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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리 물가에 많이 서식하는 고마리의 꽃잎이 활짝 피기 전 모습이다. 아주 작고 앙증 맞다 |
ⓒ 송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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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송이의 가을 들꽃을 피우기 위해 수많은 풀들이 몇 년을 함께 했다는 걸 아십니까?
들판에 핀 몇 송이의 꽃은 결코 혼자 힘으로 세상에 선보일 수 없습니다. 그 들꽃이 피어있는 땅 속을 파보면 당장 그 증거가 드러납니다.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여러 갈래의 뿌리와 뿌리의 길들. 그리고 그동안 죽어간 뿌리와 줄기들의 주검이 썩어 밑거름이 되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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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룩치 누룩치 주위에는 다른 꽃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만큼 주위의 지원이 컸다는 증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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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볼 때 필요없을 것 같은 풀들(사람들은 이 풀들을 잡초라고 한다)조차도 다 쓸모가 있습니다. 그 억센 풀들이 뿌리를 깊게 내려 땅을 파고 들어가서는 다른 풀뿌리들이 자리 잡도록 길을 안내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찌 쓸모없는 풀이 있을 수 있으며, 혼자서 초생(풀의 삶)을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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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개비 닭 날개를 닮았다고 달개비라 붙여진 이 꽃은 흡사 여우를 닮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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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한송이 들꽃이 피기까지 그리도 많은 정열들이 모였다는 데 말입니다. 조금만 눈을 뜨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동물들과의 공존공생의 삶은 또 어떻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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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꽃 나팔꽃이라고 잘못 알려진 메꽃은 엄연히 야생 들꽃이다. 남색인 듯 보라색인 듯한 색깔이 예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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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비닐하우스에서 피는 꽃들은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영양분과 물을 공급해줍니다만, 이 들꽃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자신이 알아서 영양분을 찾아 헤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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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느리밥풀 꽃 속에 들어 있는 하얀 점 두 개를 며느리에게 주는 밥풀 닮았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이빨 같기도 한 두 개의 점이 꽃의 포인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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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 들꽃 주위에 영양분이 가득하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 올 봄에 죽어간 개미의 주검, 올 여름에 잡초라고 베인 들풀 등의 진액이 다이지만, 그나마도 비가 와서 물이 많아지면 다 쓸려 내려갑니다. 영양분이 더 낮은 곳으로 다 빠져 나간다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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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봉선 물가에 많은 물봉선은 요즘이 한창이다. 자세히 보면 꽃의 깔대기 아래 끝부분과 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깔대기 머리 부분이 줄기와 달려있는 게 이색적이다. 깔대기 끝부분은 해마의 꼬리처럼 휘어진 게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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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비가 많았던 올해 여름을 생각하면 그 자리에 핀 들꽃은 대견하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그 불안정한 영양분에 잇대어 사는 삶이란 게 얼마나 위태한지 모릅니다. 꽃 하나 피우기도 힘겨울지 모르는 삶입니다. 꽃송이를 피울 여력 없이 자신의 몸 하나 지탱하기도 어려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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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딸기 뱀딸기도 장미과이라는 걸 아는가. 지금 사진에서 보는 것은 뱀딸기의 열매이지만, 뱀딸기의 꽃은 또 따로 핀다. 그 꽃이 바로 장미과에 속하는 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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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는 하늘의 소명을 끝끝내 거역하지 않고 지켜냅니다. 꽃을 피워 다음 시대를 이어주기를 바라는 주위 풀들의 기대를 기어코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 송이 들꽃이 피는 것은 오랜 사투 끝에 나타난 열매이며, 아름다운 기적이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들꽃이 자신의 자태를 뽐내려고 피어난 줄 알지만, 정작 그들은 피어야만 사는 생존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안고 핀 것입니다. 사람들은 들꽃이 자신의 힘으로 자연스레 피어난 줄 알지만, 그들에겐 주위로부터 받은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하늘로부터 내려지는 은총에 감사하는 눈물겨움이 함께 묻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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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취 들에피는 참취들이다. 나물 해먹는 바로 그 참취로서 하얀 꽃이 구절초를 닮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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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진대 들에 핀 한 송이의 꽃이 결코 저 혼자만의 작품이 아닐 겁니다. 수많은 주위의 자연이 모이고 모여 피워낸 그들의 사랑일 겁니다. 그들의 희망일 겁니다. 그들의 우주일 겁니다.
나는 오늘도 가을 들판에서 들꽃들이 추는 어울림의 추임새를 보며 한없이 작은 갓난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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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섯 형제들 흡사 플라스틱 같은 것으로 제조한 것 같은 모양이 이채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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