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사상 이야기/종교

한 여성신학도의 눈으로 본 경계인 김재준 /구미정

by 마리산인1324 2010. 9. 30.

 

 

한 여성신학도의 눈으로 본 경계인 김재준

 

 

 

구미정 교수(숭실대학교 겸임교수/기독교윤리와 여성학)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고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사라지리라

 

 

- 함민복, “꽃”,『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I. 문지방에서 흐르는 생명수

 

이 시대에 신학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예언자 에스겔이 포개져 떠오른다. “악기 잘 다루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노래 잘 부르는 가수”(에스겔 33:32 참고) 같던 에스겔이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아니, 부를 수가 없다. 바벨론 제국에게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민족 정체성이 완전히 말살되었다. 그것이 터하고 있던 야훼 하나님 신앙이 철저히 오염되고 해체된 마당에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시편 137:4)

 

만약에 예루살렘이 건재했다면 지금쯤 성전에서 제사장 노릇을 제대로 해볼 나이다. 유대 명문 귀족가의 자제로 스물다섯 살에 제사장 인턴 과정을 시작했을 적에는 전도유망한 장래가 보장되어 있던 그였다. 그랬던 에스겔이 피정복자 포로 신분으로 그발 강 대운하 사업에 동원되어 있으니, 도대체 무슨 노래가 나온단 말인가?

 

가진 것이라고는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머리밖에 없다. 힘과 세(勢)로 밀고 들어오는 강자 앞에서 마냥 주눅 들 수밖에 없는 초라한 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은 스스로를 ‘제사장’이라 부르는 데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에스겔 1:3) 바빌론 정복자들의 눈에는 일개 포로 노동자일 뿐인데, 그는 그러한 외부 규정에 자기를 넘겨주지 않는다. 그에게는 안에서 강고하게 다듬어진 확고한 정체성이 있는 탓이다. 요컨대 에스겔은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보여주신 환상”(에스겔 1:1)에 입각하여 ‘나’를 규정하고 역사를 바라보며 시대를 해석한다. 나라는 빼앗기고, 성전은 무너지고, 아내는 죽고, 직업은 잃었지만,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서 애써 자존심을 곧추세운다. 역시 비전(vision)이 중요하다.

 

하늘을 향해 열린 눈으로 그는 무엇을 보는가?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본다.(에스겔 37장) 사방에서 하나님의 생기(生氣)가 불어오는 환상을 본다. 영적으로 회복된 ‘남은 자들’이 전쟁과 폭력과 반목과 적대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화해와 치유, 일치와 연합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주체세력이 되는 환상을 본다. 급기야 그토록 염원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는 환상을 본다.

 

성전에서 졸졸졸 물이 터져 나오는데, 그 물은 흐를수록 불어나 발목에 차고, 무릎에 차고, 허리에 차고, 그러다가 마침내 헤엄쳐야 건너는 강물이 되더란다.(에스겔 47:1~12) 그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산천초목이 살아나고, 온갖 생물이 번성케 되니, 과연 생명수가 틀림없더란다. 여기서 물이 터져 나오는 최초의 발원지가 ‘문지방’(threshold 또는 liminality)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에스겔 47:1) 제단도, 바깥뜰도 아니고, 하필이면 문지방이다! 문지방은 안과 밖의 경계다. 안에서 그것을 넘으면 밖이요, 밖에서 그것을 넘으면 안이다. 안팎을 나누되 벽처럼 무섭게 가르지 않고, 안팎을 잇되 문처럼 요란하게 잇지 않는 고요한 경계가 바로 문지방이다.

 

만약에 성전 제단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면 제사장의 어깨에 힘 꽤나 들어갔겠다. 반대로 성전 바깥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면 세상을 살리는 건 복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선동에 힘이 실릴 수 있다. 헌데, 용케도 문지방이다. 문지방 밑에서 최초로 터진 물이 성전 안으로 흘러 들어가 제단을 감싸고 돌더니 이내 밖으로 흘러 나간다. 그 물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데, 곧 ‘동쪽’을 향하더라는 것이다.

