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불명>
플라톤 - 폴리스론
플라톤의 실천철학은 자신이 살던 아테네라는 폴리스를 어떻게 좋은 국가로 만들가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어떤 정치철학을 독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치철학이 성립한 장(場)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text’가 전제하는 ‘context’를 잘 읽어내야 한다. 물론 다른 분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인식론은 그 인식론이 성립한 시대까지의 과학사 및 당대 과학의 상황을 전제해서 이해해야 하며, 미학은 예술사 및 당대 예술의 상황을 전제해서 이해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 있어 텍스트가 전제하는 컨텍스트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철학만큼 컨텍스트의 이해가 중요한 분야도 드물다.
플라톤에게 ‘국가’란 폴리스이다. 특히 아테네라는 특정한 폴리스가 어느 정도 전제된다. 그래서 그의 정치철학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국가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도시(예컨대 서울)를 어떻게 경영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장의 입장에 더 가깝다.
폴리스를 전제로 한 정치철학은 왕조(王朝)를 전제로 한 정치철학(예컨대 유교의 철학)과는 판이한 성격을 가진다. 헬라스 지방의 특성과 당대 폴리스들의 성격을 전제해야 한다.
헬라스 인들에게 헬라스 세계 바깥에는 ‘오리엔트’ 또는 ‘아시아’의 세계가 있었고, 이 세계는 이집트, 시리아, 앗시리아,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 등의 왕조들을 뜻한다. 따라서 헬라스의 세계와 오리엔트의 세계가 대비되는 세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플라톤 당대의 정체(政體)는 민주정이었으며, 여성과 노예는 제외되었다. 당시는 아테네의 전성기가 지나고 폴리스들 사이의 분쟁이 잦아지던 시절이었다. 소크라테스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여했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은 대화편들 곳곳에 등장하지만 Politeia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전개된다. ‘politeia’는 폴리스(론), 국가(론), 정체(론)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으며, 그 내용이 이상국가(理想國家)를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상국가(론)으로도 번역된다.
『폴리스론』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극히 다채로우며 폴리스 건설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핵심 개념은 정의(正義)이다.
플라톤은 트라쉬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논쟁을 통해 정의론을 전개한다. 그 핵심적인 주제는 “정의는 강자(强者)의 이익”이라는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대한 검토이다.
트라쉬마코스는 지배자들(즉 강한 자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법률을 제정할 것이며,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그 법률에 따르게 한다. 따라서 정의란 지배자들이 만든 법에 따르는 것이 되고, 그 결과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이런 주장에 대해 다각도로 논박을 펼치며, 트라쉬마코스 또한 만만치 않게 받아친다. 플라톤은 그 과정을 매우 박진감 넘치게 묘사해 놓았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개념-뿌리들 2』(6강)에서 정리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논변 하나만을 제시한다.
플라톤이 사물들 바라보는 방식은 주로 ‘기능(ergon)’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곧 사물들의 뛰어남(aretê)를 문제 삼음을 말한다.
또 하나 논의의 핵심에는 늘 영혼(psychê)이 놓인다. 그리고 영혼의 뛰어남이 핵심적인 가치로서 제시된다.(소크라테스의 가르침) 뛰어난, 올바른 영혼을 가진 인간이 행복하다.
