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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펌]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사상 정리

by 마리산인1324 2010. 9. 29.

- 2008년 6월 4일 -

 

http://blog.daum.net/jjc4012/14704938?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jjc4012%2F14704938 에서 퍼왔습니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사상 정리


 

Ⅰ.서론

 

1. 생애와 저작

   데이비드 흄은 1711년 에든버르에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하고 새인트 클레어 장군의 비서로, 나중에는 허트퍼트 경(Lord Hertford)의비서(1767-1769)로 봉사했고, 에든버르에서 법학부의 사서(1752-1757)로, 정부의 차관(1767-1769)을 지냈다. 그는 1769년부터는 세상에서 물러나 개인적인 생활을 했다. 그의 첫 번째 철학적인 저술「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문」은 그가 23세 때 쓴 것이다. 이 저서는 완결되어 있질 않다. 흄은 이걸 고쳐써서, 그의 원숙하고 유명한 두 가지의 저서가 생겨나게 했다. 즉 「인간오성론」과「도덕원리론」이 그 두가지이다. 유고로는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가 있다. 영국 대사관의 일원으로서 파리에 두 번째 체류하면서 그는 루소, 디드로, 올바크, 튀르고, 달랑베르를 만났고, 루소에게 영국을 방문해 달라고 권하기도 했다. 1776에 그는 죽었다.


2. 흄의 위치

   영국의 경험론은 데이비드 흄에 의해서 완성되고, 그로부터 혁명을 밀고나가는 힘을 받아들인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라이프니츠에게 이르기까지의 유럽의 형이상학의 전통과 단호하게 인연을 끊고, 형이상학에 적대하는 근세철학의 많은 형식들을 낳는 발전을 끌어들였다. 소위 근세철학의 창시자는 칸트가 아니라 흄이다. 왜냐하면 흄이야말로 칸트를 <독단의 선잠>에서 깨어나게 해준 사람이고, 도 칸트와는 달리, 실증주의를 조금도 버리지 않고, 순수한 사실성만을 아무런 제한도 없이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흄에게 있어서는, 애초부터 그리고 두말할 나위도 없이, 철학은 인간에게만 한정되어 있다. 「인간오성론」의 첫째 문장은 「정신의 철학 또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학문은...」이라고 쓰여져 있다. 칸트는 선험적인 법칙을 다시 끌어들이고, 더 나아가서는 <요청>까지 끌어들인다. 그러나 흄과 그 후계자들은 <이 땅에> 충실히 머무른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계열의 분파 중에서는 「만약에 신들이 있다면, 나도 신이 아니고 어찌 견디랴!」라고 말한 사람도 있게 된다.


Ⅱ.본론

 

   흄의 가장 획기적인 특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그의 과격한 경험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모든 경험적 지각을 인상과 관념으로 분류한다. “우리는 가장 강력한 힘과 강렬함을 가지고 들어오는 지각을 ‘인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나는 영혼 속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모든 감각, 정열, 감정도 여기에 속한다고 본다. 그러나 ‘관념’은 생각하고 추리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희미한 이미지를 말한다. 또한 흄은 모든 단순한 관념은 그것과 비슷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복잡한 관념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순한 인상으로부터 단순한 관념을 얻고 있지만, 그 관념이 꼭 단순한 인상과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간 지식을 위한 확실한 근거를 인상과 관념에 국한시키는 데서 오는 논리적 함축의미를 탐구하면서 객체의 존재, 연속성의 개념, 자아의 개념, 귀납법의 정당성 뿐만 아니라 지금가지 거의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인과론의 근거까지 의심하게 된다. 그의 철학을 그냥 경험주으라고 부르지 않고 ‘과격한 경험주의’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1. 경험주의적 방법론

