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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103호] 2009년 08월 31일 (월) 13:56:50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73

 

 

“아프간 전쟁은 오바마 정부의 끔찍한 범죄다”
미국을 대표하는 석학이자 양심적 지식인인 노엄 촘스키 교수는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투쟁의 과정이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선행 조건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알맹이를 채우기 위해 한국은 앞으로도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보스턴·김영미 편집위원

 

 

노엄 촘스키 교수(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언어학과)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학자이자 진보적 정치 활동가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이다. 그는 주로 미국의 외교정책과 인권 문제를 비판해왔다.

이런 노엄 촘스키 교수에 대한 인터뷰는 실로 쉽지 않았다. 80세의 노령인 데다 최근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인망식 인맥 동원과 기다림 끝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8월11일 보스턴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다.

컴퓨터도 없고 자필로 쓴 종이들과 책으로 뒤덮인 책상에 앉아서 필자를 맞이한 그는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오시느라 수고 많았다.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한국 국방부가 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한국에서 당신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
누군가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또한 그런 조처에 반대해 내 책을 읽기 위한 모임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한쪽에서는 금지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다른 쪽에서는 일부러 찾아 읽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투쟁의 과정이다. 미국도 1960년대 이후에야 언론의 자유가 제대로 보호받기 시작했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선행조건이다. 그러나 독점자본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인물을 내세우려고 선거를 매수하는 일이 있는 한 그런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형식적으로 민주주의의 형태를 갖췄을 뿐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로 자처하는 나라 중 상당수는 사실 ‘무늬만 민주주의’다. 그러나 권력은 결국 국민의 손에 있다. 과거 한국에서처럼 독재 정권은 국민의 힘에 의해서만 전복된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동안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현실에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있다.
사실은 흔한 일이다. 미국만 해도 그렇다. 예컨대 미국의 노예제도는 그 끔찍한 남북전쟁을 치르고 나서

   
ⓒ김영미
예술 및 인문학 인용 색인(A&HCI)에 따르면, 노엄 촘스키 교수(위)는 1980~1992년 생존해 있는 학자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 역대 인물 중에는 여덟 번째.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때부터 촘스키 교수는 미디어 비평과 정치적 행동으로 인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그는 미국 정치에서 좌파의 가장 주요한 지성인으로 평가되며, 그의 정치적 행동과 비평은 미국과 다른 정부 간의 외교정책과 인권 옹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도 없어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계속 남아 있었던 것이다. 종전 뒤 20년이 지나서도 남부에서는 여전히 흑인을 억압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흑인은 여전히 노예였으며 농장에서 계속 목화를 따고 사슬에 묶여 광산으로 보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그랬다. 물론 지금 미국에서 그런 일은 볼 수 없지만 정의가 실현되기까지는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광복이 되어 근대국가로 탄생한 지 겨우 60년밖에 안 되지 않았나. 미국보다 민주주의가 훨씬 급속하게 실현되고 있는 거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후퇴할 가능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전 세계를 대표하는 민주국가다.

글쎄. 미국의 경우, 아직도 독점자본이 국가를 소유하고 운영한다. 미국의 선거 시스템에서 수백만 달러 규모의 자금이 없다면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 선거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구입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돈을 지불하는 것은 권력자들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권력자들에게 위험한 제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빈민 등 대다수 국민이 투표권으로 독점적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마음을 놓는 순간 권력자들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어떤 정부인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6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발생한 일을 보면, 오바마에 대한 여러 이미지가 상상이나 착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선거는 치약 광고와 비슷하다. 아름다운 소녀가 치약과 만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내용의 광고가 있는데, 이 광고를 시청하다보면 믿게 된다. 오바마에게 거는 우리의 기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는 혹시 형식적으로 내세워진 일종의 광고 모델 아니었을까. 광고에 등장하는 연예인 같은 모습으로 민주주의를 선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그의 뒤에는 이익을 바라는 수많은 자본가와 권력자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바마 정부는 현재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의료 시스템의 위기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보건의료 시스템이 개혁되지 않는다면 미국 경제는 파산하고 말 것이다. 현재 5000만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 시스템을 바로세우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미국의 의료비는 다른 나라들보다 두 배나 더 비싸다. 그러나 의료 혜택은 비참한 수준이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 의료 시스템이 민간 자본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정말 비능률적이다. 민간의료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의료 시스템의 중심부에 있는 민간 기관들의 목적이 이윤 창출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우 의료비는 엄청나게 높은 수준으로 책정될 수밖에 없다. 행정·감독·관리비로 수백억 달러가 낭비되고 정작 병자들에게는 보험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또한 약품 가격은 다른 국가보다 매우 비싼 편이다. 국민의 85%는 정부가 민간 제약회사와 협상해서 약값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며칠 전 뉴욕 타임스에, 오바마 대통령이 제약회사와 어떤 종류의 거래를 했다는 기사가 게

   
ⓒ김영미 제공
노엄 촘스키 교수(왼쪽)는 독점자본이 국가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의구심을 나타내며 “혹시 오바마 뒤에 수많은 자본가와 권력자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재되었다. 그 거래에서 오바마는 민간 제약사가 약값을 멋대로 결정하는 데 걸림돌이 될 어떠한 법적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오바마 정부가 의료보험 개혁에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인가.

