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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2009/07/08 07:30  

http://blog.ohmynews.com/sonseokchoon/

 

 

‘바보 노무현’ 살리는 길―주권운동

- 손석춘 -

 

 

1. 바보 노무현이 꿈꾸던 사회

바보 노무현. 우리 모두 알다시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애칭’이다. 그가 지역감정이라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해결하려고 눈앞의 손해를 감수하며 올곧은 길을 걸어갔을 때,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우리 국민은 그를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수구언론 앞에서 ‘눈치’ 살피던 대다수 정치인들과 달리 그가 수구언론과 각을 세워 갈 때 ‘바보 노무현’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바보 노무현이 꿈꾸던 사회는 2002년 대선 후보로서 마지막 유세에 나선 그의 발언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오늘밤이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납니다. 성별 학력 지역의 차별 없이 모두가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세상. 어느 꿈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어느 꿈은 아직 땀을 더 쏟아야 할 것 입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살아가야할 세상을 그려보세요. 행복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선거일 직전에 노무현 후보의 연설이다. 그는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정치인으로서 꿈을 밝혔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좀 없는 세상”이라고 강조했다.1)

노무현 바람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열풍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2002년 12월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주었다. 한국 정치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이것은 혁명”이라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서슴없이 밝혔다.2)

그로부터 6년 6개월이 흐른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남의 고향 마을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좀 없는 세상”을 꿈꾸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5년 동안 국정을 이끌었던 정치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우리 국민은 목도해야 했다.

그래서다. 그의 비극은 우리에게 새삼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정치인 노무현이 풀고자 했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과제는 지금 어느 정도 해결되었는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차분한 성찰이 필요하다.


2. 바보 노무현의 사회-문화적 가치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고인이 추구했었던 사회-문화적 가치는 크게 검찰개혁, 언론개혁, 노사관계 개혁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정치 검찰과 독과점 언론의 개혁 의제부터 짚어보자. 고인은 검찰과 언론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혔다. 기실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으로서 검찰과 언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첫 대통령이다.

하지만 검찰과 언론은 각각 국가의 폭력기구와 이데올로기 기구를 대표하는 강력한 조직이다. 그만큼 개혁이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검찰과 언론을 개혁하는 시대적 과제를 실현하지 못함으로써, 퇴임 후에 검찰과 언론으로부터 정치적 보복을 당했다. 고인의 비극 앞에서도 검찰과 언론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인의 가족과 친인척들이 연루된 비리가 엄연한 실체라며 그것을 ‘방패’로 부각하고 나섰다.

문제의 핵심이 청와대 시절 가족과 친인척에게 돈이 오갔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직접 개입’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으로 전직 대통령을 마구 조롱한 데 있었다는 점을 모르쇠하려는 정직하지 못하고 비겁한 자세다.

정치 검찰과 독과점 언론이 혐의 사실을 빌미로 고인을 겨냥해 정치적 매장과 인격적 살인에 집요하게 나선 사실 앞에서 우리는 새삼 저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인의 비극은 강력한 정보력과 조직력을 구비한 검찰과 언론을 어떻게 개혁해나갈 것인지 우리에게 경각심과 함께 치밀한 전략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검찰과 언론은 비단 고인에게만 보복의 칼과 붓을 휘두른 게 아니다. 2008년 촛불항쟁과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듯이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와 독과점 언론의 보도는 반민중적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 주었다
.3)

검찰-언론개혁에 견주어 노사관계 개혁은 조금은 다른 차원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사회-문화적 과제를 논의하면서 노사관계를 생략할 수는 없다. 노사관계는 민주주의 사회와 문화의 가장 핵심 부문이기 때문이다. 노사관계에 대한 고인의 꿈은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강조한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선자 시절인 2003년 2월13일에 고인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직접 방문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두 노총을 직접 방문해 각각 두 시간여에 걸쳐 노동계 지도부와 간담회를 가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간담회는 노 당선자가 잇따라 재계 인사들을 면담하자 노동계서도 면담을 요청해 이뤄졌다.

