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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인터뷰]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 (위클리경향830호)

by 마리산인1324 2009. 6. 20.

 

<위클리경향> 830호   2009 06/23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098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명박 정권, 내년 하반기엔 레임덕 올 것”



이 시대 희망을 말하는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

바야흐로 시국선언의 계절이다. 교수와 학생, 문인과 종교인 등 각계 각층에서 봇물터진 듯 선언을 쏟아낸다. 누가 어디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개개인의 외침은 잘 들리지도 않는 분위기다. 그 강물과도 같은 선언의 흐름에서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주목한 사람은 박원순 변호사다.

박 변호사가 시국선언에 앞장선 모습은 사실 낯선 풍경이 전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시민운동가 아닌가. 하지만 지난 시간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박 변호사의 이런 모습이 꽤 오랜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부턴가 그는 시민운동의 새로운 길을 꿈꾸고 실천해왔다. “터프하고 억세기만 한 시민운동을 부드럽게,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흥미롭게 만들어나가자”는 꿈이다. 그래서 그는 저항과 투쟁보다 희망과 대안, 창의를 부르짖었다. 작은 아이디어, 구체적인 계획과 참여가 세상을 바꾼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2000년부터 그가 차례로 만든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가 바로 그런 생각의 결실이다. 이들 재단과 가게와 제작소는 공익과 수익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사회적 기업이자 민간 싱크탱크다. 그런데도 문을 여는 족족 대성공이다. 아름다운 재단은 작년 한 해에만 135억 원을 모금했고 아름다운 가게는 15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지난주 100호점 문을 열었다. 희망제작소는 3년 동안 단행본만 30종, 총 60종의 간행물을 냈다.

이런 곳들을 지휘하고 관리하려면 하루 24시간도 짧을 텐데 박 변호사는 왜 새삼스레 시국선언에 나왔을까. 그와 만남은 이 궁금증에서 비롯했다. 인터뷰는 그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정당 대표들과 원탁회의를 하고 이명박정부의 국정 쇄신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직후인 10일 오전 희망제작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그를 만난 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명함이다. 그의 명함에는 변호사라는 표기가 없고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라는 직함 위에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는 직업 표기가 돼 있다. 현재 그가 하는 일, 그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직업이 우리나라, 아니 외국 어딘가에 있긴 한 건가. 이런저런 호기심이 일었지만 일단 억누르고 급한 질문부터 먼저 던졌다.

한동안 현실정치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는데 이번에 시국선언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면서부터 중앙정부나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일에서는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한 게 사실입니다. 시민사회도 이젠 포지티브한 모델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21세기는 다양성과 창의성의 시대, 생태가치가 존중되고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 협력체제가 구축되는 그런 사회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들면서 이런 기대가 하나하나 어긋나더니 요즘은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10~20년간 쌓아온 민주적 가치를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거예요. 책임 있는 사람으로서 결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현 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것입니다. 권위적이며 편향적이며 갈등 유발적인 정권의 행태 때문이지요. 따라서 매듭지은 자가 푸는 수밖에 없습니다. 통 크게 결단하고 폭넓게 수용해야 합니다.”

시국선언에 참가한 것 외에 그는 개인적으로 시무구책(時務九策)이라는 제목으로 아홉 가지 변화를 이 대통령에 촉구한 바 있다. 편협한 인사 정책 폐기, 좌우 갈등 조장 정책 폐기, 검찰과 국정원·감사원의 중립성 및 독립성 보장, 시민사회 고사 정책 폐기, 토목공화국 발상 폐기와 같은 것들이다.

이 대통령이 수용할 조짐이 좀처럼 안 보이는데요.
“이대로 가다간 파국 가능성도 있습니다. 경찰의 힘으로 언제까지 억누를 수 있겠습니까. 당분간은 가능하겠지만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5, 6공 때도 못막았잖아요. 내년에 지방선거를 치르고 하반기쯤 가면 정권이 레임덕에 빠질 수도 있어요.”