정의롭다는 것은 개인으로 말하면 영혼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국가만이 행복한 국가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순진한 생각일 수 있다. 미국이 “정의의 이름으로” 세계를 핍박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트라쉬마코스의 통찰력을 뒷받침하는 것 같고, 또 뛰어난 영혼을 가진 인간이 행복하다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도 현실 정치를 바꾸어나가기에는 너무 고원(高遠)한 사상으로 보일 수 있다. 플라톤 자신도 이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테스로 하여금 보다 현실적이고 속된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논박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은 올바로 살면 손해를 보고 정직하지 않게 살아야 잘 산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는 이유는 자신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며, 누구나 자신이 강자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귀게스의 반지’의 예) 그러나 타인이 그 자리에 올라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이 두렵기 때문에, 차라리 정의를 내세우는 것이다. 즉 악한 일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악한 일을 당하고도 보복할 수 없는 것이 최악이기 때문에(그리고 후자의 고통이 전자의 쾌락을 능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시인들(오늘날로는 소설, 영화 등)에 의해서 여러 가지로 묘사된 바이기도 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정의로운 사람“인”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국가론으로 넘어가자고 한다. 개인 차원에서의 정의 문제를 풀기 위해 보다 큰 국가 차원에서의 정의 문제를 풀 필요가 있다. 즉 이상국가를 그릴 필요가 있다. 이 논의가 전개되면서 플라톤은 다시 본래의 문제로 돌아온다.(그러나 핵심적인 결론에는 차이가 없다) 즉 『폴리스론』은 사실상 개인적인 정의=올바름의 문제에서 출발해 그것으로 돌아오며, 그 중간에 국가론이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소피스테스』와 비교)
국가는 분업체계이다. 그래서 각인이 각각의 “성향에 따라(kata physin)” 적절한 일을 맡아 그 일에 몰두하는 것이 중요하다.(성향과 직업의 본질주의) → 역동적인 현대 사회에서 보면 너무 기능주의적.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어떤 면에서는 『폴리스』론 전체가 교육론. 교육론과 영혼론 그리고 국가론이 긴밀히 연결. 교육은 육아(trophê)와 (교양)교육(paideia)로 양분.
최초의 교육은 시가(mousikê)와 체육(gymnastikê)에 맡겨진다. 사실적인 이야기보다 허구적인 이야기가 먼저.(현대로 말하면 문학교육과 역사교육) 기존의 시가(호메로스가 대표)를 매우 비판적으로 봄. 인성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 오늘날의 ‘커리큐럼’의 문제. 특히 신들을 불경하게 묘사하는 것을 경고. 신은 선의 원인이지 악의 원인이 아니다. 불행을 신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오류.(“신은 사람들에게 화근을 생기게 하느니/ 한 집안을 송두리재 파멸시킬 양이면”) → 당대까지의 유일한 교양인 ‘mythos’와 그것에 근거한 시가(詩歌)를 비판하고 과학과 철학 교육으로 전환시키려 함.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시가는 윤리적으로는 오히려 해롭다. 문화는 윤리/도덕에 종속되어야 함.(아테네의 타락상이 반영됨) 저급한 표현들, 강렬한 표현들, 어두운 표현들을 교육시켜서는 안 된다. 또 유치하고 저급한, 지저분한 표현도 안 된다. → 오늘날의 청소년과 대중문화의 관계에 해당. 쾌락이 진리나 선을 능가할 수는 없다. → 잘못 가면 전체주의의 논리가 빠짐.(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모방의 타락. 한 가지를 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피상적으로 모방. 시뮬라크르의 문제. → 오늘날의 이미지 문제에 해당. 실물을 재껴 놓고 이미지들만이 난무하는 세상. 소피스테스를 진리를 피상적으로 모방하는 이미지 조작자들로 봄. → 오늘날의 예: 역사의 상품화. 그 때 그 때의 이미지에 도취.
음악이 중요.(동북아 사상과 비교) 음악이 무너지면 폴리스도 무너진다.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폴리스의 영혼의 문제.
체육은 전사들을 기르는 것과 관련. 오늘날의 직업 군인이 아님. ‘체력은 국력’이라는 생각. 폴리스의 존망과 관련됨. 체육과 의술이 밀접하게 연관.
폴리스의 구조. 지혜를 필요로 하는 통치자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수호자들, 절제를 필요로 하는 생산자들. 각각의 일에 매진하면서 전체가 조화를 이룰 때 정의가 성립. → 四主德
폴리스를 누가 다스릴 것인가. ‘hoi aristoi’가 다스려야 한다. 통치자들을 키워내는 것이 중요. 매우 엄격하고 고급한 과정을 필요로 함. 과학적 지식 및 철학적 사유를 닦아야 한다. 개인적 이익과는 단절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인물(철학자=지식인)이 통치자가 되었을 때에만 이상국가가 가능하다. → 조건들이 너무 가혹해 비현실적. 누가 프로그램을 짜고, 이 모든 과정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치체제의 순환. 지자=치자가 무너짐. 귀족정으로 넘어간다. 이것이 다시 참주정치로 몰락. 마지막으로 민주정이 나타남. 민주정에 대한 극히 부정적인 평가. 역사에 대한 쇠퇴론적 시각. 그러나 순환론적 시각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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