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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선> 2009/10/29 16:08

http://blog.ohmynews.com/yuchangseon/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헌법재판소의 결정

 

 

미디어법의 표결과정은 위법이었지만 그래도 미디어법은 유효하다.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결론이다.


 

헌재는 미디어법의 표결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위법성을 인정했다. 신문법이 제안설명과 질의토론을 생략한 것 등은 국회의사 절차를 위반해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신문법 투표과정에서 대리투표가 있었다는 것도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방송법 표결에서 핵심 쟁점이 되었던 재투표도 일사부재의를 위반해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방송중계를 통해 여기까지 전해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미디어법이 무효가 되는구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방송을 하고 있던 앵커와 기자도 특히 핵심 쟁점이었던 방송법 재투표가 위법이라고 판단한 이상, 미디어법의 무효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헌법재판소의 바른 결정을 촉구하며 1만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그러나 헌재의 재판관들은 우리의 이같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예상을 보란 듯이 뒤집어 버렸다. 헌재는 이렇게 신문법과 방송법의 심의 의결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야당의 무효확인 청구는 기각했다.


 

도대체 표결과정의 위법성이 확인되었고, 그것도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하고 불법적인 대리투표가 행해지면서 통과된 법이 어떻게 유효하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마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논리를 연상케하는 장면이다. 우리의 상식을 파괴하는 헌재의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헌재의 이번 결정과 같은 논리라면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어떻게든 목표만 이루면 되는 것이다. 결과는 잘못된 수단을 모두 용서하고 정당화시켜 줄 것이다. 바로 그 논리 아닌가. 도저히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없는 부끄러운 결정이다.


 

헌재의 결정은 국회에서의 위법적인 표결행위에 대해서도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 앞으로의 상황도 우려된다. 심의 의결 과정에서 위법성이 있든 없든간에, 다수세력은 어떻게든 가결 선포만 하면 된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 헌재 결정에 고무된 다수 세력은 앞으로도 필요하면 제2, 제3의 미디어법 날치기를 하게 될 것이다. 일단 목표만 달성해놓으면 효력을 인정받는데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헌재는 왜 이같이 국민의 법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렸을까. 한마디로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개별 쟁점들에 대해서는 법적 판단을 하면서도, 결국 마지막 결론에 가서는 현실을 의식한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여당이 모든 것을 걸고 통과시킨, 그리고 거대 신문사들이 목을 매고 있는 미디어법을 무효화시킬 경우의 정치적 파장과 부담을 의식한 결과 아니겠는가.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해괴한 결론이 내려질 수 있겠는지 묻게 된다.


 

오늘의 선고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내린 가장 수치스러운 판결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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