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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니체와 엘레아학파

by 마리산인1324 2010. 10. 5.

<출처불명>

 

 

니체와 엘레아학파

 

 

IV.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



§1. 생성의 무죄


더할 나위 없이 작은 것, 가장 미미한 것, 가장 가벼운 것, 도마뱀의 바스락거림, 한 줄기 미풍, 찰나의 느낌, 순간의 눈빛 ― 이 작은 것들이 최고의 행복에 이르게 해 준다. 조용히 하라!
Der Wenigste gerade, das Leiseste, Leichteste, einer Eidechse Rascheln, ein Hauch, ein Husch, ein Augen-Blick ― Wenig macht die Art des besten Glücks. Still!


서구 존재론사에 중요한 분기점을 가져온 니체에게 플라톤은 전통 철학 전체의 대변자로서 등장한다. 우리는 플라톤과 니체의 대결에서 서구 존재론사를 수놓은 다양한 전장(戰場)들 중에서도 각별히 중요한 한 전장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전에 우선 가보아야 할 곳은 엘리아학파와 니체의 대결장이다. 니체의 결론에 동의하면서도, 우리는 그의 논의를 좀더 비판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多와 운동이 완전히 거세된 영원부동(永遠不動)의 일자(一者)의 사유를 세웠다. 니체는 이 점에서 그가 어떤 현실에 의해서도 흐려지지 않은 가장 순수하게 핏기 없는 추상화를 성취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비그리스적인” 인물이 아니겠는가.(ptg, §9) ptzg = “Die Philosophie im tragischen Zeitalter der Griechen”, Nachgelassene Schriften 1870~1873, KGW III-2. 한글본 전집 3권, 351~440쪽.


이렇게 니체에게 엘레아학파는 반(反)그리스적 학파로 자리매김된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가 영원부동의 일자의 사유로 나아간 것은 ‘einai’ 동사의 두 의미를 분명히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부정을 무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적 多와 시간적 운동은 부정을 함축한다.(“이것은 저것이 아니다”, “그는 더 이상 옛날의 그가 아니다”) ‘einai’를 일의적으로만 이해했던 파르메니데스에게 모든 부정을 무로서 이해된다. 그에게 무는 사유할 수도 언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多와 운동이 부정된다. 이것은 이른바 ‘시대의 한계’라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파르메니데스가 자신의 논리를 치열하게 끝까지 밀고나갔다는 점이다. 파르메니데스가 영원부동의 일자의 사유로 간 것은 단지 그 결론이 좋아서가 아니지 않았을까? 多도 운동도 없는 세계를 좋아할 사람이 그리 많겠는가? 그래서 그가 ‘진리의 길’을 쓰고서 또 ‘억견의 길’을 쓰지 않았겠는가.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파르메니데스가 호오(好惡)의 문제를 접어두고서 사유의 논리를 끝까지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정신, 유클레이데스적 정신이야말로 정말 ‘그리스적인 것’이 아닐까? 파르메니데스보다 더 그리스적인 사람이 있겠는가? 자신이 내리는 결론의 부정적 느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논리를 존중한 그 정신 말이다. 학문이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니체에 따르면, 사유 초기만 해도 그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영향 아래에서 생성하는 세계를 사유했다. 그러나 늙은 파르메니데스가 젊은 파르메니데스를 온전히 망각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전적인 존재의 세계와 전적인 생성의 세계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기에 말이다. ‘진리의 길’에는 ‘억견(臆見)의 길’이 여전히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그가 논리적 경직성을 통해 완전히 굳어져 거의 하나의 사유기계로 변해버린 특성을 보여줌에도, 이 점에서 그에게 일말의 인간적인 지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파르메니데스가 생성의 세계와 존재의 세계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의 사유는 두 세계를 완전히 분리하고 있다. 그의 서사시의 구조에서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차라리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에게서는 아직 구체와 추상이 분명하게 구분되고 있지 않다고. 퓌타고라스학파에게서 사물과 수가 혼동되었듯이, 파르메니데스에게서도 추상적 논리와 구체적 자연이 혼동되고 있다. 파르메니데스가 “논리적 경직성을 통해 완전히 굳어져 거의 하나로 사유기계로 변한 것”도 아니고, 또 “일말의 인간적인 지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신파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문제는 ‘인간적인 지각’과 같은 주관적인 호오가 아니다. 파르메니데스는 논리에 충실했지만 그가 속한 ‘에피스테메’ 속에서는 구체와 추상을 충분히 구분할 수 없었을 뿐이다.


