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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태환경

건설 파시즘이 다가온다 (시사IN 92호)

by 마리산인1324 2009. 6. 20.

 

<시사IN>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34

 

 

건설 파시즘이 다가온다
22조원 넘게 퍼부을 4대강 사업은 기존 토건적 결탁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는 파시즘적 지배체계를 만드는 장치가 될 것이다.
[92호] 2009년 06월 15일 (월) 11:06:55 우석훈 (경제학 박사·<88만원 세대> 저자)

   
이명박 대통령은 독재자인가? 정권이 막 시작할 무렵, 나는 졸저 <괴물의 탄생> 원고를 쓰고 있었고, 이제 막 새로 시작하려는 정권의 성격을 예상하면서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다. 내 예상은, 그는 독재자가 되려 하겠지만 일반적 의미의 ‘독재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독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지배층의 조건, 중산층의 조건 그리고 사회경제적인 여건 외에, 독재자의 개인 캐릭터가 가진 미학적 조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히틀러는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어서 그가 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유럽의 어느 누구도 그런 교양인이 독재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무솔리니의 연설은 가히 신의 경지였다고 한다. 박정희 역시 인간적으로 꽤 매력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토목에 집중된 건설사업의 지나친 불균형이라는 문제가 있고, 이 현상이 신자유주의에 따른 중산층 해체와 만나면 어느 정도는 파시즘의 경제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예비 파시즘 혹은 유사 파시즘이 등장할 조건은 갖추었다고 나는 분석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매력은 독재자의 조건에 못 미치는 것 같다. 파시즘은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시청률 바닥을 기는, 그리고 아무도 듣지 않는 라디오 연설을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번 정권이 사실상 파시즘 형태의 정책을 시도하기는 할 터인데,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매력의 문제로 실제 파시즘까지 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결국 나는 ‘건설 파시즘’의 형태를 띨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반도 대운하는 정권이 ‘건설 파시즘’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민의 합의가 없다면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대운하가 ‘4대강 살리기’라는 일견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긴 하다. 대선 때, 대운하는 분명히 수익성 있는 사업이어서 민간 자본을 유치해서 시행한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4대강으로 바뀌면서 정부 사업이 되었고, 건설사들은 토목사업에서 수익성이라는 부담을 덜게 되었다.

‘예타’ 건너뛰고 환경영향평가 무력화


   
4대강 사업은 지독할 정도로 반생태적 사업이다. 위는 시민단체들의 4대강 사업 반대 퍼포먼스.
원래대로 하면 민간 건설사들은 자신의 책임과 판단 하에 이른바 캐시 플로도 생각해야 하고, 수익성이라 불리는 BC ratio(비용편익 비율) 아니면 IRR(내부수익률) 혹은 턴오버 기간 같은 것들을 챙겨야 하는데, 이제는 그 부담이 정부에게로 넘어갔다. 이 정부는 3년 반 지나면 끝인데, 그 뒤에는 이 사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부담은 아니다. 남는 건 정부 몫 그리고 궁극에는 국민 몫이다. 건설사 처지에서는 더 좋아졌다.

자, 그렇다면 졸지에 22조원+알파, 아마도 30조원 이상의 돈을 부담하게 될 국민 처지에서는 비용편익 비율이나 턴오버 기간 같은 것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가? 원래는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예비타당성 검토, 보통 ‘예타’라고 불리는 경제성 검토를 하도록 되어 있다. 수년 전에 경인운하가 이 예타를 통과하지 못해서 몇 년 동안 지연되었고, 지금 제주도의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사회적 논란이 이는 출발점도 바로 이 예타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은 예타를 받지 않을 수 있게 이미 지난해에 관련 규정을 바꾸었다. ‘재해성 사업’으로 분류되는 것들은 타당성 검토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환경영향평가인데, 이것도 이미 제도적으로 무력한 상태이다. 구간을 조각조각 나누어서 많은 사업이 이를 피해 가도록 되어 있고,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것도 3개월 정도의 약식 평가를 해서, 10월부터는 삽질이 시작되도록 하겠다는 게 현재 계획이다.

