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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활

과학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실천 전략

by 마리산인1324 2010. 10. 2.

<참여하는 과학기술인연대>

http://www.engineerclub.net/engclub/zboard.php?id=seact&page=1&sn1=&divpage=1&category=4&sn=off&ss=on&sc=on&select_arrange=subject&desc=desc&no=11

 

 

kms.ksf.or.kr/ 최종보고서

과학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실천 전략


 

김 문 조 ∙ 김 종 길∙ 김 동 광


서론

오늘날 과학은 더 이상 과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17세기 유럽에서 이루어진 과학혁명 이래 과학은 자연에 대한 통제 양식을 크게 바꾸어 놓으면서 인류의 생활양식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삶의 조건을 바꾸어 놓는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비롯해서 인간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관점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근대 과학은 대부분의 인류의 삶의 영위방식과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과학화(科學化)시켰다. 따라서 문화를 인간의 생활방식과 사유양식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규정할 때, 오늘날의 문화는 근대 과학이라는 기반 위에서 형성된 셈이다(김문조, 1999).  


최근 과학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현상은 과학과 문화 사이의 총체적 관계에 대한 인식의 확산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과학 문화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함의를 가진다. 첫째, 과학과 과학활동(scientific practice)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그 동안 과학 활동은 과학자 공동체(scientific community)를 중심으로 이해되어왔다. 즉, 사회는 과학과 무관하거나 또는 그 영향이 과학 외적 측면에 한정된다는 인식을 기초로 과학활동을 과학자들의 내부적 활동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과학활동은 국가나 기업과 같은 거대 조직에 의해 그 목표와 방향이 결정되는 거대 과학(big science) 거대 과학은 2차대전 이후 과학 연구활동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첫째, 첨단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과학과 기술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둘째, 그 이전까지 과학자 개인의 연구 동기나 목표가 중시된데 비해 국가나 대기업이 연구주제의 설정, 진행 등을 주도한다. 셋째, 연구과정의 중앙집중화, 관료화, 연구 조직의 위계화가 강화된다.


으로 성격이 변화되었다. 원자폭탄 제조계획이었던 전시(戰時)의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최근 완성된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에 이르는 전개과정은 이제 더 이상 과학활동이 과학자 사회의 독립적인 영역이 아니며 정치적(맨해튼 프로젝트), 경제적(게놈프로젝트) 논리의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는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한 환경운동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는 과학기술 시민운동의 출현이다. 1962년에 발간된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은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적 우려의 확산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후 환경운동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시민운동은 점차 환경문제 뿐아니라 과학기술 자체를 운동의 대상으로 포괄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3년 여름에 폴 버그(Paul Berg)를 비롯한 생물학자들이 재조합 DNA(recombinant DNA) 실험에 성공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한층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에서의 전개과정은 과학문화의 이해에 중요한 함축을 갖는다. 우선 과학활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1970년대 이후 학계에서 이루어진 과학기술학(Science Technology Studies, STS)의 이론적 기반 위에서 “과학에서 문화”로의 접근을 가져왔다. 따라서 과학문화는 과학자 사회의 문화라는 “특수한 문화”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문화일반(culture general)”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과학활동에서 이루어지는 산물(産物) 여기에서 産物의 의미는 과학활동의 직접적인 결과인 이론, 기술, 인공물(artifact) 등을 지칭한다.


뿐아니라 과학활동 그 자체의 성격이 문화 일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가능케한다는 점에서 과학문화에 대한 적극적인(positive) 본 논문에서 적극성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과학과 문화의 관계는 흔히 일방적인 관계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과 문화의 관계는 상호작용적일 뿐아니라 그 관계 역시 매우 복합적이다. 첫째, 과학활동의 산물인 지식이나 인공물(artifact)이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주는 측면만이 아니라 과학활동의 성격 그 자체가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문화에 다대한 영향을 미친다. 둘째, 과학과 대중의 관계에서는 지금까지 과학이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역의 방향에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적극성의 이중적 의미”에 대한 파악은 과학문화의 적극적 이해를 위해 필수적이다.  


이해의 기점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처럼 과학활동을 전문가로서의 과학자들의 특수한 활동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문화일반과의 폭넓은 연관성 속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활동이 갖는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의미를 규명함으로서 과학에 대한 이해를 가일층 진작시킬 수 있다(김동광, 1999).


과학기술 시민운동의 진출은 또 다른 측면에서 과학문화에 대한 적극적 이해를 가능케 한다. 최근 유전자 변형 생물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GMOs)와 복제양 돌리로 대표되는 생물공학의 안전과 윤리 문제가 도출되면서 그 동안 전문가들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되어온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대중참여(public participation)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히 1980년대에 덴마크와 네덜란드 등의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실험된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와 같은 과학기술 시민참여 제도가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이후 이 제도가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보다 활발해졌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난 1998년과 1999년에 한국 유네스코 주최로 두 차례의 합의회의가 이루어져서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의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과학문화를 대중들의 과학적 소양(scientific literacy)을 높이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활동으로 이해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scientific literacy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과학문화를 대중화(popularization)의 측면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를 과학문화에 대한 소극적 이해로 간주하고, 대중 참여를 과학문화의 적극적 접근으로 제기한다. 과학문화에 대한 적극적 접근에서 과학적 소양의 증대는 전체가 아닌 하나의 부분이다.


, 과학기술을 둘러싼 사회적 의사결정에 대중들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인식은 곧 과학문화를 대중 참여라는 적극적, 역동적 측면으로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되며, “과학기술에 대한 문화적 접근”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1)과학활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토대로 과학문화의 인식론적 기초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고찰하고 아직 명료한 상태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는 과학문화의 개념 확립을 시도하며, (2)과학문화의 실천적 함의를 “과학문화 대중화를 위한 실천전략”의 차원에서 탐색해보고자 한다. 특히 (2)에서는 지난 1998년과 1999년에 우리 나라에서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열렸던 합의회의의 경험을 PUS(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의 관점에서 분석, 평가해서 최근 과학문화의 적극적 측면으로서 제기되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의 실천적 가능성도 탐색해보고자 한다.

I부
과학활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

가치영역의 분화가 본격화되지 않은 근대 이전까지 과학과 기술은 “생활방식의 총체(entire ways of life)”로서 정의되는 문화 체계의 일부로 포섭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근대사회에 이르러 과학기술과 문화가 각기 생존수단과 생활양식이라는 개별 범주로 분할되어 상이한 속성을 함유하는 독립적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이 같은 대비는 C. P. 스노의 <두 문화(Two Cultures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와 같은 저작들을 통해 오래 전부터 개진된 바 있으며, 또 그 유제는 인문계 대 자연계, 또는 문화계 대 과학계 등과 같은 지적 단절을 초래하는 제도적 장벽의 형태로서 잔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과학기술과 문화는 대립적 관계를 벗어나 화해 구도로 진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양상이 전개되는 이유를 우리는 과학기술 및 문화 부문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변화상에서 관망할 수 있다. 과학기술 부문과 관련해서는 첫째, 비확정적, 비결정적 세계관의 대두에 따른 상대주의 과학관의 출현, 둘째 과학기술과 사회체계의 연동성을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이나 연구 결과의 누적, 셋째 연계성, 유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첨단 정보 통신기술의 급성장 등을 들 수 있다.


과학기술과 문화 영역에서 관찰되는 이러한 거시적 조류는 각기 ‘신과학 패러다임(new scientific paradigm)의 대두’ 및 ‘탈근대주의(postmodernism)의 확산’이라는 양대 명제로 축약할 수 있는데, 그 결과 상호 배타적, 상호 대립적 활동영역으로 간주되어온 과학기술과 문화는 상호보완의 경지를 넘어 상호 융합적 단계로 돌입하고 있다. 요컨대, 과학(과학기술)과 비(非)과학(문화)의 경계 파괴가 촉진되어 과학(기술)문화라는 거대한 복합적 구성체가 탄생,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을 재촉하고 있다. 연극, 영화, 음악, 무용, 미술 등 예술분야 뿐아니라 우리 일상문화 전반에 속속들이 파고들고 있는 첨단과학장비, 또한 기술 엑스포나 SF 영화와 같이 새로운 과학기술 유토피아를 겨냥한 생활전망이나 작품이 속출하고 있음은 바로 과학기술과 문화와의 혼융(fusion)이 더 이상 저지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표징이라 하겠다(이초식․김문조, 2000).