 

왜 동쪽인가? 거기에는 사해(死海)가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생명이 깃들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버려진 땅, 지옥처럼 고통스러운 세계(苦海)가 생명의 장소, 생명을 낳고 키우는 모태(母胎)로 변화한다. 단지 성전에서 흐른 물이 들어가 섞였을 뿐인데, 죽어 있던 모든 것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식민지 조선 땅에 태어나 어쩌다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 선생이 된 김재준에게 평생 하나의 꿈이 있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소성대(以小成大)”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서 “창조의 모습대로 인간 회복”을 꿈꾸며 또 이를 구현하기 위해 “거룩한 열심”을 내었던 김재준은 그 자신이 한국교회의 문지방이었다. 그에게서 분출해 나온 생명의 물은 소위 보수 정통 근본주의라는 박제화된 신학사조에 갇혀 스스로를 교회 안으로 유폐시킨 사람들을 지나, 엄혹한 분단과 서슬 퍼런 독재의 야만이 광기를 부리던 바깥세상으로 한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김재준의 삶과 사상에서 나온 물도 역시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동쪽이란 다름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가 앞서 가신 자리, “어렵고 작고 눌린” 소자(小子)들이 정의와 자유와 해방을 간절히 소망하는 ‘갈릴리’였다.

 

한 번도 제도교회를 벗어난 적은 없지만, 교회 밖 세상의 불의한 구조에 대해 눈을 감지 않은 사람, “그리스도인이 역사 안에 보냄 받은 것은 역사에서 도피하거나 역사를 초월하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 그 전존재를 쏟아 그리스도의 속량의지에 충성하라는 것”임을 굳게 믿은 사람, 그러한 믿음이 교권주의자들의 심기를 자극해 차별과 배제와 추방의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희생양 콤플렉스에 빠져 마냥 동굴 속에서 자기 상처만 핥지는 않은 사람, 도리어 떨쳐 일어나 약자를 주변화(marginalization)하는 온갖 사회적ㆍ정치적 책동에 맞서 “연대신학, 편애신학, 해방신학”을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 김재준은 그러므로 경계인이다.

 

시인 함민복이 말했듯이, 무릇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던가? “보수와 진보 어느 하나에도 자기 발을 붙이지 않는 진보적 보수주의, 보수적 진보주의 사상을 글귀마다 펴 나가는 폭넓은 진리의 탐구자. 신앙과 윤리, 교회와 사회, 신학과 철학, 전통과 혁신의 테두리를 자유스럽게 넘나드는 자유의 탐구자”로서 김재준은 온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한 가지 근원에서 나온 한 송이 꽃임을 알고 있었기에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설(說)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이 용어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세간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환치한 말이면서, “자연계와 초자연계, 개인과 사회 집단, 남자와 여자, 기독교인과 타종교인, 현재와 미래와 과거, 사람과 천사와 영물들, 역사와 자연, 물질계, 생명계, 정신계, 영계가 모두 각각의 자기 질서와 고유한 실재 차원을 지니면서도 하나로 통하고 어우러져 생성ㆍ발전하는” 생명 공동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렇듯 품이 크니, 그의 호가 ‘장공(長空)’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II. ‘길의 신학자’와 여성신학의 만남

 

이 글은 여성신학의 관점에서 김재준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려는 관심으로 출발했다. 이 과제를 책임 있게 수행하려면 우선 김재준의 신학이 여성신학과 어떻게 겹쳐지는지부터 살펴야 옳다. 페미니즘이, 세간의 오해대로 ‘반(反)남성주의’가 아니고, 오히려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으로 이해한다면, 이 대의에 동참하는 모든 남녀를 페미니스트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서 김재준을 다시 들여다보면, 삶과 사상 전체에 걸쳐 줄곧 ‘작은 자들과의 연대’를 강조한 그이기에, 누군가 자신에게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붙인들 전혀 노여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그에게 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다. 명사로서의 신학은 이른바 신학적 지식의 축적이요, 체계화이며 계보학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김재준은 그것이 ‘보수주의 신학 체계’든지 아니면 ‘자유주의 혹은 신정통주의 신학 체계’든지 간에 어느 하나의 체계 또는 계보에 자신을 고정시키는 일을 아예 하지 않았다. 신학함이란 역사적 현실 속에서 결연하게 결단을 내리는 일 혹은 진실을 추구하는 그 자체라고 믿은 까닭에, 그는 “신학의 순례에 있어서 학(學)의 체계화란 것을 두려워하고 반항”했다. 신학자로서의 김재준의 진면목에 대해 잘 밝힌 전경연의 말을 들어 보자.

