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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세계

쿠바 사회주의 ‘수술대’오른다 /위클리경향901호

by 마리산인1324 2010. 12. 6.

<위클리경향> 901호(2010 11/23)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011171432541&code=117

 

 

[세계]쿠바 사회주의 ‘수술대’오른다

 

 

ㆍ국가운명 좌우할 대대적 경제개혁 예고

쿠바식 사회주의 모델은 파산을 맞이한 것인가. 아니면 지구상에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사회주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인가.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사진)이 내년 4월 당대회 개최를 선언하면서 쿠바 경제개혁이 중대한 변곡점에 들어서게 됐다. |

AP 연합뉴스

 

미국의 50년에 걸친 경제제재에도 사회주의 계획경제 모델을 흔들림 없이 유지해온 쿠바에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8일 “내년 4월 쿠바의 운명을 좌우할 당대회를 개최할 것”이라며 쿠바의 경제개혁이 중대한 변곡점에 들어섰음을 선언했다. 쿠바가 공산당 전당대회를 개최한 것은 199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원래 당대회는 5년마다 한번씩 열게 돼 있지만 쿠바는 지도부의 교체, 경제위기를 이유로 지난 12년간 당대회를 단 한번도 개최한 적이 없었다.

쿠바혁명의 살아있는 영웅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으로부터 지난 2006년 최고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는 “이번 당대회에서는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쿠바식 경제모델을 어떤 식으로 현대화시킬지 중대한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기업 확대, 개인고용도 허용
이미 공산당 간부들에게는 내년 4월 당대회를 앞두고 경제개혁방안을 담은 32쪽짜리 보고서가 제출됐다.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제목이 달린 보고서는 쿠바의 현 경제상황을 ‘비능률’과 ‘능력부족’이라는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 두가지 쿠바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균형재정, 수십억 달러의 외채 청산, 이중환율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쿠바가 개인기업을 종전의 17개 업종에서 178개 업종으로 확대하고 이 중 83개 직종에 대해서는 개인 고용을 허가하기로 한 것이다.

쿠바는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1968년 소규모 기업들을 국유화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임금 노동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로부터 허가를 얻어 카페나 이발소, 자동차정비소를 차릴 경우에도 가족들 이외에는 일절 다른 사람들을 고용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쿠바는 500만개 일자리 중 75%가 공공부문이고 민간부문 일자리는 23%에 불과한 상황이다. 하지만 쿠바는 국영기업과 국영농장의 생산성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실업률이 높아지자 이제는 개인 소기업에 일정부분 고용부담을 떠맡기기로 한 것이다.

국가가 모든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 가부장적인 계획경제체제에 근본적인 궤도수정이 시작된 것이다. 쿠바는 이를 위해 현재 14만개 정도에 불과한 개인 소기업을 내년 초까지 추가로 25만개까지 허가해 줄 계획이다.

쿠바의 새로운 경제실험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미국 시사월간 ‘아틀란틱’과의 인터뷰에서 “쿠바의 경제 모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고돼왔다. 카스트로의 의미심장한 발언 이후 쿠바는 50만명에 달하는 공무원을 내년까지 해고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등 서방세계의 많은 언론들은 카스트로의 발언을 쿠바가 사회주의 모델을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려는 신호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방세계 언론들은 카스트로가 인터뷰가 나간 직후 자신의 두번째 회고록 발간을 앞두고 공개한 발언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카스트로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오해가 증폭되자 “전세계가 주지하다시피 내 생각은 자본주의 역시 미국이나 전세계 어디에서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자본주의는 하나의 위기에서 새로운 위기를 낳고 또 매번 그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쿠바의 경제모델이 통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진단이 자본주의 도입을 대안모델로 전제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2007년 집권 이후 일부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서방세계 언론들로부터 공산당 수뇌부와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도 “쿠바의 사회주의는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마리노 무릴로 경제장관도 쿠바의 경제개혁이 사회주의 모델의 포기가 아님을 재차 확인했다.

실제로 쿠바는 내년 4월 당대회에서 발표할 경제개혁안에 개인기업의 허용, 개인소득세 신설, 사유재산 매매 허용 등을 담으면서도 외국자본의 투자는 관광산업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공동투자 형태만 허용하기로 했다. 또 은행 등 기간산업은 여전히 국유화 대상이다. 개인기업은 소규모 농장이나 소기업으로만 제한된다.

쿠바로서는 전면적인 사유재산제도 인정을 토대로 경제를 전면 개방할 경우 1959년 혁명 이후 땅과 공장들을 빼앗긴 과거 대지주와 자본가들이 되돌아와 재산권 행사를 하면서 과거 동유럽 사회주의권처럼 일시에 몰락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도 조심스럽다.

적어도 쿠바 공산당이 구상하는 경제개혁방안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외국자본에 대한 개방을 통해 대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시스템을 시장경제로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쿠바의 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시장경제시스템을 ‘하이브리드형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로 부르기도 한다.

중국의 경제학자 추광요 교수는 10월 21일 자메이카의 옵서버지와 한 인터뷰에서 “중국은 홍콩과 넒은 대륙이 있었기 때문에 점진적 개혁이 가능했던 것”이라며 “중국식 모델이 쿠바에 참고는 될 수 있겠지만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나 베트남식 아닌 독자모델
그렇다면 쿠바 지도부가 소기업 시장경제 시스템 도입을 통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이고 과연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일찍이 2005년 피델 카스트로는 “우리가 혁명 이후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누군가(소련)는 사회주의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며“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이는 곧바로 공식이 되었고 의사의 처방처럼 받아들여졌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카스트로는 쿠바가 혁명 이후 스탈린주의 노선에 따라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 위주로 움직이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어버린 점을 이미 5년 전에 인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쿠바가 2008년 비경작토지를 개인농부나 협동농장에 이양하고 지난해 말 현재 국가 전체의 토지 중 54%를 10만명의 자영농들에게 불하한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쿠바는 국가의 농지를 국가가 직접 경영하거나 대지주에게 넘기기보다 다수의 자영농들을 통해 토지이용도를 높이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쿠바가 내년 4월 당대회에서 다수의 소기업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농업부문에서의 성과를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부문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남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토니 사우노는 ‘쿠바의 새로운 위협:자본주의로 복귀’라는 칼럼에서 “노동자들의 민주적인 견제와 통제,경제운영에 대한 자발적 참여 없는 계획경제는 관료주의의 비효율과 부패를 낳을 뿐”이라고 쿠바의 새로운 경제개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쿠바가 개인기업 허용을 통해 공공부문에서 잘려나간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할지는 의문”이라며 “하지만 쿠바는 중국이나 베트남식 모델을 그대로 베끼기보다 나름대로 자기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강진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kangj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