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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문한별의 시사칼럼]경향신문,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미디어스101029

by 마리산인1324 2010. 10. 29.

<미디어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346

 

 

경향신문,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문한별의 시사칼럼]
2010년 10월 29일 (금) 09:32:40 문한별 언론인권센터 이사 webmaster@mediaus.co.kr

 

 
경향신문 28일자 30면

 

 

 

미안하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에 대해 말하기 전에 내 이야기부터 잠깐 해야 겠다. 영양가 없는 얘기지만 논리 전개상 필요해서 그러는 것이니 양해하시라.

 

나는 한겨레신문 창간독자다. 오랜 시간을 그와 함께 하며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키워 왔다. 경영난에 빠진 한겨레를 구하기 위해 가두에서 구독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언론개혁을 화두삼아 기자들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물론 우여곡절도 없지 않았다. 특히 한미FTA에 반대하던 한겨레신문이 노무현 정부가 뒤로 내민 푼돈에 혹해 한미FTA광고전단을 돌렸을 때는 실망과 분노가 컸다. 당연히 앞뒤 다른 한겨레의 두 모습을 신랄하게 까는 글을 썼지만, 그러나 그럴 때라도 얼마나 돈에 궁하면 그랬을까 하고 동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까지 거두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겨레신문을 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작년 10월 초에 구독을 중단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2009년 9월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특별기자회견을 열었다. 내년 G20정상회의를 유치했다며 자신의 공치사를 늘어놓는 자리였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 시간에 '인식의 전환, 변방에서 중심으로'란 주제로 G20을 유치한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역설했다.

 

이어 기자들과의 문답시간이 있었다. 출입기자들은 내년 G20 의제와 출구전략, 친서민 정책, 개헌, 북핵문제 등에 대해 광범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날 정국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랄 수 있는 세종시 문제를 묻는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비밀은 곧 밝혀졌다. G20 정상회의 유치 의미가 희석될까봐 걱정한 청와대 측에서 기자들에게 세종시처럼 '민감한 문제'는 질문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청와대의 마사지에 길들여진 순한(?) 기자들은 군말없이 그 요구에 순응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맨 처음 언론에 까발린 신문은 놀랍게도 한겨레신문이 아니라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다음날 작성한 사설 <변방서 중심국 된 대한민국, 그리고 부끄러운 언론>에서, 전 날의 부끄러움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에게 물어보아야 할 기자들이 청와대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여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민 모두가 궁금해하는 세종시 문제를 대통령에게 단 하나도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언론 직무의 포기였다. 조선일보도 그 잘못된 한국 언론 속에 포함된다..."

 

사설로만 면피한 게 아니다. 관련 칼럼을 통해서도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미국의 사례와 대조하며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변방형 기자회견"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는 성의를 보였다.

 

"대통령은 말하기 껄끄러운 이슈라 해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고, 기자들은 국민이 궁금해할 질문은 반드시 해줘야 한다. 청와대 참모들이 여기 끼어들어 특정질문 자제를 요청해선 안된다. 30일 특별기자회견은 대통령과 기자는 할 일을 못하고, 참모들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부실한 소통의 장이었다..."(동서남북, <대통령에게 껄끄러운 질문>,2009.10.01)

 

그러면 한겨레신문은 어땠을까? 한겨레신문도 반성문을 쓰기는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보다 하루 늦게 내는 바람에 색이 바랬다. 더 안좋은 것은 <기자회견 질문까지 ‘원천봉쇄’하는 청와대>(2009.10.02)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반성의 칼날이 자신보다 청와대 쪽에 더 치우쳐 있었다는 거다.

 

"현 정권의 ‘원천봉쇄’ 선호는 집회나 시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듯싶다. 대통령 기자회견장에서까지 원천봉쇄가 난무하니 말이다... 청와대의 태도는 오만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국민과의 ‘쌍방향 소통’의 장이 아니라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쯤으로 여기는 태도가 역력하다..."

 

"청와대도 잘못이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요청을 받아들인 언론의 책임은 더 크다. 국민이 궁금히 여기는 것을 물어야 할 소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다. 한겨레 역시 이런 잘못에 일조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청와대의 오만방자함은 ‘언론의 봐주기’가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걸 보고서는 더는 한겨레신문을 봐야 할 이유를 잃어 버렸다. "조선일보도 그 잘못된 한국언론 속에 포함"되고, "한겨레 역시 이런 잘못에 일조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굳이 피같은 돈을 지불해가며 한겨레신문을 구독해야 할 까닭이 무에 있겠는가 말이다.

 

조선일보가 권력에 굴종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신문이니까. 그러나 한겨레신문은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왜? 한겨레니까. 한겨레가 권력에 굴종하는 순간, 그건 더이상 한겨레가 아니다. 그건 조선일보의 아류일 뿐이다.

 

그 날 한겨레신문은 청와대의 부당한 요구에 응함으로써 조선일보와 똑같은 신문이 됐다. 더욱, 반성하는 사설을 조선일보보다 하루 늦게 올림으로써 조선일보보다 못한 신문이 됐다. 내가 한겨레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구독 중단을 요청한 것도 그래서다.

 

각설하고, 이처럼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이처럼 길게 나열한 까닭이 뭔지 아는가? 대한민국 언론이 이명박 정권에 농락당한 그 자리에, 87항쟁의 적자라는 한겨레신문마저 비참의 나락으로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기자는 허락받고 묻지 않는다"고 호기롭게 떠벌인 이대근 논설위원이 몸담고 있는 경향신문도 있었다는 걸 지적하고 싶은 거다.

 

"신문은, 기자는 허락받고 묻지 않는다."

 

북한 3대 세습을 빌미삼아 민노당에게 사상검증을 강요한 덕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 씨가 쓴 28일자 기명칼럼 <비판하지 말라는 그 목소리들>의 마지막 문장이 이러하다(경향닷컴 메인면에는 이 칼럼이 <기자는 허락받고 질문하지 않는다>는 타이틀로 올려져 있다).

 

그에게 묻고 싶다. "신문은, 기자는 허락받고 묻지 않는다"는 말 앞에 경향신문과 기자는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지를. 침묵의 동맹을 강요하거나 어떤 문제는 물으면 안된다고 해선 안된다는 그 멋진 말을 이전에 왜 청와대를 향해서는 하지 못 했는지를. 그리고 같은 편이 잘못하면 얼마든지 때리고 비판할 수 있다는 그 냉철한 논리를 왜 경향신문에는 적용시키지 않는지를.
 
지금은 힘 없는 민노당이나 붙들고서 시비하고 노닥거릴 때가 아니다. 경향신문의 파워와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길은 그것 말고도 많이 있잖은가. 좌우로 차단된 진영논리를 초극했다고 자랑하기 전에 부디 선후와 경중을 분별할 수 있는 영리한 진보가 되시라. 이명박 정권의 횡포에 치인 국민들에게 또하나의 짐을 더하는 것은 진보신문의 도리가 아니다. '무늬만 진보'라면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