 

그의 신학의 순례는 칼빈, 와필드, 하지, 바르트, 브루너, 라인홀드 니버, 리처드 니버, 벨자에프, 베닛, 틸리히, 하크니스와 많은 실존주의 사상가 등 그가 영향을 받지 않은 현대의 사상가들이 적지만, 그 어느 하나에 낙착하여 거기에 큰 체계의 건축을 시도하지 않고, 변천하는 시대와 함께 걸어가며 그 가운데서 시대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증언을 한 데 지나지 않는다.……그는 무슨 개론, 무슨 원론 같은 것을 쓰지 않았다. 오직 단신 빛의 붓끝으로 우러나오는 정직한 고백을 적어서 내던짐으로써 어둠의 물결을 막아내는 사명을 다하였다. ‘영원한 신학’을 찬란하게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길’의 사람으로서 비판하고, 증언하고, 항의하고, 재해석을 내렸을 뿐이다.

 

6ㆍ25 전쟁의 참화에 시달리던 부산 피난 시절, 김재준이 캐나다 선교부의 장학 기금을 얻어 두 사람을 캐나다로 유학 보낼 때, 그 둘로 강원용과 이우정을 천거한 사실에서 여성신학에 대한 그의 앞선 감각과 의지가 엿보인다. 또한 해방 이후 공간에서 신학 교육을 재정비해야할 과제에 직면하여 송창근, 한경직 등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여자 신학교’를 설계한 것으로 보아, 누구보다도 그는 여성 신학교육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동사로서 그의 신학은 필경 가부장적 성차별주의를 ‘비판하고, 증언하고, 항의’하며, 여성 차별과 배제와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는 성서 본문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데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자신에게 일차적인 화두가 아니라서 능동적, 적극적으로 그러한 신학 작업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김재준은 적어도 그런 종류의 신학이, 지엄한 가부장제가 여전히 여성의 숨통을 조이는 이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데, 곁에서 때를 따라 물을 주고 모진 비바람을 막아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추측은 단순히 희망사항이거나 과장된 바람일 수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스스로를 여성신학자로 자리매김하고 여성신학에 천착하여 작업한 물적 증거가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성서를 “미완성 드라마 대본”으로 본 라이트(N. T. Wright)의 견해에 기댄다면, 그 추측이 억측이 아님을 납득하게 된다. 라이트가 비유한 대로, 셰익스피어의 미완성 희곡 대본이 발견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그 대본에는 생생한 인물 묘사가 있고 플롯이 선명하며 극적 감동의 강세도 분명하다. 따라서 이 대본을 무대에 올리는 데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 다만 완성되지 않은 제5막이 남아있는 게 문제일 뿐이다. 이 난감함을 어찌 풀어야 할까? 공연계획을 중단하자니 대본이 아깝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첨가하자니 세익스피어의 본래 의도에 맞지 않을까봐 두렵다. 그럴 때는 “준비된, 감수성이 예민하고 노련한 전문 배우에게 연기를 맡기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4막까지 세익스피어 연극에 몰입하면서 세익스피어의 생각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배우들이 연극의 나머지 부분을 즉흥적으로 연기해야 한다. 물론 이 때의 즉흥 연기는 지금까지의 대본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플롯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지고 보면, 김재준의 신학 순례에서 그가 직접 쓰지 않은 제5막을 연기할 배우는 비단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속한 여성신학자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 해석에 있어서는 축자영감설로, 신학 체계에 있어서는 보수 근본주의로, 윤리 실천에 있어서는 바리새적 경건주의로 무장한 채, 마치 “숫자도 많고 힘도 세서 감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소수자 신학과 비주류 교단 위에 군림해 온 한국의 주류 ‘정통’ 교회에 대항하여, 그야말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자유로운 복음의 숨통을 퇴어준 김재준의 호방함이 없었더라면, 이 땅의 여성신학은 그저 ‘못 다 핀 꽃 한 송이’로 낙화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대할 때 반드시 “의심의 해석학(hermeneutics of suspicion)”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 여성신학의 입장으로서는, 초지일관 비판적 성서읽기를 강조한 김재준에게 진 빚이 크다.

