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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이택광의 세계사상지도 읽기] <2> 프랑스철학과 내재성의 탐색

by 마리산인1324 2010. 10. 12.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0269

 

 

 

주어진 것으로서 ‘있는’ 사유의 샛길은 어디로 나 있을까
[이택광의 세계사상지도 읽기] <2> 프랑스철학과 내재성의 탐색
2010년 04월 26일 (월) 12:02:00 교수신문 editor@kyosu.net

프랑스철학의 영향으로 프랑스는 이제 ‘철학의 나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보기와 달리 프랑스에서 프랑스산 철학이 반드시 환영을 받는 건 아니다. 현실의 프랑스인들을 만나서 듣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프랑스를 보수주의 쪽에 가깝게 위치시켜야할 것 같다. 한국처럼 프랑스에서도 지식인에 대한 ‘단죄’는 여지없이 일어난다. 마치 친일파 문제처럼 프랑스를 지배하는 정서는 상당히 민족주의적인 측면이 있는데, 발리바르가 슈미트를 복권시킨 뒤에 친나치적인 철학자로 비난을 감수해야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프랑스사회의 보수주의를 이해해야 프랑스산 이론들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사회의 보수주의를 짐작하게 해주는 상징적 인물이 바로 사르트르이다. 그는 프랑스에 하이데거주의를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했고, 바디우가 말하는 철학의 진리를 문학에 위임해버리는 ‘시적 봉합’을 앞서서 실천한 철학자이기도 했다. 사르트르에 대한 프랑스사회의 반감은 놀라운 것이었다. 알제리 전쟁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의 아파트에 폭탄테러가 가해지기도 할 정도였으니 가히 그 상황을 짐작할 만할 하다.

 

   
   

오늘날 우리가 고찰해야할 이론적 지형도의 한 구석에 사르트르가 위치해야할 이유는 명확하다. 실존주의보다도 삶의 방식으로 프랑스사회를 뒤흔들었던 이방인의 이미지에서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많은 사유들이 출발했다. 사르트르는 고향집에 남겨놓고 온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들뢰즈도, 바디우도 젊은 시절에 모두 ‘사르트리언’이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빼먹을 수 없는 이론가로 라캉이 있다. 들뢰즈가 사르트르와 결별했던 결정적 이유는 바로 ‘휴머니즘’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고 선언하며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이 낡은 시계를 다시 찾아냈을 때, 들뢰즈는 분노에 차서 비판을 가했다.


이 들뢰즈야말로 프랑스의 작가 투르니에가 한때 ‘반체계의 악마’라고 묘사했던 젊은 들뢰즈이다. 사르트르에 대항해서 반휴머니즘은 이후 프랑스산 이론에서 밀교적 표지로 통한다. 헤겔을 밀어내면서 스피노자가 부상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변방에서 날아온 영악한 자객 지젝은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의 지적 지형도에서 틈새시장을 탁월하게 공략했다. 스피노자가 올라선 봉우리에서 헤겔을 이야기하고, 알튀세르의 유령이 출몰하는 곳에서 라캉을 들이민다. 물론 숨은 지젝의 라이벌은 바디우이지만, 이 사실은 종종 커다란 바디우의 덩치 때문에 별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사르트르와 라캉은 공식적으로 서로를 언급한 적은 없지만,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우호적 관계는 아마도 두 ‘별종들’이 보여준 주체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젊은 들뢰즈가 비판했듯이, 일방적으로 휴머니즘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사르트르는 주체에 대해 라캉과 비슷한 반휴머니즘적 관심을 갖고 있었다. 주체는 허상이지만 폐기할 수 없는 범주라는 공통지반에 이들은 서 있었다. 이런 까닭에 사르트르도 라캉처럼 데카르트에서 자신의 생각을 출발시킨다.