청와대에 충고해줘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남다른 개인적 인연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월급을 안 받겠다고 발표했을 때 다음날 시장실을 찾아가 2억6000만 원의 월급 전액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도록 설득한 사람이 바로 그다. 그후 월 1회 이 시장과 만나 서울숲 같은 생태 문제에 대해 자문해주면서 시정을 지켜볼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개인적으로야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관 대부분을 압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 있나요. 이 정권이 출범했을 때 저는 실용정부로서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정권을 넘겨준 진보쪽도 이런 기회에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정치적으로 선순환할 수 있겠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배제의 정치를 하면서 모든 것이 막히고 끊겨 버렸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의 목소리 톤이 조금씩 높아져갔다.
“사회가 잘 되려면 공무원만으로는 안 되고 중간 전달 기관이 있어야해요. 풀뿌리 시민단체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선 시민단체를 깡그리 무시합니다. 총체적 단절이에요. 저는 이 정부, 아마도 청와대나 국정원이겠지요, 배제의 정치를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사령부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민간사찰이 복원되고 정치와 민간에 개입이 노골화되면 이 정권의 국정원장은 다음 정권 때 구속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지요. 이런 상황은 방지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정부가 변해야 합니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근거가 있습니까. 그 말씀이 기사화되면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이 말로 주목받으면 저로서는 바라는 바입니다. 지금 시민단체는 단체와 관계맺는 기업의 임원들까지 전부 조사해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통에 많은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힘겨운 상태입나다.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곳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명백한 민간사찰이자 국정원법 위반이에요. 우리 희망제작소만 해도 지역홍보센터 만드는 사업을 3년에 걸쳐 하기로 행정안전부와 계약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해약통보를 받았습니다. 하나은행과는 마이크로 크레딧 같은 소기업 후원사업을 같이 하기로 합의하고 기자회견까지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무산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정원에서 개입했다고 합니다. 정권에서 인사하는 것 보세요. 참여정부 때 임명된 사람이라면 모조리 내몰고 있잖아요. 한예종 황지우 총장을 쫓아낸 것도 그렇고, 야만적이고 잔인한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지만 갈수록 도시나 마을, 거리, 공원의 디자인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저 시스템을 한국 사회에 가져가면 어떨까,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정부에서 하는 정책 사업은 어떻게 보십니까. 얼마 전 4대강 살리기 사업이 확정 발표됐는데요.
“한 자치단체장에게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자기 지역에 4대강이 흐르고 있어 5000억 원이 내려오게 돼 있는데 이 사업과 관련해 세미나 한 번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조기 집행하라고 하니까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토로하더라고요. 이런 국가적 낭비가 어디 있습니까. 강 살린다면서 돈 갖다 버리는 것 아닌가 심히 염려됩니다.”
정부 비판이나 시국 얘기만 해도 이 지면을 다 채우고 남을 것 같다. 이쯤에서 미뤄뒀던 궁금증을 풀어보자.

운동가에서 변신한 사연이 궁금합니다. 소셜 디자이너란 직업명은 어디에서 따온 건가요.
“외국에 자주 나가다 보니 생각이 진화하더군요. 처음에는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지만 갈수록 도시나 마을, 거리, 공원의 디자인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저 시스템을 한국 사회에 가져가면 어떨까,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그때부터 어디를 가나 카메라을 갖고 다니게 됐습니다. 소셜 디자이너는 내가 만든 말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하는 게 본업입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직업이지요. 외국에서도 그런 말 쓴다는 얘기 못 들어봤으니까요. 소셜 아키텍터, 소셜 플래너 이런 말을 두고 고르다가 너무 거창한 것 같아 소박한 디자이너로 정했습니다.”

여기서 소박하다는 말은 남들이 하지 않고 보지 않는 틈새를 파고든다는 의미다. 아름다운 가게를 시작할 때 주위에서 “우리 국민들이 비싼 것, 화려한 외관을 좋아하는데 남이 쓰던 헌 물건에 관심이나 두겠느냐”며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그는 소비자 내면에 있는 가치를 믿고, 철학적 운동 차원에서 접근해 결국 성공했다. ‘생산자에게 희망을, 구매자에게 기쁨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공정무역운동의 하나로 운영 중인 아름다운 커피는 스타벅스보다 3배 더 비싸게 재료를 사오지만 착한 소비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월 매출이 1억 원 이상이다. 올해 목표가 30억 원으로 잡혀 있다. 그가 가장 잠재력 있는 틈새시장으로 보는 곳은 농촌이다. 이 시대 최대 블루오션이 농업에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농업의 어떤 점을 보시는 겁니까.
“일본의 다이아몬드라는 잡지에서 ‘농업이 일본을 구한다’라고 쓴 특집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그린투어리즘이 뜨고 있는데 일본에선 아이들 유학을 산촌으로 보냅니다. 자연과 함께 살면 정서에도 좋고 아토피 걱정 하지 않아 건강에도 좋다는 거예요. 농촌에 가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일으키면 길은 널려 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저에게 맡겨주면 우리나라 실업자 전원에게 일자리 드릴 수 있습니다. 당분간 월급을 못주는 일자리일 수는 있겠지만요.”

