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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퀘이커

일흔살 청년, 늙은 전사의 길

by 마리산인1324 2009. 7. 16.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 2009년 7월호 빗방울달

http://jaga.or.kr/

 

 


작아가 만난 사람 권술룡 님


일흔살 청년, 늙은 전사의

글·사진  김기돈


사는 동안 늘 갈림길에 선다. 어느 한쪽 길이 분명 걸어야 할 길이다.

어디로 방향을 잡든 말할 나위 없는 소중한 삶이 되리란 걸 직감한다.

잠시 멈춰서 한쪽 길을 누군가의 몫으로 남겨주고 또 다른 한쪽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두려워할 것도, 낯선 것을 경계할 것도 없다.

어느 쪽으로 걸어가든 살아갈 최선의 길이고 생명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씨앗 같던 시간

자주 갈림길에 선다. 기꺼이 한쪽 길로 발을 내딛는다. 걷다보면 갈림길이 종종 한 길로 모아지기도 하고, 서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설령 한참 멀어지는 길인 듯해도 큰 산속 같은 숲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안다. 권술룡(70세) 님 여정이 그랬다. “어떤 기로에 섰을 때 이쪽 길로 가거나 저쪽으로 가거나 사실 마찬가지에요. 망설일 필요 없어요. 지금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손길이 필요한 눈앞에 펼쳐진 길을 계산하지 않고 내딛는 거예요. 사는 일이 여행이고 순례잖아요. 의외성의 연속이에요.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신나는 일이 늘 생기는 길이에요.”

 

삼척 어부의 아들이었던 열여덟 소년은 운명같이 함석헌 선생님을 만난다. 간디에 영감을 받아 시작한 천안 씨알공동체에서 1년여 농사를 지으며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드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씨알농장에서 머문 시간은 평생을 가로지르는 영성의 바탕이 되었다. 이듬해 함석헌 선생님께 큰절을 올리고 강원도 평창으로 무작정 떠난다. 씨알농장에 머무는 동안 읽은 《월든》에 담겨있는 데이빗 소로우의 숲속 생활을 그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났다. 이거다 싶으면 그대로 하는 심성은 그 뒤로도 계속 모든 것을 몸으로 읽어내며 살아가는 삶의 뿌리 같은 것이었다.

 

해발 1천3백 미터 분지에 화전민이 버려둔 빈집에서 묵은 밭을 일구면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런 행적이 우연히 부모님께 알려져 잔뜩 심어놓은 감자를 수확하기도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찰나같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날마다 가슴이 쩌릿쩌릿할 정도로 뭉클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시 돌아온 삼척 바닷가 근처 집에서 아버지께 큰 밭 하나를 빌려 농사일에 마음을 쏟았다. 날마다 똥지게를 지어 날랐다. “땅에서 나는 것은 다 심어 봤어요. 배추농사는 대풍이었죠. 그 배추를 팔아 청계천 헌책방에서 몽땅 책을 사서 짊어지고 오는 걸음이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죠.”

 

스무 살이 된 1961년 다시 강원도 행을 결심한다. 고성 부근에 자리를 잡고 묵은 밭을 개간하기 시작했던 그 꿈같은 봄날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바람 잘 날이 없다고 밭에서 마른풀을 태우다 남은 불씨가 살아나 덜컥 큰 산불을 냈다. 이 일로 구속이 되어 두어 달 갇힌 몸이 되었다. “그 일로 강원도까지 한걸음에 달려오신 함석헌 선생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얼마나 나를 아끼고 사랑하셨는지 그때 알았죠. 그 힘으로 살아온 것 같아요.”

 

그 뒤로 바로 군 입대를 하고 제대하자마자 못다 풀어낸 꿈을 펼치기 위해 강원도 최북단 마을에서 밭도 빌리고 흙벽돌을 찍어 집을 지었다. 낮에 종일 밭일에 몰두하고 어두워지면 흙집을 지었다. 밤새 흙을 바르다가 새벽녘에 쓰려져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 밭으로 갔다. 함석헌 선생님은 이따금씩 들러 그 토담집에서 며칠씩 머무시곤 했다. “젊은 날 느꼈던 그분의 격려와 품이 얼마나 따스했는지, 영혼 깊은 곳을 보듬어 심어주신 것은 씨알 같은 꿈이었어요. 스승이 남겨주신 것은 다 헤아릴 수 없어요.”