따라서 문화현상에 대한 분석에서 과학기술을 배제하거나 과학기술에 대한 고찰에서 문화로서의 관점을 배제한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과학기술과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그 동안 과학기술을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포섭하기 위한 과학사회학의 연구 성과를 분석하는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본 절에서는 표준적인 과학관에서 1960년대 이후 등장한 상대론적 과학관, 그리고 1970년대 후반부터 수립되기 시작한 과학기술에 대한 구성주의적 접근방식의 인식론적 특징을 개괄하면서 과학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확산되어온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1. 표준적인 과학관과 논리 경험주의

오늘날 과학문화에 대한 지배적인(dominant) 관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과학문화는 일반적인 문화와는 다른 특수한 문화이다. 과학은 다른 학문 분야와는 달리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둘째, 과학 문화는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필요로 한다. 셋째, 과학문화를 확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전문가인 과학자들이 대중들에게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과학대중화 작업이다.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이른바 과학에 대한 표준적 관점(standard view)이라 불리는 전통적 관점이다. 표준적 관점은 그 원천을 과학혁명과 그 이후의 계몽주의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뿌리가 깊은 것으로서, 오늘날까지 과학기술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견지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과학의 예외주의(exceptionalism)에 의해 뒷받침되며, 철학적으로는 논리 경험주의가 그 바탕을 이룬다.  

1) 4가지 예외주의
빔버(Bruce Bimber)와 가스통(David H. Guston)은 과학의 예외주의를 4가지 형태로 주장했다. 첫째, 과학의 “인식론적 특수성(epistemological specialness)”에 대한 주장의 근거는 과학이 다른 학문과는 달리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들은 과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과학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과학은 시민사회의 다른 영역이 누리지 못하는 독특한 권위를 정치로부터 부여받게 되었다. 이것은 과학의 객관성과 절대성에 대한 신화를 뒷받침하는 기제가 되기도 했다.


둘째, 플라톤적 예외주의는 플라톤의 국가론의 논지를 이어받은 것이다. 즉,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특정한 사람들만이 과학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진입비용(entry cost)이 높은 전문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그보다 단순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마련된 정치과정은 과학정책에 적용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정책의 결정은 과학자 사회라는 엘리트 사회에 위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 사회와 정부의 관계는 사회계약, 또는 위탁의 관계로 묘사되며,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로 나타난다.


셋째, 사회학적 예외주의는 과학이 독특한 규범적 질서(normative order)를 가지고 있으며, 이 규범적 질서가 자기 규제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머튼(Robert K. Merton)의 과학공동체 규범들이 그 예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예외주의는 현재의 자원을 미래의 이익을 위해 생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의 과학정책가 부시(Vannevar Bush)도 그러한 주장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낸 일이 있다. 오늘날 이러한 과학의 경제적 특수성에 대한 논의는 미국을 비롯해서 거의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과학활동에 대한 중요한 관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경제주의의 흐름에 해당한다.  

2) 논리경험주의와 표준적인 과학관
논리경험주의는 과학철학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며, 최근까지 과학활동의 성격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근거로 사용되어왔다. 논리경험주의가 표준적인 과학관과 연결되는 중요한 철학적 가정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철학은 과학이 어떻게 ‘되어야(ought to)’ 하는가를 정해 줄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 한다.
(2)언어나 이론과는 독립적인 절대 진리가 존재한다,
(3)과학에 있어서 진보란 진리에 점점 더 근접해 가는 이론들을 발견해나가는데 있다,
(4)어떠한 이론이라도 거기에는 이용 가능한 데이터들을 신뢰할 만한 적절한 정확도를 ‘결정’하는 합리성의 규준이 존재한다,
(5)과학적 발전은 개별 과학자들의 사상적 발전과정 속에서 유형화될 수 있다,
(6)관찰 가능한 사실들에는 이론으로부터 중립적인 본체(theory-neutral body)가 존재한다.
(7)이론이란 개별 경험적 내용들에 대한 일련의 상징적 일반화이다(Horwich, 1993).


2. 상대주의적 과학관과 과학문화

1962년에 발간된 쿤(Thomas 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Structure)>는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에 중요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주었다. 특히 그의 패러다임(paradigm)과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개념은 과학활동과 과학이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어서, 그후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지금까지도 많은 비판에 직면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이론은 많은 사람들에 과학이나 과학발전에 대한 성찰적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과학활동의 중요한 내용인 이론 선택의 문제를 논리실증주의와 논리경험주의와 다른 맥락에서 접근했고,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상대주의적 관점을 제기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철학적 흐름은 흔히 “증거에 의한 과학이론의 과소결정 명제”와 “관찰의 이론의존성 명제”이라고 불리는 명제이다. 이 명제는 논리경험주의에서 제기한 “이론에서 중립적인 사실과 데이터”나 “객관적인 관찰”의 가능성을 정면에서 반박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이후 구성주의로 총칭되는 과학기술학의 기반을 형성하며, 그 동안 과학을 둘러싸고 있던 신비화된 외피를 벗겨내는 탈(脫)신비화의 근거를 제공한다. 이것은 과학문화에 대한 인식에서도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준다.  

1)공약불가능성
쿤은 근대적인 과학관의 인식론적 특수성의 근거를 그 토대에서부터 허물고, 이후 과학지식사회학(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 SSK) 나아가 과학기술의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라는 명칭으로 통칭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방식의 기반을 제공했다. 그는 패러다임과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통해 성숙한 과학의 역사적 전개를 ‘정상(定常)과학-위기-과학혁명’이라는 일련의 단속적(斷續的)인 과정으로, 그리고 과학혁명을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파악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한 시기의 과학활동에 제공되는 일종의 문제 풀이 전형인 패러다임이 일정 시기 동안 한 과학자 사회 속에서 공유되는 신념체계의 총체라는 점이다. 때문에 과학이 보편적인 법칙에 기초해 사회나 문화와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진전하고, 관찰사실과 증거의 축적에 의해 누적적으로 발전한다는 표준적인 과학관은 부정된다. 또한 그의 패러다임 개념 속에는 이론, 증거 이외에도 경제적 이해관계,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온갖 사회-문화적 요소가 병합되게 된다.


쿤은 논리경험주의와 전통적인 과학관이 60년대까지 주류로 작동하게 된 기제를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비판하는 주된 원칙으로서 패러다임의 대칭성과 공약불가능성을 제기한다. 공약불가능성은 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숱한 논쟁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개념이다.. 가장 큰 논란이 벌어지는 부분이 공약불가능성에 따르면 이론들 사이의 비교조차 불가능하며, 따라서 쿤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자체도 모순이라는 지점이다. 최근 논문에서 쿤은 “공약 불가능성”이 결코 “비교가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ꡔ과학 혁명의 구조ꡕ에는 연이어 등장하는 이론들 간의 뚜렷한 비교 사례들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비교 가능성 뿐만 아니라, 이론 선택을 위해서는 비교가 필수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단 한번도 의심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쿤에 의하면 그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연이어 등장하는 이론들은 두 이론 모두에서 등장하는 몇 가지 용어의 지시대상이 해당 용어가 등장한 이론 내부에서 그 이론 자체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비교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공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이렇게 볼 때 비교의 목적을 충족시킬 만한 중립적인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은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쿤의 공약불가능성 개념이 한 패러다임과 다른 패러다임을 대칭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또는, 인식하기 위한) 강력한 개념적 도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공약불가능성 개념은 과학 변화를 모든 것을 포괄하는 연속성, 과학적 실행들에서 관찰되는 다양성과 복수의 정합성, 그리고 패러다임 구성요소들의 유연성 등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서로 공약불가능한 세계관들로 묘사했다. 그러나 설령 공약불가능성 명제가 서로 다른 이론들의 구성요소들이 종종 ‘결정적인’ 관찰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허용할만큼 완화된다 하더라도, 과학자의 이론적 선호가 실험에 대한 그들의 평가와 그들이 동원시키는 자원들을 관찰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들인다는 가정은 설득력이 있다. 이 맥락은 “관찰의 이론의존성 명제”와 연관해서 서로 다른 선호가 존재할 수 있다는 측면으로 관심을 환기시킨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 2판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게슈탈트 전환(Gestalt Switch)에 비유했다. “. . . 그것은 게슈탈트 전환과 같이 (반드시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한꺼번에 일어나거나 전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둘 사이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완전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 변환이라는 일종의 “개종”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패러다임 사이의 공약불가능성은 바로 이러한 단절과 개종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용, 또는 이론선택과 연관된 과정은 논리적 추론이나 수학적 증명이 아니라 “설득”의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합리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김석관, 1999). 설득 과정에는 “그럴듯한 이유들(good reasons)”이 등장한다. 가령 정확성, 일관성, 단순성, 생산성 등이 그런 것들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안 맥멀린(Ian Mcmullin)이 “합리성과 과학에서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글에서 피력한 바, “패러다임 변화의 그럴듯한 이유들(good reasons for paradigm changes)”은 결코 강제적으로 변화를 추동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위한 이유들이 강제적으로 승인을 받아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저항이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비논리적으로 되는가에 대한 응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주창자들과 낡은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은 제각기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을 주장할 수 있다.. Ian Mcmullin, "Rationality and Paradigm Change in Science", in Horwich, Paul. Edit. 1993. World Changes; Thmas Kuhn and the Nature of Sciences, MIT Press, Cambridge, Massachusetts, and London, England