역대 정부에서 농촌 살린다고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낭비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건 현장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농촌마을 정보화한다며 컴퓨터를 40대 사서 내려보냅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 컴퓨터 할 줄 아는 주민은 3~4명에 불과해요. 나머지 컴퓨터는 1년 내내 꺼져 있는 거죠. 그러다 감사 나온다 하면 갑자기 켜서 먼지 닦고 하느라 난리를 칩니다. 이러니 제대로 되겠어요?”

공무원들도 시민을 이롭게 하기 위해 늘 고민할 텐데요, 어떤 차이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공무원의 경직성, 미래에 대한 안목 부족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집단지혜·집단지성의 시대입니다. 공무원 한 사람이 책상머리에 앉아 정책을 내면 제 아무리 똑똑해도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어요. 다수의 아이디어와 공동의 노력을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위키피디아나 위키노믹스의 사례를 공무원들은 꼭 알아야 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 직후 우리 사무실을 와 보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에 감동받았다며 1주일에 한 번씩 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길로 가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왔습니다.”

희망제작소가 다수의 아이디어를 수렴해 세상을 바꿔나가자는 차원에서 만든 게 사회창안센터다. 이곳에는 지금까지 3000개의 아이디어가 접수돼 그중 30개 이상이 우선적으로 현실에 적용됐다. 예를 들면 “사람마다 키가 다른데 지하철의 손잡이도 높낮이가 달라야 하지 않나” “식품에 제조일과 유통기한을 병기하도록 의무화하자” “관용차는 왜 검은색만 있나”라는 제안들을 당국에서 수용했다. 조금만 발상을 바꾸면 사회를 더 합리적으로 바꾸고 삶의 질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셈이다. 노래를 통해 불만을 해소해보자는 뜻에서 국내 처음으로 만든 불만합창단도 같은 맥락이다. 주부나 학생들이 모여 “컴퓨터는 왜 이렇게 느려 터진 거야” “버스 아저씨 너무 불친절해” “왜 학교는 아침 일찍 시작하는 거야”라는 가사로 된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축제처럼 벌이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 맞춰 개설한 행복설계아카데미도 인기 폭발이다.

이곳에는 현직 서울시 국장을 비롯해 언론사 사장, 편집국장을 지낸 전문 인력들이 줄줄이 수강생 명단에 올라 있다.
“미국 공무원은 정년이 없습니다. 일하는 데까지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60세 전후해 퇴직한 사람을 받아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기업의 임원이나 정부 관료 등 전문직을 대상으로 제2의 인생길을 도와주자는 차원에서 개설했습니다. 다행히 오신 분들이 모두 만족해합니다. 수강생의 절반쯤은 재취업에 성공도 하고요. 모두 대한민국을 리바이털라이징(재활)할 분들 아닙니까. 이들의 경험, 지혜, 네트워크를 사장(死藏)시키면 국가적 손실이지요. 시골에서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면 마을 박물관이 사라진다고 하잖습니까.”

이제 변호사 박원순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을 할 차례다. 올해 그의 나이 53세. 힘들어할 것까지는 없어도 젊은이처럼 왕성할 수는 없는 나이다. 그런데 그는 블로그 ‘원순닷컴’에 이틀이 멀다 하고 사진과 글을 올린다. 헌 옷 수거함이 잘못돼 있다고 지적하는 ‘원순씨의 따끔한 회초리-옥의 티를 찾아라’를 비롯해 ‘공무원 여러분께’ ‘시사발언대’ ‘원순씨가 만난 사람’ 등 내용도 다양하다. 그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자전거는 달리면 넘어지지 않잖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피곤한 줄 모르겠어요.”
잠깐의 공무원 생활을 빼면 그는 평생을 사회 변혁을 위해 고민했고 활동했다. 그러면서도 비리나 구설에 휘말린 적이 없다. 그 때문에 여론조사를 하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그는 늘 유력한 정치지도자가 된다. 최근에도 차기 서울시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힌 바 있다.

서울시장에 나갈 생각은 없습니까.
“나는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는데 왜 자꾸 내 이름을 들먹이는지 모르겠어요.”

희망제작소에서 하고 있는 사업을 서울시장이 되어 하면 더 좋은 것 아닌가요. 시민운동가로서 시민들이 원하면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희망을 제작해야지요. 시국이 절망적이라고 하지만 그럴 수록 희망을 키워야지요.”

<글·이종탁 출판국 기획의원 jtl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