 

 

 

. 동정녀 마리아 새로 보기

 

그렇다면, 김재준의 신학 순례라고 하는 미완성 드라마의 제5막을 연기하기 위하여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플롯은 무엇인가? 그 단초는 아무래도 보수 근본주의 신학과 대립한 김재준의 성서해석에서 먼저 찾아져야 할 것이다.

 

1934년 1월호『신학지남에 김재준은 한 편의 논문을 기고하게 된다.「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연구라는 제목을 단 이 논문은 구약성서「이사야」7장 14절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내용을 주석한 것이었다. 여기서 김재준은 ‘동정녀’라는 단어가 ‘방년의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엘마’를 번역한 것으로, 반드시 생물학적 의미의 동정녀라고 옮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잉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히라’는 히브리어의 상태 동사 ‘하라’의 분사형태이기 때문에, ‘엘마’의 형용사 역할을 하는 것이라 했다. 즉, “잉태한 방년의 젊은 여자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근본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그로 인해 김재준에게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곧이어 일어난 소위 ‘아빙돈 주석사건’에서도 김재준은 평양신학교를 중심한 근본주의 신학 진영의 이단 시비에 휘말려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그로 하여금 ‘길의 신학’을 하도록 몰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동정녀 신화’는 기독교가 반(反)지성주의를 부추긴다는 비난에 내몰리는 대표적인 사례다.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되심’에서 마리아의 처녀성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아닐진대, 그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얼마나 비본질적이고도 소모적인 낭비인가?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말하지 않았나?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은 그의 출생 근거와 방법, 과정, 통로에 있다기보다는 선재(先在)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에 있다고. 말하자면 예수의 잉태는 그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라는 점에서 특이한 것이지, 모친의 처녀성 여부와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여성신학은 일찍부터 동정녀 신화가 여성 일반의 현실에 얼마나 유해한가를 폭로해 왔다. 가령, 로즈마리 류터(Rosemary R. Ruether)에 따르면, 기독교 도덕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취한 순결 이데올로기는 ‘유혹적이고’ ‘육욕적인’ 이브의 죄악된 이미지에 대한 반동인데, 일견 여성을 예찬하고 미화하는 것 같은 동정녀 이미지 역시 알고 보면 여성혐오의 연장인 까닭에, 이브의 신화만큼이나 여성억압에 일조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전형적으로 여성에 대한 정신분열증적인 견해를 만들어낸다. 여자를 승화된 정신적 여성(동정녀 마리아)과 실제로 육체를 가진 여성(타락한 이브)으로 나눈다. 순결성의 이상은 육체와의 접촉으로 더러워지지 않은 “정신적 모성”이라는 높은 영역에로 승화되고, 한편 실제 여자들은 두렵고 억압된 “육욕”을 따라 형상 지워진다. 동정녀 성모숭배가 생긴 것은 육체적 모성애와 성욕의 모독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모독의 당연한 결과이다. 실제로 일어나는 성욕은 “더러운” 것이라고 보는가 하면, 억압된 욕망의 감정은 신비주의적인 성적 흥분에로 승화되는데, 이것은 순결한 영혼이 그리스도와 정신적인 신성한 결혼을 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사랑은 실재하는 여자에 대한 증오감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증오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희랍철학의 영향으로 영육이원론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중세 교부 신학자들은 영혼을 남성에, 육체를 여성에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모든 육체적인 것, 여성적인 것, 물질적인 것, 자연적인 것을 억압한 채 지극히 관념적이고 남성적인 신학체계를 세워 나갔다. 교부들의 인간학에서 여자는, 지배하고 통제해야할 정신과의 관계에서 육체로 정의되어, 정신에 복종하는 육체(아내)가 되든지, 아니면 반항하는 육체(창녀)가 되든지, 둘 중 하나밖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성욕이라든가 임신 또는 출산과 같은 자연스러운 육체의 부분들은 저급하고 저속한 부패와 타락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니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고 유혹하는 존재로 낙인찍힌, 또한 임신과 출산을 담당해야 하는 여성의 육체란 얼마나 오염되고 불결한 것이겠는가?

