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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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먹힌 프랑스 언론 ‘펜의 자유’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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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판 워터 게이트라 불리는 ‘클리어 스트림’ 사건을 조사·폭로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탐사 저널리스트 드니 로베르를 만나 언론 독립 문제를 물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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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로베르(Denis Robert) 1958년생. 전 리베라시옹 기자, 작가, 독립 언론인, 화가, 다큐멘터리 감독. 1995년 리베라시옹을 그만둔 그는 금융권과 정치권 비리를 밝힌 책을 발표해 주목되었다. 그후 프랑스판 워터 게이트 사건이라 불리는 ‘클리어 스트림’ 사건을 조사·폭로해 유명해졌다. 클리어 스트림은 프랑스 정치인들이 불법 무기 거래와 관련해 받은 돈을 룩셈부르크에 있는 금융기관인 클리어 스트림의 비밀 계좌에 숨겨둔 사실을 폭로한 사건이다. 이와 관련해 사르코지 대통령 역시 비밀 계좌를 두고 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는 9월에 신간 에세이 <지배(Domination)> 출판과 그림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1898년 1월13일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는 프랑스 일간지 로로르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실었다. 이 편지는 프랑스와 유럽을 뒤흔들었던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 촉발재였다. 권력에 의해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 에밀 졸라의 글은 감시견(watch dog)으로서 언론의 구실과 힘을 보여줬다. 프랑스 탐사 저널리즘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프랑스의 탐사 저널리스트를 대표하는 기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드니 로베르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정치권의 불법 무기 거래인 ‘클리어 스트림’을 파헤친 기자로 유명하다. 정치권 및 재계 권력과 맞서 싸워온 그에게 권력의 감시자로서 언론의 독립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재벌 그룹과 관련해 프랑스 미디어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가?
프랑스 출판사와 신문사 등 미디어의 90%는 재벌 그룹 소유다. 주로 유명 명품 회사·군수회사·건설사 등이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다(일례로 대표 출판사인 아세트 출판사는 무기상인 라가르데르, 일간지 피가로는 무기상인 세르주 다소, 공중파 채널 TF1은 건설회사인 부이그가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일정한 영향력을 미친다.
어떤 영향력을 말하는가?
예를 들어 우리가 가진 정보를 폭로하지 않을 때 우리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만일 당신이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데 기자가 비리와 관련해 특종을 찾았다고 치자. 이를 만일 보도하지 않을 경우 이와 관련된 이는 당신에게 신세를 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에서 대재벌이 언론을 소유했다는 점은 언론계 처지에서는 큰 장애 요소다. 무기상인 아르노 라가르데르가 거느린 미디어 그룹에서 일하는 기자가 제공하는 정보와 글이 회사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룹은 자신들이 벌이는 사업에 대해 자사 언론을 통해 선전하거나 은폐할 수도 있다.
언론 독립과 관련해 정치권과의 거리 역시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최근 새롭게 나타난 경향은 언론의 사르코필(Sarkophile)이다. 언론이 사르코지 정부의 프로파간다(선전)로서 활용되고 있다. 그 예로 일요일에 발행되는 신문인 르 주르날 디망슈는 지금 휴가 중인 사르코지와 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사진을 실었다. 불룩 나온 배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쉰 사르코지 대통령과 아름다운 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행복한 휴가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은 파파라치가 찍은 컷과 다르다. 엘리제궁에 의해 사전에 준비된 연출 사진이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통해 국민에게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사르코지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언론은 최근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자 문제나 감옥에서 매일 100여 명이 자살하는 사건을 말하기보다 대통령의 행복한 휴가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독립 언론인 마리안·카날 앙세네·누벨 옵스 등이 숨겨진 정보를 폭로하기도 한다. 문제는 작은 언론이 밝혀낸 정보가 사회적인 이목을 끌지 못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이나 유명 언론이 이들 정보를 다루지 않는 이상 크게 주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출된 사진’이 프랑스 언론에 등장하기도 한다. 위는 사르코지 부부의 휴가 모습. |
최근 프랑스에서 언론 자유 문제가 자주 제기된다. 그만큼 언론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는가?