이 때 어느 편도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다고 해서, 각자가 자신의 주장에 대해 훌륭한 논리들을 펼 수 있다는 주장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혁명” 2판 후기에서 쿤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내가 분명히 하고자 하는 요점은 간단한 것이며, 과학철학 내에서는 오랫동안 친숙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즉  이론 선택을 둘러싼 논쟁은 결코 완전히 논리적이거나, 수학적 증명의 형식을 띨 수 없다는 것이다. ... 비교적 친숙한 이 명제에 관한 그 어느 것도, 무언가에 설득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이러한 이유들이 궁극적으로는 집단에 대해 결정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선택의 이유들이 과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열거하는 것 - 정확성(accuracy), 간명성(simplicity), 다산성(fruitfulness) 등 - 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정작 그것을 통해 시사하고자 했던 것은, 이들 이유는 일종의 가치(values)로서 기능하며, 따라서 이들을 지지하는 것에 있어 의견의 일치를 본 사람들에 의해, 개별적으로나 집합적으로, 서로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The Structures of Scientific Revolutions(SSR), 2n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0), p.199

경쟁하는 두 집단들이 어떤 패러다임이 더 나은가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논쟁이 진행되는 측면에서 적용된 규범들 그 자체가 그 패러다임에 일부가 되고 있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중립적이거나, 혹은 최소한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에 충분한 방법론적 기초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쿤의 패러다임 전환과 공약불가능성에 이르러 합리성 역시 진리와 마찬가지로 이전 시대의 합리성과 다른 개념으로 전환된다. 더 이상 보편적이거나 절대적인 합리성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합리성‘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2) 과학이론에 대한 두 가지 철학적 명제
“증거에 의한 과학이론의 과소결정 명제(underdetermination of scientific theories by the evidence)”는 아인슈타인(A. Einstein), 콰인(W. O. Quine) 등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이 명제는 어떤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적절한 조정을 가한다면 어떤 이론이든 유지가능하다는 것이다. 특정한 관찰결과들이 보조가설 집합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론(Theory)에 의해 수반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이러한 결과들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론과 보조가설 양자 모두가 참일 수 없다는 보다 약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 예견들이 구현되지 않는 한 이론이 원리상 보조가설들에 적절한 수정을 가함으로써 계속 존속할 수 있게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김환석, 1999). 이 명제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데이터와 증거의 존재를 전제하는 표준적인 과학관과는 달리 모든 이론이 증거에 의해 완전히 결정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증거 이외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과학이론의 형성에 개입될 수 있는 여지를 열었다.


“관찰의 이론 의존성(theory-ladenness of observation) 명제”는 과학지식사회학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뒷받침해준다. 쿤에 의해 비롯된 이 명제는 이후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 뒷받침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핵심적인 주장으로 요약된다. 첫째, 관찰은 측정이론, 관찰의 생리학 이론, 언어적 분류 이론 등의 보조가설들을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이론배태적(theory-impregnated)이다. 둘째, 관찰은 적절하고 유관한 증거로 간주하는 것들이 부분적으로 이론적 패러다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이론배태적이다.


이 두 가지 명제는 앞에서 언급한 쿤의 공약불가능성 개념과 함께 과학 지식으로서의 이론이 다른 종류의 지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론선택 역시 논리실증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객관적인 데이터나 이론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에 대한 관찰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의 개입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3. 사회적 구성주의의 수립

산업혁명 이후 이미 마르크스와 베버는 자본주의하에서의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주목했지만, 과학사회학이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기능주의 이론가였던 머튼(Robert K. Merton)에 의해서였다. 머튼은 과학을 하나의 ‘합리적인’ 사회적 제도로, 즉 과학을 합리적인 규범이 지배하는 과학자사회의 합리적 산물로 파악하였다(Merton, 1973). 머튼은 1930년대부터 과학 발전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개척하였는데, 주로 과학활동의 조직적․행태적 측면에 연구를 집중하였다. 따라서 머튼의 과학사회학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과학제도의 사회학(institutional sociology of science)이라고 불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구조기능주의(structural functionalism) 이론에 바탕하고 있던 머튼은 과학활동이라는 사회적 제도는 과학자들이 신봉하는 일련의 ‘가치규범’에 따라 작동한다고 보았다. 머튼은 과학자 사회를 규제하는 가치규범은 보편주의(universalism), 공유주의(communism), 조직화된 회의주의(organised scepticism), 그리고 불편부당성(disinterestedness)에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러한 가치규범으로 인해 과학활동은 사회의 여타 부문들의 일상적인(종종 이기적인) 이해관계로부터 해방되어 자연에 대한 합리적․객관적인 지식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머튼에 따르면 과학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제도적 실천규범들에 대한 순응으로 인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지식을 창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과학지식사회학(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 SSK)의 출발은 1970년대 이후 마이클 멀케이, 해리 콜린스, 배리 반즈, 그리고 데이비드 블루어와 같은 연구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강한 프로그램과 과학지식사회학
1970년대 중엽에 에딘버러의 일단의 연구자들이 새로운 과학지식사회학의 기초를 닦은 일부 문헌들을 발표했다. 이 그룹에는 데이비드 블루어(David Bloor), 배리 반즈(Barry Barnes), 데이비드 에지(David Edge), 그리고 도널드 맥켄지(Donald MacKenzie)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그룹에서 나온 매우 영향력높은 틀이 블루어의 강한 프로그램(Strong Program)이다. 그는 1976년에 발간된 저서 <지식과 사회의 상(Knowledge and Social Imagery)>에서 강한 프로그램을 제창했다. 과학지식사회학의 강한 프로그램의 기본적 교의(敎義)는 다음과 같다.


(1)인과성; 과학의 사회적 연구는 신념, 또는 지식의 상태들을 설명해야 한다.
(2)공평성; 과학지식사회학은 지식의 참과 거짓, 합리성과 비합리성, 성공과 실패에 대해 공평해야 한다.
(3)대칭성; 참과 거짓의 신념을 같은 종류의 원인으로 설명해야 한다. “참”인 과학은 자연에서 그 설명을 구하고, “거짓”인 과학은 그 원인을 사회에서 찾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4)성찰성; 과학에 적용하는 것과 동일한 설명을 과학의 사회적 연구에도 적용시켜야 한다.


이 중에서 공평성과 대칭성 원리는 강한 프로그램의 핵심에 해당한다. 특히 대칭성 원리는 과학지식사회학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원리에 해당하며, 이후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의 전개에서 중심적인 축과도 같은 구실을 한다. 스티브 울가와 위비 바이커는 대칭성 원리의 점진적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과학과 사회 제도 사이의 대칭성을 다룬 머튼에서 시작해서 블루어의 참 지식과 거짓 지식 사이의 대칭성, 그리고 과학과 기술, 분석가와 분석대상, 사람과 기계, 사회와 기술 사이의 대칭성을 주장하는 이후의 전개과정에 이르는 과학의 사회적 연구의 지적 역사에 관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2)사회적 구성주의
사회적 구성주의는 콜린스(H. M. Collins)의 해석적 유연성(interpretive flexibility)과 논쟁 종결기제(closure mechanism) 개념으로 진전된다. 콜린스는 ‘상대주의의 경험적 프로그램(empirical programme of relativism, EPOR)’을 통해 과학지식의 생산이 실험결과에 대한 해석적 유연성을 기반으로 과학자 사회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논쟁이 종결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과학지식은 자연의 투영으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construct)되는 구성물의 위상을 얻게 된다. 해석적 유연성과 논쟁종결기제는 복수(複數)의 경로와 복수의 과학지식 구성이 가능하며, 각각의 경로와 구성물에 대해 대칭적인 인식이 가능함을 보여준다(Webster, 1991).