   흄은「영혼 불멸에 대하여(On the Immortality of the Soul)의 초두에서 그가 『논총』에서 전개한 주제를 명백히 제시한다. 그것은 사실에 대한 모든 추리는 절대로 선험적으로 결정될 수 없으며, 오직 직접적 지각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즉, 우리는 어떤 물체가 뜨겁다거나 어제 한 일을 생각하는 등의 직접적 경험은 감각이나 기억을 통해 알 수 있고, 인과적 추리를 통해서는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인과적 추리도 역시 경험적으로 획득된 것일 뿐이다. 흄의 이런 경험주의적 방법론은 뉴턴의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그대로 인간학에 적용시키려는 시도에 근거하고 있다. 물론 흄도 자신의 이런 경험적 방법이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우선 그런 방법론은 인간 지식을 제한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예를 들면「역사 연구에 대하여」에서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인간 지식의 한계를 과거를 고찰함으로써 확대시킬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험적 방법의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경험 이상의 어떤 지식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영혼 불멸에 대하여」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직접 지각할 수 없으며, 우리는 하느님과 자연계 사이의 지속적 연속성을 발견할 수 없으며,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어떤 인과 법칙도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서 흄은 자신의 경험적 일관성이라는 전제― 즉, 자연의 일관성이라는 젠제― 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2. 심리주의적 인식론

  흄의 지각을 두 가지 다른 차원에서 구별짓는다. 그 한 차원의 구별이 내적 지각과 외적지각의 구별인데, 외적 지각이란 우리의 감각기관이 외부 사물과 직접 접했을 때 생기는 감각경험을 말함이고 내적지각이란 우리의 내부에 남아있는 경험내용을 내성적으로 떠올릴 때 생기는 내적경험을 말한다. 인상과 관념의 구별은 이와는 또 다른 차원의 구멸이다. 흄에 의하면 경험이 인간의 일차적인 의사능력이다. 그의 철학에서 경험의 기본 단위는 ‘단순지각’이라 불리는 개별적 경험들이고 이 개별적 경험들은 또 인상과 관념으로 나뉘어진다. 내적인 것이든 외적인 것이든 지금 내가 경험할 때 갖게되는 생생함과 활력을 그대로 간직한 것이 인상이고, 그 경험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생함과 활력이 약해진 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관념이다. 어떤 것을 실제로 지각하는 것과 그것이 없는 곳에서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구별된다. 바로 이 점이 흄이 말하고자 하는 인상과 관념의 차이점이다. 말하자면 순간적이거나 순간적이 아니더라도 극히 짧은 시간만 지속하는 인상이 우리의머릿속에 하나의 상으로 남아있는 것이 관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 대부분의 생각들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관념들이다. 관념이 생각을 구성하는 단위이긴 하지만 원초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더 원초적인 것은 그 관념을 있게 한, 또는 그 관념을 낳은 원인으로서의 인상들이다. 따라서 인상과 관념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은 아니지만 다만 그 생생함의 정도에서만 다르다고 하겠다. 관념은 말하자면 시간적으로 인상보다 후에 생기는 인상의 복사물이요 재생물이다. 그러므로 인상이 없는 곳에서는 관념이 생길 수 없다.

 

  흄에 의하면 인상, 그리고 인상에서 유래된 관념이 우리의생각과 믿음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까지 구성해주는 기본단위들이다. 흄은 인식론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이 두 기본 단위에 비추어 해결하고자 생각했다. ‘생각’으로 통칭될 수 있는 일체의 심적 현상들이 모두 관념들로 구성되고, 또 관념들은 모두 인상으로 환원될 구 있다는 것이 흄의 기본 입장이었다. 그는 물질이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당시 과학의 가설(입자가설)에 발맞추어 우리의 마음과 마음의 현상들도 모두 인상과 관념이라는 원자적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흄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가 평소 가지고 있는 많은 관념들은 따라서 그 출처가 반드시 있게 마련인 것이다.