두 노총을 방문한 당선자는 자신의 임기 5년 동안 적어도 노사 사이에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기대 반, 우려 반”이라는 노동계의 우려에 대해 당선자는 “기대해도 좋다.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당시 한국노총은 사무실로 들어오는 들머리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펼침막까지 걸었고 27개 산별 대표자 전원이 참석했다. 당선자는 이어 민주노총과 만나 “민주노총과 지속적인 정책협의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지금 그 결과를 다 알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분명한 사실은 노사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또한 “노동자 임금격차는 대기업 노동자 이기주의 때문”이라거나 “노조가 힘이 너무 세다”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결과 독과점 언론과 검찰의 이데올로기적-폭력적 공세로 노사 사이의 힘의 불균형은 더 커지는 결과를 빚었다. 거꾸로 그것은 대통령이 검찰과 언론을 개혁하는 데 ‘지지세력’을 잃은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 발제문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공과를 다루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해둘 것은 대통령 자신이 검찰개혁, 언론개혁, 노사관계 개혁에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것이 실현 되지 못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데 있다. 특히 각각 그 부문의 국정을 맡았던 장차관이나 대통령의 참모들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가를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 당국자들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 노사관계 개혁에서 국민과 더불어 국민적 동의구조를 형성해 문제를 풀어가려는 전략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가는 데 실패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고인이 임기 말과 퇴임 뒤에 국민적 동의구조를 형성하는 게 개혁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는 데 있다.

가령 고인이 ‘시민주권운동’을 강조한 게 그 보기다. 퇴임 뒤 “주제를 진보주의 연구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하의 글(2009년 3월 26일)에서 고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 무렵 저는 임기를 마치면 이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가서 ‘시민주권 운동’에 한 몫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민권 변론, 시민운동, 야당 정치, 그리고 정권의 운영, 이런 경험을 하는 동안, 저는 모두가 다 중요하지만, ‘민주주의든, 진보주의든,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간다’는 이치를 거듭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민주주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것도 민주주의 2.0이라는 사이트를 열어서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이 점은 좀 더 분석하고 준비를 한 다음에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생가 마당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고향 내력, 제 고향에서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먹고사는 이야기를 하라고 합니다. 먹고 사는 이야기도 여러 종류일 것입니다. 사업 이야기, 직장 이야기, 투자 이야기, 끝도 없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이하 생략).”

유고에 앞서 임기 마지막 해 들어선 대통령 노무현은 시민주권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 국민이 주인인 사회로 가자면 책임 있는 정부, 책임 있는 언론, 책임 있는 국민이 돼야 합니다. 시민 주권의 시대, 소비자 주권의 시대, 주권을 행사할 만한 의지와 역량 있는 시민이 돼야 합니다”(2007.1.23). “주권자로서 시민이 지도자에 가까운 역량을 갖추어 나갈 때 우리 민주주의는 성숙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2007.4.8). “지금은 주권자가 똑똑해야 나라가 편하지 않겠습니까? 추종하는 시민에서 참여하는 시민으로 스스로의 위상을 바꿉시다. 선택을 잘하는 시민, 그래서 지도자를 만들고 지도자를 이끌고 가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자,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갑시다. 지도자와 시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크고 작은 단위에서 많은 지도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지도자가 됩시다.”(2007.6.2).4)

