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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7일, 대통령 중에는 처음으로 손병두 이사장 등 KBS 신임 이사 11명에게 직접 임명장을 수여했다. |
ⓒ 청와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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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정권.
우리들은 이명박 정권을 이렇게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그늘 아래에서 중도실용, 경제 살리기로 포장되어 중간지대 유권자의 지지로 탄생한 이 정권은 애초 '정체불명'일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정체가 분명한 사람이나 집단은 비교적 이해하기가 수월한 반면 정체가 불분명한 쪽은 그 말이나 행동을 해독하기가 어렵거나 시간이 걸린다. 대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 긴 시간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시민운동을 하다가 민주정부 10년 동안 국가운영에 일정 정도 참여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실패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다른 한편 굵은 정책을 결정해본 경험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어떤 사안의 한 측면만을 가지고 입장을 피력하는 것의 섣부름이 가져올 결과 때문에 신중해진 탓이라고나 할까.
과연 그것뿐일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니다. 진보계의 거두로 불리는 노학자까지 나서서 "민주정부 10년의 실패가 이명박정권을 낳았다" 공언하는 마당에, 자칫 잘못 발언했다가는 "너나 잘하지 그랬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잘하지, 왜 뒷북 치고 그래?" 류의 비아냥을 예상하며 의기소침해진 탓이 가장 클게다. 하여 벙어리 냉가슴 앓듯 세상 돌아가는 것, 특히 언론상황을 지켜보며 때로 자판기를 두드리고 싶은 '손가락의 관성'때문에 손가락 마디가 아플 정도로 참아야 했을 게다.
방송장악이 없다고?
그러나 벙어리가 냉가슴 앓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 우리들로 하여금 '신중함'과 '의기소침'은 물론 '책임감이나 반성, 혹은 의무감'이라는 단어의 굴레를 벗어던지게 하는 일들이 터지고야 만다.
어제와 오늘, 정확히 9월 7일 오후부터 9월 8일 오전까지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진 다음 기사는 글을 쓰고자 하는 우리들의 '손가락 관성'에 가속도를 더하게 만들었다. 어제 KBS이사들의 임명장을 '손수' 전해주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일부 주장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아마도 이 문장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 말을 전한 기자의 '청력'을 의심했을지도 모르겠다.
1988년도 아니고, 1998년도 아닌 2008년 다시 말해 불과 1년 전에 벌어졌던 정연주 사장해임작전은 그렇다면 방송을 장악하려 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었단 말인가. 어제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그 발언은 어쩌면 '국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면 교과서 수정작업 이전에 혹은 그 후에 은밀하게 이 정권은 우리말사전 속 낱말의 의미를 180도 다르게 바꾼 것일까. 그리고 최고권력자가 처음으로 바뀐 낱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사전은 '방송장악' 뜻풀이를 이렇게 하고 있을지 모른다.
방송장악 :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정권이 바뀌어도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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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주 전 KBS사장 해임 과정에서 이사직을 박탈당한 신태섭 전 KBS 이사와 정연주 전 KBS사장이 3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에서 열리는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명운동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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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와 신태섭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을 장악하려한다는 일부 주장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아무도 방송을 장악할 수는 없다"고 까지 말했다. 그리고 이 두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두 사나이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특별히 우리는 이 글을 쓰면서 정연주 해임작전의 뒷 그늘에서 일상적 고통과 굴욕을 감내해야 했던 김금수 이사장과 신태섭 이사에 주목하고자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발적 사퇴를 선택했던 김금수 이사장 역시 감내했고 감내하고 있고 앞으로도 감내해야 할 몫이 있을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그 역시 피해자임에 틀림없다.
김금수 이사장의 자진사퇴가 정연주 해임작전의 첫 돌이었다면 신태섭 이사의 강제 해임사건은 정연주 해임작전의 마지막 돌이었다. 그리고 신태섭 교수의 불법 강제 해임사태의 전말은 아래와 같다.
먼저, 신태섭 교수에게 동의대총장이 집요하게 KBS 이사 사퇴를 종용했다. 다음으로 동의대는 신태섭 교수가 KBS이사직을 수행하기 위해 교수직을 소홀히 했다는 점을 들어 신 교수를 해임했다. 2008년 7월 1일의 일이다. (신태섭 교수가 KBS이사가 되었을 때 동의대는 축하현수막까지 내걸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신태섭 교수가 동의대 홍보에 톡톡히 한몫했다는 말까지 나돌았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방통위가 나서서 신 교수가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으므로 이사자격을 자동 상실했다며 보궐이사를 추천했다.
신태섭 교수가 해임되고 친여 이사 한 명이 선임됨으로써 KBS이사구성에 있어 친여 성향이사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고, 급기야 KBS이사회는 경찰의 삼엄한 호위 속에 정연주 사장을 해임했다. (정연주 사장 해임의 억지이유를 만들기 위해 검찰, 국세청, 감사원이 총동원되었고 '배임'이라는 억지 법논리를 만들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므로 생략하기로 하자.)
대개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가해'임을 인지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적 사건에서 종종 피해자는 있으되 가해자는 모호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 정권은 방송을 장악하려 한 일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방송은 누구도 장악할 수 없다고까지 한다. 그러나 분명 2008년 초여름 이명박 정권하의 대한민국에서 반문명적 방송장악 작전이 벌어졌고, 신태섭 교수와 정연주 사장이 해임되었으며 한 사람은 배임혐의를 뒤집어쓰고 재판을 받고 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동가식 서가숙 하며 '보따리 강의'를 하여 생계를 잇고 있는 형편이다.
신태섭과 정연주 두 사람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이 정권의 행태를 직시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방송장악이 사실이 아니다"는 식의 발언이 기사로 실릴 수 있는가. 어디 피해자가 두 사람뿐인가. 정권의 방송장악에 가담하지 않은 KBS종사자들 역시 피해자이며 공영방송을 지키고자 촛불을 들었던 시민 모두가 피해자일 수 있다. 어디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뿐이랴. 가슴으로 방송독립과 자유를 지키고자 했던 많은 국민들에게 이 정권은 '정연주 해임작전'이라는 비수를 꽂았다.
정연주와 신태섭 두 사람은 아직도 길거리에서 이 정권의 방송장악 작전에 저항하고 있다. 이미 지난 8월 18일 법원은 정연주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미 지난 7월 8일 법원은 신태섭 교수에 대한 교수해임효력정지가처분 신청에 대해 신 교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렸다. 법적으로 신태섭 교수의 교수직이 회복되었으므로 당연히 방통위는 신태섭 교수에 대해 KBS이사자격 회복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안하무법' 방통위는 법원의 판결조차 외면하는 '불법적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정체불명 정권의 방송장악 행태는 몇 가지 시사점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첫째 정체불명이란 대개 진실하지 못한 것이며, 말 다르고 행동 다르다는 점이다. 방송장악 작전을 집요하게 벌여놓고, 작전이 끝나고 나면, "우리가 한 것은 방송장악이 아니다"라고 외친다. 다음으로 정체불명의 정권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면 법과 절차쯤은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다. 정체불명의 정권이 불법을 예사로 알게 되고 법과 민주적 절차를 짓밟는 '무소불위 반민주정권'으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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