3. 감성적 가치관

   흄은 감성적 가치관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선과 악, 미와 추를 어떤 '지적직관'에 의해 알 수 있다는 입장을 배격라고, 그들은 오직 담성적 평가의 대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선과 악, 미와 추에 대한 판단은 오직 우리들이 승인하거나 반대하려는 감정일 뿐 아니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속성과 추한속성, 바람직한 속성과 불쾌한 속성의 경우와 진위의 경우는 동일하지 않다. 전자의 경우에, 인간 정신은 객체를 있는 그대로 개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인간 정신은 동시에 그 개관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불안함, 찬성과 비난의 감정을 느끼며, 이 감상이 거기에다가 아름다운 속성과 추한 속성, 유쾌한 속성과 불쾌한 속성이라는 별명을 추가한다.  그러나 '감정으로서의 평가'라는 흄의 주장은 결국 우리가 선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어떤 객체에서 선이나 아름다움이라는 기술적 속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로 빠지게 된다. 

 

   결국  미적 평가에 대한 흄의 분석은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우리들의 판단은 단지 승인과 반대의 감정이고, 그리고 우리가 평가를 감정일 뿐이라고 인정할 때 우리는 감정이 평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측면이다.


4. 자연주의적 인간관

   자연주의적 인간관은 믿음과 정열에 대한 그의 결정주의적 견해에 잘 나타난다. 물리적 힘이 육체와 물질을 지내하듯이, 그는 이와 비슷한 힘이 인간의 욕망, 감정, 신념, 정열을 지배한다고 본다. 이런 뜻에서,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동정하고, 악한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고, 불이 지금까지 뜨거웠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뜨거울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 등은 전혀 우연이 아니라 인간성의 일반적 힘에 부합되는 것이다. 흄이 「자살에 대하여」에서 모든 사건은 인과적으로 결정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람의 자살 결심도 그를 자살로 몰고 간 여러 가지 불행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법칙의 위반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면 우리들의 일상적 신념과 정열과 관념을 구성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1) 연합

  흄은 모든 문제를 일종의 완전한 심리주의를 통해서 해결한다. 어떤 대상을 정의할 때, 우리들이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는 여러 징표들이 서로 뒤얽혀 있다는 사실을 결정지어주는 것은, 사물들의 객관적인 존재내용, 그 형태, 그 본질, 및 그 의미구조가 아니라, 생각(표상)을 하는 주체의 심리적인 작용양식이다. 흄의 의식내용의 중력 같은 것을  설정하려고 했다. 우리는 간단하게 뉴턴에게 있어서의 중력이 흄에게 있어서는 연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합은 그저 마음의 근본법칙일 따름이다.

 

  그리고 흄은 그 근본 법칙에는 세 가지의 형식이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들의 의식내용은 비슷함의 법칙,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의 접촉의 법칙 및 인과의 법칙 등에 따라 서로 결합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결합을 할 때의 과정은 언제나 순수히 기계적이다. 흄은 계속해서 연구를 해나가는 동안에, 인과의 관념을 시간과 공간 안에서 두 가지의 사건이 규칙적으로 잇달아 일어나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비슷함과 시간-공간적인 접촉이라고 하는 첫 두 가지의 관념결합만이 남게 된다. 또 이 두 가지 중에서 비슷함의 연합은 단순히 상상적인 관념을 비교하는 데서, 즉 수학적 - 기하학적인 과학들에서 그 본래적인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사실과학의 세계 전체에 있어서는 시간-공간적인 접촉의 연합만이 법칙으로서 남게 되는데, 사실과학의 세계에서는 이 법칙에 따라 모든 것이, 특히 사물이나 실체의 관념과 인과 관계가 설명된다. 접촉의 연합이 성과를 거두는 것은 경험의 문제이지만, 흄에게 있어서는 경험이란 거의 관습과 같은 것이고, 언제나 기계 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흄은 세계와 학문의 모든 질서가 이런 순전히 심리적인 요인에 바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적인 것이 존재적을 밀어내고, 지난날의 형이상학의 자리에 심리학이 들어서는데, 이때의 심리학이란 기계론적으로 이해된 심리학이다. 이렇게 해서 학문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견해, 즉 경험론적-심리학적인 견해가 생겨난다.