 

라캉과 사르트르의 ‘주체의 해체’


라캉이 말한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는 통찰은 “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나는 생각할 수 있다”는 사르트르의 판본과 거울상을 이룬다. 물론 사르트르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생각’ 이외의 존재방식 즉 감정, 상상력, 감각, 꿈같은 것이다. 사르트르에게 중요한 것은 ‘코기토 없는 주체’였다. 이런 맥락에서 사르트르는 휴머니스트처럼 보이지만 라캉과 공모하고 있는 것이다. 라캉은 니체가 쇼펜하우어에 빗대어 말했던 놀랄만한 반휴머니즘의 ‘교육자’였고, 레비스트로스나 푸코와 마찬가지로 현대철학사상의 창시자들 중 하나로 간주됐다. 라캉의 세례는 강렬해서 1960년대 반휴머니즘의 논리를 정교하게 만들고 강화시킨 계기들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사르트르가 라캉의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하다. 물론 완전히 라캉에 찬성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라캉 역시 『세미나 11: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개념』에서 사르트르에 대한 찬사를 헌정하고 있다. 특히 시선의 문제를 논하면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가 시선을 대상소타자와 관련해서 이론화한다고 언급한다. 이렇게 사르트르와 라캉의 현전성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 문제는 말년에 들을 수 있었던 푸코의 고백에 오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사르트르를 일컬어 ‘침묵의 미소’로만 반대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실에서 푸코는 사르트르에 대한 외경을 한꺼풀 표현한 것이다. 말하자면 푸코 역시 사르트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르트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르트르에게 중요했던 것은 통속적 사유로 철학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마르크스를 비판한 푸코를 공격하면서 푸코가 내세운 탈마르크스화가 허망한 ‘부르주아의 방어벽’이라고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푸코가 마침내 ‘주어진 시대의 순간에 생산되는 주체’로 관심을 돌렸을 때, 하나의 결정적 문제를 사르트르와 공유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시대적 진보와 실천, 그리고 사건의 결과로 주체를 정의하는 것이었다. 이런 말투에서 사르트르를 읽어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푸코의 발언은 앞으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될 ‘주체화’에 대한 하나의 출구를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주체가 아니라 주체화(sujectivation)라는 명제는 ‘나의 세분화’라는 사르트르의 기획에서 핵심적인 범주였고, 이 또한 철학에 대한 라캉의 공헌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이론들이 사르트르와 라캉으로부터 출발했다는 말을 지금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두 거인의 영향력을 빼놓고 이론의 지형도를 그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한다.


들뢰즈가 익히 사르트르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바디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학생시절 똑똑하긴 한데 너무 사르트르 흉내를 낸다는 지적을 받은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그는 클레르 파르네와 나눈 대화에서 “다행히 사르트르가 있었다”는 고백을 쏟아놓는다. 사르트르야말로 그의 세대를 지탱시켜준 ‘외부’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외부라는 것은 사유된 것을 통해 사유되지 않는 것들을 발견하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이었다는 말이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증언에 따르면 들뢰즈는 사르트르를 ‘마지막 철학자’로 불렀다. 20세기가 사르트르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들뢰즈의 시대가 될 수 있었다는 레비의 지적은 그래서 상당히 설득력 있다.

 

들뢰즈와 모든 사유의 출발점, 생명

 

사르트르와 라캉이 제시한 것들은 공고한 환상으로 존재했던 주체의 해체였다. 들뢰즈는 이 지점에서 사르트르보다 훨씬 많이 나아간 이론가였다. 사르트르를 일컬어 외부라고 한 것은 데카르트, 후설, 사르트르, 그리고 레비나스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지형도에 비견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와 달리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메를로 퐁티로 흘러내리는 계류에 발을 담그고 있다. 퐁티는 들뢰즈와 같은 지세에서 무기적 사물과 융합돼 있는 생명에 대해 고민했다. 이들에게 주체는 특권을 부여받을 수 없는 허상이었다. 중요한 것은 고정점을 만들어낸 주체라기보다 주체화였다. 그러나 이들에게 더 시급했던 것은 주체라기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내재성에 대한 탐구였다고 볼 수 있겠다. 내재성은 생각보다 그렇게 ‘내재’하지 않는다. 내재성은 모든 사유를 출발시키는 하나의 차원, 바로 생명 자체이다. 메를로 퐁티에게나 들뢰즈에게 생명은 유기체의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생명은 무기체이기도 하다.

 

들뢰즈가 주체화를 사물의 융합과 섞어버린다면, 사르트르와 라캉은 주체화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이들에게 주체화는 ‘~인양 굴기’이다. 그래서 들뢰즈에게 ‘사유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면, 사르트르와 라캉에게 중요한 것은 ‘거기 사유가 있다’라는 사실이다. 주어진 것(es gibt)으로서 ‘있는’ 사유,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하이데거로 돌아가는 샛길을 발견한다.

 

이택광 /경희대·영미문화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