 

이러한 인식론에서는 여성의 구원이 그 육체 내지 육체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마리아 숭배가 인기를 끈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수의 순결한 어머니는 여성들이 타락한 이브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보여준다. 이른바 성모의 무흠수태(無欠受胎)교리와 몽소승천(蒙召昇天)교리가 확산되면서 이와 더불어 독신주의와 수녀원 운동이 팽창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에는 여성이 구원 받으려면 금욕적인 처녀상태대로 육체를 보전해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했다는 증거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활한 여성의 몸에는 소위 그녀의 여성됨을 입증해주는 신체기관(자궁과 유방)이 없다는 어거스틴(Augustine)의 말은 육체혐오, 여성혐오의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다.

 

개신교 신학은 인간의 보편적 죄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마리아에게서 성모의 이미지와 더 나아가 여신의 이미지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여성을 하나님 앞에 선 인간 본성의 대표로 보는 데까지 나아갔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루터와 칼빈은 물론이고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개신교 신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의존을 확증한다는 의미에서 마리아론을 교회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개신교에서는 전례 없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를 지배-종속의 상하질서체계로 보는 이원론을 발전시키게 되었는데, 이는 전능한 ‘남성적’ 하나님이 수동적이며 자기희생적인 ‘여성적’ 교회를 다스린다는 이미지를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종교개혁의 주요 모토 중 하나인 만인사제설의 실패 요인이 바로 이러한 집단무의식에 있지 않나 싶은데,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 그리고 목회자와 회중 사이를,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로 투사하는 한, 평신도 회중에게 요구되는 가치는 오직 섬김과 희생일 뿐, 절대로 자율이나 독립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로즈마리 류터는 마리아론이 수동적인 의존성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한, 교회 안에서 여성에게 능동적인 지도력이 허용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그 의미를 재평가하도록 촉구한다. 마리아론은 “그것이 모든 위계적 권력관계에서부터-신과 인간의 관계까지도 포함하여-자유롭게 된 새로운 인간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과격한 상징이 될 때” 비로소 여성해방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이 세계질서 너머에, 저 밖에 놓여 있는 인간의 미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창문과도 같은 존재다. 마리아가 칭송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예수를 배었던 태(胎)’를 지녀서도, 혹은 ‘예수가 빨았던 젖’을 지녀서도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누가복음 11:28)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가 섬겨야 할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자의 유일한 공로를 아이 낳는 능력에 두는, 그리고 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육체와 불화하게 만들어 수치심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하는 그런 마리아는 도리어 여성의 영적 순례에 걸림이 된다.

 

이렇게 해서 류터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된 마리아는 새 언약,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예레미야 31:22)고 한 새 언약으로 이루어질 종말론적 인간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마리아의 동정성은 메리 데일리(Mary Daly)에 의해 “남성과 분리된 여성의 자율성, 즉 그녀 자신의 온전성과 통전성의 상징”으로 재조명되기도 한다. 오늘날 여성신학자들은 이렇듯 모든 종교언어가 상징이요 은유라는 이해의 지평에서 ‘동정녀’의 의미도 ‘가부장적 부계혈통주의에 물들지 않은 새 여성’을 가리킨다는 식으로, 해석의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두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나의 종교언어에 대한 창조적인 해석이 ‘자의적인’, 또는 ‘임의적인’, 심지어 ‘파괴적인’ 해석이라는 혐의를 받지 않으려면, 그에 앞서 성서비평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수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건너뛰어, 문자적 해석에서 창조적 해석으로 곧장 넘어가게 되면, 이른바 정통 근본주의 신학의 옹호자들에 의해 사이비 이단으로 몰릴 소지가 많다. 물론 해석에 임할 때 행간을 읽어내는 상상력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자산일 것이지만, 경직된 학문 토양에서는 상상력이 허용되기 어려울 법 아닌가? 이러한 의미에서 김재준의 고등비평은 여성신학을 위한 상상력의 틈새를 마련해준 고마운 문지방이라 하겠다.