5. 회의주의

  흄의 회의주의가 갖는 의의 중 하나는 그것이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거의 절대화되던 시대조류에 반기를 들로 오히려 이성에 대한 불신임을 선언하였다는 데에 있다. 흄도 뉴턴의 과학적 업적을 누구 못지 않게 높이 평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스러운 업적을 낳은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그 정반대로 아주 낮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흄의 기본적인 생각이었고 그 생각이 바로 그의 회의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근대적 인간의 이상적 모습을 흄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그가 파악한 현실적, 실천적 인간상은 오히려 이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물론 이성이 인간에게만 고유한 지적 능력임을, 그리고 온갖 과학적 업적들이 이성에 의하여 이룩되었음을 그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성이 인간 또는 인간사의 전부이거나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거의 결정적인 원리인 양 생각함은 착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의 이러한 지적에는 이성의 능력을 사실 이상으로 과대 포장한다거나 과학의 업적들을 불변의 진리인 양 절대시하는 근대적 인간의 자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고 하겠다. <이성의 빛>에 의하여 절대 확실한 지식의 획득이 가능하다는 데카르트적 사유는 인간에게 근거 없는 희망을 심어주었고 또 그럼으로써 또 하나의 이성에 의한 독단이 탄생하였다는 것이 근대적 사유에 대한 흄의 진단이었다.

 

  1) 인성론과 회의주의

  흄이 이『인성론』에서 하고자 하였던 철학적 작업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본성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뉴턴이 자연의 본성을 실험적인 방법으로 밝혀 놓았던 업적과 유사한 업적이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서도 나와야 한다고 흄은 생각하였고, 또 자신의 철학적 작업이 바로 그러한 업적을 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일반적으로 흄의 철학에는 어떠한 적극적인 프로그램도 없다고 알려져 있거나, 설혹 있다 하더라도 별 내용이 없거나 미미한 것이어서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있다. 그래서 흄은 기존의 형이상학 일체를 회의시하고 파괴만 하려 하였던 철학자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흄 철학에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요소는 더 근원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예비적 고찰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흄 철학의 더 근원적인 목적이란 뉴턴이 수립한 자연학 또는 자연철학에 버금가는 <인간과학>또는 <인간학>을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흄은 자신의 회의주의적 또는 부정적 작업이 인간의 본성을 밝혀 줄 인간학을 수립하는데 필수적으로 거쳐 가야 할 준비단계 쯤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부정적 작업이 수행된 곳이 바로 그의 인식론이다. 그래서 그는 『인성론』의 서두인 제1권 전체를 인식론적 고찰에 바쳤던 것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과학을 세우자면 그 기초로서 인식론이 공고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흄의 신념이었고, 더 나아가 인간에 관한 단순히 그냥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히 혁명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흄의 신념이었다.


6. 흄의 윤리관

 

1) 윤리적인 원리

  흄은 윤리학에 있어서도 경험주의자이다. 「자연과학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이제 체계와 가설에 대한 정열에서 풀려나 경험으로부터 받아들인 증명 그것들만 따르려한다. 이제야말로 도덕을 연구할 때도 똑같은 개혁을 하려고 애쓰고, 또 그것이 아무리 풍부한 정신을 가지고 있고 예리하다고 하더라도, 사실과 관찰에 바탕하고 있지 않은 체계는 거부할 때다」이 말은 「도덕원리론」첫 머리에 나오는 흄의 말이다. 제1장 「도덕의 일반적인 원리에 관해서」는 당장 윤리적인 원리론을 다루고 있으나, 흄은 우선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개인적으로 가치있는 것이라고 일컫는 것, 즉 옛날에는 덕론이라 불리었고 오늘날에는 가치론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을 이룩하고 있는 정신적인 성질의 복합체를 분석하려고 한다. 그 다음에 그가 비교하는 관찰을 통해서 밝히려고 한 것은, 모든 존중할 만한 성질들 또는 싫어해야 할 성질들이 어디에서 일치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치점으로부터 우리는 윤리학의 바탕을 얻어내고 보편적인 원리를 정립할 수 있다.

