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사회

분노하는 소수보다 ‘현실 꿰뚫는’ 수백만의 눈빛을(시사IN 99호)

by 마리산인1324 2009. 8. 24.

 

 

<시사IN>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84

 

분노하는 소수보다 ‘현실 꿰뚫는’ 수백만의 눈빛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담론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 엄청난 비판의 양과 강도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아직 멀쩡한 듯 보이고, 비판 주체도 의미 있는 정치적 실익을 얻는 것 같지 않다. 혹여 비판의 방향이나 설득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99호] 2009년 08월 03일 (월) 14:49:20 고동우 기자 intereds@sisain.co.kr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는 마침내 ‘정권 퇴진’ 요구까지 불러왔다. 집회 현장의 즉흥적인 구호 수준이 아니라 엄연히 민주노동당과 언론노조 등 유력 단체의 공식적인 결의 사항이다. 하지만 실제로 정권이 스스로 물러나거나, 아니면 ‘민중의 힘으로’ 정권이 곧 무너지리라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도 “정말로 퇴진시키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투쟁 국면에서 뭔가 확실한 차별성을 보여주겠다는 지도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또 다른 진보 정당인 진보신당이 함께 퇴진 투쟁에 나서지 않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국민이 과연 진보 진영만큼 현 국면을 심각하게 보느냐, 정권이 퇴진해야 할 만한 사안으로 보느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진보 진영이 대중의 신뢰를 잃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배감만 확산시킬 수 있다”라고 ‘현실적인 고민’을 전했다.

   
진보 진영은 ‘독재 정권 퇴진’ 구호까지 외치고 있다. 7월5일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 공동집회의 한 장면.
사람을 ‘흥분’시키는 비판만 넘쳐

사실 퇴진 구호의 등장은 그간 진보·개혁 세력이 줄기차게 제기해온 ‘독재’ ‘파쇼’ 담론의 필연적 귀결이라 할 것이다. ‘상식’대로라면 이런 성격의 정부와 ‘타협’이란 없으며, 오직 무너뜨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비판에는 진정성이 없지 않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더욱 강하고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담론으로서,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며 좋은 세상을 향한 열망 같은 것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게 박 대표의 견해다. 그는 “‘독재’ ‘파쇼’라는 비판은 사회를 선과 악으로 양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정의로운 전쟁’에 나서도록 흥분시키는 담론이다. 그러나 사람은 늘 열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살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꼭 필요한 시기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도록 호흡 조절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경고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증오와 뭔가 크게 ‘한판 승부’을 벌여 단박에 뒤집으려는 욕구가 너무 지나친 나머지, 진보·개혁 진영은 대중을 ‘동원’하려는 주장만 주로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제 얻을 수 있는 게 뚜렷하지 않거나 희생만 커질 때 대중은 진보·개혁 진영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으며 냉소주의 또한 커져간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변화가 일상적 시기에도 꾸준히 실천될 수 있도록 열정의 휘발성을 보완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체제를 움직이는 힘의 구조와 작동 방식에 대한 합리적 이해가 깊어져야 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으로 잘 알려진 사회운동가 사울 D. 알린스키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바 있다. “노여움과 이타심에 넘치는 분노는 사람을 움직인다. 하지만 이것들은 부정적 힘이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한다. 이성적으로 다다른 결론과 거기에 근거한 결단, 그리고 정치적 전망과 연결된 이념은 사람의 끈기를 더 오래 지켜줄 것이다.”

   
ⓒ청와대제공
재벌과 보수 언론의 권력을 약화시키지 않는 한 ‘이명박 때리기’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재계 총수와 만찬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공.
‘독재’ ‘파쇼’ 같은 비판 담론이 가져올 수 있는 더 큰 문제는,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가 대면해야 할 ‘진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가령 미디어법의 경우를 보자.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재벌과 조·중·동의 여론시장 장악’을 걱정하고 심지어 “한나라당은 재벌과 조·중·동의 꼭두각시”(민주당 논평)라고 공격하지만, 정작 재벌과 조·중·동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이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위험성에 대한 여론화,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대안 제시 같은 것은 거의 내놓지 않고 있다. 오로지 비판의 타깃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맞춰져 있고, 국민은 이들의 ‘독재’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설 것을 요구받는다. <시사IN>이 지난 7월 한 달 동안(1~27일)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이 낸 미디어법 관련 성명과 브리핑 113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재벌과 조·중·동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은 5건에 불과했고 그나마 내용도 충분한 수준은 아니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어찌할 것인가


민주노동당 중앙당의 한 간부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전문성의 부족과 시야의 한계를 원인으로 꼽았다. “굳이 언론에 맞서지 않으려는 정치인의 심리가 반영된 것도 있겠지만, 그렇게 넓고 깊게 사안을 볼 수 있는 시야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일단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 위주로, 뭔가 시급하게 행동을 촉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비판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조·중·동을 규탄하는 언론노조 조합원들(위).
그러나 이러한 ‘한계’가 쌓이고 쌓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커 보인다. 재벌과 조·중·동이 가진 권력은 방치한 채, ‘선출된 권력’만 비판하고 무너뜨리려 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김윤철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의 말이다.