미국에서는 보험회사도, 월 스트리트의 투자자들도 의료보험 개혁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당시 대형 금융기관에서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았다. 금융자본은 공화당 후보였던 매케인보다 오바마를 선호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월 스트리트가 의료보험 개혁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라크나 아프간 전쟁에, 부시나 오바마 후원자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 전쟁의 목표는 꽤 명확했다. 이라크를 정복한 뒤 말 잘 듣는 괴뢰 정부를 설립해서, 미국 기업들이 거대 규모의 석유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 지역에 전략 거점을 통제할 수 있는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런 특권을 얻었다. 특히 2007년 11월 당시 부시 대통령은 군대를 이라크에 영원히 주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의 군수업체와 기업이 이라크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이 목표를 위해 부시 전 대통령은 군사기지 주둔을 위한 협약에 서명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 협약을 아프간에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2001년 10월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그 목표는 아주 명확했다. 탈레반 정권의 전복이 아니었다.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엎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2001년 10월 당시 미국의 목적은 9·11 테러 혐의자들을 인계받는 것이었다. 탈레반은 증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부시 정부는 그것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을 넘겨받기 위해 아프간 전쟁을 도발했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다른 금전적 이익을 막대한 규모로 챙겼다. 이것은 심각한 범죄이다. 오바마 정부 역시 아프가니스탄이 전략상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 후원자들의 이익을 위해 다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니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오바마 정부의 끔찍한 범죄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보는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만큼의 비용이 필요할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대부분의 분석가는 미국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성공할지도 모른다. 미군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우리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성공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우리가 추궁해야 하는 것은 ‘너희들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혹시 미국의 실수냐고? 그런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확실하게 못 박을 것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강대국들이 행동하는 방식이다. 강대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장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다. 일본에 침략당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국민을 설득한다. 테러 집단이 미국을 위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르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그 테러리스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테러리즘은 미국 권력자들이 애용하는 도구다. 미국 권력자들은 사실 테러리스트들이 하는 짓 그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자기들의 가족이나 친구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테러라는 사건을 적절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이익을 취한다. 9·11 사태 이후 테러가 더 증가하는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 당시, 정보기관과 개별 분석가들은 테러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정확하게 현실화되었다. 부시 집권 당시, 어떤 단체는 지하드 조직을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설득해서 테러 행위에 종지부를 찍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미국 권력자들은 반대로 행동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그 다음 이라크를 침략했다. 그리고 테러는 증가했다. 미국 분석가들은 이를 ‘이라크 효과’라고 명명했다. 이라크 침공 이후 테러는 7배나 늘었다. 아마 현재 미국인들은 물론 미래의 후손들까지 이 테러와의 전쟁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소수 권력자들의 사익 때문에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는 국민이 아니라 권력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쉽다. 누가 한국을 소유하고 있는가. 한국 역시 평등주의자들의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경제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이 소수는 정부 정책과 언론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이런 소수를 위한 존재일 뿐인지도 모른다. 미국 민주주의는 2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이에 비해 훨씬 짧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잠시 퇴행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과정이다. 현실에서 잘못된 일을 경험하면 할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지지 않던가. 한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뤄냈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를 상기해보라. 미국이나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할 때 정말 드문 경우이다.

당신은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로서 어떻게 하면 정부와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소통이 어렵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원한다면 편지를 보낼 수 있겠지. 그러나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 테이블로 불러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올까. 정말로 소통하는 방법은 조직을 구성하여 그들에게 항의하는 것이다. 당신들의 의사와 다른 정책을 수행하면,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민의 정당한 행동이다. 그래야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이미 많은 희생을 겪었다. 앞으로도 그럴까.

그럴 것이다. 앞으로도 많이 희생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알맹이를 채워나가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당시에도 한국인들이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의 알맹이를 채운 바 있다. 이런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 정부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러나 일단 민주주의를 쟁취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착각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든 아이스크림처럼 너무도 허망하게 없어져버릴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쇠퇴도 중요한 과정이다. 민주주의는 아주 어렵고 비싼 노력 끝에 약간 맛볼 수 있는 어려운 쟁취의 과정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주체는 민중이다. 정부에게 민주주의를 맡기지 말라. 국민이 직접 그 중심으로 나설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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