핀치와 바이커로 대표되는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 SCOT)는 EPOR을 기술에 거의 그대로 적용시키면서 기술 분석의 강력한 도구로 삼았다. 여기에서 대칭성은 인식론에서 기술 또는 기술품이라는 가시적인 대상의 분석을 위한 도구로 구현되면서 보다 분명한 모습을 얻게 된다. “강한 사회적 구성주의(strong social constructivism)”라고 부를 수 있는. Phlip Brey는 Social Constructivism for Philosorhers of Technology; A Shopper's Guide, PHIL & TECH 2:3-4 Spring, Summer 1997에서 사회구성주의 기술연구를 다음과 같은 3가지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strong social constructivism, mild social constructivism, actor-network theory. 순한(mild) 사회구성주의에는 MacKenzie, Wajcman의 사회형성론이 분류되는데, Brey는 형성론이 사회와 자연, 사회와 기술 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순한” 부류로 따로 분류한다. 사회형성론에서는 비사회적(nonsocial) 요소가 인정되고, 기술의 특성과 영향이 특정 사회적 맥락과 연관해서 인정된다.


EPOR, SCOT는 이러한 대칭성 원칙을 강하게 고수하면서 그를 통해 인식론적 대칭성을 강력한 분석도구로 벼려내려고 시도한다.  
대칭성 원칙을 기술 분석에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분석자는 일반적으로 기술의 진정한 본성(true nature)에 대한 주장을 회피한다. 가령, 인공물의 작동가능성(또는 불가능성), 기술적 효율성(또는 비효율성), 기술 변화를 통한 성공(또는 실패), 기술 선택의 합리성(또는 비합리성), 기술적 진보(또는 퇴보), 특정 인공물의 진정한 기능이나 목적, 기술의 본질적인 영향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분석자는 기술의 진정한 특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며, 나아가 기술변화를 설명하는데 그러한 특성들을 끌어들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Brey, 1997). 기술에 대한 어떤 본질적 특성이나 용도, 성공이나 실패 여부에 대한 언급도 기본적으로 대칭성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기술에는 어떤 “특성(property)”, “힘(power)”, 또는 “영향(effect)” 등의 속성을 붙일 수 없다. 따라서 분석과정에서 기술의 실제적 속성에 대한 어떤 언급도 회피된다. 기술은 사회적 구성물이며, 역시 사회적 구성물인 다른 사회적 요소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만 설명되어질 수 있다.


SCOT는 쿤과 과학지식사회학의 강한 프로그램에 의해 수립된 인식론적 대칭성을 구체적인 기술과 기술물에 적용시키면서 강력한 분석도구로 등장했다. 오늘날 이 분석도구는 과학기술사회학의 거의 모든 측면에 적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구성적 접근방식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과학기술학 이외의 여러 영역에서도 활용되고 있다(Bijker and Pinch, 1987).

4. 과학의 문화적 연구
철학자인 조셉 루즈(Joseph Rouse)는 최근에 발표한 논문 “What Are Cultural Studies of Scientific Knowledge?”에서 과학지식에 대한 문화적 연구의 의미를 “그것을 통해서 과학지식이 구체적인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 속에서 결절화되고(articulated), 지속되며, 새로운 맥락으로 번역되고 확장되는 실행들에 대한 다양한 연구”라고 응축한 바 있다. 이 때 문화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포섭한다. 하나는 사회적 실행이나 언어적 전통, 또는 정체성의 구성, 공동체, 단결과 같은 “물질적 문화(material culture)”를 포함할 수 있는 이질성(heterogeneity)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 구조 또는 장의 내포이다. 따라서 루즈가 파악하는 과학문화는 외연과 내포의 양 측면을 포괄하면서, 그 맥락(문화적 맥락)을 통해 과학지식이 비로소 결절화되는 적극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셈이다.


과학지식에 대한 문화적 연구의 대상은 지식의 수립과 그 문화적 실행, 그리고 형성 사이의 교통(traffic)이다. 그리고 과학지식은 그것이 결절화된 원천에 대한 상세한 검토를 통해서 이해되어야 하는 문화적 형성(cultural formation)으로 간주된다.


루즈는 과학에 대한 문화적 연구가 단순히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등의 제도화된 학문적인 과학기술학의 역사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역사, 과학의 문화, 그리고 과학 지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투쟁이라는 포괄적인 틀 속에 모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가령 군사화된 과학연구(특히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민중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People)이나 급진 과학저널 집단(Radical Science Journal Collective), 환경운동과 같은 과학자들의 조직적 움직임, 재조합 DNA와 인간게놈프로젝트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논쟁 등도 과학에 대한 문화적 연구에 포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과학에 대한 문화적 연구의 지평을 넓히면서, 그 속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성을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로 분류했다.

1. 과학에 대한 반(反)본질주의(antiessentialism)
과학의 문화 연구는 과학에 본질, 또는 실질적으로 모든 과학연구가 그것을 동경해야 하는 단일한 목표가 있다는 개념을 배격한다. 과학연구의 실행, 그 산물, 그리고 규범은 역사적으로 가변적이며, 과학의 여러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또한 과학연구는 같은 분야 내에서도 문화적으로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라마다 연구 방식, 방향, 표준, 목표 등이 다를 수 있다.

2. 과학적 실행에 대한 비설명적 개입(nonexplanatory engagement)
사회구성주의와 구별되는 과학의 문화적 연구의 특성은 과학지식(또는 그 “내용”)에 대해 설명적 접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구성주의는 설명적 사회과학(explanatory social science)으로서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과학적 실행의 인식적 결과들을 (잠재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설명적 입장은 서로 다른 현상들의 다양성을 몇 개의 잘 이해된 원리로 포괄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연구는 설명적 접근이 설정하는 해석과 실제 일어나는 일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는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이러한 이의제기 중 하나는 이른바 민속방법론(ethnography)이다. 문화인류학에서 사용되는 방법인 민속방법론은 연구 대상에 대한 사전적인 지식이나 선입관을 배제하고 연구자는 이방인(stranger)의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사용되는 방식은 대상에 대한 설명이 아닌 해명(account)이 된다. 루즈는 과학의 문화연구가 자연과학의 이미 수립된 문화적 권위(established cultural authority)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3. 과학지식의 국소성에 대한 강조
과학의 문화연구의 세 번째 특징은 과학적 실행의 국소적(local)이고, 물질적이고, 담론적 특성이다. 흔히 과학지식은 마치 그것을 통해 과학지식이 수립되고 사물과 연관될 수 있는 물질적, 도구적 실행들과 분리가능한 자유롭게 부유하는(free-floating) 개념들의 총체인 것처럼 간주된다. 그러나 문화연구는 지식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도구, 구체적인 재료, 그리고 그것들을 사용하는데 요구되는 기술들의 복합체(complex)가 갖는 중요성을 포착한다. 또한 문화연구는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적 의사소통과 교환의 연결망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문화연구는 과학지식을 이러한 연결망들이 형성되는 국소성의 측면에서 파악하려고 시도한다.

4. 과학적 실행의 문화적 개방성에 대한 강조
과학연구의 개방성, 즉 열려있음(openness)에 대한 강조는 과학자 공동체(scientific community)가 상대적으로 자기 폐쇄적이고 균질하며, 다른 사회집단이나 문화적 실행들과 무관하다는 통념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가령 앞에서 살펴본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자 공동체의 지적, 규범적 자율성과 통일성을 강조하며, 사회구성주의 전통도 이 측면에서는 쿤의 관점을 계승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과학자 공동체가 공유된 믿음, 가치, 관심 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는 머튼의 제도주의 사회학에서 사회구성주의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인 측면에서 일관된 흐름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문화 연구는 흔히 과학자 공동체, 또는 과학자 사회와 나머지 문화를 구분짓는 것으로 가정되는 경계선을 넘어 끊임없는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5. 과학의 “가치중립성” 개념이나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전복(subversion)
실재론과 반실재론을 둘러싸고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에서 많은 논쟁이 이루어졌다. 문화연구는 실재론과 반실재론을 모두 거부한다. 그 이유는 실제 대상과의 인과적 연관성에 의존하는 실재론이나 그 내용을 결정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설명을 채택하는 사회구성론 모두 설명되어야 할 고정된 “내용(content)”이 있다는 전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문화연구는 구조와 내용, 또는 맥락과 내용이라는 이분법을 모두 거부한다.


그로 인해 문화연구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과학에 대한 문화적 연구와 과학적 실행 사이의 경계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문화연구는 과학적 실행의 “바깥”에서 그것에 대해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무엇이 아니라 과학문화 그 자체의 일부로서 귀속된다.

6. 과학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적, 정치적 비판에 대한 관여
사회구성주의는 흔히 자신들의 연구가 과학지식이 사회적으로 생성되는 방식에 대한 기술이며, 그 인식적, 정치적 가치에 대한 모든 물음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가치중립성”이라는 과학적 이상을 근거로 삼는 전통에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에 비해서 문화연구는 자신의 문화적, 정치적 개입에 대해 훨씬 강한 성찰적 의미를 부여하며, 인식적, 정치적 비판을 회피하거나 삼가지 않는다. 이것은 과학의 문화연구를 비롯해서 실제로 모든 연구가 인지적,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근본적인 인식의 발로이다.

