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으로서의 속의 빛1
(하워드 브린튼,「퀘이커350년」3장)
속의 빛은 성경·이성·역사적 그리스도·타락·구원과 어떤 관계성을 가지는가. 이런 합리화는 로버트 바클레이(Robert Barclay)와 윌리엄 펜(William Penn)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들은 각각 「보편적 사랑」,「길을 여는 열쇠」란 저술을 통해 직접체험이 종교에 대한 사색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관된 이념의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1. 성경
① 속의 빛과 성경관계
구 분 |
우선 |
2차 |
퀘 이 커 |
속의빛, 영 |
성경 |
프로테스탄트 |
성경 |
영 |
② 퀘이커이론에 따르면, 속의 빛 혹은 속의 그리스도란 하나님의 말씀(요한복음)입니다. 또한 진리를 계속적으로 계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요 16:13)
③ 바클레이는 오늘날 성경은 “당대 여러 가지로 많은 저작품 중에서 후대 영적판단에 의해 선택되어진 선집”이며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새 복음이 아니라 오래된 복음의 새 계시”라고 주장합니다.
④ 페닝턴(Penington)은 성경을 근본적이라고 주장하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속에서 즐겨 받고자 하는 생각없이 어떻게 진리를 진실되게 받을 수 있는가. 만일 속에 그러한 진리의 영의 감동에 의한 받아들임이 없다면 그 받아들임은 하나의 형식이요, 거짓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⑤ 성경본문을 취급하는 세가지 길; 퀘이커는 “속의 빛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미의 깨달음에 해당합니다.
사실자체수용 |
⇆ |
비판적평가 |
⇆ |
의미의깨달음 |
2. 양심
① 양심은 빛의 완전한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빛의 분량”입니다. 빛의 산물이요, 사회적 환경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양심은 잘못할 수가 없습니다.
② 양심에는 언제나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의 빛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빛에 따라 도덕적 판단을 합니다. 양심 안에 있는 이 빛의 분은 성장하게 할 수 있으며 그 일이 일어날 때 양심은 도덕적 진리에 더 날카롭게 느끼게 됩니다.
③ 퀘이커에 있어 양심은 더 부드럽게 혹은 더 날카롭게 하는 것이 예배모임의 한 가지 목적입니다. 양심속의 빛의 분량이 올라감에 따라 폭스의 말대로 “하나님께 인도됩니다.”
3. 이성
① 양심이 선악의 판단을 해주듯 이성은 우리에게 참과 거짓에 대해 판단해줍니다.
② 이성은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은 몇 개의 전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나쁜 악이 나옵니다. 그 전체가 만일 나쁘다면 그 논리적 결론이 그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히틀러).
③ 밝아진 이성은 올바른 전제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면 빛은 그 자신이 진리이므로 이성을 이끌어 점점더 진리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④ 퀘이커문헌에 “빛이나 성경이나, 혹은 빛의 영감을 받아서 된 다른 어떤 글로 올바른 전제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이성으로는 종교적 진리에 도달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 많습니다.
4. 빛의 보편성
① 그리스도의 빛은 인류의 역사 이래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다 주어진 것입니다. 이 퀘이커신앙은 오직 선택된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프로테스탄트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였습니다.
②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아들과 딸들이 예언을 하리라”(베드로가 요엘의 말을 인용한 사도행전 2:17)는 조지 폭스의 소책자에 인용한 성경구절입니다.
③ 그 외 퀘이커들이 가장 즐겨 인용한 구절;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디도서 2:11);“내가 너희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이사야서 49:6);이 빛은 “천하만민에게 전파된”(골로새서 1:23) 속의 복음이었습니다.
④ 반대자들이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없다”(사도행전 4:12)고 반대하는데 대해 로버트 바클레이는 “나도 다른 이름으로 구원 얻을 것이 없는 줄을 압니다. 그러나 구원은 문자에 있지 않고 오히려 체험에 의한 깨달음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⑤ 로버트 바클레이는 사람들이 역사적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는 일 없이 속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의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펜은 가장 힘써 이 교리를 변호했습니다.
⑥ 펜은 그리스도가 옴으로 말미암아 전에는 아껴가면서 주어졌던 영이 이제는 모든 육체 위에 퍼부어지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펜,「전집」(1771)). 바클레는 순교자 유스틴, 클레멘트, 아우구스티누스를 끌어서 그들은 기독교 전의 기독교 진리를 믿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⑦ 이 빛의 보편성에 관한 주장은 일반인으로부터, 그리고 성경으로부터 근거를 삼고 있습니다. 조시아 콜(Josiah Coal)은 “ 우리는 이 인디언들이 자칭 크리스천이라는 사람들보다도 더 점잖고 크리스천다운 것을 보았습니다” 조지 폭스는 어떤 인디언과 문답을 한 후 “그 인디언들은 하나님의 빛과 영”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성경의 사상으로도 하나님의 빛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고도 남습니다.
⑨ 바클레의 ‘퀘이커성경구절’; 창조주로서 하나님은 또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치는 참빛이었습니다”(요한복음 1:9) 퀘이커 신학은 요한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5. 영원한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
① 구원하는 능력의 근원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도 그리스도는 자연 속에 나타나셨습니다. 로마서 1:20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그때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 말하자면 그의 영원한 힘과 신으로서의 성품이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분명히 알려졌습니다”
② 친우들은 인간예수와 영원한 그리스도, 곧 속의 빛, 곧 시간공간의 이 세계를 향한 창조적 활동으로서의 하나님과의 사이에 관한 개념을 주로 요한복음과 또 신학사상, 후기 바울서신에 의해 빚어낸 것이었습니다.
③ 예수의 신성과인성은 초기퀘이커에게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지폭스는 “하나님은 그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요한복음 3:34)을 빛의 보편성을 변호하는 편지에 인용했습니다. 이것은 초대 퀘이커들이 그리스도와 자신들 사이에 있는 성격의 차이에 관한 가장 잘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체험에 근거한 단순한 기독론입니다. 초기 퀘이커들이 그리스사람처럼 형이상학적인 실체에 의해 사색하려 했다면 그들도 그리스 사람들과 같이 난관에 부딪쳤을 것입니다.
④ 퀘이커들은 신성과 인성에 대해 히브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의지의 말로 생각을 합니다. 저들은 체험에 의해 자기네 의지가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의지와 합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의지에 반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에서부터 예수의 의지는 온전히 하나님의 의지 그것이라는 확신에 가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⑤ 예수는 온전히 사람이요, 그는 또 완전히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는 빛을 한량없이 가지셨으므로 그는 곧 빛이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속에 있는 빛은 속에 있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의 독특한 점은, 기독교 신앙에 의하면, 그는 인간적으로 된 하나님의 계시의 최고점이라는 것입니다.
⑥ 속에 있는 빛은 사람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는 하나남이시므로 나사렛예수는 자기를 역사에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적 계시 없이는 속의 계시는 불완전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영원한 것은 일시적인 것을, 일시적인 것은 영원한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요약,발제/ilovepalgong
- 이 발제물은 2010년 2월7일 대구 민들레영토에서 정오에 침묵예배를 드리고, 1시간여동안 회원들과 함께 공부한 책의 요약내용입니다. 이날 한승훈님,진보겸님,남영택님,신성룡님,신현호님이 참석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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