 

순수 청년 권술룡, 생각한 대로 살다

더 많은 시간을 지나면서 젊은 권술룡은 몇 번의 절망, 몇 번의 풍랑 같은 고난과 방황을 이어가며 굴곡진 여정을 만들었다. 바닥에서 바닥으로 옮겨가며 몸으로 겪은 온갖 경험들을 다 지나 훌쩍 마흔으로 접어들었다. 암울한 터널 같은 1980년대 중반을 지나던 때, 선배와 친구의 제안으로 빚더미에 놓인 아동시설을 맡아 일하면서 ‘사회복지’ 일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시작한 걸음이 22년 동안 대전 ‘평화의 마을’을 일구게 된 물꼬가 되었다. 젊은 날 순수하고 열정 가득한 시절, 마음에 담긴 씨앗이 질곡의 시간을 지나 더 깊고 풍성하게 뿌리내렸던 것을 알고 있다. 마땅한 때에 적절하게 싹 틔우고 푸른 기운을 드러냈다. 평화의 마을, 대동사회복지관, 노숙자 센터, 지역자활센터, 지역통화운동 한밭레츠, 인도생명누리공동체, 대전지역 곳곳에서 뛰어다니며 땀 흘려 길을 열고 실마리를 풀면서 현장 가장 가까이 있던 시간이었다. 아이 같은 순수함과 열정으로 어떤 문제 앞에서도 ‘아무 걱정’없이 담담하게 앞장서서 일을 꾸려왔다. ‘이보다 더한 일도 다 겪었다’는 생각에 이르면 늘 두려울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이를 ‘청년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생각이나 행동이 엉뚱하지만 늘 새싹같이 신선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생각은 모양을 갖추고 놀라운 파장을 일으키고 열매를 맺는 것을 경험했다. 자로 재고 계산하지 않고 필요한 일이면 바로 몸으로 시작하고 디딤돌을 놓는다. 그것이 생각을 이루어 가는 그이만의 방식이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늘 새기고 살아왔다. 그이는 마음과 생각과 열정이 젊디젊은 ‘늙은 전사’이다.

 

해마다 두어 차례 공동단식 모임을 열어 벗들과 함께 몸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20년 동안 이어왔다. 가지런한 마음, 가벼운 몸으로 다시 일어서게 해주었다. 지난 8년 동안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인도, 동유럽, 네팔, 히말라야, 캐나다, 쿠바, 몽골, 러시아 바이칼, 중국으로 세계생태공동체 순례를 떠났다. 생각지도 못하거나 엄두 나지 않는 일을 조직해 어떻게든 성사시켰다. 그이가 이렇게 떠나는 것은 ‘일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돌아와 변화된 일상을 만들어 가려는 몸짓’이었다. 몇 년전부터는 도시에 오랫동안 철망으로 둘러친 공간을 발견하고 고구마 심기운동을 벌였다. 도시경작, 공간의 재구성이었다. 고구마로 도시를 경작하는 초록전사로 살았다. 이렇게 꿈꾸고 마음먹고 시작하면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새길로 떠나며

권술룡 님은 올 들어 정년이 몇 년 남았지만 모든 현장 일을 내려놓고 ‘퇴임인사’를 했다. “아름다운 마무리, 오래된 새길,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긴 쉼의 길을 떠납니다. 100일 혹은 더 오래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아무 계획이나 생각을 벼리지 않고 걸으면서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해 뼈아픈 성찰을 하려고 합니다. 일흔 나이에 스스로를 한데 바람에 내동댕이쳐 생태적인 생체실험,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최소한의 생활로 살아보지 않으면 따로 구원의 길이 없다고 여깁니다.

