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164호] 2010.11.09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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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거꾸로 된 68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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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고교생들의 시위는 상징성을 띤다. 정부를 패배시킨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르코지 정부는 굽히지 않았다. 그로 인한 사회적 분노가 남았고, 그 분노가 어떻게 표출될지 아무도 모른다. |
파리·최현아 편집위원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진 은퇴법 개정안 반대 시위는 프랑스 사회에 대해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특히 고등학생·대학생의 시위 참여가 단연 화제였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고등학생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정부가 패배한 전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고집불통 사르코지 정부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청년세대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사르코지, 고교생 시위에 당황했지만
사르코지가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한다는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올해 6월부터 전국 규모의 파업이 벌어졌다. 그러나 곧 여름 바캉스가 시작되었고 파업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다. 가을이 되면서 양상은 다시 바뀌었다. 새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열린 9월7일 시위에 300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참여하면서 정부를 긴장시켰다. 그러나 그때까지 시위 참여자는 주로 샐러리맨·공무원·교사·노동자 등 기성세대였다. 그런데 10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은퇴법 개정안 시위에 고등학생들이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은퇴는 부모 세대에게 해당될 사안이라고 생각할 법한데, 15~16세 어린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곧 대학가로 번졌다. 순식간에 시위는 새로운 양상을 띠었다. 젊은 층들이 은퇴법 개정안 반대 시위에 참여하면서 그 파급효과는 컸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시위 양상을 보며 68운동과 견주거나, 1995년 알랭쥐페법안(공공부문 연금개혁안) 시위와도 비교했다. 2006년 최초고용법안(CPE·고용유연화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떠올리기도 했다.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정부의 법안 저지에 성공한 사례들이다.
ⓒReuter=Newsis 프랑스 젊은이들은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 탓에 거리로 나섰다. |
고등학생들의 시위 참여에 적잖이 당황한 사람은 사르코지 대통령이다. 전혀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은퇴법 사안이 청년 세대들에게 직접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은 착오였다. 시위 열기가 고조되면서 일부에서는 폭력 시위가 등장했다. 얼굴에 복면을 두르고 자동차를 깨거나 방화하고, 상점에 침입하는 파괴자들이 등장하자 정부는 언론을 통해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하며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10월27일 결국 상원에 이어 의회에서도 은퇴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매번 정부의 개정안을 저지한 청년들의 힘은 결국 무쇠 같은 사르코지 정부 앞에 좌절된 것일까?
거꾸로 된 68운동
은퇴법 개정안은 직장에서 일하는 기성세대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비록 노동시장의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젊은 층에게도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실업에 대한 공포였다. 노년층의 근무 기간이 2년 연장되면 일자리 100만 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이는 청년 세대들의 실업을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20세에는 학생, 25세에는 실업자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25세 내외 청년들의 실업이 그만큼 일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지금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데 은퇴수당 100%를 받기 위해 67세까지 일하면서 은퇴 연금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결국 20대의 불안이 60대의 불안으로 연장되는 셈이다.
ⓒReuter=Newsis 에릭 뵈르트 프랑스 노동부 장관(왼쪽)이 10월27일 은퇴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
프랑스 청년 세대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현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와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사회학자 올리비에 갈란드는 프랑스 교육 시스템에서 원인을 찾는다. 즉 엘리트를 양성하는 프랑스 교육 시스템 자체가 성공에 대한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틀에서 배제된 학생들은 다시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을 떠맡게 되는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그렇다고 청년 세대가 자신들의 처지나 이해관계 때문에만 시위에 참여한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은퇴법 개정안이 세대 간에 이뤄진 연대를 깨뜨린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미래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에 대한 걱정, 즉 일반적인 신뢰, 프랑스 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사회적 박탈감은 이번 시위가 68운동과 거리를 두는 지점이다. 1968년 학생 시위는 장밋빛 미래, 즐거운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현재의 시위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담겨 있다. 사회과학연구센터의 사회학자 장 피에르 르골프는 이를 두고 ‘거꾸로 된 68운동’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고등학생들의 시위는 상징성을 띤다. 그간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그들이 참여하면서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결국 정부의 손을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 은퇴법 개정안은 결국 통과되고 말았다. 사르코지는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노조 측과 어떤 협상도 허용하지 않았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역대 우파 정부 가운데 가장 고집스러운 정부다. 비록 당장은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바닥을 친다 해도 더 중요한 것은 법안 통과였다. 그에게는 5년 재임 기간 가장 사활을 건 법안이기 때문이다. 친기업 정부로서 지지 세력을 결집해 2012년 대선에 승리하려는 것이 사르코지의 목표다.
비록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이번 시위는 프랑스 국민, 특히 청년 세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사르코지는 일부 교외에서 벌어진 폭력 시위를 젊은 시위대에 대한 비난 도구로 활용했다. 한편 노조 및 야당 측에서는 경찰이, 복면을 쓴 ‘파괴자’들이 방화·파괴 등 폭력을 일삼는 것을 은근히 묵인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아니크 코페 노조 대변인은 <르몽드>(10월27일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록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현 정부의 젊은 층, 소외 계층에 대한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분노는 남아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 분노가 다시 어떻게 표현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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