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2010.01.15 제794호]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6491.html
세종시와 4대강 배회하는 권력의지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 지방과 미래세대 배제하는 공간 지배욕망 중앙은 분산시키고 강물은 흐르도록 해야 |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잠재해 있다. 잠재된 권력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영구적 소유물이 아니다. 권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른바 권력자는 마치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권력은 누구에게도 오랫동안 잡혀 머물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아다닌다.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권력은 어떤 매개물을 통해 시현된다. 권력은 다양한 매개물을 통해 가시화되면서, 누군가에 의해 누구에게로 작동한다.
권력, 시공간을 매개로 작동
권력의 매개물은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총이나 칼, 핵폭탄, 경찰과 군대, 감옥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단지 명시적으로 드러난 권력의 전통적 도구나 수단들이다. 이러한 폭력적 매체가 아닐지라도, 권력을 매개하는 것은 시공간상의 모든 물질적인 것에서부터 법제도나 언어와 같이 추상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간도 이와 같이 권력을 매개하고 가시화하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가는 공간을 개발하고, 동원하고, 구획하고, 점령하고, 전복시킴으로써 권력을 행사한다.
한 예로 간척사업이 포기된 시화호나 간척사업이 진행 중인 새만금지구는 권력이 행사되었거나 또는 현재에도 작동하고 있는 힘의 장이다. 또 다른 예로, 복원된 청계천은 역사와 자연을 재현한 경관이지만 또한 권력을 상징하고 권력이 행사되는 공간이다. 청계천 복원은 서울 도심에서 사라진 역사적 유물을 복구하고 파괴된 자연환경을 모방한 것이다. 이러한 공간환경의 재현은 이를 추진한 자가 어떻게 권력을 동원했는지를 드러낸다.
권력의 크기나 강도는 복구된 유물이나 재현된 환경이 어느 정도 역사적 또는 자연적 진정성을 가지는가가 아니라, 복구나 재현 과정에서 이를 왜, 어떻게 동원했는가라는 형식에 좌우된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은 시공간적으로 생성·강화·소멸된다. 수천 년에 걸쳐 축조된 만리장성에서부터 복원된 지 겨우 수년 된 청계천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축조되거나 복원·운영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요구되었던가를 숨긴 채 단지 권력의 크고 작은 위대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세종시와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권력 다툼도 그러하다.
현재 여야 간 첨예한 정치적 공방의 쟁점이 되고 있는 세종시는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권력을 매개한 핵심 사항이었다. 충청권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계획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지지표를 획득하는 주요한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세종시는 노무현 정부의 집권 이후 정권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 와중에 중앙행정 기능의 일부가 이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이 확정되었고, 세종시(또는 행복도시)라는 이름으로 건설이 추진되었다.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건설은 비대해진 수도권의 과밀 문제를 해소하고 국가 균형발전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 명분으로 충청권의 지지 세력, 나아가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방들에 잠재한 권력을 동원하려 했다. 그러나 과연 수도권이 국가경쟁력을 훼손할 정도로 과밀한가, 국가 균형발전을 통해 모든 지역과 계층의 사람들이 정말 잘살게 되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미흡했다. 이로 인한 수도권의 지지 세력 상실은 노무현 정부가 결국 정권을 야당에 넘겨주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
세종시, 죽은 권력-산 권력의 다툼
|
||||||
이명박 정부는 집권 과정에서 이러한 세종시 건설의 지속적 추진을 철석같이 약속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 역시 충청권의 표, 나아가 지방 세력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을 획득한 후, 현 정부는 더 이상 죽은 권력의 연장선상에서 지방 세력의 지지를 확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현 정부의 총리는 한 간담회에서 “세종시는 처음에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으로 과거 결정이 잘못됐고, 그것이 정치적 이해득실에 관한 것이었다면 지금이라도 고치는 것이 낫다”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주장은 ‘비정치적’인가?
현 정부는 중앙정부의 행정 기능 일부가 세종시로 이전되면 행정의 효율성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행정의 비효율성은 누구의 입장에서 판단하는가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다.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행정의 비효율성은 충청권의 입장에서 보면 지역 발전의 효율성을 위해 얼마든지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뿐만 아니라 세종시로의 행정기능 이전을 반대하는 현 정부가 주요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위한 혁신도시 건설의 계속 추진을 약속한 것은 얼마나 효율적이거나 합리적이서인가?
현 정부는 세종시로의 행정기능 이전을 반대하면서도, 세종시에 이보다도 더 훌륭한 명품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제안한다. 현 정부는 “행정부처 이전보다는 자족 기능을 보강해 세종시와 대전·대덕·오창·청주까지 포괄하는 커다란 발전 벨트를 만들기 위한 것”이니 믿어달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정치 권력이 서울에 머물러 있는 한, 재벌 기업들이 이전할 리 만무하고, 설령 이들의 일부 공장이 이전한다고 해서 현 정부가 호소하는 대로 갑작스럽게 첨단 과학기술 발전 벨트가 조성되고 자족 기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세종시를 둘러싼 다툼의 쟁점은 중앙 부처의 일부 이전 여부인 듯하지만, 실상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이해관계와 세종시로 상징되는 비수도권 지방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권력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거 지역감정을 동원해 호남과 영남 간 갈등을 유발하고, 이를 매개로 권력을 장악하려 했던 구태의연한 행태의 변형이다. 현 정부에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권력 다툼이 실제로는 수도권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겉으로 국민에게는 죽은 권력에게 헛발질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수도 이전 사업으로 지지 세력을 동원하려 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이른바 대운하 사업으로 그렇게 하려 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집권 초기에 행정수도 이전계획의 위헌판결로 정치적으로 곤혹을 치렀다면, 이명박 정부는 집권해서 채 두 달이 되지 않아 광우병이 우려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아무런 실익이 없는 대운하 사업에 반대하는 국민의 대규모 촛불집회로 인해 머리 숙여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물론 당시에도 일부 추진 세력은 포기한 것이 아니라 중단한 것이라고 못내 아쉬워했다.
