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노무현

노무현 영결 보는 다른 시선들(미디어오늘090530)

by 마리산인1324 2009. 5. 30.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087

 

 

노무현 영결 보는 다른 시선들
[아침신문 솎아보기]동아·중앙 "국민장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가자"
2009년 05월 30일 (토) 08:00:05 김종화 기자 ( sdpress@mediatoday.co.kr)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십 만 시민의 배웅을 뒤로하고 29일 마지막 길을 떠났다. 생전에 그를 지지했던 이들은 말을 잃고 가슴을 치는데,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이들이 '원망 말라'는 그의 유지를 들어 용서와 통합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그를 한시라도 빨리 현실에서 지우고 싶은 눈치로, 다른 할 일들이 많다고 주장한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참극의 원인을 분석하고 치유하자면서도 슬픔과 원망은 역사에 묻고 일상으로 돌아가라 하고(중앙일보), 7일 간의 국민장은 끝났으니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 민생과 안보를 다지자는 것이다(동아일보). 노 전 대통령이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이 분열과 갈등의 세상이나 국민이 선거로 선택한 정권을 시위로 타도하려는 세상은 아닐 것이라지만(동아일보 육정수), 그래도 꽤나 살만했던 그런 세상을 다시 만나기 위해 얼마나 더 몹쓸 꼴을 봐야 하나 울분이 터진다(한겨레 김작가).

 

잠시 열렸던 서울광장은 만 하루도 안 돼 다시 닫혔다. MBC 보도에 따르면, 30일 새벽 5시 반께 경찰 180개 중대는 강제해산 작전을 펼쳐 시민 2000여명을 해산시키고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봉쇄했다. 경찰은 서울광장 맞은편에 위치한 대한문 분향소도 강제 철거했다. 다음은 30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 서울신문 5월30일자 7면.  
 
경향신문 <이 추모의 민심은 무엇인가>
국민일보 <"당신의 꿈을 잊지 않겠습니다">
동아일보 <"다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서울신문 <"저 슬픈 대열이 기쁨의 대열이 되게 지켜주소서">
세계일보 <"이제 모든 것 잊고 영면하소서">
조선일보 <"편히 쉬시기를…"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중앙일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한겨레 <"당신의 스러진 꿈 일으켜 세우렵니다">
한국일보 <"편히 쉬소서"…시민 수십만명 마지막 길 배웅>


   
  ▲ 경향신문 5월30일자 1면.  
 

30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은 29일 치러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중앙일보, 그리고 1면 전면을 영결식 사진기사로 처리한 경향신문을 제외한 다른 신문들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경영권 편법승계를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에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에 대해 29일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소식을 1면에서 함께 전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한 다른 신문들은 1면에서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보도했다.

 

   
  ▲ 5월 30일자 한겨레, 중앙일보, 경향신문 만평(위에서부터).  
 
30일자 종합일간지가 고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전하는 기사와 사진은 대부분 엄숙하고도 비통한 현장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기사 제목과 일부 기사와 만평, 그리고 사설의 논조는 하늘과 땅 차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각각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이 추모의 민심은 무엇인가>와 <"당신의 스러진 꿈 일으켜 세우렵니다">로 뽑으며 영결식 이후에 무게를 둔 반면, 중앙일보 등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등의 제목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특히 각종 사설과 칼럼의 논조 차이가 두드러졌다. 동아일보 사설이 압권이다. 동아일보는 고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다룬 두 편의 사설 제목을 각각 <7일간의 국민장은 끝났다>와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 민생과 안보 다지자>로 달았다. 동아일보는 이들 사설에서 "국민장을 이용해 사회 혼란을 조성하고 편을 나누어 공격하는 것은 국가와 민생을 해치는 길"이라며 "국민장을 마친 지금은 각계각층이 일상의 제자리로 돌아가 각자의 할 일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치 사회의 갈등과 반목이 심해지면 경제와 안보가 동시에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 동아일보 5월30일자 사설.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모든 갈등과 불화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여 녹이고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 정치인들에게 부여된 과제"라고 주장한 것처럼, 중앙일보 역시 사설 <슬픔과 원망 역사에 묻고 이젠 일상으로>에서 "시민들이 광장에 나설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 여의도로 모여야 풀 수 있는 과제"라고 말했다. 반면 조선일보 사설 <대통령 권력의 비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이들 사설 논조와 사뭇 다르다.

 

   
  ▲ 중앙일보 5월30일자 사설.  
 
