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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이야기/농업정책

이류 삼류 농민은 자책만 해야 하는가

by 마리산인1324 2010. 10. 29.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0292126285&code=990335

 

 

 

[낮은 목소리로]이류 삼류 농민은 자책만 해야 하는가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국가에도 일류 국가가 있고 학교에도 일류 학교가 있습니다. 농민에도 일류 농민이 있습니다. 정부는 이들을 수입 개방과 고령화의 파고를 이겨낸 경쟁력 있는 농민들이라고 치켜세웁니다. 누구는 명품 농산물을 만들어 연간 1억원 이상을 벌고 누구는 5000년을 이어온 관행과 몸에 밴 타성으로 첨단을 돌파하고 있지 못합니다. 군에서는 1억원 이상 버는 농민이 몇 명으로 우리 군이 몇 등이라는 선전을 마치 농정의 성공인 양 자화자찬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개천에서는 수없이 많은 자잘한 고기들이 삽니다. 그 많은 물고기에게 왜 용이 되어 승천하지 않느냐고 꾸지람하는 사회에서 쥐꼬리만한 소득을 올리는 수준 이하의 농민은 설자리를 잃어 갑니다. 최근 통계 자료를 보면 연간 소득이 500만원이 안되는 농민이 전체 농민의 50%를 차지합니다. 이들에 대한 대책과 배려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농촌사회에 소득의 양극화, 지원의 양극화, 생산수단의 양극화가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연간 1억원 이상 버는 농민은 전체 농민의 1% 정도입니다. 소를 100마리 이상 키우거나 버섯을 대량으로 생산하거나 비닐하우스를 1만㎡ 이상 경영하는 농민들입니다. 배울 점이 많고 부지런한 농민들입니다. 틈새시장을 노려 성공하고 같은 농사라도 새로운 경영기법을 개발해 품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입니다. 경쟁의 최첨단을 돌파하는 농민들이 있고, 정부와 지자체는 그들을 하나의 모델로 치장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새로운 발상으로 노력하면 선구자가 될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전체 농민의 99%에게 1%의 모델을 제시하고 왜 그렇게 못하느냐고 다그칩니다.

1% ‘억대 농가’에만 쏠린 관심

잘나고 못나고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사회적으로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잣대이고 현상입니다. 문제는 성공한 일부 농민을 내세워 대다수 농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더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경제사회적 조건을 무시한 채 모든 문제를 자기 자신의 문제로 자책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좋은 사례와 모범을 찾아내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그것이 정부 정책의 실패를 위장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규모화·집단화 기치를 내건 정부 정책 때문에 지원의 양극화가 생깁니다. 전시행정, 포장행정, 모델행정에 능통한 정부와 지자체는 영농법인과 단체에 전폭적인 지원을 합니다. 대다수 농민은 비료 하나, 나락 포대 하나 지원받기도 어려운데 일부 농민은 해외 연수에, 농기계 구입에, 유리 온실에, 유통 지원금에 정신이 나갈 지경입니다. 정보가 빠르고 관 주도의 농정에 해박하며 공무원과 친분이 두터운 일부 농민들이 거의 모든 지원금을 독차지합니다. 그렇게 해서 고소득을 올리면 관에서는 그들을 하나의 모델로 포장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원이 한 쪽에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일부 농민이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육묘장을 차지하고, 건조장을 차지하고, 정미소를 차지하고, 고가의 농기계를 가진 농민들이 전체 농민들의 생산수단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없으면 농사를 더 이상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예속됩니다. 많은 농민들은 그들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품팔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당 3만원을 받고 허리가 휘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합니다. 농민이 고용 노동자화하고 있는 현상이 도처에서 벌어집니다.

올 가을 수확도 거의 마무리되어 갑니다. 들녘의 나락은 밑동이 잘린 채 짚무더기만 남아 있습니다. 생산량이 줄고, 나락값이 떨어지고, 생산비가 오르고 무엇 하나 넉넉한 것이 없습니다. 작년보다 평균 30% 정도 실소득이 감소했습니다. ‘나락값 死만원, 농민들 다 죽으라는 것이냐’ 외쳤던 게 작년인데 올해는 이마저도 호사스러운 옛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부 지역 농협은 가마당 2만원, 3만원에 나락을 매입하고 있습니다.

소득·지원·생산수단 양극화

영업을 해서 남으면 더 준다는 단서가 있지만 기대를 거는 농민은 없습니다. 100가마의 나락을 차에 가득 싣고 나가서 300만원이 입금된 통장을 보는 농민의 속을 누가 헤아려 줄까요? 한 달에 150만원 버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입장에서 300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닙니다만, 그게 농민들이 한 해 고생해 지은 농사의 총수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기계삯만 124만원입니다. 사회적으로 아래층에 사는 농민, 농민 중에서도 이류·삼류 농민은 혹독한 겨울을 전기장판에 의지해 나야 할 것입니다. 양극화의 한 쪽 끝에 선 농민들은 벼랑끝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