또 다른 유고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2009년 3월 20일)에서 고인은 “시대는 어떻게 변천해 왔으며 앞으로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묻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진보시대 이전-보수주의의 시대였다. 어떤 시대였는지 묘사해보자. 도금시대, 금박의 시대라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진보의 시대는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 그런데 다시 보수주의가 득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진보의 시대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그 이후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보수주의가 장기간 득세하고 있는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정치적 요인인가? 경제적 요인인가? 보수주의 시대의 진보진영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제3의 길, 신 중도주의 등에 관하여 조사해 보자. 진보진영의 변신으로 인한 진보진영의 분열이 있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전망은 무엇인가? 보수 시대의 성적표 -빈부 격차의 확대, 중산층의 몰락, 금융 발 세계 경제의 위기. 변화의 조짐 -오바마와 민주당의 득세. 유럽은 어떤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지를 조사해보자. 보수주의의 논리는 이제 퇴조할 것인가? 보수주의가 득세한 원인이 무엇이고, 그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안이 무엇인가에 달린 것일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에서 미국에서 시작한 세계 경제위기와 버락 오바마 정권의 등장으로 고인이 신자유주의 체제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퇴임 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재임 시와는 다른 인식을 보여준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권운동 제기와 같은 해(2007년)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이 국민주권운동을 공식 제안한 사실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비판적인 새사연과 그것을 강행한 참여정부가 같은 이름으로 ‘주권운동’을 강조하고 나섰을 때는 ‘접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퇴임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를 보면 수렴 가능성을 보여준다.
2006년 창립 당시 ‘국민직접정치’를 제안한 새사연은 2007년 주권운동 공식제안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국민주권운동은 누군가 기획하고 누군가 조직하는 엄숙한 운동이 아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우리 모두가 기획자요, 조직자다. 묵묵히, 성실하게 일터와 생활 현장을 지켜온 평범한 시민들이 수평적으로 연대하고 참여하는 열린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정치에 새 지평을 열어가는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흐름을 펼쳐보자는 제안이다. 가슴 한 구석 타는 갈증과 열망을 묻어두었던 생활인들이 전면에 나서서 마음껏 희망을 설계하고 즐겁게 소통하는 가운데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의 주춧돌을 놓자는 호소다. 더러는 새삼 무슨 주권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은 뽑을 권리만이 아니라 갈아치울 권리도 손에 쥐어야 한다. 국민주권운동으로 우리는 국민 소환권을 법제화할 수 있다. 지자체만이 아니라 국회의원과 대통령도 국민이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5)

기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이루는 데도 국민적 동의를 폭넓게 형성해가는 구조가 절실하고 그 밑절미는 주권운동일 수밖에 없다. 노사관계에 힘의 불균형 해소도 마찬가지다.


4. 시대적 과제: 주권운동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초 개설한 회원전용 비공개 인터넷카페에 주권운동의 방향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습니다. 시민운동도, 촛불도, 정권도, 이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80년대 반독재 투쟁이 성공한 것은 국민이 생각하는 만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미디어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영향력 있는 미디어는 돈의 지배를 받습니다. 돈이 없는 쪽은 돈이 들지 않거나 적게 드는 매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에 새로운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정보는 넘쳐나지만, 내용이 부실합니다. 분노와 증오는 넘쳐나지만, 사실과 논리는 부족하고, 깊이도 모자라고, 비슷한 생각끼리도 서로 앞뒤가 맞지 않고 충돌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협업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토론과 검증을 통하여 완성도를 높여보자는 것입니다. 미디어이든, 인터넷이든, 연구소든, 출판이든, 어디를 보아도 우리가 열세입니다. 그냥 열세가 아니라 형편없는 열세입니다. 이런 열세를 딛고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역사의 진운이 함께할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다만, 그 막강한 돈의 지배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짜내고 이를 지혜롭게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인이 미디어 곧 언론개혁의 중요성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재벌과 독과점신문에게 방송을 넘기려는 ‘언론악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문제의식은 더 의미가 있다.