니체는 파르메니데스가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의 이항대립 구조를 생각했다고 본다. 그는 감각에 드러나는 세계에 눈을 감고 이런 이항대립적인 추상적-논리적 구조를 단적으로 확립했다는 것이다. 그는 긍정적-부정적이라는 이 가치론적 이항대립을 존재-비존재라는 존재론적 용어로 바꾸어 표현했다. 그리고서 세계에는 존재적인 것과 비존재적인 것이 공존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생성이란 무엇인가? 생성[탄생]과 소멸은 비존재에게서 유래한다. 존재만이 있을 때, 거기에는 탄생도 소멸도 있을 이유가 없다. 탄생과 소멸은 비존재 때문에, 즉 부정적인 것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 또는 존재와 부정적인 것 또는 비존재는 모순된다. 그러나 아프로디테의 힘은 이 두 모순된 항들을 결합시킨다. 이로부터 생성이 유래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이항대립 구조는 오히려 퓌타고라스학파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2005, 476쪽. 물론 파르메니데스에게서도 불과 흙, 즉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같은 이항대립이 등장한다. 같은 책, 302쪽 이하.


그러나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파르메니데스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라는 쌍이 존재와 비존재(또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쌍으로 전환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전자가 「억견의 길」에서 등장한다면 후자는 「진리의 길」에 등장한다. 그러나 전자에서의 이항대립이 후자의 이항대립으로 성격을 바꾸어 옮겨갔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탄생과 소멸이 비존재에게서 유래한다는 지적은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부정(Negation)’이 문제가 된다면 내가 보기에 이 부정은 ‘부정적인 것’에서의 부정이 아니라 ‘아님(Nicht)’의 부정이다. “~이 아님”이 매개되어야만 탄생과 소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르메니데스는 앞에서 말한 ‘einai’에 대한 일의적 이해 때문에 이 부정을 무(das Nichts)로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니체는 파르메니데스가 어느 날 동어반복이 진리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존재는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는 탄생할 수 없다. 탄생이란 비존재에서 존재로 가는 것이다. 또 존재는 소멸할 수 없다. 소멸이란 존재에서 비존재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ex nihilo nihil fit!” 이로부터 그는 多와 운동을 부정하는 그 유명한 논의들을 이끌어냈고 영원부동의 일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그의 감각은 끝없이 그에게 多와 운동을 확인시키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저 우둔한 눈을 따르지 말라! 메아리처럼 울리기만 하는 저 귀 또는 혀를 믿지 말라. 오직 사유의 힘만으로 확인해보아라!” 이 이분법, 즉 이성과 감각의 이분법이 오히려 지성을 파괴했으며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조장했다. 이 이분법은 플라톤 이래 마치 하나의 저주처럼 철학을 억누르고 있다. 파르메니데스에게 감각이란 오로지 오류의 근원이 될 뿐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생성을, 즉 비존재의 존재를 믿게 만들기에 말이다. 그래서 그는 생성의 세계로부터 눈을 돌렸으며 진리는 창백하고 일반적인 말들의 빈 껍데기 속에서만 성립하게 된다. 그는 “경험의 피를”(ptg, §10) 희생시킨 것이다. 이런 논증을 전개하면서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은 우리가 매번 개념들의 사용에 있어 존재와 무에 대한, 즉 객관적 실재와 그 대립항에 대한 결정적인 최상위 규준을 가지고 있다는, 전혀 증명될 수 없고 또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논리와 현실은 불연속을 이루며, 논리적 개념들은 현실에 비추어 검증될 필요도 수정될 필요도 없다. 엘레아학파가 실재에 부여한 동일성은 감각과 모순 되어도 좋았다. 그들에게 그 동일성은 감각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는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니체의 말처럼 분명 동어반복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가 이 명제를 과연 동어반복으로부터 이끌어냈는지는 확인하기 힘든 문제이다. 오히려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생각하거나 언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라는 상식적인 생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바로 이 있지 않은 것을 그대는 알게 될(gnoiês) 수도 없을 것이고(왜냐하면 실행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지적할(phrasais)[가리킬] 수도 없을 것이기에.”(같은 책, 276쪽) “말해지고 사유되기 위한 것은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있을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mêden)은 그렇지 않으니까.”(278쪽)