4대강, 현 권력 위한 미래의 희생
그런 대운하 사업 대신 4대강 사업이 등장했다. 현 정부는 우리나라 4대 하천이 죽어가기 때문에 수질오염을 개선하고 홍수를 방지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기본사업에만 22조원이 투입되고, 총 30조원이 넘게 소요되는 이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공공사업이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현 정부는 이러한 4대강 사업을 하천정비 사업으로 명명하다가 급기야는 ‘전세계적 환경복원 모델’이라고 선전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델을 조기 실현하기 위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에 대해 국민의 반대 여론은 심상치 않다. 현 정부의 주무부처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58%가 4대강 사업이 대운하와 관계없다는 정부 주장을 믿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의 수질을 개선한다고 하지만, 정작 4대강 사업에는 직접적인 수질 개선 사업이 없다. 대신 사업의 핵심을 이루는 16개 보(洑) 건설은 대운하의 갑문 위치와 동일하다. 이러한 보의 건설로, 대운하와 관계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불신되고 강물의 정체로 인해 수질오염이 오히려 심화되는 4대강 ‘죽이기’ 사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4대강 살리기와 관련된 이러한 수질오염 우려에 대해, 현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이 직접 TV에서 “대한민국의 강 복원 기술은 세계 최고로, 수질오염 얘기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수준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이어 “반대 논리는 간단해 이해하기 쉽지만 설득을 하려니 이야기가 길어져 국민이 잘 이해를 못한다”며 답답해하면서도, 속도를 내어 임기 내에 사업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일부 국민은 우려가 해소되었는지 모르지만, 또 다른 국민은 과거 개발독재 시대로 회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의아해하는 바는 설령 이렇게 해서 하천이 정비되고 수질이 개선된다고 해서, 이것이 국가 경제나 국민 생활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라는 점이다. 한 전문가의 반대 주장처럼, “그 정도 돈으로 맨땅을 팠다가 덮어도 같은 경제적 효과는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과거 노무현 정부가 국토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국가적 결속을 도모하고 지지 기반을 다지려 했다면, 현 이명박 정부는 4대강 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국토를 파헤치고 이에 소요되는 돈을 풀어서 지지 세력을 확보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거 정부가 세종시 사업을 자신의 정권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계획했다면, 현 정부는 정권 기간 내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한다는 점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현 정부가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과거 정부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정권의 임기 내에 사업에 동원되는 돈과 자원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배분하려 하기 때문이다. 반면 4대강 사업을 위해 진 부채와 하천 오염의 심화 우려는 다음 정권, 다음 세대에 전가될 것이다.
사람과 사물의 바른 위치 정해야
권력은 공간과 시간을 분할하고 동원하는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 그러나 권력은 영원히 한곳에 머물지 않고 시공간을 떠돈다. 권력자는 공간을 구획하거나 새로 만들어서 자신의 영토임을 과시하려 하지만, 권력은 결코 한 영토 안에 머물지 아니한다. 그런 권력을 잡기 위한 정치가의 욕망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외형적 경관만 남아 사라진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희생은 고스란히 당대의 약자 또는 미래 세대에게 전가된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은 세종시와 4대강 사업에 대한 대안의 바탕이 된다. 현 정부의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민과의 소통을 무시한 채 공간환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거나 개발하면서 권력을 장악·행사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치란 떠도는 권력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정치란 권력에 내재된 공간적 속성, 공간과 시간을 분할하고 동원한 방식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대안은 과밀한 수도권의 인구와 산업을 분산하는 것, 강물이 자연스럽게 하천을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란 국민과의 합의로 사람과 사물의 올바른 위치를 정해주고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글•최병두
영국 리즈대 지리학 박사. 1989년부터 대구대 지리교육과에 재직하면서, 자본주의 도시공간 및 환경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근대적 공간의 한계> <비판적 생태학과 환경정의> 등이 있고, <자본의 한계> <신자유주의> 등을 번역했다.
'세상 이야기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뷰] 김광수 소장 "문제는 정치다, 이 바보야!"(프레시안100115) (0) | 2010.01.15 |
---|---|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한겨레090918) (0) | 2010.01.14 |
봉이 김선달 뺨치는 정운찬식 '세종시 뻥튀기'(프레시안100112) (0) | 2010.01.13 |
"좌파"의 인류사적 의미 (박노자글방) (0) | 2010.01.06 |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국회 농성 마무리(미디어오늘100101) (0) | 2010.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