 

 

 

. 교권주의를 넘어 모태교회로

 

앞서 언급했듯이, 류터 같은 경우는 교회가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자기희생적인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한, 그것이 하나님과 세계, 목회자와 회중,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체계를 뒷받침하고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고 하여, 교회의 여성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 선다. 그런 반면에 피오렌자는 여성해방적 성서해석의 해석학적 중심으로서 아예 ‘여성교회(wo/men-church 또는 ekklesia gynakion)’를 제안하는데, 이 여성교회는 가부장적 성차별주의가 야기하는 구조적 죄의 영적 내면화를 거부하고, 그러한 죄를 신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하며, 여성들의 변화와 해방을 위한 투쟁을 격려하고, 여성의 종교적 재능과 힘을 축하하는, 언제나 개혁하는 교회(ecclesia reformanda)의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여성교회는 “부자, 권력자, 연장자, 남자, 성직자 중심의 가부장적ㆍ위계적 모델”이 아니라, “가난한 자, 힘 없는 자, 연소자, 여자, 평신도가 대접받는 포괄적ㆍ참여적 모델”에 입각해 세워진 교회의 상상적 이름이다.

 

김재준의 한국교회 비판도 대략 이러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김재준에게 교회는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품이었다. 김재준은 영적인 어머니로서 교회의 역할을 인정하고 또 촉구했다. “신자가 모여서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어머니 품안에서 신자가 나서 자라는 것이다.”라는 묘사는, 교회를 세상의 여타 조직체와 나란히 보지 않고 이른바 영적인 ‘하늘 기관’으로 보는 견해를 반영하지만, 나아가 그의 교회론을 ‘모태교회’라 이름 지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교회는 신자를 낳는 기관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에 앞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을 함축한다. 그러니까 교회는 자연인이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다시 말해 이 세상질서로부터 떠나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실현하도록 양육하는 기관, 곧 모태가 되어야 한다.

 

교회론이 이렇듯 여성적이다 보니, 교리를 수호한다는 명분하에 실상은 권력 쟁탈에 눈이 먼 남성화된 교회가 그의 성에 찰 리 없다. 김재준에 따르면, 참다운 정통 신앙이란 어느 특정한 신학 사조를 보수(保守)하는 게 아니라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로 돌아가 가슴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가르침을 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죽은 문자와 화석화된 교리를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기고 “교회라는 조직체를 하나님 나라와 일치시킬 정도로” 교회주의가 강해서야, 교권에 대한 관심이 노골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비판이다.

 

김재준은, 목사는 무엇보다도 ‘시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시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고 그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문학을 좋아해야 한다. 미술 애호도 목사에 대한 불가피한 요청이다. 목사가 서도(書道)나 그림이나 동양 묵화나 서양화나 간에 영영 거들떠볼 의욕도 갖지 않고, ‘쓴 오이’ 보듯 경멸한다면 그는 그리스도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시혼(詩魂)이 가슴에서 ‘샘’처럼 흐르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영적 아버지’라 해서 카리스마적 권위주의가 권장되어온 주류 목사론에 비해 김재준의 목사론은 얼마나 소박한가? 언제나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 있으면서도 시심(詩心)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신비다. 이러한 김재준의 목사론은 출애굽 당시 홍해를 건넌 다음에 소고 들고 노래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한 미리암의 리더십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도(道)를 “물들이지 않은 명주의 순박함”과 “다듬지 않은 통나무의 질박함”(도덕경 19장)에 비유한 노자의 가르침과 통하는 면이 있다. 노자는 말했다.

 

세상에서 그지없이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더할 수 없이 단단한 것을 이겨 냅니다.

‘없음(無有)’만이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 도덕경 43장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집니다.

온갖 것, 풀과 나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말라 뻣뻣해집니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사람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사람은 삶의 무리입니다.

