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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세계

아랍의 인식체계 바꾼 이집트 혁명 /교수신문110222

by 마리산인1324 2011. 3. 22.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2359

 

 

 

‘아랍판 프랑스 혁명’ 가부장적 전통에 정면 도전
아랍의 인식체계 바꾼 이집트 혁명
2011년 02월 22일 (화) 11:26:55 서정민 한국외대·중동아프리카학과 editor@kyosu.net

   
  경찰서에서 치러진 이집트 선거 모습. 몇 번을 찍는지 주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은 아랍인의 심리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아랍 내 민주화의 봇물이 터진 것만은 틀림없다.”

  후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이 발표된 지난 2월 12일 CNN에 출연한 미 해군대학원 중동학과 로버트 스프링보그 교수는 아랍권 민주화혁명의 성격과 파장을 이렇게 규정했다. 상황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번 시민혁명이 아랍권 전체의 정치적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외면상으로 아랍의 현 시민혁명 현상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몰락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수십 년간 지속된 독재 정권의 압정을 시민의 힘으로 떨쳐내고 민주화시대를 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18세기말 프랑스 혁명에 더 가깝다. ‘아랍판 프랑스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권의 시민혁명은 단순한 독재타도 혁명이 아니다.

  스프링보그 교수의 말처럼 아랍의 시민혁명도 ‘사상혁명’이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이를 바꾸기 위해 아랍의 세속주의 지식인들도 20세기에 수많은 계몽적, 개혁적 성향의 글을 내놓았다. 이런 노력이 현재 시민주도 민주화 혁명의 밑거름이 됐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는 특히 아랍권의 중요한 전통 그리고 아랍인의 심리구조에 자리 잡았다. 따라서 유목민 출신인 아랍인은 물리력에 약한 속성을 보인다. 오아시스를 지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무장을 해야 했던 유목민들은 자신 보다 강력한 무력을 가진 집단에 약할 수밖에 없다. 지배 가문의 수장이 아버지로 여겨지는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 부족을 수천 년 동안 지배해 왔다. 근대에 와서도 무력을 기반으로 한 쿠데타 군부세력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국민들은 공화정이든 왕정이든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과 심리구조를 떨쳐버리고 아랍인들의 마음속에 ‘자신감’을 넣어준 것이 이번 시민혁명이다.

 

혁명의 새로운 양상 등장
  인식체계 혹은 심리구조가 바뀌면서 발생한 시민봉기이기에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집트 대통령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아랍권 최대 정치, 문화 강국 이집트가 무너진 날, 22개 아랍국가 대다수 수도 중심가에 모여든 인파는 자국의 일인 양 환호했다. 압제에 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아랍의 현 시민혁명 현상은 18세기말 프랑스 혁명에 더 가깝다. ‘사상 혁명’이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심리구조의 변화가 이처럼 아랍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는 데는 위성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뉴미디어 역할이 지대했다. “리더가 없는 혁명이었다. 시민들이 진정한 영웅이다. 이제 더 이상 나의 역할이 없다. 나는 일터로 돌아갈 것이다. 혁명의 불길이 다음에는 어느 나라로 옮아 붙을 지는 페이스북에 물어보면 알 것이다.” 구글의 직원이자 이집트 혁명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던 와일 구님은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밝혔다.

