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경향> 841호(2009 09/08)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3&art_id=200909031409171
[커버스토리]친서민정책엔 ‘서민’이 없다? | ||||||||
ㆍ오락가락 행보에 ‘진정성 결여’ ‘탁상공론 결과’ 비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교육개혁, 전세난 대책, 서민 감세 등 친서민 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 대통령이 민심 수습을 위한 근원적 처방에 나선 것으로, 집권 중반기 국정운영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강력한 추진 의사를 밝히는 반면에 “노 대통령 서거와 미디어법 통과 이후 등 돌린 민심을 되잡기 위한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시민사회단체의 반응은 진보 보수 모두 다소 비판적이다. 참여연대 등 진보진영 측 단체들은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은 부재한 채 서민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며 부실함을 주장하는 데 반해 보수진영 단체들은 “MB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등 집권 당시 초심을 잃지 말고 다시 돌아오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도강화론’ 친서민 행보 드라이브 현장 정치 강화를 강조한 이 대통령의 친서민 정책은 미국을 방문하기 직전인 6월15일 대국민 라디오연설에서 천명됐다.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이 대통령은 현장에서 서민을 만나는 이른바 ‘타운 미팅’을 잇따라 진행했다. 재래시장을 방문해 상인의 손을 잡아주고, 어묵과 떡볶이를 먹었으며, 쌀가공업체를 찾아 쌀국수를 먹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특히 이문동 재래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는 모습에 대해선 “중도 강화론을 행동으로 보여준 친서민 행보의 극치”라는 일부 보수언론의 평가가 따랐다. 교육과 보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의식한 듯 학교와 어린이집, 대학교육협의회 방문도 잊지 않았다. 27일 제20차 라디오 연설에서는 ‘생계형 사면’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서민들이 실생활에서 겪는 애로를 직접 청취하고 해결에 나서는 ‘생활정치’의 일환이라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그동안 상환기간이 되면 소득이 있건 없건 무조건 대출금을 갚아야 해 저소득층의 부담이 컸고 신용불량자도 적잖이 나왔던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주는 제도”라고 평가하면서도 “등록금 인하와 교육재정 확충 등의 근본적인 대책 없이 학자금 대출제도에만 기댈 경우 또 다른 문제에 부닥칠 수 있으며, 최소한 ‘등록금 상한제’ 등을 도입해 적정한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정부가 대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반면에 매년 가파르게 치솟는 초고액 등록금을 어떻게 잡을지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대졸자를 더 큰 등록금 빚더미 시대로 내몰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일방적으로 비판적 지적만 나왔던 정권 출범 초기와는 다른 모습인 것만은 분명하다. 제도 시행을 위한 재원조달도 문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제도 도입을 위해 내년에 6000억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기획재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재 교육당국은 정부 보증으로 한국장학재단에서 채권을 발행해 대출금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큰 얼개만 제시했을 뿐 관련 부처들 간의 협의가 깊지 않아 ‘급하게 내놓은 친서민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숙형 고교 기숙사비 경감대책은 아예 재원조달 방식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7월27일 라디오 연설에서 “대학들이 내년 입학시험부터 논술 없이 입학 사정을 통해 뽑고 농어촌 지역 분담을 해서 뽑을 것”이라면서 “임기 말쯤 가면 상당한 대학들이 거의 100%에 가까운 입학 사정을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한 대목도 학부모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해석하면 3년 뒤인 2013학년도 대학 입시에서는 현행과 완전히 다르게 입학사정관제를 전국 대학에서 전면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인 대입 전형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건들자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이 진화에 나섰다. 이 차관은 연설 직후 “입학사정관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모든 수험생이 입학사정관제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인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선 보수·진보 언론을 가릴 것 없이 “너무 나갔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올해 들어 교육 당국이 입학사정관제 확대를 대대적으로 추진한 결과 2010학년도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을 통해 선발하는 인원을 4년제 대학 전체 정원의 6% 정도로 획기적으로 늘였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요란하지만 비었거나 손해거나 그러나 이 또한 “서민용 단기 ‘전세대책’이 아니라 중장기 ‘건축경기 부양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80%이상의 오피스텔이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택 