파르메니데스는 이로부터 (多와 운동은 비존재를 함축하기에) 영원부동의 일자의 사상으로 나아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로부터 多와 운동을, 즉 비존재를 믿게 만드는 감각에 대한 불신이 싹 텄으리라고 본다. 파르메니데스가 감각으로 확인되는 현상계와 이렇게 이성으로 확인된 진리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기보다는 단지 이원적으로 병치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런 생각이 “하나의 저주처럼 철학을 억누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이후의 철학사는 파르메니데스 극복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만일 한 사람의 철학자의 가치가 사람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그들의 사유를 이끄는 ‘문제틀(problématique)’을 제시한 점에 있다고 한다면,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자들은 그를 극복하기 위해 사유했고 그 결과 많은 새로운 생각들을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니체가 보기에,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이 존재를 사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이 존재가 실존할 수밖에 없다고 추론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가 경험을 넘어 사물의 본질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에게 사유의 재료는 직관(Anschauung)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초감각적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사유 속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식의 추론들에 반대하면서, 실존(Existenz)은 본질(Essenz)에 속하지 않으며 또 현존재(Dasein)는 결코 사물의 본체(Wesen des Dinges)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존재 개념으로부터 그것의 실존을 추론할 수는 없다. ‘존재’와 ‘비존재’의 대립은 다시 직관으로 돌아가 그것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공허한 표상들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칸트가 가르쳐주었듯이, 진리의 논리적=형식적 기준은 필수조건이긴 하지만 또한 소극적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실(Wirklichkeit)에 주목하는 한, 예컨대 한 그루의 나무에 주목하는 한, 우리는 “그것은 존재한다”, “그것은 변해간다”, “그것이 없다”/“이것은 나무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의 것과 같은 낱말들과 개념들을 통해서 현실 즉 사물들 사이의 관계들을 넘어서 본체 즉 진리계(眞理界)의 우화와도 같은 극(極=Urgrund)에 도달하리라 믿는 것은 착각이다. 공간, 시간, 인과율 같은 (감성과 오성의) 순수 형식들을 통해 영원한 진리(veritas eterna)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역시 착각이다. 주체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 무엇인가를 보고 인식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파르메니데스는 결국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개념으로부터 존재 자체(An-sich-sein)로 나아가려 했던 것이다. 이런 허황된 생각은 “의식으로 절대자를 파악한다”는 식의 철학자연하는 신학자들, “절대자는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것을 탐구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는 헤겔,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주어져 있어야 하며, 우리가 어떤 식으로는 접근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존재라는 개념조차 가질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베네케 같은 사람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대전제가 사변적 철학들 특유의 ‘실체화’의 오류를 낳았다는 니체의 지적에 나는 크게 공감한다. 이 대전제가 서구 전통 철학의 대전제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맥락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파르메니데스의 시대 자체가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생각을 낳을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존재=실재(實在)보다 사유=문화(文化)의 외연히 압도적으로 큰 시대를 살고 있다. 기린의 시뮬라크르들은 지구상에 실제 살고 있는 기린들보다 압도적으로 큰 외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TV 사극들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시대를 과거로 투영하는 것은 뒷사람이 앞사람에 가하는 상투적인 폭력이다. 우리는 파르메니데스의 시대가 우리의 시대와 현저하게 다른 시대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이것은 고중세의 문학과 근대 이후의 문학을 비교해 보아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실존은 본질에 속하지 않으며 또 현존재는 결코 사물의 본체에 속하지 않는다.” “존재 개념으로부터 그것의 실존을 추론할 수는 없다.” 이 생각이 정확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인지는 분명치 않은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tode ti=개체’가 ‘eidos=형상’이나 ‘to ti ên einai=본질’과 구분되는 것은 분명하다. (‘Existenz’, ‘Essenz’ 같은 단어들이 은연중 시사하고 있듯이) 그러한 정식은 스콜라철학의 정식으로서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에게까지 이어지는 사고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개체들이 우발성의 양상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함축/뉘앙스는 중세철학과 사뭇 다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와 사유의 일치’와 ‘실존과 본질의 구분’이라는 스콜라적 테제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실존과 본질의 구분이라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개체들과 보편자들의 관계를 사유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생각이며 따라서 개체들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분은 개체의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위상’ 또는 ‘양상’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다.


