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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박정희 ‘혈서’, 친일가요 ‘혈서 지원’의 판박이 (정운현의 보림재)

by 마리산인1324 2009. 11. 7.

<정운현의 보림재>

http://blog.ohmynews.com/jeongwh59/

 

 

박정희 ‘혈서’, 친일가요 ‘혈서 지원’의 판박이

친일, 친일파, 반민특위 2009/11/05 18:52 정운현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사실을 보도한 <만주일보> 1939년 3월 1일자 지면


오늘 점심 무렵에 <오마이뉴스>의 한 후배기자가 전화를 걸어 왔는데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를 하나 발굴했다며 검증을 부탁했습니다.
무슨 자료냐고 물었더니 만주 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혈서’를 썼다는 근거를 찾았다는 겁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박정희의 친일성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근거가 뭐냐고 물었더니 당시 만주에서 발행된 신문기사를 찾았다는 겁니다.
비록 전화 통화였지만 전후사정을 듣고 보니 믿을만해 보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와서 관련기사를 살펴보니 아까 들은 대로였습니다.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에 박정희 ‘혈서’ 관련기사가 실렸더군요.
그간 박정희 혈서설은 이야기로만 전해져와 사실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 기사는 그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만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정희의 혈서설을 처음으로 언급한 조갑제씨의 책 <박정희 1> 표지


박정희의 ‘혈서설’을 처음 공개한 사람은 다름 아닌 보수논객 조갑제씨이며,
문제의 책은 그가 지난 1992년 도서출판 '까지'에서 펴낸 <박정희 1>이 그것입니다.
조씨는 박정희 관련 여러 권의 책을 펴냈는데, 내용이 알찬 책을 여럿 펴내기도 했죠.
특히 박정희의 초기 행적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취재가 훌륭했다고 평가할만합니다.
‘혈서설’은 조씨가 박정희의 문경보통학교 동료교사 유증선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으로,
그동안에도 이에 대한 심증은 충분했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어서 논란만 돼 왔었죠.
제가 알기로는 박정희 연구자 등이 이걸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것으로 압니다.
심지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그런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압니다.
물론 이번에 발견된 것이 ‘혈서’ 자체가 아니라서 조금은 아쉽기는 합니다만,
신문에 실린 혈서 내용만으로도 ‘혈서’ 자체를 찾은 것과 진배없어 보입니다. 

당대의 최고 인기가수 남인수의 음반 제1집
'혈서 지원'을 부른 가수 백년설


박정희의 ‘혈서’를 보면서 저는 일제말기의 유행가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1943년 오케레코드사는 자사 전속가수이자 당대 최고 인기가수였던 세 사람,
즉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 등이 함께 부른 히트가요 하나를 선보였습니다.
그 노래의 제목이 바로 ‘혈서지원(血書志願)’이었습니다.
이 노래의 작사가는 조명암, 작곡가는 당대 최고의 히트곡 제조기로 불린 박시춘.
해방 후 이 노래는 대표적 ‘친일가요’로 평가됐는데요,
작곡가, 가수 등이 이 노래로 인해 친일음악인이란 누명을 써야만 했습니다.
우선 이 노래의 가사를 한번 보실래요?
(가사 앞의 白은 백년설, 朴은 박향림, 南은 남인수, 合은 합창을 말합니다)

1.
白)무명지 깨물어서 붉근 피를 흘려서
日章旗 그려 놓고 聖壽萬歲 부르고
한 글자 쓰는 事然 두 글자 쓰는 事然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2.
朴)海軍의 志願兵을 뽑는다는 이 소식
손꼽아 기달리던 이 소식은 꿈인가
感激에 못니기어 손끗츨 깨무러서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志願합니다

3.
合)나라님 허락하신 그 恩惠를 잊으리
半島에 태어남을 자랑하여 울면서
바다로 가는 마음 물결에 뛰는 마음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4.
南)半島의 핏줄거리 빛나거라 한 피ㅅ줄
한나라 지붕아래 恩惠닙고 자란몸
이때를 놓칠쏜가 목숨을 아낄쏜가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5.
合)大東亞共榮圈을 건설하는 새 아츰
구름을 혜치고서 솟아오는 저 해ㅅ발
기쁘고 반가워라 두손을 合掌하고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 '혈서지원' 음성파일도 첨부했으니 노래도 한번 들어도 보시기 바랍니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근 피를 흘려서...”
‘혈서’ 얘기는 제1절 첫 대목에 나오는 군요.
아마 그래서 노래 제목도 ‘혈서 지원’으로 한 모양입니다.
일장기, 성수만세, 나라님, 은혜, 대동아공영권 등등,
가사 곳곳에 일황과 일본분국주의를 찬양하는 대목이 넘쳐나는군요.
친일성이 짙은 이런 내용의 노래로 지어 뭇 대중들에게 일본군 지원을 부추겼으니
작사-작곡가, 가수 이들을 ‘친일음악인’으로 불러도 별 무리가 없겠죠?

(* 여기서 한 가지 짚고넘어 갈 것은 지난 2006년 6월 국가보훈처가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해
발매한 기념음반에 일제시대 친일가요가 버젓이 수록돼 있어 논란이 인 적이 있는데요,
그 가운데는 바로 이 '혈서 지원'도 들어 있었답니다. 우리 국가보훈처가 이 모양입니다)
 

그런데 박정희의 ‘혈서’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이 노래 가사가 겹쳐지더군요.
시기적으로 박정희의 '혈서'가 먼저니 '혈서지원'을 베꼈다고 할 순 없겟지만,
내용만을 놓고 보면 둘은 마치 판박이 같습니다. 놀랍습니다.  
실지로 그런지 이번엔 <만주신문>에 실린 박정희의 '혈서' 내용을 한번 보시죠.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신경군관학교 2기생 졸업 앨범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 필자가 중국 취재 때 입수해 국내에 처음 공개함


우선 그는 군관학교 입학 자격이 안되자 무리를 해서라도 입교를 자진 희망하였으며,
스스로를 ‘일본인’으로 자처하면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을 밝혔습니다.
나아가 이를 위해 ‘목숨을 다해’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를 ‘혈서’로 써서 각종 구비서류와 함께 군관학교로 보냈다는군요.
세상에 이보다 더한 친일파는 없을 것이며, 이보다 더한 충성 맹세도 없을 것입니다.
이 일로 그는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군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의 맹세가 일황이 아닌 대한민국이었다면 그는 ‘애국자’로 우리역사는 기록할 것입니다.

박정희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 속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 우울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