 


II부     
과학문화의 실천적 함의

과학과 대중, 또는 과학자 사회와 대중 사이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과 대중 양편에서 함께 일어나며, 한쪽의 변화가 다른 한쪽의 변화에 깊은 영향을 주는 일종의 공진화(共進化)의 양상을 띤다. 과학, 과학자 사회, 대중 모두가 변혁과정의 사각지대가 아닌 까닭이다.


1부에서 살펴보았듯이 80년대 이후의 과학기술학(STS)의 전개는 과학, 과학지식의 성격에 대한 인식에서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기술학의 학문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과학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과학과 대중의 관계에도 투영된다. 실제로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등의 학문적 관점의 변화는 과학과 대중의 관계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상호작용한다. 과학기술학 자체가 대중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태도가 크게 변화한 1970년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70년대 이후 과학기술학이 제공한 연구 성과들은 대중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이론적 무기가 되었다.  


이처럼 과학문화에서 나타난 변화의 특성은 “이해에서 참여로” 그 중심축이 이동해 간 것이다.  그동안 과학문화는 과학대중화론과 함께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에 비해 1970년대 이후 한편으로 과학기술학이 수립되면서 과학기술의 탈(脫)신비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다른 한편으로 환경운동을 비롯한 과학기술 시민운동이 시작되면서 과학문화는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public participation in science)”로 중심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대중의 이해’라는 소극적인 과학문화에서 ‘대중의 참여’라는 적극적인 과학문화로의 이행이기도 하다.


시민참여의 형태는 크게 간접적인 시민참여와 직접적인 시민참여로 나눌 수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정보에 대한 참여, 자문기구를 통한 참여, 사법적 수단을 통한 참여 등 다양한 참여를 시도해왔고, 1970년대 후반부터는 직접적 참여를 통해 과학기술 정책과 의사결정에 직접 자신의 견해를 제출하기 위한 노력을 벌여왔다(이영희, 2000). 물론 아직까지 일부 분야에서는 대중의 참여가 내용보다는 형식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중요한 방식에서 대중의 영향이 연구 과정 자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대중참여의 양상이 과학자 사회가 움직이고 작동하는 사회적 기후를 바꾸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직접적인 시민참여의 모형은 시민조사위윈회(citizen review board),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 사이언스숍(science shop) 등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간접적인 시민참여와 직접적인 시민참여에 대해서는 이영희, 2000, “과학기술과 시민참여; 시민과학론의 논리와 실천(과학기술의 사회학, 한울)”을 첨조.


그 중에서 현재 가장 많은 나라에서 제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모형이 합의회의이다.


본 절에서는 1998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합의회의를 개략적으로 평가해서 과학문화의 적극적 측면으로서 과학기술 시민참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따라서 합의회의라는 시민참여 모형 자체를 평가하는 것보다는 합의회의를 통해 이루어진 시민참여의 가능성에 대한 평가가 중심적 내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합의회의 경험에 대한 평가를 통해 과학문화의 실천적 함의를 살펴볼 것이다.


1. 합의회의의 배경

1)합의회의의 역사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의 개념은 1960년대에 미국의 보건 부문에서 시작된 기술영향평가(technology assessment) 모형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이후 덴마크기술국(Danish board of Technology)은 이 개념을 발전시켜서 기술평가 과정에 시민 패널을 사용하는 방법을 채용된다. 1987년 이후에 덴마크에서만 15차례 이상의 합의회의가 열렸고, 덴마크의 성과를 인정한 많은 나라들이 합의회의의 모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합의회의의 목표는 대중, 전문가(과학자), 정치가들 사이의 토론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정책 형성과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토론은 여타의 일반적 토론과는 구별되는 특성을 갖는다. 합의회의는 그 사회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는 과학기술적 주제에 대한 조직적(structured) 토론이고,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주어진(informed) 토론이다.


초기의 합의회의가 주로 기술영향평가의 수단이라는 성격이었다면, 최근에는 해당 사회의 중요한 과학기술 연구의 방향과 정책과 연관된 다양한 주제들이 포괄되는 추세이다. 따라서 합의회의라는 모형을 채택하는 사회의 맥락에 따라서 주제도 다양해질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두 차례의 합의회의가 이루어진 과정은 생물공학의 빠른 발전으로 형성된 대중적 관심과 요구가 합의회의라는 틀을 통해 분출되는 과정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라는 그다지 익숙치 않은 사회적 실험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8년에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과 생명윤리”, 그리고 1999년에는 “생명복제”를 주제로 두 차례의 합의회의가 열렸다. 합의회의가 가능하기 위해서, 그리고 합의회의를 통해서 시민의 요구와 참여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합의회의라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에 앞서 과학기술적 주제에 대해 시민들의 폭넓은 관심이 형성되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생각을 조직적, 체계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시민운동단체들의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같은 여건 하에서 시민들은 전문가들의 고유한 영역으로 간주되어온 과학기술의 문제에 참여해서 자신의 견해와 요구를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합의회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인 대중적 인식(public perception)과 사회적 의제(social agenda)의 형성과정과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을 정사할 필요가 있다.  

2) 사회적 의제 형성
미국의 경우 생물공학과 연관된 사회적 의제는 1960년대 후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략 세단계를 거치면서 변천해왔다. 1968년에서 1974년에 걸친 첫 번째 단계는 주로 생물공학의 윤리와 도덕적 문제가 의제로 부상했다. 1962년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 “침묵의 봄”을 발표하면서 주로 환경문제의 측면에서 생물공학에 대한 대중적 우려가 확산되기 시작했고, 68년에는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이 유전공학 발전과 사람의 조직(tissue) 이용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보건과학과 사회 위원회(Commission on Health Science and Society)"를 설립했다. 두 번째 시기는 1974년에서 1980년이며, 중요한 의제는 안전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73년 여름에 폴 버그(Paul Berg)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재조합 DNA(recombinant DNA) 실험에 성공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모라토리엄 선언 등을 거치면서 생물공학계를 중심으로 사회 전체에서 생물공학의 안전성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다. 1980년 이후의 중심 의제는 경제이다. 1980년에 유명한 다이아몬드 샤크라바티(Diamond v. Chakrabarty) 소송에서 미국 대법원이 단세포 생물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한 것이 그 발단이었다(Plein, 1990).  


생물공학(bio-technology)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계기는 1997년 2월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윌머트 박사에 의한 복제양 돌리의 탄생이었다.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이용해서 포유류 동물을 복제한 이 사건은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곧바로 인간 복제에 대한 가능성으로 연결되었다. 이후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정부에서 SF가 아닌 현실의 문제로 닥친 인간 복제의 사회적, 윤리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가 마련되기 시작했고, 민간 차원에서도 같은 해 29차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인간게놈과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이 채택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희의료원 불임 클리닉의 한 연구팀이 1998년 12월에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이용한 인간배아 실험에 성공하면서 본의 아니게 세계 최초의 인간복제 실험으로 세계적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대한의학회가 실태조사를 벌이는 소동을 빚었다.