- 도덕경 76장

 

보수 근본주의 신학자들과의 오랜 영적 투쟁을 통해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정말 좋은 저항은 영성에서 나온다는 것, 갓난아기의 속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잃고 돌처럼 굳은 마음으로 변하는 순간 이미 생명은 떠나고 만다는 것을 말이다. 김재준이 그 모진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그가 시인의 마음을 가진 까닭이었다.

 

시인의 감성을 가진 그에게 한국교회는 생각할수록 아픈 상처였다. “맘몬의 사동(使童)”으로 전락한 교회, 교파는 그저 “회사 간판”에 불과할 뿐, 개교회 차원에서는 극도로 천박한 “부르주아적 기독교”로 ‘상품’이 통일된 교회가 그를 아프게 했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다시 기독교화 되어야 한다는 그의 예언자적 외침은 그래서 나왔다. 시인과 예언자는 김재준의 인격에서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김재준은 한국교회의 고질병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보았다. 첫째, 복음을 성서무오설에 입각한 성경주의적 ‘책 종교’로 전락시키는 위험, 둘째, 몰역사적이고 사회참여 책임을 오히려 비판하는 타계주의적 신앙, 셋째, 물량주의적 성장론에 빠져 버린 데서 오는 세속화의 위험이 그것이다. 이러한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교회개혁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세 갈래로 잡았다. 첫째, 신학하는 태도를 개혁할 것. 옛 것에 사로잡히는 ‘정통’이나 ‘보수’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학에 자기를 개방하여 진지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배워야 한다. 둘째, 교회구조를 개혁할 것.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권력구조를 다지려는 데 분주한 악동들은 사라져야 하고, 직분이나 직책을 권력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사라져야 한다. 셋째, 교회의 대 사회관계에 눈을 떠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말할 것.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에 대한 무관심 또는 무책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으로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김재준은 한국교회에 만연한 성차별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관심이 없었다는 식으로 넘겨짚으면 곤란하다. 예수도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가 부닥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김재준의 시적인 감수성과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가 구상한 교회개혁의 큰 그림에는 반드시 여성을 위한 ‘제3일’의 약속이 마련되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 콩나물 신학을 하련다

 

김재준의 제자들은 그가 졸업반 학생들에게 필수과목으로 목회학을 강의할 때, “학생을 가르치는 그의 모습은 애정이 넘치는,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김재준은 고난의 시절 동안 자연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우주 삼라만상에 임재해 계신 하나님의 은총에 홀연히 눈이 떠진 모양이다. 그의 사상의 알짬인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론이 무르익어 갈수록 그의 생태영성도 점차 깊어져서 그의 말년은 그야말로 어머니 자연의 화신인 양 그윽하고 너그럽기 한량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재준은 글쓰기에 있어서 언어도 매우 감각적이고 여성적인 섬세함이 돋보였던 것 같다. 신앙지『제3일을 내는 그의 목표는 땅의 현실을 외면하는 “관념화한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가 아니라, 예수의 성육신 사건을 가장 위대한 우주적 ‘혁명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성육신 신앙 고백’의 표출”이었다. 김재준은 예컨대, 흔히 다른 종교잡지가 그러하듯이, 외국의 유명한 학자들의 학설을 소개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완전히 ‘말씀’과 ‘예수’와 ‘복음’을 새김질하고 숙성시킨 ‘자기 살과 피로 변한 생명의 말’을 쏟아냈다. 가령,「말씀을 새긴다는 제목 아래 연재된 복음서 연구는 김재준의 언어 감각이 얼마나 생태여성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마4:4) ……‘먹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밥이 있어도 그것을 먹는 인간만이 사는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씹어 위장에서 소화시켜 자기의 피와 살이 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말씀’도 그렇다. 먹어야 한다.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넣어 음미하고, 그것을 소화하여 내 생각, 내 감정, 내 생활, 내 행동으로 되게 해야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말’로 되어 내 몸, 내 삶으로 고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이것을 나는 말씀의 인간화라고 말한다.……그러므로 말씀을 먹는다는 말은 예수를 먹는다는 말이 된다.