니체는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두 가지 강력한 반론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첫째, 이성적 사유가 실재이듯이 多와 운동도 실재여야 한다. 사유한다는 것 자체가 개념들의 多와 운동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둘째, 감각들이 가상이라면 도대체 누구에게 사상이란 말인가? 비존재가 누구를 기만할 수 있다는 것인가? 누군가를 기만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어찌 단지 비존재일 수 있다는 말인가? 전자를 “운동하는 이성으로부터의 반론”이라 부른다면, 후자는 “가상의 기원으로부터의 반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多와 운동을 긍정하는 사유를 펼칠 수 있다. 우리는 성쇠(盛衰=Wechsel)와 변동(Veränderung)의 이 세계를 진정으로 실재하고 영원히 실존하는 실체들의 합으로 특징지어야 한다. 또 모든 실체[의 합]는 변화하지도 않고 쇠락하지도 않으며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변화를 느낀다. 그러나 세계의 변화는 착각이 아니라 영원한 운동의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III, §3), 첫 번째 반론은 약간 다른 형태로 이미 플라톤에 의해 전개되었다. 니체의 반론 자체에 공감하면서도,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이미 헬라스 철학사를 좀더 상세히 들여다봐야 함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반론 역시 ‘타자로서의 비존재’에 대한 논의에서 확보된 것이다. 비존재는 존재한다. 단지 그 비존재를 존재로 보았을 때, 즉 어떤 동일자를 타자로 보았을 때 기만이 성립한다. 따라서 기만이 있으려면 비존재가 있어야 한다. 이 또한 플라톤 자신에 의해 전개된 논리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영향과 더불어 우리는 그 후 철학사가 파르메니데스 극복의 역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실체들의 합’이라는 말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이 때 실체들은 물질들을 뜻하는가?(물질의 다수성 ― 예컨대 화학적 원소들의 다수성 ― 이 ‘물질’이라는 근본 개념으로 환원되는가의 문제도 더불어 검토해 봐야 한다) 아니면 개체들을 뜻하는가? 보편자들도 포함되는가? ‘실체들’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또 극단적인 생성의 철학으로 갈 경우, ‘실체들’이라는 개념이 필요할까?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비롯한 ‘보존 법칙’들은 19세기 과학, 특히 열역학의 기본 전제이다. 그러나 고립계는 물론이고 폐쇄계조차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철학사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동일성 ― 근원적 동일성 ― 의 이념 “경험의 근저에 항상 존재하는 것, 즉 상존하는 어떤 것, 그리고 지속하는 어떤 것이 없다면, 우리는 다만 각지에 의해서만은 결코 경험의 대상으로서의 이 다양이 동시적인 것인지 혹은 계시적(繼時的)인 것인지 결정할 수 없다. [...] 철학자들만은 이보다 더 나아가서 ‘세계 내의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체는 상존하나, 부수성(Akzidenz)만이 변전한다’고 말함으로써 약간 더 명확하게 표현할 따름이다. [...] 이 명제가 순수하고도 완전히 아프리오리하게 성립되는 자연법칙의 정점에 서 있어야 마땅하건만, 그런 일은 별로 없는 것이다. [...] 모든 현상 안에 어떤 지속체가 있고, 가변적인 것은 그것의 현존재의 규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했어야만 했을 것이다.”(칸트, 『순수이성비판』, 정명오 옮김, 을유문화사, 176~8쪽) 아리스토텔레스적 ‘kinêsis’ 개념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칸트가 이룩한 것은 이런 생각이 우리 주관의 형식이라는 사실을 밝힌 점이다. 그의 문제점은 이 형식이 객관과의 마주침(rencontre)을 통해서 무너지고 새로운 형식이 모색될 때 인식이 진전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이러한 형식을 항구적으로 고착시키려 한 점이다.