  큰 틀로 보면 20세기와 21세기의 통신기술 발달이 아랍의 시민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위성방송,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뉴미디어가 확산되면서 가부장적 권력을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결집할 수 있었다. 산유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랍 국가는 50여 년 동안 독재와 부패, 미진한 경제발전의 부의 불공평한 분배, 높은 실업률 하에서 살아왔다. TV와 신문은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대부분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해 왔다. 불만은 있었으나 지금처럼 결집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었다. 왕정국가를 제외하고 공화정 체제하에서 뉴미디어가 가장 발달한 튀니지와 이집트가 다른 국가보다 빠른 변화를 달성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결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시민 간 소통수단의 발달은 아랍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아직도 권위주의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가의 시민들의 주권의식을 고무시킬 것이다. 그 파장은 21세기 유일한 3대 세습 공화정체제인 북한에까지 이를 것이다. 물론 인터넷, 이동통신 등의 확산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관전 포인트 ‘이집트’
  혁명의 전파 속도와 민주화 작업의 향방을 판단하는 근거로 이집트가 자주 언급된다. 이집트 소재 수니파 이슬람학의 본산 알-아즈하르 대학 법학과 후삼 이사 교수는 “향후 아랍권의 민주화 여정에 있어 현재 이집트의 상황이 리트머스”라고 언급했다. 이집트는 아랍의 정치대국으로 의회정치, 언론, 학문 등에 있어 중동 내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다. 특히 아랍권 내 영화와 드라마 생산을 주도하면서 중동 최대 문화강국의 자리를 6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 또 아랍권 이슬람운동의 모체인 무슬림형제단의 창설지이기도 하다.


“이집트에서의 시민혁명은 성공했지만, 민주화 여정은 이제 시작”이라고 이사 교수는 강조했다. 이사 교수를 포함해 대부분 학자들은 이집트 정국의 최대 변수는 군부라고 지적하고 있다. 18일간의 반정부 시위 기간 중 군은 중립을 지켰다. 총알 한 발을 쏘지 않았다. 시위대를 공격한 것은 내무부 소속 치안대였다. 때문에 국민의 신망이 더욱 두터워졌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권보다 더 오래 이집트의 권력과 경제이권을 차지한 집단이 바로 군부다. 1952년 군사혁명 당시에도 사람들은 민주적인 정부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세속주의, 권위주의 독재정부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시민의 힘을 목격한 군이 과거와 같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군 최고위원회는 이미 의회를 해산했고, 구헌법을 중지시켰고, 비상계엄법의 철폐를 약속했다. 그러나 앞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준비하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포괄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야권세력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것이다. 전면적이고 완벽한 민주개혁은 군의 기득권 상당부분을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개혁조치가 미비할 경우 시민들이 다시 일어날 것도 잘 알고 있다

  이집트가 아랍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권위주의의 변화에 대한 지표가 되는 이유는 군부독재의 틀이 붕괴하는 배경과 과정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군부는 프레토리안 레짐(praetorian regime), 즉 집정관 통치의 형태라고 분류할 수 있다. 단순한 권력과 이권을 차지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통치가 가장 이상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이라는 이데올로기다. 북한을 포함한 21세기 독재형태가 장기집권 가능한 것이 이런 이데올로기를 통해 지배 집단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국민을 설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체제 빠르게 붕괴할 것
  리트머스 테스트 이집트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중동의 정세는 장기적으로 요동칠 것이다. 중단기적으로는 아랍의 최대 정치 강국 이집트의 공백이 아랍정세에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이-팔 분쟁의 가장 중요한 중재자인 이집트의 역할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주도 테러와의 전쟁에 전면에 나섰던 무바라크의 모습도 한동안 볼 수 없다. 사우디와 더불어 수니파 이슬람의 주축인 이집트의 역할이 약화되면서, 이라크 전쟁 이후 확대되고 있는 시아파 초승달의 주축 국가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게 될 것이다. 이란을 축으로 서쪽으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남쪽으로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까지 연결되는 초승달 모양의 시아파 블록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더 큰 틀에서 세계정치역학에도 많은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일당독재 혹은 집정관 통치 등의 권위주의 체제가 빠르게 붕괴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물론 서방 그리고 한국도 과거처럼 민주화나 인권보다는 자신들의 이해를 지키기 위한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자세는 이제 버려야 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랍권은 물론 다른 지역의 권위주의 정부도 정당정치에 기반을 둔 다원화 사회로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정민 /한국외대·중동아프리카학과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대(석사)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카이로 특파원을 지냈다. 저서로 『인간의 땅, 중동』『글로벌 에너지 중심지, 중동』등이 있다. 중동 정치, 테러리즘, 이슬람 문화 및 사상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