“우리는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실제 죽음을 당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이들로부터 자유로울까? 대기업에 투자 좀 해달라고 읍소를 하고 또 해도 말을 안 듣는 게 재벌 아닌가? 아무리 밉더라도 어쨌든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 제도 내에 존재한다. 모든 문제가 선출된 권력에 있다는 식으로만 비판하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대중의 회의는 더욱더 깊어질 것이다. 정권은 되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막강해져 있을지 모른다.”

미디어법과 함께 통과된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한 야당의 대응만큼 진보·개혁 진영의 현실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는 듯하다. 모든 야당이 미디어법에만 주력하느라 이 법은 몇몇 정치인 외에 거의 거들떠도 안 보는 형편인데, 알다시피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허용해 재벌의 ‘경제 권력’을 한층 더 강화해주는 법이다. 언론시장에서 영향력 확대만 견제하면 됐지 경제 권력은 더 세져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반이명박 전선’ 구축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사안(사실 금산분리 완화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돼온 것이다)은 무시해도 좋다는 것일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지난 7월23일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권은 독재정권임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이명박 정권의 퇴진만이 민주·민생·평화·생태환경을 살리는 유일한 해결책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강 대표의 이 발언처럼, 진보·개혁 진영은 이명박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고, 이 대통령만 바뀌면 금방이라도 ‘좋은 세상’이 찾아올 것 같은 언술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런 식의 주장은 앞서 지적한 대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대응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중의 탈정치화와 냉소주의까지 부추길 염려가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학·문화 평론가)는 “모든 걸 이명박에서 출발하는 논리는 일종의 ‘메시아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런 메시아주의에서 이명박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또한 이 때문에 정치적 허무주의도 발생한다”라고 분석한다.

이명박만 사라지면 좋은 세상 올까

“‘모든 게 이명박 탓’이라는 비판은 이명박으로부터 해결책을 내올 수 있다는 생각을 뒤집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역설적으로 이명박 반대는 더 강력한 (또는 더 효율적인) 이명박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중은 메시아적 존재가 나타나서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데, 이런 태도는 점진적인 개혁이나 개선에 대한 무관심 내지 냉소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저항해봤자, 투표해봤자 바뀌는 건 없다는 냉소주의가 탈정치화를 낳고 결국 정치적 행동에 대한 혐오를 낳는 것이다. 당연히 대중이 요구하는 메시아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보·개혁 진영은 이명박만 바꾸면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럼 박근혜는 괜찮다는 것인가?”

마찬가지로 특정 정치적·정책적 선택을 구조적 사안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양심’ 문제로 환원해서 보는 시각 역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예컨대 올해 초 진보 진영의 한 경제학자는 이명박 정부가 ‘부자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감세 따위 경제정책을 쓰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는데, 이런 논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개과천선하면, 마음만 고쳐먹으면, 혹은 그를 몰아내고 ‘착한 대통령’을 앉히면 모순이 해결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장 진보적이고 친서민적이었다고 평가받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5년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다. 재벌 권력의 위험성을 알았지만 결국에는 재벌의 경제·사회 지배력을 오히려 확대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조·중·동과 임기 내내 싸웠지만 그들의 영향력을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재벌과 조·중·동 때문에…”라는 항변이 뒤따르듯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도 그러한 인식의 지평 위에서 제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누가 봐도 그들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는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비판의 대상과 방향이 좀 더 정밀하고 섬세하게 다듬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박상훈 대표는 이명박 정권을 지나치게 ‘괴물화’하는 비판 담론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정의로 가득 찬 결정체,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미증유의 무엇, 사생결단으로 싸워야 할 무서운 존재로 묘사되면 될수록 국가권력과 대중의 괴리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은 ‘우리 것’이다

“공포와 두려움이 확산되면 대중은 행동에 나서길 주저한다. 국가권력은 우리 밖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 관계 안에 있는, 언제든 만질 수 있고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대중이 사안에서 ‘도피’하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뭔가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저항과 비판을 고민해야 한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겉보기와 달리’ 매우 허약한 정부다. 인기도 추락했고, 재벌과 조·중·동 눈치보기에 급급하며, 공권력 없이는 하루도 지탱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 이명박 정부를 ‘실재보다’ ‘필요 이상으로’ 강력하게 만드는 건 역설적으로 진보·개혁 진영인지도 모른다. 다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오직 ‘정권 빼앗기’ 싸움에만 몰두한다면, 집권만 하면 하염없이 추락하는 이 ‘교착 상태’를 돌파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소수의 분노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꿰뚫어보며 꾸준히 모순을 해결해나가는 다수의 각성된 시민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