복제가 생물공학의 윤리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확산시켰다면, 유전자 조작식품을 둘러싼 논란은 안전 문제를 쟁점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1994년에 처음 유전자 조작의 산물인 잘 무르지 않는 플레이버 세이버 토마토가 상품화된 이래 ‘프랑켄푸드’(Frankenstein-Food)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유전자 조작생물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GMOs)가 인체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영국의 로위트 연구소에 근무하던 아파드 푸스타이 박사가 98년에 스코틀랜드 주 정부에서 의뢰받은 연구에서 유전자조작된 감자를 먹인 쥐의 간과 심장 등의 장기가 줄어들고, 기능이 저하되었을 뿐아니라 면역체계도 약화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우리 시민들이 모르모트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1999년에는 미국 코넬 대학에서 해충을 방지하기 위해 독성물질을 포함한 GMOs 옥수수의 꽃가루가 다른 식물로 전이(轉移)되어 나비의 유충을 죽이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조작된 유전자가 자연 생태계에서 다른 생물로 전이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1999년 11월에는 유전자조작 곡물의 자유로운 국경통과문제를 포함한 뉴라운드(New Round) 협상을 둘러싸고 전세계에서 모인 NGO들이 회의장소인 미국의 시애틀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서 유전자 조작식품의 안전성 문제가 비등하게 된 것은 1998년 11월의 유전자조작 두부 사건이었다. 당시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시중에 유통중인 콩 30종과 두부 22종을 조사해서 국내산 콩 28종은 GMO가 아니지만 수입콩 2종은 GMO이고, 시판두부의 경우는 22종 중 82%인 18종이 미국의 다국적 곡물회사인 몬산토(Monsanto)가 개발한 제초제 내성(耐性) 유전자 조작된 콩이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는 보도가 있은 후 국내에서도 유전자조작 식품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었다. 발표가 있은 직후 두부 소비량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유전자 조작식품의 문제가 두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입콩이나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대부분의 가공식품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먹어야 하는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혼란이 배가되어 영세 두부제조업체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이 사건 이후 국내에서 유전자조작 식품의 안전성을 둘러싼 대중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생물공학이 대중적 논의의 주제로 부상하는 과정은 인간복제와 GMOs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복제양 돌리와 유전자조작식품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은 생물공학의 윤리와 안전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부상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경희의료원의 배아 실험과 두부 파동이 대중들에게 큰 충격으로 각인되면서 생물공학 주제들이 공공의 의제(public agenda)로 떠오르게 되었다. 두 차례의 합의회의 주제가 “유전자 조작식품의 안전과 생명윤리(98년)”와 “생명복제(99년)”로 선정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이같은 의제 형성과정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과 대략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리 나라의 의제형성과정의 특징은 외국에서 수십년에 걸쳐 진행된 과정이 대단히 압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조직적인 시민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

3) 조직적인 시민운동
대중적 인식의 확산은 자동적으로 사회적 공론화나 사회적 의제 수립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생물공학의 안전과 윤리의 문제가 미국이나 유럽과 큰 시차없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있었다. 국내 시민단체에서 처음으로 복제실험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린 것은 1997년 초였고, 1997년 7월에는 10개 시민단체가 “생명공학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시민, 사회단체 토론회”가 열렸다. 10개 단체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녹색연합, 다른과학편집위원회, 서울 YWCA 연맹, 소비자문제를 생각하는 시민의 모임,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참과학기술실현정책연구소(추), 한국과학기술청년회, 한국불교환경연구원, 환경운동연합이었다. 이 토론회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혜경, 1999, “시민운동 속의 생명공학”(<진보의 패러독스>,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 편, 당대)와 <다른과학 3호>(1997. 10. 사회평론)를 참조하라.


이 토론회는 시민단체들의 4개월에 걸친 준비 끝에 이루어졌고, 이후 합의회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이후 과민모)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명칭은 이후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로 바뀌었다.


1997년 11월에 출범한 과민모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과학기술을 시민운동의 영역으로 포괄시켰다. 과민모는 출범 초기부터 윤리성과 안전성 확보를 위해 생명공학 정책에 개입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설정했다(이혜경, 1999). 이후 과민모는 생명공학 감시운동에 관심이 있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모아서 “생명공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실무자 모임”을 결성했고, 이 모임은 1998년 9월 11일에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한국여성민우회 등 9개 단체가 9개 단체는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그린훼밀리운동연합,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녹색소비자연합, 녹색연합, 불교환경교육원,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 한국여성민우회, 환경운동연합’이다.


‘생명안전윤리 시민사회단체 연대모임’의 이름으로 주최한 “생명공학 육성법 개정 관련 시민단체 연대모임 토론회”를 계기로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이후 연대모임)으로 발전했다. 그에 앞서 1998년 8월에는 유전자 조작콩이 우리나라에도 수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실무자 모임을 중심으로 탑골공원 앞에서 집회가 열렸고, 정부에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유통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허남혁, 2000).


이후 연대모임과 과민모는 성명서 발표, 월례토론회, 언론매체를 통한 입장 표명, 참여사회 아카데미 과학기술 강좌 개최, 대중 토론회와 강연회 개최, 시위 등의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계속했는데, 그 중에서도 대중 토론회와 강연회는 생물공학의 중요한 쟁점들을 제기하고, 생물공학의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공론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기할 만한 토론회와 강연회를 몇 가지 언급하자면 1998년 5월의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기술 강연회(동덕여대, 서울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KAIST)", 1999년 1월의 ”인간복제에 대한 법적 대응 - 생명공학 육성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1999년 8월의 ”환경정의와 생명공학 감시운동 활동가 워크숍“ 등이 있다.
과민모와 연대모임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단체들의 활동은 생물공학 윤리와 안전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생물공학에 대한 시민참여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었는데, 두 차례의 합의회의는 바로 이 같은 토대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2. 합의회의의 과정

일반적으로 합의회의의 과정은 크게 조정위원회(steering committee)의 구성, 시민패널 선발, 예비 모임, 본회의의 순서로 진행된다. 본 논문에서는 “조정위원회 구성 → 합의회의 주제 선정 →  시민패널 구성 → 예비모임 → 질문선정 → 전문가패널 구성 → 본회의 → 결과 발표”의 순서로 진행과정을 상술해보고자 한다.  

1)조정위원회 구성과 주제 선정
조정위원회는 합의회의의 전체 과정을 총괄하는 중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구성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합의회의 제도가 정착된 외국에서는 조정위윈회가 주제 선정, 시민패널의 모집과 선발, 전문가 위원회의 선발 등을 모두 책임지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민간 단체의 주도로 처음 시도되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합의회의라는 시민참여 제도가 대중적으로 처음 소개된 것은 앞에서 거론한 “생명공학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토론회”와 1997년 10월 29일자 한겨레신문의 '과학기술 민주화 현장을 가다'라는 특집 연재기사였다 '합의회의' 개념의 학문적 소개는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당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원)에 의해 96년 12월 한국사회학회 후기사회학대회에서 처음 이루어졌다. 이 논문은 STEPI 연구보고서 <유럽의 기술영향평가: 참여적 과학기술정책의 새로운 흐름>(1997년 3월)로 발표되었다(김환석, 1998).


. 합의회의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생물공학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확산과 시민운동 단체들의 활동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 합의회의가 열린 계기는 상당히 우발적이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98년의 주요 사업중 하나로 '생명윤리'(bioethics)에 관한 사업을 하기로 기관 차원에서 이미 결정하고 그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구상하기 위한 자문회의를 3월 12일에 개최하였는데, 그 자리에 이후 합의회의 프로젝트 책임자가 된 김환석 교수(과민모 대표)가 초청을 받아 생명윤리사업을 합의회의 방식으로 추진하도록 유네스코측에 적극 권유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김환석, 1998). 따라서 우리 나라의 합의회의는 철저히 민간단체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이후 1998년 4월 초에 생명윤리 사업의 일환으로 합의회의를 추진하기로 최종 결정이 이루어졌고, 김환석 교수와 유네스코, 과민모의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준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조정위원회 내에서 프로젝트 책임자가 상대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조정위원회는 합의회의의 준비과정에서 최고 의사결정기구의 기능을 한다. 프로젝트 책임자와 실무자들이 세운 계획 전체를 승인하고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기구가 조정위원회이다. 조정위원의 선정작업은 프로젝트 책임자와 행사를 주최한 기관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졌고, 조정위원은 합의회의의 의의에 대해 공감하면서 합의회의의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성을 목표로 삼았다(김환석, 1998) 프로젝트 책임자와 조정위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1차) 프로젝트 책임자; 김환석(국민대 사회학과 교수,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 대표), 조정위원; 이세영(고려대학교 전 생명공학원장, 국제생명윤리위원회 위원), 변광호(생명공학연구소 소장), 송상용(한림대 교수, 한국생명윤리학회 부회장), 조홍섭(한겨레신문 생활과학부장), 김영락(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유학상(한국과학문화재단 사무국장)


(2차) 프로젝트 책임자; 김환석(국민대 사회학과 교수,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 대표), 조정위원; 노현모(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 교수), 장문호(과학기술평가원장), 진교훈(서울대학교 국민윤리학과 교수), 박상증(참여연대 공동대표), 조규하(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 김훈기(과학기자클럽, 과학동아 기자)
. 1,2차 합의회의는 해당 주제에 대한 찬반 입장의 조정위원을 안배하면서 합의회의 진행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영국의 경우 “방사능폐기물 관리”를 주제로 한 2차 합의회의(1999)의 조정위원회는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Earth)", “국립환경연구위윈회(National Environmental Research Council)” 등 여러 시민단체와 연구기관들의 자문을 통해 구성되었다(Palmer, 1999).