그렇다. 돈이 미디어 세계를 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달랐다. 1939년은 프랑스 언론이 가장 독립적이던 시기였고, 1970년대만 해도 언론의 자유가 잘 보장되었다. 신문 수는 적었지만 미디어 집중 현상 역시 크지 않았다. 내가 리베라시옹에 근무할 때인 1988년에서 1995년까지 프랑스 언론에서 정치권의 금융 스캔들이나 각종 비리에 대한 폭로가 많았다. 보통 정치·경제계 비리를 폭로하기 위해서는 뒷조사를 할 탐사 전문기자와 라디오나 텔레비전, 프레스 에이전시에 일하는 기자 등이 함께 조를 이뤄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다. 오랜 시간과 많은 경비가 드는 일이다. 언론이 정치권과 재계의 비리를 폭로하자 정치권은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이를 판단할 법원은 정치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언론사는 비리 폭로로 인해 당사자로부터 법적 고소를 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정치권의 사정 작업과 언론사가 비리 폭로에 대한 대가를 두려워하면서 탐사 저널리즘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1995년 책을 쓰기 위해 신문사를 그만둔 것으로 안다. 당신이 쓴 책은 클리어 스트림 등 금융계 비리를 다루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 고발된 것으로 아는데.
나는 반복된 소송의 피해자다. 지난 3년 동안 소송 수만 해도 90여 번이다. 룩셈부르크·벨기에 등에서 소송으로 법정에 섰다. 그런데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오는 9월에도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사실 소송비만 해도 엄청나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지지하는 모임이 생겼고 4000여 명이 돈을 모아서 소송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탐사 저널리즘의 경우 비용뿐만 아니라 치러야 할 대가가 크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언론이 진실을 파헤치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대그룹이 방송사나 언론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프랑스의 모습처럼 되지 않을까? 미디어의 독립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인터넷 언론이 강하다고 알고 있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신문의 재정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 6억 유로를 지불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지원에는 평소 정부에 비판적 언론인 리베라시옹·뤼마니테 등도 포함되는 걸로 안다. 언론의 다양성을 위해서다. 사실 6억 유로는 사르코지에겐 큰돈이 아니다. 역시 언론의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을 정도의 돈도 아니다. 개에게 죽지 않을 만큼 먹이를 주는 것과 같다. 최근 언론의 위기는 심각하다. 금융위기 속에서 일간지·지방지는 재정난이 염려스러운 상황이다. 일부 신문은 직원 감축에 맞서 파업을 하고 있는데 지방지인 라 레퓌블리크 상트르는 기자들이 해고에 맞서 파업 중이다. 앞으로 사장 납치도 벌일 것이라고 한다. 언론 특히 신문의 위기에는 독자층이 노화되었다는 점도 한몫 한다. 신문을 사서 읽는 독자층은 노년층이고 젊은 층은 신문 가격이 비싸서 구독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정보를 구한다. 또 인터넷 매체의 급속한 성장 역시 기존 언론 매체를 위협하는 요소다. 현재 새로운 언론 매체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언론이 처한 위기의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사르코지 때문인가?
최근 프랑스에서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의 문제다. 이 문제와 관련해 여러 원인이 있는데 경제 요소가 크다. 프랑스의 신자유주의는 국내외 대재벌이 미디어를 소유하면서 언론이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또 정치적 원인으로는 대재벌과 정치권력의 유착이다. 이들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정보는 점점 통제되고 제한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위기, 언론 자유의 후퇴라는 현실에서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기존 언론 매체가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웹 저널리즘과 글쓰기가 어우러진 새로운 형식의 매체와 함께 젊은 기자들의 저돌적인 보도 태도가 필요하다. 또 프랑스 신문 가격 역시 낮춰야 한다고 본다(현재 프랑스에서 신문 1부는 1.5유로, 약 3000원 정도이고, 한 달에 40유로 즉 8만원가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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