 

  흄은 가치가 있는 성질들을 네가지 그룹으로 나누고 있다. 1)사회에 유익한 성질, 즉 호의와 정의(제2,3장). 2) 우리들 자신에게 유익한 성질, 즉 의지력, 근면, 절약, 체력, 이해력 및 다른 정신적인 능력(제6장). 3)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쾌락을 주는 성질, 즉 기쁨, 관대함, 품위, 용기, 평정 및 착한 의지(제7장). 4)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쾌락을 주는 것, 즉 겸양, 좋은 행실, 예의바름 및 기지(제8장). 이런 가치들이 모두 일치하는 곳은 쾌락과 유익이 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근거를 알게 되었다. 흄은 행복주의자요 진정한 쾌락주의자요 공리주의자이다. 「유익한 것이 즐겁고, 우리들의 동의를 얻는다. 이것은 일상적인 관찰을 통해서 증명된 사실이다. 그럼 무엇을 위해 유익하다는 말인가? 분명히 그 어떤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다(「논고」Ⅱ,206=「원리론」 60).


2) 이기주의

  흄은 홉스의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에는 찬동하지 않는다. 물론 흄에게 있어서도 개인의 이기심이 윤리의 원리로 된다. 이런 것은 가치의 표를 보면 당장 알 수 있는 일이다. 행복과 공리성의 개념은 이런 것을 전제하고 있다.


3) 공동선

  공동선도 있다 .모든 유익한 것은 그 어떤 사람의 행복과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한 나머지, 그럼 누구의 행복과 관련되어 있단 말인가 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우리들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동의ㅡ는 다른 것으로 번져나가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다」(「논고」Ⅱ,206=「원리론」 60). 그는 개인의 이기심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이 우리들과 아무리 관계가 멀다고 하더라도, 실제적인 윤리의 현실에 있어서는 윤리적인 감정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고려해서 동의해주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공동선의 여러 가지 덕들에 대한 윤리적인 느낌은 이런 본질에 들어맞는 천성적인 바탕이라는 것이다.

 

4) 도덕적인 행위

  흄에게는 윤리적인 선택의 자유가 없다. 우리들의 행위는 피할 수 없는 인과관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근세의 기계론적인 세계상이 다시 나타난다. 인간은 외부의 자극을 받는다. 이 자극은 인간의 정서에 작용을 하고, 그러면 알맞은 반작용이 생긴다. 도덕적으로 동의란다는 것은 뒤에 와서 확인하는 것이요, 그렇게 이름붙인 것이다. 즉 생긴 일이 우리들의 경향과 이익에 일치되느냐 일치되지 않느냐하는 물음에 대한 반성에 바탕해서, 도덕적인 동의는 성립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자의적인 것인,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성질들에 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에 대해 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거의 도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언어들에서 이런 이름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다른 여러 설질들과 나란히, 우리들이 당장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용기, 평정, 인내, 자제, 등의 성질이다」(「부록」Ⅳ). 이 부록Ⅳ에 들어 있는 이런 저런 주의 사항들은, 흄이 참된 윤리적인 가치와, 다른 가치 및 재물들, 그리고 단순한 가치의 기초 등을 구별할 줄을 몰랐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한 책임은 그의 이론, 즉 일반적인 공리주의와 행복주의가 져야 할 것이다.