합의회의는 ‘정치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과학기술적 주제에 대해 비전문가인 보통사람들이 전문가와의 조직화된 공개토론을 통해 정리된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여론형성과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새로운 시도’(김환석, 1999)로서, 주제는 그 사회의 맥락(context)에서 일반시민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선정된다. 참고로 본격적인 시민 합의회의를 처음 시작한 덴마크에서 다룬 주제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농업과 산업에서의 유전공학의 응용(1987), 식료품에 대한 방사능 이용(1989), 인간유전자에 대한 과학지식의 응용(1989), 동물에 대한 유전자조작 실험(1992), 승용차 이용의 미래(1993), 불임치료(1993), 전자주민카드(1993), 가상현실(1993), 교통정보기술(1994), 식품과 환경에서의 화학물질의 위험성평가(1995), 유전자치료(1995), 소비와 환경의 미래(1996), 어업의 미래(1996), 원격노동(teleworking)(1997), 유전자변형식품(1999)

우리 나라에서는 최초의 시도인 1차 합의회의에서 주제선정을 둘러싸고 '생명복제', '유전자치료', ‘유전자조작식품’ 등의 복수(複數)의 주제들이 제기되었고, 그 중에서 유전자조작식품이 선택되었다. 1998년의 1차 합의회의는 첫 번째 시도였기 때문에 특히 주제 선정을 둘러싸고 많은 요소들이 고려되었다. 프로젝트 책임자였던 김환석 교수는 자신의 평가글인 “우리나라 합의회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났던 문제점”(<시민과학> 창간호, 1998. 11)에서 주제선정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 . . .  대중의 주목을 받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또 '유전자치료'는 일본의 첫 합의회의 주제였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생명복제'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마지막으로 언론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확인차 조홍섭부장에게 연락했으나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생명복제'는 언론에서 이미 97년에 다 울궈먹은 주제여서 식상해 할 것이란 지적이었다 . . . 합의회의의 성패 여부엔 언론의 관심과 보도가 중요한데, 이는 큰일이다 싶어서 다른 주제를 다시 원점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대중의 관심, 외국에서 다룬 주제인지 여부, 언론의 관심 등이 고려되었음을 알 수 있다.


2차 합의회의에서는 ‘인간복제 기술 및 이와 결합되는 유전자조작 기술에 의한 윤리적․사회적․법적 문제와 규제’, ‘CCTV에 의한 인권침해’가 제안되었고 최종적으로 1안의 주제를 받아들여져 ‘생명복제기술’로 확정되었다(김두환, 2000).

2)시민패널의 모집과 선발과정
시민패널 모집과 선발에서 합의회의가 얼마나 널리 홍보되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합의회의가 공적인 지위를 가질수록 홍보에 유리하고, 다양한 시민들이 지원을 해서 이른바 보통 시민(layman)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합의회의는 이 점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정부나 국회가 아닌 시민단체가 합의회의를 주관했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가 낮았고, 한정된 예산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한계 때문에 홍보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1차의 경우 한겨레신문 7월 20일자의 과학란 기사, 리플렛 배포가 고작이었다. 2차 단계에서는 상황이 조금 나아져서 중앙일간지 두 곳과 라디오 방송, 그리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가 홍보에 이용되었다. 시민패널 모집광고에 게재된 시민패널 지원자격은 다음과 같다. “18세이상으로 모든 모임에 참석 가능한 분”, “생명복제기술에 대한 이해관계가 없는 분”, “생명복제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도 가능(숙박, 교통비 및 필요 경비 제공)”(김두환, 2000)

이처럼 제한된 홍보의 영향은 시민패널 지원자 숫자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1차의 경우 총 지원자가 40명이었다. 일반적으로 외국에서는 최소한 지원율이 10 대 1에서 30 대 1 가량인데 비하면 무척 적은 숫자였다. 실무진은 성(性), 연령, 학력, 직업 등의 분포를 고려해서 20명 가량의 후보를 선발했고, 프로젝트책임자가 면담을 통해 최종적으로 14명을 선발했다. 1차 합의회의 시민패널 명단은 다음과 같다. 40대-60대; 강병만(남, 한국노인의 전화 사무국장, 서울), 강민자(여, 농민, 안성), 이정자(여, 노동자, 서울), 이임갑(남, 심리학과 박사연구원, 대전), 30대; 이영화(여, 주부, 대학원생[여성학], 대구), 김소영(여, 주부, 남양주), 박철순(남, 정부부처 행정사무관, 서울), 곽성신(남, 자영업[보험대리점], 서울), 장혜영(여, 고교 교사, 서울). 20대; 박조연(남, 잡지사 편집기자, 서울), 연제헌(남, 생물학과 학생, 서울), 박윤희(여, 회사원, 서울), 채행옥(여, 물리치료사, 인천), 문민숙(여, 정외과 학생, 광주). 연령대는 20대 5명, 30대 5명, 40대-60대 4명이었다. (과학동아 1998. 12. 김훈기, "유전자 조작 식품 먹어도 되나 - 3개월에 걸친 시민 합의회의 지상 중계)


2차에서는 1차보다 많은 88명이 지원했고, 그 중에서 45명이 면담을 거쳤고, 조정위원회에서 다시 16명의 시민패널을 최종 선발했다. 2차 합의회의 시민패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임채수(남, 54, 초등학교 교사), 윤선주(여, 50, 주부), 황인범(남, 49, 생활건강상담사), 전재만(남, 44, 호스피스 전문가), 이창현(남, 44, 의사[일반외과]), 고현희(여, 42, 주부), 심순영(여, 40, 자영업[광고기획]), 김만수(남, 35, 시의원), 이정섭(남, 33, 수의사), 강희정(여, 32, 고교교사), 신은정(여, 31, 회사원), 주우정(남, 30, 출판편집인), 한수용(남, 28, 연구소 인턴직원), 장은희(여, 25, 사회단체 간사), 최주리(여, 25, 한의학과 학생), 이선영(여, 20, 영문과 학생)


2차에서 더많은 시민들이 지원하게 된 이유는 1차 합의회의를 통해 합의회의라는 제도가 비교적 많이 소개되어서 대중들에게 상대적으로 생소함이 덜해졌고, 1차 때보다 많은 홍보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민패널은 10-20명 사이에서 선발된다. 영국의 2차 합의회의의 경우 모두 120명이 지원해서 그 중에서 70명이 1차로 선발되었고, 그후 성별, 연령, 교육 정도 등을 고려해서 최종적으로 16명이 선발되었다. 영국은 시민패널 모집을 독립적인 시장조사 회사(CFS International)가 맡아서 수행했다. 그리고 모집방법도 우리와 달라서, 임의적으로 4천명을 골라서 합의회의의 시민패널로 초청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단계에서 합의회의의 주제는 알려주지 않았다. 120명은 이 초청에 응한 사람의 숫자이다. 그리고 최종 선발된 16명 중에서 1명이 예비모임에 불참해서 실제 패널은 15명이었다.


3)예비모임과 질문선정, 전문가 패널 선정 과정
예비모임은 시민패널들이 합의회의가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 교육받은 시민(informed citizen)이 되는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를 반대하는 핵심적인 논거는 “복잡하고 난해한 과학을 평범한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정책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예비모임은 시민패널들이 해당 주제에 대해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가들이 동원된다. 다른 한편, 예비모임은 시민패널들이 토론과 숙의(deliberation)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호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1차 합의회의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주말 예비모임을 가졌고, 이 과정에서 찬성과 반대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었다. 2차 합의회의에서도 2차례의 예비모임을 통해 합의회의 본회의에서 전문가들에게 제시할 주요질문 사항을 선정하였다. 1, 2차 합의회의 예비모임에서 선정된 주요 질문은 다음과 같다.

