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9-09-18 오후 07:04:29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77515.html
‘탈취를 통한 축적’ 도시재개발서 금융위기 예견
(18)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1935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에서 지리학을 공부하고 196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196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로 옮겼으며, 1987년 영국으로 돌아가 옥스퍼드대 지리학과의 석좌교수로 있다가 1993년 다시 존스홉킨스대로 복귀했다. 2001년 뉴욕시립대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재직 중이다. 실증주의 지리학에서 출발했으나 곧 마르크스 지리학으로 전환해 <사회정의와 도시>(1973), <자본의 한계>(1982) 등을 썼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1989)을 출간했으며, 자연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정의, 자연, 차이의 지리학>(1996), 자본주의 도시공간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모색으로 <자본의 공간>(2001)과 <희망의 공간>(2001)을 출간했고, 현실 문제에도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신제국주의>(2003), <신자유주의>(2005), 그리고 최근에는 <코스모폴리타니즘과 자유의 지리학>(2009)을 출간했다.
하비는 최근 금융위기를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과정 속에서 초래된 도시 부동산 시장의 위기로 보았다. 상층부의 잉여자본이 도시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입됐지만 중하위 계층 저임금 실수요자들의 구매력 부족과 신용 붕괴로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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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공간은 인간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자본축적을 위한 물적 토대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서구 경제의 침체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의 논리에 따른 공간의 재구성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금융위기의 세계화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대안으로 판명되고 있다. 다른 한편,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새로운 사회공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대안적 공간이 가능한가? 하비는 신자유주의의 타락한 유토피아주의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기보다, 진정한 유토피아적 꿈을 잃지 않고 새로운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공간 개념을 사회이론의 중심으로
공간은 흔히 텅 빈 공간 또는 사물을 담고 있는 그릇 정도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디에도 텅 빈 공간은 없다. 공간은 사물을 비워버리면 남게 되는 그릇이 아니다. 공간은 항상 사물들과 함께하며, 사물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재)구성된다. 마찬가지로 사물들은 공간(그리고 시간)을 떠나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공간 속에서 (재)생성된다. 그동안 사회이론이나 철학에서 이러한 공간의 개념은 무시되거나 간과되어 왔다. 하비가 진보적 사회이론에 기여한 점들 가운데 하나는 공간의 개념을 사회이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하비는 사회적 과정과 공간적 형태 간 관계를 변증법적 관점에서 이론화하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공간과 사회는 각각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상호 관련적 관계 속에서 그 특성을 부여받게 된다. 공간이나 장소는 단순히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통해 생산되고 재현된다. 자연환경 역시 그 자체로서 독립된 가치를 가지지 않으며, 항상 인간 생활과의 관계 속에서 생산되고 재생산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환경을 (재)생산하면서 또한 인간의 본질과 사회 구조도 (재)구성하게 된다.
“금융위기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공간 지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 곧 자본축적의 논리에 의해 (재)구성된다. 하비의 이론에 의하면, 자본은 일차적으로 상품 생산-소비 과정을 통해 순환하며, 이 과정에서 형성된 잉여가치를 축적해 사회적 부를 확대해 나간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달한 노동의 분업은 생산과 소비를 공간적으로 분리시키고, 자본의 축적 과정을 공간적으로 끊임없이 확장하는 한편, 이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부는 일정한 지역들로 집중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흔히 상품 생산의 과잉으로 과잉 축적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자본은 이러한 위기를 회피하기 위하여 도로나 공단, 주택 등 도시 건조환경의 건설에 투자를 확대하게 된다.
도시공간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자본은 현재보다 미래에 발생할 수익을 앞당겨 현가화(예로, 토지의 지대나 은행의 이자와 같이)하여 이윤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용체계의 발달과 금융자본의 지나친 확대로 인해 부동산시장의 거품과 세계적 금융 공황을 포함한 새로운 위기 국면이 도래한다.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 등과 같이 건조환경의 재편성과 이를 통한 축적 과정(하비는 이를 ‘확대재생산에 의한 축적’과 구분하여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고 한다)은 금융자본의 확대로 초래될 위기를 일시적으로 해소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환경의 재편과 ‘탈취에 의한 축적’은 지역 불균등 발전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면서, 결국 제국주의의 팽창과 제국들 간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
현 단계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특히 1970년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도입된 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민영화와 탈규제와 같이 사적 소유의 확대와 자유시장의 확산을 통해 침체된 경제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실제 이 과정에서 세계경제의 성장은 회복되기보다 오히려 위축되었고, 개별 국가 내에서도 복지 지출의 축소로 양극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하비에 의하면, 최근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이로 인한 전세계적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과정 속에서 초래된 도시 부동산시장의 위기로 이해된다. 곧 상층부의 잉여자본이 도시 건조환경의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입되었지만, 실제 중하위 계층의 실수요자들은 저임금에 따른 구매력 부족과 이로 인한 신용의 붕괴로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희망의 공간으로
이러한 자본주의적, 특히 신자유주의적 공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는가?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흔히 모더니즘, 나아가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운동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하비에 의하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 간에는 차별성보다는 연속성이 더 두드러지며,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치경제적 현실과의 직면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재현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으로서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전환 및 시공간적 변화, 자본축적을 가속화하기 위한 교통통신의 발달로 ‘시공간적 압축’ 과정 및 이의 재현이 이루어졌다. 하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하에서 강조되고 있는 장소의 정체성과 ‘차이’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이들은 공간의 구성에 대한 거시적 분석과 결합할 때만 의의를 가진다.
하비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공간을 극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공간에 관한 철학적 의미와 역사적 발전 과정을 우선 다소 추상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사회적 및 환경적 정의를 이론화하고자 하는 한편, 지리적 상상력 또는 ‘공간적 유희로서의 유토피아’를 사회적 관계, 도덕적 질서, 정치경제체제 등에 관하여 흥미로운 사고를 탐구하고 표현하기 위한 창의적 수단으로 강조한다. 다른 한편, 좀더 구체적으로 하비는 과거의 노동운동보다는 탈취에 의한 축적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회운동을 강조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다양한 자유와 권리의 개념들 가운데 어떤 것이 진정한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쟁에서 그가 강조하는 ‘도시에 대한 권리’ 운동은 도시 공간에서 사회적 잉여의 생산, 이용 및 분배에 대한 통제권의 쟁취를 목적으로 한다.
최병두/대구대 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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