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148호] 2010.07.19 10: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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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ㆍ한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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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최현아 편집위원
얼마 전 프랑스의 상징적인 중도 좌파 일간지 ‘르몽드’는 경영난을 이유로 새로운 경영자를 찾는다고 발표했다. 그 후 후보자들이 물망에 오를 즈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경영자 선정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자기 친구와 관련된 후보자를 거론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르몽드에 대한 국가 지원을 끊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다시 한번 사르코지 대통령의 언론 장악 시도가 프랑스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러나 르몽드가 좌파 컨소시엄으로 이뤄진 후보를 선정해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AP Photo 르몽드 기자들은 돈이 없으면 언론의 독립성도 지킬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PNB에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위는 르몽드 편집진의 편집회의 모습. |
르몽드는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론지로 명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몇 년 전부터 재정난에 시달려왔다. 정기구독자 수가 2002년까지 40만 부를 유지하다가 2003년부터 38만 부로 하락하기 시작해 2009년에는 32만 부로 떨어졌다. 정기구독률이 떨어지면서 르몽드의 적자 규모는 2006년 1400만 유로에 이르렀다. 재정 위기가 가속되면서 신문 운영에 대한 갈등도 불거졌다. 2007년 기자협회가 경영진의 경영전략을 비판하면서 2008년 예산 편성에 대한 투표를 거부한 것. 이에 따라 경영진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하면서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결국 2010년 6월, 갚아야 할 부채 규모가 8000만~1억2000만 유로에 달한 르몽드는 새로운 인수자를 찾게 되었다.
기자들의 권한이 살아 있는 르몽드
르몽드가 새로운 인수자를 찾는다고 발표하자 여러 곳에서 관심을 표명했다. 첫 번째 후보자로 은행 사업가이자 음악잡지 <레 인트로커터블>의 소유자 마티외 피가스, 매거진 메디아파르트의 주식 보유자이면서 인터넷 회사 프리의 설립자인 자비에 니엘, 리베라시옹 주식을 보유한 사업가 피에르 베르제를 비롯한 3인의 좌파 성향 컨소시엄(세 사람의 이니셜을 따서 PNB라 부른다)이다. 두 번째 후보는 주간 매거진인 누벨 옵세르바퇴르 그룹을 소유하고 있으며 프랑스 텔레콤(오항주) 지분 20%를 소유한 클로드 페르디엘이다. 그 외 해외 기업도 르몽드 인수에 관심을 나타냈다.
그런데 후보 심사 과정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개입 논란이 벌어졌다. 프랑스 우파 주간지인 <르포앵>에 따르면 사르코지 대통령이 르몽드 사장인 에릭 포토리노를 엘리제궁으로 불러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거명했다는 것이다. 사르코지는 자신의 친구인 프랑스 텔레콤 사장과 가까운 클로드 페르디엘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만일 이 후보를 선정하지 않을 경우 르몽드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그동안 르몽드의 인쇄시설 현대화를 지원해왔다.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사르코지 대통령의 언론 장악 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를 두고 해외 언론들은 ‘사르코지의 베를루스코니화’라며 우려를 표했다. <타임> 프랑스 주재원인 샤를르 브레무네 기자는 “사르코지가 프렌들리화를 통해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 사르코지는 한 개의 언론사만 존재했던 드골 시절보다 언론의 자유를 더 존중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AP Photo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
취임 후 사르코지 대통령은 공영방송인 프랑스 텔레비지옹 대표를 직접 임명하면서 스캔들을 일으켰다. 또 최근에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정책을 비판해온 스테판 기용 등 인기 유머리스트(해학가)들의 방송사 퇴출에 간여해 또 다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르코지의 르몽드 장악 시도에도 불구하고 르몽드의 감시고문위원회는 좌파 컨소시엄인 PNB를 최종 인수자로 선정했다. 이는 르몽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르몽드는 프랑스 언론 가운데 AFP와 함께 기자의 권한이 가장 강한 곳이다. 프랑스 언론매체에는 거의 모두 기자협회가 존재하지만 르몽드의 기자협회는 여느 협회와 다르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회사 운영에 참여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즉 회사 경영 및 조직 구성과 관련해 참정권을 발휘할 수 있다. 기자협회의 권한이 가장 강력했던 시기는 2007년 르몽드 대표 임명을 거부했던 때다. 당시 경영자 후보였던 장 클로드 콜롬바니는 그룹화를 통한 기업 확대로 기자들과 각을 세웠다. 결국 기자들은 콜롬바니의 경영대표직 임명을 반대해 이를 관철했다.
기자들이 사르코지에게 승리한 것일까?
르몽드 기자들의 힘은 새로운 인수자 선정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최종 후보를 선정하기 위해서 각 후보자들은 르몽드 인수 프로젝트를 기자들 앞에서 구두로 발표해야 했다. 그리고 제출된 서류는 르몽드의 감시고문위원회의 투표와 기자협회의 60% 찬성을 얻어야 최종 확정될 수 있다. 르몽드의 감시고문위원회는 내부 위원 10명과 외부 파트너 10명으로 구성되며 두 달에 한 번 르몽드 운영에 관한 회의를 개최했다. 20명 위원 가운데 회사 경영진은 16명이며, 기자협회 소속 기자도 2명 참여한다.
인수자 선정 과정에서 기자들은 PNB 컨소시엄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것은 르몽드의 편집권 독립을 좀 더 보장받을 수 있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페르디엘 후보는 기자협회 기자 수를 줄이겠다고 발표해 기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런데 르몽드의 경영자 선정 결과가 단순히 사르코지의 언론 장악에 맞선 저항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 시사 주간지 <마리안>은 르몽드 기자들이 어쩔 수 없이 PNB 컨소시엄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기자들 시각에선 어떤 후보도 사실 진정한 르몽드의 후임자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기자들이 PNB를 선정한 것은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것. 경제위기에 맞서 기자들이 홀로 설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언론의 독립성도 결국 돈이 없으면 지킬 수 없다는 기자들의 위기감 속에서 이뤄진 마지막 선택인 셈이다. 새 경영자를 맞이하면서 기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누려온 권력을 앞으로 잃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르몽드는 또 다른 기로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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