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0-06-15 오후 06:55:56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25746.html
[곽병찬 칼럼] 그러는 당신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 | |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다. 학벌, 족벌, 고향도 아니고, 고대인가 비고대인가, 혹은 강남인가 비강남인가를 따지는 것도 아니다. 피아를 식별하고 분리하자는 것이니 갈 데까지 간 질문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한국 현대사가 잘 보여준다. 저쪽으로 분류되면 이유 없이 처형당하거나 체포, 고문, 감금, 격리당했다. 이 물음은 역사적으로 이성과 과학, 합리성과 상식, 토론과 비판을 질식시키는 재갈이었다.
지금 그 질문이 참여연대로 집중되고 있다. 정부의 천안함 사건 진상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고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에 보내 국가적 망신을 사고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정운찬 총리는 국호에서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긴다. 정부 차원의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묻고 싶다”고 했고, 김영선 외교부 대변인도 “정부가 기울이고 있는 외교노력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친정부 단체와 매체들은 참여연대를 이적단체로 매도하며 길길이 뛴다.
한때 유신헌법은 모든 국민의 사상과 국적을 검증하는 최고의 준거였다. 당시 9호까지 일관되게 관철된 긴급조치의 뼈대는 유신헌법의 수호였다.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비방하는 행위는 물론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했고, 이런 행위를 권유하거나 타인에게 알리는 언동을 금지했다. 이 조처를 위반하는 자는 물론 이를 비방하는 자까지도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그 무자비함과 맹목성은 지금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괴물은 박정희의 피살과 함께 사라졌지만, 30여년이 지난 요즘 그와 비슷한 물건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가 그것이다. 지금 이 조사결과는 국가관과 피아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를 부정하거나 의심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연행되거나 체포될 수 있다. 미완의 조사결과가 헌법적 권위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결과는 결함투성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제기한 근본적인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군은 그동안 사건의 진상에 대해 번복에 번복을 거듭해 의구심을 자초했다. 반면 국내외 과학자와 군사 전문가들이 제기한 과학적 전술적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고, 천안함 절단면의 ‘매직 형광등’ 등 상식적인 의문도 계속 제기됐다. 심지어 사건 경위 및 보고내용 조작 여부를 놓고 군 지휘부와 감사원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한편으론 제기되는 의문을 물리적으로 억누르면서 다른 한편으론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시민의 반발을 키웠다. 조사과정에서의 언론플레이와 발표시점 등은 선거 일정과 절묘하게 조응했다. 조사결과 발표 이후엔 온·오프를 막론하고 부정적 의견을 무차별 단속했다. 정부 발표와 다른 내용이 포함된 유인물은 설사 그것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라 해도 압수하고 연행했다. 천안함 침몰과 46명의 장병 순직에 책임져야 할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이정희 의원에게 “북한의 혐의를 씻어주기 위해 애쓴다”고 빈정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분위기 덕이었다.
진실에는 국경도, 피아도 없다. 경계할 것은 은폐와 왜곡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과 관련한 거짓 정보는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고, 국가를 수렁에 빠뜨렸다. 천안함 침몰 사건도 마찬가지다. 의심나는 곳은 당연히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국외라고 해서 침묵해선 안 된다. 그래야 더 큰 화를 피할 수 있다. 침묵의 강요야말로 이적 행위다.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기관지 확장증, 고령, 턱관절염 따위로 병역을 면제받은 대통령과 총리, 국정원장, 체중초과와 폐질환으로 면제받거나 보충역이었던 조·중·동 사주, 그러는 당신은? 유신체제의 유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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