유고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인터넷에 대한 고인의 비판이다. 고인은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에 새로운 기대를 걸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정보는 넘쳐나지만, 내용이 부실하다. 분노와 증오는 넘쳐나지만, 사실과 논리는 부족하고, 깊이도 모자라고, 비슷한 생각끼리도 서로 앞뒤가 맞지 않고 충돌한다. 이렇게 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일 수가 없다”라고 분석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인터넷의 네티즌을 일찍이 ‘스마트 몹’으로 표현한 하워드 라인골드는 “영리한 군중이 반드시 현명한 군중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워드 라인골드는 미국의 온라인 시민운동에서 얻은 ‘몇 가지 조그마한 교훈’이라는 겸손한 어법으로 시민의식과 지성, ‘뚜렷한 증거’를 강조했다. 그것이 없을 때 인터넷 공론장은 “감정에 치우치고 무지하며 구호만 앞서 결국 정치적 논의과정 자체를 좌초”시킨다고 경고했다. “논쟁하는 상대방의 인격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중요하다. 새사연도 주권운동에서 학습의 중요성과 사회 모든 부문에서 주권을 ‘학습하고 선전하는 소모임’의 확대를 강조해왔다.6)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디어이든, 인터넷이든, 연구소든, 출판이든, 어디를 보아도 우리가 열세”라며 “협업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토론과 검증을 통하여 완성도를 높여보자”고 제안했다. 협업으로 역량을 확대하자는 고인의 주장, 토론과 검증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보자는 제안은 오늘 바로 이 자리가 그렇듯이 싱크탱크들이 연대해야 할 필요성과 직결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인이 “세계 경제위기와 버락 오바마 정권의 등장”을 평가한 데서 시사되고 있듯이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시대적 필요성이다. 이명박 정권이 세계적 흐름과 어긋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선 대안을 ‘협업’으로 만들어가자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상대가 과거에 어떤 길을 걸었든 서로 연대하고 “역량을 확대”하고 “토론과 검증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야 옳다.7)

고인의 유언에 따라 영남의 봉하마을에 세워질 비석의 글귀로 본 발제를 맺고 싶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주]
1)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노무현은 여론시장을 독과점한 신문들이 일방적으로 퍼뜨려온 온 경제성장 우선론과 달리 분배의 중요성을 역설해 더 큰 기대를 모았다. 가령 2002년 4월, 경기지역 후보 경선 연설에서 노무현은 “소득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 사회는 어느 때 불황이 올지 모른다”면서 “빈부격차가 작고 서민의 소비가 활발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복지는 목적이고 시장은 수단”이라며 “복지정책을 통해 소득분배를 하고, 이 소득분배를 통해 건강한 소비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밝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기존의 신문 읽기에서 벗어나 신문개혁을 주장하던 정치인이 경제에 대해서도 ‘권위’있는 신문이 강요하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분배정책을 공약하는 모습은 적잖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바로 같은 이유에서 정치인 노무현은 신문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과거 신문들의 ‘김대중 죽이기’에 빗대 ‘노무현 죽이기’라는 말이 언론학계와 시민사회에서 나돌기도 했다. 학벌중심 사회에서 그가 상고 출신의 비주류라는 사실 때문에 노무현 바람은 더 커져갔다.

2) 그가 한나라당이 지배하던 국회에서 탄핵을 받아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을 때도 이 나라 국민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촛불을 들고 그를 엄호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의회권력까지 장악했다. 당시 신문들은 ‘의회권력 교체’라고 대서특필했다.

3)검찰과 언론 개혁 문제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본고의 주제를 벗어나있다. 이 글은 그가 남긴 시대적 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4) <오마이뉴스>(2009.6.29)에서 재인용.

5) 국민주권운동을 호소한다. <새사연 http://www.saesayon.org> 2007년6월10일.

6) 손석춘, 주권혁명: 우리가 직접 정치하고 경영하는 즐거운 혁명, 시대의 창, 2008.

7) 새사연이 진보-민주세력의 연대와 단결의 3원칙으로 신자유주의 극복, 분단체제 극복과 함께 ‘과거운동노선 불문’을 제시한 이유도 여기 있다(손석춘 ‘촛불항쟁 1년과 진보-민주세력의 과제’: 경향신문 주최 토론회 발제문 2009년 4월30일). 새사연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의 대안을 노동중심경제론(민주경제론)과 통일민족경제론(통일경제론)으로 제안하고 있다(새사연,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2006 ; 손석춘, 주권혁명, 2008).

*새사연과 미래발전연구원을 비롯한 싱크탱크들이 공동주최한 <노무현의 시대정신과 그 과제>라는 주제의 심포지엄(2009.7.7)에서 발표한 글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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