 
이 물리학에 스며든 결과이며, 또 화학적 공정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장치들의 자의적 고립성/폐쇄성을 자연의 객관적인 법칙으로 슬그머니 승격시킨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니체에게도 각인될 것이 아닐까? 메이에르송은 서구 학문의 역사에 엘레아학파의 그림자가 얼마나 길게 뻗쳐 있는가를 잘 보여준 바 있다.(『동일성과 실재』) 우리는 엘레아학파를 타파해야 할 ‘원흉’으로 간주했던 니체 자신이 이 그림자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영원회귀 개념이 진정 현대적인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엘레아적 전제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니체는 제논이 무한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음을 지적한다. 제논을 따를 경우 완성된 무한(vollendeten Unendlichkeit)이라는 모순된 개념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ptg, §12) 그러나 우리의 현실세계는 완성된 무한을 포함하고 있다. 이로써 논리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das Reale) 사이에 모순이 발생한다. 예컨대 제논은 말한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이동이 존재한다면 무한성이 완성된 것으로서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도 같은 논리를 구사한다. 화살의 예는 같은 주장을 보다 대중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매 순간 화살은 정지해 있고 무한한 정지를 합한다고 운동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多와 운동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니체의 이런 제논 비판은 정당하다. 엘레아학파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이후 현대 사유의 전개에 결정적인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완성된” 무한이라는 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제논에 따를 때, 논리공간에서 생각할 때 장소 이동은 잠재적 무한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잠재적 무한은 끝나지 않고 따라서 이동도 불가능하다. 더 정확히 말해 이동이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된 무한’은 이 잠재적 무한이 끝난 경우를 뜻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잠재적 무한의 개념은 완성 개념 자체를 거부하며 따라서 여기에서 모순이 생긴다. 그러나 현실공간에서는 분명 이런 이동이 일어나며 따라서 여기에서는 완성된 무한, 더 정확히 말해 완성된 잠재적 무한이 성립한다. 바로 이 때문에 제논은 “완성된 잠재적 무한” 개념을 포함하는 현실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날아가는 화살의 경우, “매 순간”이라는 말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베르그송을 논하는 다음 절에서 다룰 것이다.


엘레아학파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 ― 이제 이 말은 플라톤주의와 반(反)플라톤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의미로 사용된다 ― 전체에 있어 초석의 역할을 한다. 헤겔 이후 생성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이 도래했음에도 누구도 니체처럼 강렬하게 ‘생성의 무죄’를 역설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니체는 생성을 강조했을 뿐 논증하지는 못했다. 보다 엄밀한 논증을 위해서는 베르그송을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