 정부가 전직 대통령의 동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느냐 여부는 노 전 대통령의 사인과는 별개로 또 다른 시비를 일으킬 만한 사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