<1차 합의회의>;
질문 1. 유전자조작 식품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필요한가?
질문 2. 유전자조작 식품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질문 3. 유전자조작 농작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질문 4. 유전자조작 식품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는?
질문 5. 유전자조작 식품의 안전에 관한 바람직한 규제방향은?
질문 6. 유전자조작 식품의 윤리적․종교적 문제는 무엇인가?
질문 7. 유전자조작 식품의 안전과 윤리에 대한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2차 합의회의>
질문 1. 생명복제기술이란?
질문 2. 생명복제기술의 이점은 무엇인가?
질문 3. 생명복제기술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질문 4. 생명의 출발점은?
질문 5. 생명복제기술의 허용한계는?
질문 6. 생명복제기술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질문 7. 생명복제기술에 대한 국내외의 규제동향은?
질문 8. 시민참여의 필요성과 방안은?
질문 9. 과학자와 시민의 윤리는 무엇이고, 그것을 교육시킬 방안은?
질문 10. 생명복제기술에 있어 종교계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예비모임을 통해 주요 질문과 보조 질문이 선정되면, 프로젝트 책임자와 실무진들이 전문가 패널을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조정위원회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고, 1차와 2차 모두 실무자들의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시민패널들이 궁금해하는 물음들에 실질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조목조목 설명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렵사리 전문가들을 구해서 전문가 패널을 구성했지만, 1차 합의회의의 경우 시민패널에서 찬성쪽 전문가들이 너무 일반론에 치우쳐 정작 궁금한 점을 해소해주지 못했다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예비모임에서 시민패널들의 태도는 매우 진지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전문가들과 활발한 질의응답을 벌이면서 적극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2차 합의회의에서는 시민패널들이 자발적으로 원래 예정에 없던 3차 예비모임을 갖고 본회의에서의 역할분담에 대해 논의할 정도로 자발성과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4)본회의와 결과 발표
본회의는 시민패널들이 예비모임을 통해 선정한 질문을 중심으로 전문가 패널과 토론을 벌이고, 시민패널들 사이에서의 자체 토론을 통해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는 자리이다. 일반적으로 본회의는 3일 동안 계속된다. 첫째 날은 시민패널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 전문가 패널의 답변을 듣고 저녁에 자체 모임을 통해 추가질문을 선정한다. 둘째 날은 보충질문과 토론이 벌어진다. 일반 방청객들은 둘째 날에 질문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둘째날 오후부터 시민패널들은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한 토론에 들어간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시민패널이 마련한 최종 보고서가 기자회견의 형태로 발표된다.


1차와 2차 합의회의의 본회의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전문가들과 대등하게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시민패널들의 모습에서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시민패널들은 이미 해당 주제에 대해 교육받은 시민이 되어 있었고, 날카로운 질문 공세로 시종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또한 시민패널들은 시민을 대표해서 사회적 쟁점이 되는 과학기술의 사안에 대한 합의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발적으로 거의 헌신에 가까운 노력을 기울였다. 1차와 2차 합의회의에서 시민패널들은 최종 보고서 작성을 위해 밤늦게까지 격론을 거듭했다. 1차 합의회의의 한 시민패널은 스스로의 평가를 통해 최종 보고서 작성과정을 민주주의의 체험으로 묘사했다.  “피곤함과 즐거움이 같이하는 민주주의로서의 시민합의회의” 우리 시민패널 14인은 성별, 나이, 직업, 교육, 지역 등에 있어서 다양하게 구성되었으며, 경험이나 신념이 다르고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강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어떤 항목들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과정 그 자체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시민패널 최종보고서에서 몇몇 항목에 대해서는 견해차이가 있었음을 당당하게 기술하였다. 이제까지 내가 갖고 있던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회의는 실패한 회의'라는 고정관념은 시민합의회의에 참여하여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를 경청하고, 서로를 설득하려고 밀고 당기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강하게 주장하는 만큼 상대방도 강하게 주장할 권리를 가지며, 상대방이 경청하는 만큼 나도 진지하게 경청할 의무를 가진다는 평범한 도덕률을 가슴으로 느꼈다. 다양한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14인 모두 1/14만큼의 권리와 책임을 적극적으로 나누어야 하는 삶, 상대방을 배려하되 거리낌없이 논의하고 필요한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받음으로써 함께 성장해 가는 능동적인 사회가 가능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느껴지는 피곤함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삶의 즐거움을 증폭시켜주는 과정이라는 깨달음이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이임갑, 1998, “유전자조작 식품의 안전과 생명윤리 시민 합의회의에 참가하고”, <시민과학> 제 2 호, 1998. 12. 15)

시민패널이 작성한 최종보고서는 합의회의의 마지막 날에 기자회견의 형식으로 발표되었다. 합의회의가 의회나 정부 산하의 공식적인 지위를 확보한 나라에서는 최종 결과가 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두 차례의 합의회의가 모두 시민단체의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책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는 못했지만, 이후 관계 부처들의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3. 합의회의 활동에 관한 평가

두 차례의 합의회의는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합의회의의 직, 간접적인 성과로 꼽을 수 있는 일차적인 성과는 생물공학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위한 규율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착수되었다는 점이다. 우선 1차 합의회의의 성과로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표시제가 결정되었고, 현재 추진중이다. 또한 2차 합의회의 이후 과학기술부가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자문위가 6개월에 걸친 토론 끝에 “생명윤리기본법(가칭)을 위한 골격”을 합의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보건복지부에서도 독립적으로 생명윤리 법안을 준비 중이다. 또한 2001년 12월에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에서 2001년부터 5년 동안 과학기술 정책의 기본 방향을 담은 “과학기술 기본계획”에는 “과학기술자의 책임성 제고를 위한 과학기술자 윤리헌장을 제정”하기로 한 계획과 “생명윤리 관련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명시되었다.  


이러한 진전이 이루어진 중요한 계기는 합의회의를 통해 생물공학의 윤리적, 사회적 쟁점들이 공론화된 때문일 것이다. 합의회의 진행과정에서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언론의 보도, 인터뷰, TV 쟁점 토론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생물공학의 중요한 쟁점과 주제들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고, 그 사회적, 윤리적 문제점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높이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의 가능성을 확인해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두 차례의 합의회의가 적극적인 과학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간략히 점검해 보도록 하자.

(1)대중의 능동성
합의회의는 대중이 교육받은 시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주었다. 즉, 일반 시민들이 과학기술적 주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나름대로 견해를 제기할 수 있는 교육받은 시민이 될 수 있으며, 과학기술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은 과학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게 정책 결정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실제로 그 동안 가장 결여되었던 것은 대중의 과학적 지식이나 과학적 소양(science literacy)이 아니라 대중들이 과학기술적 주제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회였다.  1차 합의회의의 한 시민패널은 그 흔치않은 기회를 부여받은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비록 우리 시민패널들이 자발적으로 시민합의회의를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UNESCO 한국위원회가 펼쳐준 마당에 우리 14인이 어색하지만 흥겨운 몸짓으로 우리의 춤을 추어냈으므로 우리 자신의 합의회의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 나라에서 처음 열린 시민합의회의였다는 역사적 의미에 생각이 미치면, 보통시민으로서 이렇게 쉽게 사회적 삶의 중심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열려있는 사회, 열어가는 사회,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우리 앞에 펄펄 살아있다. 이번 시민합의회의는 전문가와 보통시민 사이의 차이가 극복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 보통시민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해 나름대로의 견해를 정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적인 '지식의 크기'가 아니라, 균형을 갖춘 기초적인 정보를 토대로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내린 판단을 사회가 존중해준다는 '신뢰의 크기'다. 우리 보통시민들을 논의주제에 관하여 교육받은 시민(informed citizens)으로 만들어 주는 데 필요한 인력 및 재원을 정부에서 제공하는 사회적 장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이임갑, 앞의 글)

합의회의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실무자들과 전문가 패널은 한결같이 시민패널의 헌신에 가까운 자발적 노력과 적극적 참여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프로젝트 책임자 김환석 교수는 시민패널의 활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시민패널이 본행사에서 행한 역할을 프로젝트책임자로서 평가하자면 일단 '대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예비모임에서 보고 느낀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본 행사에서 시민패널은 그야말로 합의회의의 주체로서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그런 진지성과 적극성, 그리고 헌신성과 인내심을 보여주었다. 시민패널은 이 첫 번 합의회의가 우리 나라에서 가지는 역사적 중요성에 대하여 각자 깊이 깨닫고 있었으며 자신이 시민의 대표로서 지닌 책임과 역할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해주었다. 2박 3일의 쉴 틈 없는 일정 동안, 때로는 일부 전문가의 고압적인 권위주의를 경험하면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또 상호 이질적인 사람끼리 합의를 이루어 시간맞춰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초인적 인내심과 협동을 요구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들을 훌륭히 수행해 내었다(김환석, 1998).

한 전문가 패널은 시민패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또한 시민패널들도 대단히 진지하게 토론에 임했고 그 자체적으로 모범적이었다. 우리 나라의 다른 어느 회의와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되고 균형 잡힌 회의였다. 이번 합의회의를 TV에 생중계했다면 아주 훌륭한 교육과 여론 형성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김두환, 2000)


시민패널들은 적절한 기회와 계기가 주어지면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획득해서 스스로 교육받은 시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존 자이먼이 주장했듯이 중요한 것은 대중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가”였다(Ziman, 1992). 시민패널 이임갑씨가 이야기했듯이 시민들이 과학기술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신뢰”를 기초로 시민참여의 장이 형성된다면 시민들은 필요한 지식을 능동적으로 획득해서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2)전문가와 시민의 의사소통 가능성
합의회의는 과학문화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거론되는 전문가와 시민의 의사소통 부재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의사소통은 단순히 정보의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