 

말씀을 먹는다는 표현은 다시 노자의 ‘식모(食母)’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노자에게 도는 만물의 어머니이므로, 식모, 곧 어머니를 먹는다는 것은 도에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할 터이다. 성서를 보면 뭔가 대단히 중요한 사건들이 먹는 것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그렇고, 보리떡과 물고기가 그러하며, 빵과 포도주가 그렇다. 심지어 예수 자신이 스스로를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복음 6:48)이라고 했으니, 기독교인에게 예수를 먹는다는 것은 예수를 살아낸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일 것이다. 김재준의 성육신 이해는 결국 우리 자신이 일상에서 예수를 살아내는 일로 귀결된다. 그에게 신앙생활은 곧 생활신앙이다.

 

이러한 김재준의 신학적 기조는 생태여성신학의 기조와 공명하는 바가 크다. 폴 샌트마이어는 서구신학의 사유방식이 크게 두 가지 기조로 흘러왔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영적인 기조(spiritual motif)”로서, 이 기조에 터한 신학은 위계적이고 관념론적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반면에 “생태학적인 기조(ecological motif)”로 이루어진 신학은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축하는 유기적인 에너지가 충만하다. 이렇게 볼 때 성육신 신학을 강조하는 김재준은 후자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육체성, 물질성, 이세상성, 성성, 여성을 긍정하는 성육신 신학은 생태여성신학의 주요 토대가 되기 때문에, 김재준의 신학과 생태여성신학은 앞으로 대화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김재준의 여제자 중 한 사람은 ‘콩나물 신학’에서 큰 자극을 얻었노라고 고백한다. 언젠가 김재준의 집을 방문한 그녀에게 스승이 권했단다. “너희들 콩나물 신학을 해야 해. 콩나물은 물을 주면 빠지지. 그래도 그 콩나물은 자라거든. 너희도 나가서 일하노라면 ‘내가 이런 일 할 것인가’ 할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때마다 콩나물 생각하고, 물은 빠져도 콩나물은 자란다고……거기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선생은 그렇게 뭉근한 희망으로 고단한 삶을 버텼던 모양이다. 유교로부터 개종하고, 근본주의 신학과 결별하고, 서구 엘리트 신학에 항거하면서, 기존질서에 순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서는 방식으로 전향적인 생을 살았던 선생은 콩나물 속에서도 하나님을 보았다. 이렇게 둥근 영성을 지녔기에 그가 아름다운 경계인으로 기억되는 게 아닐까?

 

한국교회가 위기에 놓였다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는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누군가 희망의 틈을 내고 길을 열어야 한다. 이래저래 선생이 그리운 계절이다.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이 지구 위 60억 인류 모두가

나처럼 먹고 쓰고 생활한다면

이 세상이 당장 좋아질 거라고

떳떳이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

 

내가 먼저 적게 벌고 나눠 쓰면서

덜 해치고 덜 죄짓는 맑아진 얼굴로

모두 나처럼만 살면 좋은 세상이 되고

푸른 지구 푸른 미래가 살아난다고

내가 먼저 변화된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리의 모든 것이다

그것이 희망의 모든 것이다

그것이 혁명의 시작과 끝이다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 박노해, “나 하나의 혁명이”,『사람만이 희망이다』

 

 

 

 

구 미 정 교수

 

이화여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졸업했다.

기독교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여성과 자연, 생명과 평화를 화두로 삼아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

 

 

저서로 "이제는 생명의 노래를 불러라"(2004),

"생태여성주의와 기독교윤리"(2005),

"한 글자로 신학하기"(2007),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2008),

"호모 심비우스: 더불어 삶의 지혜를 위한 기독교윤리"(2009)가 있으며,

역서로 "교회 다시 살리기"(2001)

"기초생명윤리학"(2003),

"생명의 해방"(근간예정), "과학윤리 입문"(근간예정) 등이 있다.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제20회 -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안내

 

1. 일시 : 2009년 9월 10일(목) 오후 5시

2. 장소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효촌관 2층 세미나실

3. 주제 : (가칭)“캐나다 연합교회와 장공”

4. 강사 : 김승태 목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 세움교회)

5. 주관 : 사단법인 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학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