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이야기/생태환경

4대강사업은 무늬만 녹색성장 (위클리경향 830호)

by 마리산인1324 2009. 6. 20.

 

<위클리경향> 830호   2009 06/23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099

 

 

[커버스토리]4대강사업은 무늬만 녹색성장



인공적 하천 정비방식은 선진국형 자연하천 복원과 큰 차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녹색성장 사업이라고 볼 수 있는가. 환경단체들은 8일 정부가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마스터플랜이 사실상 운하계획이며 혈세 낭비와 식수 대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동화 중에 <오즈의 마법사>가 있다. 100여 년 전 프랭크 바움이라는 미국작가가 쓴 이 판타지 이야기는 전 세계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동화 속 주인공 도로시는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천신만고 끝에 마법사 오즈가 살고 있는 에메랄드 성에 도착한다. 그런데 성에 들어가기 직전 만난 문지기에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녹색 안경’을 써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녹색 안경으로 바라본 에메랄드 성은 온통 아름다운 녹색 세상이다. 녹색 대리석, 녹색 옷, 녹색 가구, 녹색 사탕… 한참 지난 후 도로시와 친구들은 실제로 에메랄드 성이 모두 녹색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니며, 아주 오래 전부터 성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과 방문객에게 녹색 안경을 쓰도록 했다는 사실을 안다. 마법사 오즈는 에메랄드 성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 특별히 더 녹색으로 돼 있지 않다는 솔직한 고백을 한다.

착시 일으키는 ‘녹색안경’ 강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15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천명했을 때 나를 포함하여 많은 전문가가 이를 환영했다.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윈-윈전략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발전 동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의 큰 기대는 점차 큰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판단의 근저에는 현재 정부의 최대 역점 사업인 ‘4대강 살리기’가 있다.

4대강 살리기는 일자리 창출과 잠재적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녹색뉴딜’의 핵심 사업이다. 이번에 발표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총 22조2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34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올해 초 나온 녹색뉴딜 계획 대비 예산 기준으로 38%, 일자리 창출 기준으로 31%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대사업까지 포함하면 그 비중은 더욱 높다. 전체 36개 녹색뉴딜 사업 중 단연 대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4대강 살리기가 녹색뉴딜의 성패를 가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색뉴딜이 정책 수단이라면 녹색성장은 전략이자 비전이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녹색뉴딜을 통해 녹색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자면 현 정부에 4대강 살리기는 녹색성장으로 가기 위한 전초 기지로서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상 4대강 사업은 녹색성장과 직접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녹색성장과 반대로 가는 정책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4대강 사업을 보면서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녹색 안경을 떠올리게 된다. 모든 사물을 녹색으로 보이게 만드는 특수한 안경처럼, 녹색의 프리즘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덧씌우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국민에게 녹색 안경을 억지로 쓰게끔 강요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애초부터 4대강 살리기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녹색뉴딜과 녹색성장 표어를 끌어들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그렇지 않다면 녹색성장이라는 명분과 함께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추진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젖줄을 완전히 바꾸어놓겠다는 ‘대담한 구상’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우려는 다음 두 가지 점에 근거한다. 첫째, 아직까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해 검증된 바가 없다. 사업비 22조 원이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계획 단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책사업이다. 이런 엄청난 사업에 대해 경제성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을 무시하고 사업에 착수한다는 것은 선진화된 재정 운용을 지향해야 할 정부의 마땅한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그 흔한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 비율) 하나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직접적인 효과로 홍보하고 있는 홍수 예방, 용수 확보, 수질 개선, 생태 복원 등은 얼마든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항목들이다.

실제로 이러한 효과가 얼마나 될지, 생각보다 편익 규모가 작을 가능성은 없는지, 일각에서 우려하듯이 홍수 예방이 아니라 홍수 피해가 가중되어 편익은커녕 오히려 비용이 발생할 여지는 없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재정 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해 경제적 효과에 대한 검증 작업을 사전에 실시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야기할 수 있는 환경과 생태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사업 방식은 보와 제방 건설, 준설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인공적 하천 정비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선진국의 최근 추세는 하천에 대한 이러한 콘크리트형 접근을 지양하고, 자연 하천이 갖는 기능을 극대화하는 하천 복원형 접근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얼마 전 하천 복원과 관련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해외 발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한 내용이다. 국제적으로 자연형 하천 복원을 강조하는 현 시점에서 강에 다량의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는 사업을 두고 ‘녹색’ 사업이라고 명명하기는 힘들다.

파괴되면 회복 힘든 자연 특성 무시
현재대로라면 정부의 주장과 달리 하천 복원의 핵심 과제인 수질 개선과 생물 다양성 확보에서 치명적인 패착의 위험성이 지적되고 있다. 왜 정부는 이러한 목소리를 외면하는가. 올바른 강 살리기가 목표라면 하천 관리 선진국들의 과거 시행착오와 다양한 사례를 충분히 검토하여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합리성과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 한 번 파괴되면 회복하기 힘든 자연 생태계의 비가역적 특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비판에 대해 정부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하려는 시각이 있는 듯하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같은 돈을 들여 어떤 사업을 하는 것이 경제적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현재의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국책사업이 과연 필요한가, 만약 필요하다면 어떤 사업을 우선 추진해야 할 것인지 검토하는 것은 경제학자로서 당연한 책무다. 솔직히 나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다. 우리 국민 역시 방향과 내용이 올바른 진짜 녹색사업과 포장은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회색인 짝퉁 녹색사업을 구별할 지혜로운 눈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진정한 의미의 녹색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사업 방식이나 타당성 여부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임기 말까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완수하겠다는 식의 무리한 추진은 분명 국가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녹색성장의 기초를 튼튼히 구축한 최초의 정권이었다는 후대의 평가를 받겠다는 자세로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꾸준히 펴나갈 때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은 성공할 수 있다.

홍종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