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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댐 지리산 실상사 옆 건물에 걸린 '지리산 댐' 반대 구호. 실상사 작은학교 학생들의 서명이 담겨 있다. |
ⓒ 성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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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댐!'
지리산의 한 대안학교 건물 앞으로 흰 천에 적혀 있는 큼지막한 구호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소통을 거부하며 귀 막은 정부를 향해 제발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듯, 큰 글자 주변으로는 학생들의 이름이 가득했다. 구호 주변에 적힌 이름들은 이게 우리 모두의 생각이니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지난 26일 찾은 지리산 실상사. 뱀사골과 백무동으로 진입하는 지리산 들머리 인월부터 온통 지리산 댐을 반대하는 펼침막이 연달아 걸려 있었다. 4대강 정비와 연관된 개발 계획에 지리산 댐이 포함되면서 지역사회 전체가 반대 운동에 나서고 있어서다. 줄지어 매달린 것만으로도 이곳 주민들의 분위기가 짐작됐다.
휴가철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찾는 지리산. 평소에도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인해 바람 잘 날 없는 산이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지리산권 주변이 더욱 시끄러운 모습이다. 케이블카 문제만 해도 복잡한데, 정부가 지리산 댐까지 가시화되면서 큰 산 주변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개발 논리에 생태 환경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생존권까지 위협받으면서 지역사회 전체가 술렁이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 댐은 수년 동안 몇 차례 시도가 있었으나 한동안 잠잠했던 사안이었다. 그러던 것이 4대강 정비가 추진되면서 물 부족 논리가 등장하며 다시금 진행형이 되고 있다. 칠선계곡 입구 등 지리산 주변이 잠길 수 있는 데다,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남원 쪽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어 환경단체들과 지역 주민들이 반발이 거세지만 정부는 밀어붙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국론 통합은 못하고 갈기갈기 찢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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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법 스님 전 실상사 주지. 5년 간의 탁발순례를 마치고 실상사 화림원에서 수행중이다. |
ⓒ 성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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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 차관이라는 사람이 왔는데, 댐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으러 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말이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댐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상사 뒤편 언저리에 있는 화림원. 고즈넉한 절간의 요사채 같은 수행 도량에서 마주한 도법 스님은 얼마 전 국토해양부 차관이 다녀갔다고 했다. 여론 수렴은 형식적 절차로 보인다는 것. 지리산이 한바탕 회오리에 휩싸일 것을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도법 스님을 만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지리산이 개발논리와 생태보전 논리가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는 상징적 장소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리산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불교계 개혁세력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인 도법스님은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의 탁발순례를 통해 생명평화 사상을 강조해 왔다. 화해와 상생을 주창했던 그는 좌우대립의 혼란 속에 지리산에서 쓰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내고 천일기도를 올리기도 했으며, 생태 환경 보전 노력에도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활동의 중심은 언제나 지리산이었다. 탁발순례를 시작할 때도 제일 먼저 지리산 주위를 돌았으며, 지리산 자락의 고찰 실상사를 불교계 개혁운동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도시의 사람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귀농학교를 비롯해 대안학교와 생협, 지리산권의 환경운동 등등 지리산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활동 중심에는 그가 존재한다.
개발논리가 득세하며 환경 훼손이 잇따르는 시대. 특히나 그가 살고 있는 지리산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정책과 생각 없기에 케이블카와 댐 반대... 지리산 순례 동안거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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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케이블카와 댐 문제 등에 이야기 하고 있는 있는 도법스님 |
ⓒ 성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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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 스님은 이야기를 시작하며 잇따라 보여지고 있는 현 정부의 행태가 답답하다는 듯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최근의 현안도 덧붙이면서.
"정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국론을 통합하는 일인데, 지금 정부 정책은 국론을 갈기갈기 찢고 있습니다. 미디어 법 논란도 마찬가지고."
그러면서 "지리산 문제에 대해 총체적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의 성산이 개발세력의 목표물이 된 것에 대해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보고 있었던 것. 그래서 케이블카와 댐 문제에 절대 동의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지리산은 민족의 성산이지 어느 지역의 산이 아니다. 영험한 산이기 때문에 성산이라 하는 것이다.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면 성스러운 산을 성스럽게 지켜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인데, 국가적인 정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지리산권의 지자체들은 자신들 입맛에 맞게 산을 찢어 놓고 있다.
만일 정부가 어떤 구상과 계획을 갖고 설득력 있게 방향을 제시한다면 케이블카나 댐에 동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생각과 계획이 전혀 없지 않는가? 따라서 케이블카나 댐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뭔가를 추진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지리산 야단법석'이 그것이다. '지리산 야단법석'은 '민족성지 지리산을 위한 불교연대(준)'(이하 불교연대)가 준비하는 행사로 불교계 대안과 문제점을 모색하고 지리산의 가치를 공유하려는 계획이다.