만약 4대강 사업이 민간 회사가 투자하는 사업이라면, 수익성까지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다못해 현금 흐름, 곧 캐시 플로에 따른 회사채 발행과 시장 상황까지는 검토하고 시행한다. 그런데 대운하가 4대강으로 바뀌면서 규모는 더 커졌지만, 현실적인 검토는 그 어디에서도 하지 않게 되었다. 구멍가게도 이렇게 경영하지는 않는다. 법치를 최고의 정책 기조로 내세우는 현 정부가 이런 편법을 총동원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의 극치이다.

그러나 그게 22조원이든, 30조원이든, 어쨌든 건설 사업 하나가 대통령의 독단으로 결정된다고 해서 건설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금 이 방식으로는 홍수 문제를 비롯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제방을 쌓아서는 더 이상 대규모 홍수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난 정부에서 사실상 결론이 났다. 문제가 생겨나는 지류가 아니라 본류에서 제방을 쌓고 강바닥을 판다고 해서 수질이 좋아질 리도 없고, 홍수가 예방될 리도 없다. 지금 4대강 사업에 대해 국회나 학계 혹은 시민사회의 견제가 실패한다면, 이제 건설자본과 대통령이 손잡은 정책에 대해서는 누구도 견제할 수 없다는 불패 신화가 생겨날 것이다.

건설자본-대통령 결탁 ‘불패 신화’ 낳을 수도

미국에서 월가를 둘러싼 정실 자본주의가 문제라면, 한국식 정실 자본주의는 건설자본을 둘러싼 ‘모럴 해저드’와 사회적 관리의 실패가 될 것이다. 미국식 금융자본이 파생상품 문제를 일으켰다면, 한국에서는 건설자본이 지역 공동체 해체와 지방경제 붕괴 그리고 버블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건설자본은 강 인근의 지역 공동체 하나하나를 해체하게 되고, 철거민을 양산하며, 전국의 사업 지역이 찬반 양쪽으로 나뉠 것이다. 그리고 완장 찬 용역 깡패와 주민 사업추진위 쪽이 둘로 갈라져, 서울 용산에서 이미 보았던 지역 개발의 어두운 뒷모습이 수백 배 규모로 양산될 것이다. 그게 어디 경제 살리기인가?

한국식 정실 자본주의는 결국 건설사를 정점으로 국토부 등 부처 안에서 건설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부 공무원과 이들에게 용역비를 받고 맞춤형 보고서를 찍어내주는 일부 교수를 중심으로 한 어용 학자들이 한편으로 묶여 있다. 그리고 전국에 세포 조직처럼 퍼져 있는 토호 네트워크와 이들과 연결된 용역 깡패들, 이렇게 파시즘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국적 통치 장치들이 만들어질 터이다. 중앙형 사업 시스템의 폐해가 전국 규모로 동시에 진행되면, 이명박 정부는 타락한 시민사회 혹은 양지로 나온 깡패집단을 권력의 실질적인 물리력으로 갖추게 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건설족’을 양산하며 비슷하게 전개되었지만, 그들은 4대강처럼 전국 단일 체계의 사업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한국의 4대강 사업은 대다수 나라가 실패하고 해체한 대규모 반생태적 토건사업을 전국 네트워크를 통한 파시즘 형태로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존재하던 토건적 결탁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 거대한 파시즘적 지배체계를 만드는 장치가 된다. 대운하이든 4대강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합리적이지 않고 견제받지 않는, 그러면서도 22조원 이상의 돈을 쥐고 있는 거대 집단의 등장, 그게 문제이다. 게다가 이 4대강 사업은 지독할 정도로 반생태적 사업이다.

상징은 명확하다. 1980년 광주의 시민은 탱크 앞에 밀렸지만, 2009년 대한민국 시민은 불도저 앞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 국면으로 가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