   
  ▲ 조선일보 5월30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나라의 최고 사정(司正)기관인 검찰 역시 인사권을 지닌 대통령과 주변 실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아있는 권력엔 약하고, 힘을 잃은 권력에만 가혹하다는 말을 들어왔다"며 "검찰 스스로도 이런 불명예스러운 오명을 떨쳐버리려면, 검찰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방안이 마련되면 사회 여론의 평가를 받아 입법화 시도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언론 역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에서 소홀한 점이 있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권력도 언론의 감시를 틀어막고 언론의 비판에 눈과 귀를 막아버리면 정권은 그 탈선의 죄값을 훗날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육정수 논설위원은 27면 칼럼 <외환보다 내우가 더 걱정이다>에서 이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육 위원은 "정권과 검찰, 특정 신문들이 거짓 혐의사실을 흘리고 보도함으로써 죽음으로 몰았다는 주장은 억지다. 검찰은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을 최대한 예우하면서 신중한 조사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언론의 불필요한 경쟁과 오보 방지, 원활한 수사진행을 위해 하루 한두 차례씩 수사진행 상황을 브리핑한다. (이는) 검찰과 취재진의 오랜 관행이고 신사약속"이라는 것이다. 육 위원은 다음과 같은 주장도 내놨다.

 

   
  ▲ 동아일보 5월30일자 27면.  
 
"정치적 이념적 투쟁과 정권타도 운동으로는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다시 화두로 떠오른 화해와 용서를 이룰 수 없다. 분열과 갈등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이 분열과 갈등의 세상, 국민이 선거로 선택한 정권을 시위로 타도하려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감성 에너지를 사회통합으로 승화시키는 이성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일각에서 나오는 '검찰 책임론'이나 '대통령 책임론'은 우리 사회를 더 경직시킬 우려가 크다.…이제 헝클어진 마음을 추슬러 현실로 되돌아와야 할 때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략적 이념적으로 이용하며 반(反)정부 운동의 빌미로 삼고, 나아가 지나치게 미화해 영웅이나 순교자, 열사로 만드는 일은 사후(死後)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육 위원의 주장과 다른 주장도 많다. 경향신문 15면에 실린 좌담 '추모열기 의미와 남은 과제'에서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노무현 개인 가치와 정책 사이에 내적 긴장이 있었는지를 국민들이 모르지 않는다"며 "(다만) 이명박 정부 1년을 살아보니까 우리 사회의 정신적 가치가 바로 노무현적 가치여야 한다는 걸 많은 국민들이 깨닫고 공감했고, 그걸 지켜주지 못해 추모 열기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현 정부가 환골탈태해 상처 입은 시민들의 마음을 포용하지 않으면 <삼국지>에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패주하게 만들 듯이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패주케 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이들을 비롯해 30일자 조간에 실린 여러 분석과 칼럼, 추도사들이 있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30대 젊은 대중음악평론가의 글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가 한겨레 26면에 기고한 이 칼럼의 제목은 <'상록수'를 들으며>이다. 1977년 부평의 한 공장에서 김민기가 만든 이 곡을 제목으로 한 30일자 칼럼은 이 것 외에도 몇 개가 더 있다. 이 칼럼이 다른 칼럼들과 다른 것은 무엇을 하자거나, 또는 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은 데 있다.

 

   
  ▲ 한겨레 5월30일자 26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됐다. 모든 현실이 이미지와 일치하는 건 아니었다. 현실은 종종 기대를 배반했다. 대통령으로 있던 5년 동안 그는 다시 '상록수'를 들려주지 않았다. 어디선가 불렀을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들리지는 않았다. 정치는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정치가 없어도 어쨌든 잘살 수 있었다. 올라가는 주가와 불어나는 펀드가 정치보다 훨씬 짜릿했다. 누군가는 폭등하는 아파트 가격에 큰 웃음을 짓기도 했을 것이다. 2002년 연말을 들뜨게 했던 정치의 짜릿함을, 욕심의 파도가 순식간에 휩쓸고 갔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욕망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2008년의 대선 가도에는 '상록수' 같은 노래 대신, 이명박 찬양 메시지로 개사된 온갖 유행가들만 나부꼈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이다. 존재했으되 활용하지 않았던 사회적 공론장은 촛불이 지나간 후 탄압의 대상이 됐다. '국민 스포츠'였던 대통령 씹기가 눈치와 울화의 대상이 됐다. 신자유주의적 욕망이 만들어낸 이 정부는 기득권의 탐욕만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상록수가 시든 자리에 돈이 열리는 나무가 심어졌다. 우리에겐 출입이 금지된 울타리가 둘러진 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나던 날, 경복궁 들머리에서 노란 손수건마저 압수당하던 날, 시청 앞에서 다시 '상록수'를 불렀다. 중간중간 자꾸 울컥했다. 그가 더는 여기에 없어서. 그가 다스리던 세상은, 그래도 꽤나 살만했던 세상이었구나 싶어서. 그런 세상을 다시 만나기 위해 얼마나 더 몹쓸 꼴을 봐야 하나 울분이 터져서. 어설픈 기타 연주가 그립다. 담담한 노랫소리가 그립다. 민주주의가 무심히 곁에 있던 세상이, 눈물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