수 산정에서도 제외돼 종합부동산세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정부의 주택공급은 면밀한 주택수급 계획 아래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전셋값 폭등은 인재가 아니라 주택수급도 조절 못하는 무능한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면서 “보금자리 주택을 전부 임대화하는 등 획기적인 대책이 없고 대규모 재건축·재개발이 주기적으로 계속되는 한 전세대란은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쏟아냈어도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건설되는 임대주택 공급은 되레 줄었다는 비판도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들어 임대주택 공급량(사업승인)이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2007년 14만6000가구에서 2008년 11만6000가구, 2009년 10만6000가구로 줄었다. 올해 국민임대주택 물량은 지난해 6만8000가구에서 4만2000가구로 2만6000가구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정부가 최근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 등을 통해 재건축 시 임대주택 의무 건설 규정을 완화 내지 폐지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재건축으로 늘어난 용적률 25%를 의무적으로 임대주택으로 지어야 했지만 현재는 의무 규정이 없어져 임대 물량이 일반 공급분으로 바뀌고 있다. 무주택자 저소득층에게 임차료 일부를 정부가 지급하는 ‘주택바우처제도’도 유명무실하다. 대통령직 인수위 때부터 서민 주거 지원 방안으로 거론된 주택바우처제도는 당초 올해부터 시범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예산을 배정받지 못해 결국 연기됐다. 올해 들어 국토해양부가 다시 기획재정부에 60억원의 예산을 신청했지만 내년 시범사업이 확정된 것도 아닌 데다 이 예산으로는 수혜 대상이 5000가구 안팎에 불과하다. 정부가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8월25일 발표한 ‘2009년 세제개편안’의 두드러진 특징은 비과세·감면 혜택을 대폭 정비하는 한편 세원 확보를 위해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등 그동안의 ‘감세기조’ 분위기에서 사실상 ‘증세기조’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소득 전문직종 등에 대한 각종 과세 확대가 가격인상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그 부담이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떠넘겨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전세보증금에 소득세를 물리고, 자동차운전학원이나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에 대해 부가세를 부과하는 것도 눈에 띄는 ‘부자 과세’ 방안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선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전세보증금에 소득세를 물리는 방안은 가뜩이나 전셋돈이 들썩이고 있는 상황에서 세금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자동차 전문학원 등 영리학원이나 성형수술 등에 대해 부가가치세(통상 10%)를 매길 경우 이는 곧바로 10%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대형 에어컨, 냉장고, TV, 드럼 세탁기 등 대용량 가전제품에 대한 5% 개별소비세 부과로 이들 상품에 대한 가격이 평균 10만~15만원 인상될 것으로 보여 이 또한 일반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될 몫이다. 정부 안팎에서 “현 정부의 대표적 경제정책 방향인 ‘감세기조’의 큰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갈수록 악화되는 재정의 취약성을 막고, 게다가 ‘친서민’ 정책을 세우려다 보니 비빔밥처럼 엉켜있는 모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민 외치면서 기초보장 예산 삭감
실제로 보건복지가족부는 최근 공익대표, 민간 전문가, 관계 부처 공무원 등으로 구성한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열고 내년 소비자물가상승률 예상치를 반영해 2010년도 최저생계비를 2.75% 오른 136만3091원(4인 가구)으로 결정했다. 이는 실제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도입되고 최저생계비를 결정한 이래 가장 낮은 인상률이다. 앞서 보건복지가족부는 내년도 기초생활보장 예산을 올해보다 157억원 줄어든 3조3014억, 수급인원은 7000명 줄인 162만5000명을 기획재정부에 신청했다. 이태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는 “지난해부터 닥친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 증가 등으로 빈곤층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복지부의 기초생활보장 예산요구액 삭감을 규탄한다”면서 “내년도 중앙정부 예산에 빈곤층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 반영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흐름에 대해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서민 복지를 시스템으로 접근하지 않고 일회성 이벤트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면서 “소득별 범칙금 차등부과 등 정책은 생색용으로 적당할지 모르지만 서민 보호를 위한 근원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8월25일 경향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40%를 넘었음에도 ‘현 정부의 친서민 정책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5%에 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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