Ⅲ.결론


흄의 영향

  흄의 철학 저작들은 이중적 측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로는 애덤 스미스를 친구이자 추정자로 얻어 그의 고전적인 영국 국민경제학연선, 그리고 벤담이나 밀과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등장에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밀의『논리학 체계』는 전적으로, 흄의 이론철학에서 프로그램으로 도출된 것을 체계적으로 논술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귀납논리의 체계는 단어와 문장의 논리 및 삼단논법에 대하여 경험과 경험적 탐구의논리라는 보완물을 제공하다.  경험과학에 대한 흄의 낙관주의적 옹호가 영향을 미쳤던 콩트의 실증주의와 나란히 바로 여기에서 현대적인 과학이론과의  연관이 나온다. 분석적인. 즉 선험것으로 참인 명제들과 종합적인, 즉 경험적으로 참이거나 거짓인 명제들 사이를 엄격하게 구분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 그리고 필연적 관계들이 우리의 경험적 지식의 대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역접적으로 시비를 걸고 있다는 사실등으로 흄은 비엔나 서클의 신실증주의와 아울러 에어같은 현대 경험주의의 원조로 간주되는 명예를 안았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흄은 오늘날까지 그에게 부당하게 붙어다니는 오해를 통해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런 오해에 따르면 흄은 인식론, 도덕 또는 신학에서 회의론을 대표하며, 적어도 그 방면에서 회의적인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미 살아있을 때 흄은 리드나 비티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 학파 안에 적대층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들은 상식에 의거하여 흄의 회의론에 대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독일에서도 흄은 자기를 원흉으로 찍은 회의론자라는 명성을 통해 영향을 주었다. 하만(Hamann)은 흄의 철학에서 계몽주의의 합리론이 자체적으로 파탄에 빠지는 것을 목격했다. 바로 그 때문에 하만은 자신의 반합리주의에 유리하게 흄을 끌어들였는데, 마찬가지로 야코비도 흄의 동기를 완전히 거꾸로 방향전환 시켜 이 스코틀랜드 철학자를 경건주의의 영감에 가득 찬 자신의 신앙철학의 공범 증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오직 칸트만이 흄의 자극적인 도발을 통해 생산적인 결론을 이끌어냈다. 흄이 자신을 독단론의 수면에서 깨워냈다는 칸트의 유명한 언명은 어떤 경우든 흄 해석의 모범으로서 ,독일에서는 신칸트학파를 통하여 재생되어 20세기 내내 그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이 해석 모범에 따르면, 흄의 경험론과 칸트의 선험론적 경험이론은 독단적 형이상학의 극복으로서 공통되지만, 칸트가 흄에 반대하여 필연적 연결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경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또 증명해야 한다고 믿는 한 이 두 사람의 작업은 경쟁관계에 있는 셈이다. 칸트가 뜻하는 바는 그런 조건들이 경험에서 유래할 수는 없으지라도 경험 자체를 위해 유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반론은 그 둘 가운데 누가 ‘원인’-‘결과’의 개념에 대해 더 정확한 설명을 했느냐 하는 문제로 첨예화된다. 그리고 여전히 존립하는 문제들 속에서도 인지된다.

 

  즉 인식론이라고 하는 독자적인 철학분야가 있는가 아니면 있을 수 있는가, 또는 인식논거 문제에 대한 대답들은 일종의 인식심리학에 의해 대답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라는 문제들을 보면 둘의 대립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두 번째 문제의 경우 흄이 구상했던 인간 본성의 과학은 그 학설상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유형 면에서 선구자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Ⅳ.참고문헌

1) 오트프리트회페, <철학의 거장등2>, 김석수외4 옮김, 한길사, 2001. pp. 414-415

2) 프랭크틸리, <표준 서양 철학사>, 김기찬옮김, 현대지성사, 1999. pp. 467

3) 휠쉬베르거, <서양철학사 下권>,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2002. pp.303-304, 307-309, 319-321, 323-324

4) 데이비드 흄외 지음, <데이비드 흄의 철학>, 황필호 편역, 철학과 현실사, 2003. pp.38-44

5) 김효명, <영국경험론>, 대우학술총서 526, 아카넷, 2001. pp.61-62, 7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