8월 14일~18일까지 4박 5일 동안 실상사에서 수행자들과 함께 불교의 방향성을 고민해 보겠다는 것인데, 불교연대는 화엄사 쌍계사 대원사 벽송사 실상사 등 지리산권 사찰들이 연합한 모임이다.
불교계의 수행 풍토에 대해 논의하려는 자리지만 지리산권 주변의 불교 사찰들을 결속 시켜서 종교적 차원에서 지리산 현안들에 함께 대응해 나가겠다는 것도 주요 목적 중 하나다. 그는 동안거로 걷기 순례를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불교계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려고 한다. 내부적으로 불교계 움직이는 선언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모을 예정이고, 스님 20~30명 정도와 함께 동안거를 지리산 순례로 해 볼 생각이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적 운동으로 확대해 나가려는 것이다."
그는 "눈앞에 떨어진 사안보다는 대중적 시선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면서 "힘이 어떻게 모이느냐가 방향 결정될 것"이라 말하고 "필요한 역할을 계속 할 것이지만 일단은 준비위 구성까지 내 역할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람 많이 오면 지역경제 살아난다?'는 현실성 없는 말장난
한편으로 도법 스님은 개발논리가 장사꾼들의 농간에 정책 입안자들 등 일부만 이득을 챙기게 하고 있다면서, 사람만 많이 오면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는 이야기는 현실성 없는 말장난이라고 지적했다. 돈은 필요하지만 본질이나 핵심이 아니고 안목과 비전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오는 관광지가 되면 지역 사회가 살아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와야 지역사회가 산다는 것은 말장난일 뿐이다. 경주가 관광지로 사람 많이 오는데도 침체되니까 핵 폐기장을 유치하려는 것 아니냐?
지리산만 봐도 관광지인데 왜 지역 상권이 다 죽나? 이 부근에 대형 콘도가 들어왔지만 결과적으로는 민박집과 작은 상점들이 다 문 닫았다. 지역 사회 가꾸고 살찌우는 데 아무 역할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카 등으로 인해 지역 경제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만 많이 오고 관광지 되는 것은 지역 사회 안정과 활성화에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는 농촌이 살기 위해선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관광지로는 성공했지만 주민 이탈로 농촌 공동체가 무너졌던 실상사 주변 지역도 귀농인들이 들어오면서 다시 살아났다고 강조했다.
"통계를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이 주민으로 살면 100명의 관광객보다는 나은 것 같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늘릴 것이 아니라. 살려는 사람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남원시가 지역 인구를 늘리기 위해 초비상인데, 여기서 귀농운동으로 늘린 것이 시 전체보다 많다. 결국 철학이나 가치 의식이 문제라고 본다."
도법 스님은 운동하는 사람들도 어떤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것. 비전을 제시하고 요구해야 하는데 반대만 하고 그런 역할을 못하니 지는 싸움만 되고 뒷북만 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었다.
"상황에 밀려 케이블카나 댐을 찬성하려는 사람들을 설득시키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와 싸우는 일보다 더 힘들 수 있다. 모델을 만들어 설득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뭐든 돈 된다고 하면 바로 설득은 되겠지만 그렇게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기존 방식이 아닌 새로운 철학으로 주민들이 잘 살 수 있는 모델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리산, 생명 평화 공동체의 중심지로 만들어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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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공원법 반대 지난 5월 24일 노고단에서 자연공원법 반대 시위를 펼치고 있는 환경단체 활동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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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리산권 문제는 총체적으로 지자체가 아닌 중앙 정부를 상대로 요구해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의 책임성을 강조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케이블카나 댐이 명목상은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지만, 실질적 주체인 중앙 정부를 상대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또한 자연공원법 논란과 관련해 불교계가 권익을 주장하는 입장에는 정당성이 많다며 이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의 종교 편향성 문제도 에둘러 지적했다.
"한국의 유산으로서 불교문화를 과연 무시할 수 있나? 그간 정부가 불교를 푸대접한 것은 사실이다. 정상적으로 평가받고 대접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 산이 헐벗고 있을 때도 사찰림은 풍성하게 가꿀 만큼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그런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불교계 유산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기독교와 비교해 차별을 받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지리산의 위기를 걱정하던 도법 스님은 그가 생각하는 지리산에 대한 구상을 이렇게 밝혔다. 개발을 앞세워 민족의 성산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에게 선승이 제시하는 방향은 지리산 자락에 내려와 삶을 일구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리산은 생명·평화·공동체의 중심지가 돼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 가야 한다. 현대문명의 고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키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아도 있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 사람이 모여들고 그래서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잘 살면 되는 것 아닌가. 굳이 자연을 파헤치지 않아도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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