 

100일을 걸으면서 100가정을 찾아 만난다는 계획.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가는 ‘실천하는 신명문가’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희망 없다고 사람들이 두 손을 놓은 순간에도 새 움을 틔우고 싹을 밀어 올리듯 살아가는 사람들, 그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을 품으러 떠난다는 계획. 걷고 또 걸어 보다 품이 넓어지고 성숙해져서 다시 지역에 남아 그림자같이 무언가 보탬이 되고, 일흔 나이에 비로소 보이고 깨닫게 되는 것들을 나누면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진각에서 시작해서, 제주, 남해안, 부산, 경남, 대구, 전남, 광주, 전북일부 지역을 100일 동안 걸어서 첫 여정을 마무리했다. 천천히 걷다 쉬다 차도 얻어 타고 빛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감격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두 번째 100일 걷기를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생각의 기운을 차리게 하는 마음 맑은 사람들이 있었다. “20년 동안 100일 걷기를 준비한 것처럼 지난 세월 만나온 사람들, 단식하면서 만난 인연들이 극진하게 문을 열어주고 친정아버지 만난 듯, 아비를 만난 듯, 오랜 지기 ??만난 듯 반갑게 맞아주었어요. 100을 걸으면서 비로소 철들고 처음 세상에 나온 아이처럼 배우고 있어요.”

 

그이는 일흔 살이 되면서 생각이 더 많아졌다. 때로는 너무 넘치는 행동을 하는 것 아닌가, 지나치지 않을까, 주책없다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냐 이런 노인도 있어야지, 대책 없이 꿈꾸는 노인, 철들지 않는 철부지 마음으로 세상을 맑게 하는 재미있는 노인이 있어야지 하면서 마음을 바꾸곤 했다. “일흔이 되니까 철딱서니 없어도 이해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서슴없이 제안하고 말하는 거죠.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은 알아듣고 실마리를 만들어 가더라고요. 고맙죠. 고마운 일이에요. 100일을 걷고 보니 10년이 지난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두께감이 있는 시간이었어요. 다시 100일을 걷고, 또 100일 걸으면 30년을 산 셈이니 100세를 살아낸 깊이와 너른 품이 생기기를 바라는 거죠.”

 

그이는 순례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떠나보면 날마다 마주하는 것들이 얼마나 생명 넘치는 경험으로 다가오는지, 그것이 생각을 넓혀주고 마음을 열고 세상에 새로운 기운을 나누어주는지, 헝클어진 것들이 하나하나 자리를 잡고 갈래진 것을 모아내는 힘이 되는지 알게 된다. “곳곳에 누구나 쉴 수 있는 열린 공간,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공유의 정신이 순례문화를 새롭게 자리 잡게 하는 동력이 될 거예요. 가는 곳마다 그런 이야기를 해요. 누구에게나 열린 사랑방을 복원하는 운동을 하자고 말이죠.”

순례 길에 만난 마산에 있는 한 지인은 주위에 아프거나 어려움에 놓인 이웃이 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 서울까지 걸어서 오가는 몸 기도를 하더란다. 그 위하는 마음이 감동스러웠다. “순례길은 그런 거예요. 바람을 품고 기도를 바치는 거죠. 어수선하고 뒤틀린 세상에 이런 숨결 같은 마음이 있어서 희망을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세상이 어수선하고 흘러가는 정국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지금 역사가 거꾸로 가고 뒷걸음치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 속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일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 법이니까. “‘도저하다’는 말이 있어요. 품이 깊고 생각이 풍성하며 됨됨이나 행동이 곧고 의연한 모습을 그렇게 말해요. ‘도저함’은 체 게바라가 치열한 혁명의 현장에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일상을 살 듯이 살아낸 모습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100일 걸으면서 나이 먹어갈수록 도저함이 나에게 있을까, 그렇게 철이 들 수 있을까, 지레 물러서지 않고 이야기하며 오롯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에게 시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달라진 것은 없다. 오래된 새길을 함께 걸으며 지금 지구별에 사는 이유를 묻고 다만 ‘권술룡’으로 도저한 일상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