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기자의 휴심정> 2010/02/10/16:09
http://well.hani.co.kr/board/view.html?board_id=jh_san&uid=278874
벌금 대신 ‘옥살이’…‘몸 설교’ 나선 목사
조헌정 목사
4년 전 대추리 지키다 벌금형 판결 받아
‘자본주의 대항’ 신념지키려 죄수복 입어
서울 중구 을지로2가 향린교회 담임 조헌정 목사(57)는 최근 소리 소문 없이 구치소에 다녀왔다. 지난 2006년 4월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수용지에서 경찰들에게 끌려가던 청년들을 지키려다가 공무집행방해로 벌금형을 받은 그는 벌금을 내는 대신 몸으로 때웠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더구나 향린교회엔 그를 따라는 수백명의 신자들이 있고, 그는 주일 설교를 해야하는 담임 목사였다. 하지만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폭력과 야만에 맞서 맨몸으로 평화운동을 해온 운동정신에 맞지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4년 전 빈몸으로 평택에 갔을 때처럼 서울구치소로 걸어들어갔다. 4년 전에도 그는 홀로 차를 몰고 대추리로 갔다. 누군가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농수로를 차단하기 위해 경찰병력이 투입됐다”며 “와서 도와달라”는 애타는 호소를 듣고는 외면할 수 없어서 달려간 것이 옥살이로 이어졌다.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 등 1천여명의 무장병력에게 대추리를 지키던 50~60여명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을 저지하던 중 경찰 간부의 멱살을 잡은 죄로 그는 경기도 광주경찰서에서 유치장 신세를 졌다. 당시 조서에 하는 지문 날인을 거부하다가 건장한 경찰들로부터 강압적으로 지문을 날인당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에서 피를 뿌리기도 했다. 그로 인해 주일도 경찰서에서 보내야 했다. 입으로 하는 설교만큼이나 삶으로 쓰는 ‘몸 설교’를 중시하는 그의 뜻대로 온몸으로 3일 간 설교를 하고 나온 것이다.
그는 처음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가 대법원까지 가서 벌금 70만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하루 5만원씩 쳐주는 계산 방식에 따라 3일간의 유치장살이를 제하고 벌금은 55만원이었다. 열에 아홉은 벌금을 내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지난달 13일부터 23일까지 죄수복을 입고, 구치소살이를 했다.
“구치소에 부자는 없고, 하루 5만원 못 내는 약자만 있더라”
한신대 재학시절 거리데모를 하다가 경찰서에서 한 달간 신세를 진 적은 있지만 죄수복을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약자들을 돕다가 들어간 구치소에서 본 풍경도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조 목사는 “벌금형이라는 게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밥벌이할 기회를 빼앗지않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구치소에 들어가보니,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벌금을 내고 구치소에 사는 사람들이 없고, 하루 5만원씩도 내기 어려운 약자들만 있더라”고 혀를 찼다.
어느날 게시판의 호소글을 외면하지 못해 평택으로 달려간 이후 4년 간 그의 지난한 싸움은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세상에서 그가 몸으로 쓴 설교는 교회 안팎에서 소리없는 메아리가 되고 있다.
향린교회 설립자인 ‘민중신학의 대부’ 안병무 박사의 제자인 조 목사는 이민한 부모를 따라 미국에 갔다가 목사가 돼 미국 메릴랜드의 벨치빌한인교회와 미국 장로교 최초의 한미연합교회인 벨츠빌장로교회의 담임목사를 16년간 지냈다. 동양인 목사로는 최초로 미국장로교의수도노회 노회장을 지내던 탄탄대로를 벗어나 지난 2003년 가족도 뒤로 한 채 고국에 돌아와 ‘평생 약자들과 함께 하겠다’던 청년시절의 못다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오는 3월2일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새 이사장으로 추대돼 약자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의 정신을 잇는 또 다른 ‘몸설교’에 나설 예정이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종교사상 이야기 >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여성신학도의 눈으로 본 경계인 김재준 /구미정 (0) | 2010.09.30 |
---|---|
[인터뷰] 명진 스님이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 (프레시안100521) (0) | 2010.05.21 |
그리스도교와 이슬람(박현도) (0) | 2009.10.28 |
고난의 의미와 가치-떼이야르 드 샤르댕 (0) | 2009.10.28 |
요한복음의 불교적 해석(이찬수) (0) | 2009.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